13화
홍제역 1번 출구에서 나온 도화는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 마을버스를 보고 뛰었다. 도화가 뛰는 것을 봤는지 버스 기사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기다려 주었다.
마을버스의 에어컨 바람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으로 약했다. 그래도 뛰느라 흘린 땀과 열기를 아주 조금은 걷어낼 수 있었다. 작은 마을버스는 인왕산을 가려는 등산객들로 만석이었다. 어느 동호회에서 단체로 온 것인지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도화와 등산객들이 내린 곳은 마을버스 노선의 종점에 있는 마을이었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은 파랗고 빨간 슬레이트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산 아니면 아파트인 이 나라에 1층짜리 집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들었다.
도화는 등산객들 사이에 섞여 걷다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흐음. 오랜만에 와 보는 인왕산이군.]
주머니 속에 있던 현천이 부르르 떨며 말했다. 도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현천이 들어 있는 주머니 위를 손바닥으로 세게 후려쳤다.
[악! 말도 못 하게 하나!!!]
[변태처럼 떨지 말라고.]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누가 봤으면 이상한 걸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고 오해 샀을지도 모를 정도로 현천의 진동은 거셌다.
[그저 오랜만에 인왕산에 온 것이 기뻐 그런 것 가지고 너무 박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그저 기쁜 것이라면 주둥이만 움직이면 될 것을. 왜 떨어 대냔 말이야.]
도화가 질색하자 현천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도화, 자네는 기쁠 때 춤을 추지 않는가? 이 몸은 검에 갇혀 출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움직이는 걸세.]
[안 춰. 그러니 닥치고 여우나 찾아.]
[어허이. 어찌 위대한 이 몸을 사냥개 취급한단 말인가!]
[사냥개라니. 네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 같으니까 부탁하는 거지.]
[부, 부탁? 흠. 흐음. 뭐… 부탁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부탁이란 말에 현천은 못이기는 척 주머니 속에서 꿈지럭댔다.
홍제동으로 향할 때만 해도 인간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니, 감금되어 있는 요괴의 기운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화는 마을버스가 종점에 도착하자 생각을 바꿨다.
[목멱산에 있던 국사당이 인왕산에 옮겨진 것을 잊고 있었군.]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인왕산이라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구려. 국사당 기운에 여우의 기운이 가려질 것 같은데.]
현천도 귀찮게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일부러 여기에 숨긴 건가?]
[그럴 수도 있겠소이다.]
인왕산 국사당.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지금은 인왕산 기슭 선바위 밑에 있지만, 원래는 목멱산 꼭대기. 그러니까 현재 남산 꼭대기에 있던 신당이었다.
국가가 직접 기우제와 기청제 등 하늘에 치성을 드리던 신성한 곳이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일본의 신궁보다 높은 곳에 있는 국사당을 못마땅히 여겨 이전을 강요했다.
[본디 있어야 할 곳에서 강제로 뽑혀 이전되었으니 어느 신이 좋다고 남아 있을꼬.]
[그래도 치성은 하늘에 닿으니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
도화는 마을 뒤로 펼쳐진 산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왕산도 기운이 좋지만, 그래도 국사당은 목멱산에 있는 게 제일 어울렸다.
[쯧쯧. 고오얀 것들. 고작 50년 동안 이 땅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어. 저들 신이 중하면 이쪽 신도 중한 것을 알아야지. 두고두고 천벌을 받을 것이야.]
주머니 속 현천도 쯧쯧, 혀를 차며 심기 불편함을 내보였다. 보통 사람이 말하는 천벌은 별 힘이 없지만, 현천 같은 고대부터 내려온 신기가 하는 말은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큰 사달이 나진 않더라도 중첩되면 영향은 있겠지.
도화는 현천에게 뭐라 하지 않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버스로 들어올 때도 경사가 높았는데, 마을 내부는 평지보다 가파른 언덕과 계단이 주된 길이었다.
외벽마다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은 그린 지 얼마 안 된 것과 오래된 것이 섞여 어지러웠다. 담벼락 아래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을 보니 세상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저런 길고양이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물론 길고양이도 그들만의 고단함이 산더미겠지만, 도화는 그래도 태평하게 낮잠 자는 고양이가 부러웠다. 고생한다 한들 몇백 년을 배척받으며 살진 않을 테니까.
건물 OO번
관리 번호 OOO번
이선후가 말한 건물 위치였다. 익히 아는 주소 형태가 아니라 혹시 속이는 건가 싶었지만, 손각시의 살벌한 협박에도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여기까지 믿고 왔다.
도화는 마을 안으로 들어온 지 1분도 되지 않아 이선후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집집마다 건물 번호와 관리 번호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대신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도로명 주소 표지판이 붙어 있는 집과 없는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어, 말씀 좀 묻겠습니다. 어르신.”
“으응?”
도화는 가파른 계단 구석에서 채소를 다듬던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노인은 가는귀가 먹었는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머라는겨. 시방.”
“여기, 이 집을 찾고 있습니다.”
“으이?”
도화는 노인이 잘 볼 수 있도록 휴대폰 어플로 크게 건물 번호와 관리 번호를 써서 보여 주었다. 휴대폰 화면을 한참 쳐다보던 노인은 기억났다는 듯이 아~! 소리를 내며 무릎을 탁 쳤다.
“그기, 그기일 낀데. 공가(空家).”
“공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라는 건가?
