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다온…? 그, 그게 누구지?”
이선후가 말을 더듬으며 반문했다. 물론 저런 어색한 연기에 속아 넘어갈 도화가 아니었다.
“아까는 똑똑하고 예쁜 아내라고 자랑하더니. 갑자기 기억이라도 잃은 겁니까?”
“하하…! 내가 아내가 어디 있다고. 결혼도 안 한 총각한테 너무 심한 말 하는 거 아냐?”
“등에 태아귀를 달고 다니면서 총각이라고 말하면 손각시가 화냅니다.”
“손각시…? 그게 뭔데 나한테 화를 내?”
“처녀 귀신입니다.”
“히익!”
귀신이란 말에 이선후가 기겁하며 도화를 피해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본인 딴에는 전력으로 달렸겠지만, 도화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도화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눈에도 이선후의 달리기는 느려 터졌다. 나흘을 봉지 라면 하나와 햇반 하나로 버틴 사람이 다리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나름 열심히 달리던 이선후는 도화가 슬쩍 내민 다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얼굴을 박고 넘어진 모습은 한 달 전에 봤던 모습과 비슷했다.
“윽…….”
코를 움켜쥐고 간신히 일어나 앉은 이선후가 도화를 노려보았다.
“손각시고 처녀 귀신이고 간에… 너, 무당이야?”
“무당은 아닌데.”
“그럼 뭔데 자꾸 그런 개소리를 지껄여?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
“아까 말했잖습니까? 다온 씨를 만나고 싶다고.”
“네가 뭔데 걔를—!!”
만나려고 하냐고 외치려던 이선후가 코를 막던 손을 내려 입을 막았다. 코피로 범벅이던 손이 입을 막아 입 주변이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것보다 제 입으로 다온을 알고 있다고 시인해 버린 게 더 놀랄 일인 듯싶었다.
“이 사진만 보고 찾아다녔는데. 사람이 이렇게 변해 버리면 어쩝니까?”
도화는 휴대폰에 사진을 띄워 이선후에게 보여 주었다. 이선후는 자신의 리즈 시절 모습이 아무리 봐도 조폭 무당 같은 남자의 휴대폰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뭐… 이해는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다온 씨가 어디 있는지만 불면, 저기 있는 손각시는 제가 해결해 드리지요.”
“자, 자꾸 손각시, 손각시 하는데 너 이 새끼… 어디 사기 칠 게 없어서 귀신으로 사길 쳐! 내가 부적 한 장 살 것 같아? 귀신 그딴 게 어디 있다고!”
이선후의 과한 반응에 도화는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말 그대로 ‘갸웃’이었지만, 도화의 키와 덩치가 워낙 큰 까닭에 갸웃이 아니라 저 자식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선후의 예상과 달리 도화는 그의 멱살을 잡지도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대신 이선후의 눈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설마. 눈알을 뽑으려고…?
끔찍한 상상에 머리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도화의 손이 더 빨랐다. 다행히도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커다란 손바닥이 이선후의 두 눈을 꾸욱 누르자 화끈한 감각이 파고들었다. 마치 치약이 눈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짓이냐고 뭐라 할 새도 없이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선후는 두 눈을 손으로 마구 비볐다. 하지만, 방금 화끈했던 눈의 통증은 감쪽같이 사라져서 착각했나 싶을 정도였다.
“귀신 그딴 게 어디 있냐고 하셨는데, 항상 등에 달고 다니던 태아귀는 제가 떼어 버렸으니 손각시라도 보여 드려야 믿으시겠군요.”
“……?”
“저길 보시죠.”
도화가 골목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선후는 이 새끼가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도화가 가리킨 골목 입구를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귀신, 그깟 거. 마음 허약한 등신들만 믿는 거 아닌가?
그딴 게 내 눈에 보일 리가 없어.
이선후는 도화더러 경찰에 신고는 안 할 테니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 돈으로 오늘이야말로 잭팟을 제대로 터트려서 빌린 돈, 외상값을 다 갚고 제2의 황금기를 누리는 상상을 펼쳤다. 그런 이선후의 시야에 맨발이 들어왔다. 하얗고 매끈한 발이었다.
‘맨발?’
무더운 여름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결국 이선후는 고개를 들어 발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여자였다. 그늘과 긴 앞머리 때문에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순 없었으나 얼핏 보이는 이목구비 윤곽만 봐도 상당한 미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도 도박하러 온 건가?’
도화가 손각시를 보여 준다고 했으나, 이선후의 머릿속은 온통 도박뿐이었다. 어차피 이 동네에 오는 사람 대다수의 목적은 도박일 테니 이 여자도 신발까지 팔아 가며 도박을 한 것 이리라.
“손각시가 잘 보이나 봅니다.”
“으응? 손각시?”
손각시란 말에 이선후는 잔뜩 인상을 쓰고 여자를 다시 쳐다봤다.
뭐야, 가짜 무당이랑 짜고 사기 치러 온 여잔가? 간만에 예쁜 여자를 봐서 더러웠던 기분이 좀 나아질 뻔했는데. 사기꾼은 사절이다.
이선후는 볼일 없다고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꺼지쇼. 진짜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키킥. 총각도 아닌 놈이 총각 행세를 한다 하여 왔더만. 냄새가 아주 구린 놈이구나. 온몸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썩은 내가 진동을 해.]
“무… 뭐? 썩은 내?”