노인의 대답에 도화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라오면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집이 계속 눈에 들어오긴 했었다.
“거 퍼런 딱지 붙은 덴 사람이 사는 기고 읍는 덴 안 사는 기라.”
퍼런 딱지. 도로명 주소 표지판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제 이해가 됐다. 이선후가 준 집 번호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면 여기는 어디로 가야 나옵니까?”
동네가 워낙 복잡하여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밤을 새워도 못 찾을 것 같아서 물었다. 계절이 여름만 아니었어도 하체 운동도 할 겸 돌아다녔을 테지만. 오늘은 더워도 너무 더운 미친 날이었다. 현지인의 도움이 절실했다.
“여기가 아마 저~ 꼭대기 공가일 기다. 아마.”
노인이 상체를 틀어 언덕 꼭대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어구구, 허리야. 끙끙 소리를 내면서도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꼭대기…….”
노인의 설명은 친절했으나 도화의 미간은 일그러졌다. 중턱도 아니고 꼭대기라니. 이선후가 다온을 숨긴 집은 마을이라기보다 산에 집을 지었다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거 아무도 안 살 낀데. 머 한다꼬 그 갈라 카나?”
노인이 도화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젊은 청년이 인왕산 등산을 하러 왔다가 마을 구경을 하러 온 건 줄 알았는데 공가에 대해 물으니 경계가 됐다. 재개발 보상을 목적으로 무허가 건물을 짓는다거나 공가에 들어가 눌러앉으려는 사람인 것 같아서였다.
“누가 먼저 이 집을 찾나, 친구와 술 내기를 했거든요. 친구가 술고래라 제가 지면 지갑이 거덜 나서 꼭 이겨야 합니다.”
도화는 있지도 않은 친구를 들먹이며 노인에게 말했다. 술 내기라는 말에 노인은 껄껄 웃으며 어여 가 보라고 도화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적당히 마시라고 조언도 해 주었다.
노인을 지난 도화는 끝도 보이지 않는 가파른 계단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체력이 좋은지라 계단 따위로 거친 숨을 내쉬는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더위였다. 얼마나 더운지 지금 이 열기를 모아 두었다가 심력을 많이 소모했을 때 꺼내 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는 도화지만, 심력을 쓴 대가로 찾아오는 추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보게. 도화. 여우가 저기 있는 것 같네만.]
[나도 느껴져.]
[그런데 기운이 너무 미약해. 어서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보다 저승차사가 먼저 도착할 것 같구려.]
[저승차사?]
도화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높고 가파른 계단을 두 개씩 걷다가 아예 뛰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허공에 나풀거리며 시야를 방해했지만, 머리카락을 넘길 틈도 없이 내달렸다.
‘저기다!’
회색 철문에 붙은 건물 번호와 관리 번호가 보인다. 이선후가 알려 준 것과 똑같은 번호였다. 도화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바로 철문을 열었다.
덜컥!
철문이 잠겼는지 열리질 않는다. 안에서 잠근 것인지 밖에서 잠근 것인지는 몰라도 당장 이 문을 열 사람은 없다. 도화는 철문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넣고 세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순간, 지직- 스파크 비슷한 게 튀는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전달되었다. 단순히 열쇠로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 안팎에서 열 수 없도록 부적을 쓴 듯했다. 어쨌든 억지로 연 탓에 문이 찌그러졌지만, 지금은 문을 살펴볼 상황이 아니다.
“다온! 거기 있나!”
도화는 문짝을 뜯어내듯 철문을 제거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도 참 좁은 집이겠구나 싶었는데, 실제 내부를 보니 더 비좁고 엉망이었다. 뭔가 있긴 한데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마다 신문지를 여러 겹 붙여 두어 집 안으로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둑했다.
윽. 냄새.
도화는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비릿하고 썩은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해지기 싫지만, 매우 익숙한 냄새였다. 그래서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이 냄새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냄새였으니까.
“다온!”
도화는 거실 겸 주방을 지나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집이 워낙 좁아서 단번에 다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릿한 냄새의 정체도 찾아냈다.
다온은 검붉은 얼룩이 크게 자리 잡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몸은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딱이었다.
“이봐! 정신 차려!”
도화가 다급히 다온을 흔들었다. 하지만, 다온의 감긴 눈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건가?”
[아니. 아직 살아 있다네. 의식은 없지만 숨통은 끊어지지 않았어. 하지만, 여기서 좀 더 이러고 있다간 삼도천을 건너게 생겼군.]
삼도천을 건너게 생겼다는 현천의 말에 도화는 망설이지 않고 다온을 품에 안아 일어섰다. 삼도천이 문제가 아니다. 저승차사가 다온의 혼을 홀랑 가져가 버리면 화린에게서 완수금 3억을 못 받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저승차사라면 몰라도 예의 그 변태 차사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서 여길 뜨고 싶었다.
[그렇게 안고 버스를 탈 생각인 겐가?]
[젠장. 중고차를 먼저 샀어야 했는데…!]
후회한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화린에게 직접 데리러 오라고 연락해도 그녀가 오는 중에 다온의 숨이 넘어갈 확률이 높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아파 보이는 데다 옷에 피가 절어 버릴 정도로 물든 상태라 다온을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고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냥 업고 뛸까? 아니면 술 취한 것처럼 부축해서 택사를 타? 젠장. 옷이 문제네.
다온을 안은 채로 난감해하는 도화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