여자가 굉장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의 목에선 날 수 없는 소리였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가 말소리와 겹쳐서 듣고 있기가 곤욕스러웠다.
까득, 까드득 소리는 여자의 손에서 나는 소리였다. 길쭉한 손톱으로 허벅지를 긁는데 그런 소리가 났다. 그제야 이선후는 앞의 여자가 도박하러 온 여자 사람이 아니라 여자 귀신… 그러니까 가짜 무당이 말한 손각시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가짜 무당이 아니라는 거야…?’
겁에 질린 눈으로 도화를 쳐다봤다.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도화는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사람처럼 이선후를 내려다보았다.
“손각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
“총각도 아닌 놈이 총각 행세를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손각시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손각시가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압니까?”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귀신이 코앞에 있는데 말장난이나 하다니. 이선후는 바들바들 떨며 손가락으로 허공에 십자가를 그렸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느냐고. 정신에 이상 있는 놈들이나 환각을 보는 거라고 할 땐 언제고, 이선후도 지금은 필사적으로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님, 성모 마리아님 등등 자신이 아는 종교 관련 인물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덜덜 떨었다.
제발 귀신이 떠나가게 해 주세요. 옆에 무당 새끼도 사라지게 해 주세요. 손까지 싹싹 빌어 가며 기도했지만, 손각시와 도화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손각시의 손에 멱살 잡혀 끌어 올려졌다.
“히익! 사, 살려 줘!”
이선후의 다급한 외침을 들었지만, 도화는 그를 구하려는 움직임 대신 표정 없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손각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당신 같은 인간쓰레기를 손톱으로 찢어 버리는 것입니다.”
“손, 손톱으로 찢어?”
무시무시한 말에 이선후는 손각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손각시는 그런 이선후의 목젖에 손톱 하나를 들이밀고 씨익 웃었다. 아까는 그늘과 역광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바짝 끌려가 마주한 손각시의 얼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이했다. 윤곽이 아름답다고 했던 것은 취소다. 쭉 올라간 눈은 흰자가 온통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쉼 없이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웃다 울길 반복하는 입술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는데 이빨은 상어처럼 뾰족했다.
손각시는 도화에게 작게 속삭였다. 평범한 인간 이선후는 들을 수 없는 귀물(鬼物)의 음성이었다.
[아주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는 놈일수록 찢는 맛이 있지.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날 막지 않지. 도방?]
[그냥 겁만 줘.]
[왜? 이놈… 구려도 좀 구린 놈이 아닌데? 못해도 태아귀 다섯은 넘게 만든 놈이야.]
손각시가 시시덕대다 까드득 이를 갈길 반복하며 말했다. 제 눈앞에 있는 놈이 최악인 놈이라 찢을 생각에 신이 났다가도, 홍도화라면 절대 그리 두진 않을 게 뻔해서 분했다.
하지만, 자신이 저승차사에게 잡혀 가지 않고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건 모두 도화가 선을 넘지 않도록 강제했기 때문임을 알기에 아쉬워도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이선후를 겁박했다. 물론 도화의 허락이 떨어지면 흔적도 없이 찢어발길 것이다.
[여우족의 의뢰를 받았어. 가출한 삼미호를 찾아야 하는데 삼미호의 위치를 아는 자가 이놈이야.]
도화의 말에 손각시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방이 그렇다는데 여기서 더 고집을 부릴 순 없지. 손각시는 이선후의 목젖을 찌르던 손톱을 거두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손톱에 찔려 피가 줄줄 흐르는 걸 보니 조금은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여자만 괴롭힌 게 아니라 네 핏줄까지 편히 눈감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만들었구나. 당장 머리부터 씹어 먹고 싶지만, 삼켰다간 탈이 날 정도로 업보가 깊으니 먹지 않으련다. 낄낄.]
“이, 이봐. 무당! 지금 이거 무, 무슨 말이야? 내 핏줄이라니?”
구천이네 업보네 하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하지만,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인지 도출해 내지 못한 이선후는 다급하게 도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출은 못 했어도 절대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님을 본능이 알렸다.
“당신의 죄가 하늘을 찌를 정도라 원귀도 기피한다는 겁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야 죄지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지요. 그래서, 다온은 어디에 숨겼습니까?”
도화가 손각시에게 붙들린 이선후에게 좀 더 다가가며 물었다. 이선후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도화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저를 붙은 것이 귀신이고 이 남자는 사람이건만. 어찌 된 일인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압도적인 키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덩치? 그것도 아니면 귀신을 보고 부릴 수 있는 무당이라서?
‘아니야. 이자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어.’
이선후를 내려다보는 도화의 검은 눈동자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보는 것보다 더 무감했다. 같은 인간인 이선후보다 귀신 손각시를 보는 눈이 훨씬 따뜻하고 친절했다.
“다온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줄 테니 저, 저 좀 살려 주세요. 귀신이고 업보고 간에… 윽!!!”
이선후가 도화에게 굽신거리는 순간, 도화는 손각시의 손에서 이선후의 멱살을 빼앗았다. 손각시의 차가운 손이 아닌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손이었지만, 이선후는 도화가 더 무서웠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 같았다.
도화는 이선후의 성질이 꺾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놓았다. 외견상 도화가 훨씬 어려 보였으나 분위기는 이선후 쪽이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 같았다. 아이치고 많이 늙긴 했지만.
“말하면 조금이라도 죄를 덜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지.”
도화의 제안에 이선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