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서울까지 무사 귀환하길.”
도화는 저 멀리 사라지는 택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복채 백 원에 목숨 건지는 방법을 세 가지나 알려 줬다.
운전 조심, 휴게소 화장실 들르기, 근처 졸음 쉼터에서 자고 이동하기.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에겐 기초적이고 당연한 조언이었지만, 택시 기사가 무서워한 이유는 도화의 말에 신언神言의 힘이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미약한 정도이지만, 평범한 인간에겐 뇌리에 박혀 한동안 무시하지 못할 그런 힘이 있는 말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냥 다른 택시를 탈까 고민했다. 기본요금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돈까지 내며 잔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었다. 말 시키지 말고 조용히 가자고 하면 분명 불편한 분위기가 될 테니 그것도 내키지 않아 내리려고 했으나, 내리지 않은 것은 앞의 보조석을 차지한 원귀 때문이었다.
[죽어. 죽어어—.]
처음에는 택시 기사와 악연이 있는 원귀인가 했다. 잔소리도 짜증 나는데 원귀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망종인 놈인가 싶어 내리려던 도화는 이어진 원귀의 말에 내리려던 마음을 접었다.
[다 죽어. 나만 죽으면 억울해. 너도 같이 죽자. 뒤에 놈도 데려가자.]
앞은 모르겠는데 뒤의 ‘뒤에 놈도 데려가자.’라는 건 저 원귀가 특별히 택시 기사에게 원한을 품은 게 아니란 증거였다. 보통 한을 품은 대상에게만 해를 끼치는 게 원혼이다.
“효자 노릇 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야. 그냥 밥 빌어먹지 않고 결혼해서 손주 안겨 드리는 게 효—.”
[저기로 갈까?]
원혼이 검고 앙상한 손가락으로 창밖 어딘가를 가리켰다. 실눈으로 슬쩍 확인하니 4차선 횡단보도였다. 출근 시간대라 초록불을 기다리는 직장인이 무척 많았다.
입꼬리를 귀밑까지 찢으며 웃는 원귀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던 도화가 택시 기사를 불렀다.
“아저씨.”
“효자… 어엉?”
“잘 테니까 정선에 도착하면 깨워 주세요.”
부러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택시 기사를 부른 것이지만, 원혼에게 추혼 당하기 싫으면 꺼지라는 경고성 부름이었다. 경고가 먹혔는지 다 죽이자고 낄낄대던 원혼이 사라졌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지.’
지금은 무서워서 도망갔지만, 언제 다시 이 택시에 들러붙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택시에서 내라고 난 뒤의 일까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정선에 도착했을 때 그냥 가려고 했는데. 듣기 싫었던 택시 기사의 잔소리가 악의는 없었다는 게 신경 쓰여, 고작 백 원에 목숨을 구할 조언을 해 주었다.
조언을 무시할지 말지는 택시 기사의 선택이다. 거기까진 도화가 어찌해 볼 영역이 아니다. 대신 찝찝하라고 신언으로 말했다. 최소한 휴게소에 들르면 화장실은 가겠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들락이는 곳이니 원혼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붙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교통사고를 내기 위해 졸음을 부를 수도 있어 졸음 쉼터에서 푹 자라고 한 것이고, 안전 운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도화는 이제 자신의 일을 보기로 했다. 도박에 미친 이선후를 찾아 다온의 행방을 물으려면 우선 이선후를 찾아야 했다.
‘카지노는 들어가기 싫은데.’
백운산을 낮은 병풍 삼아 우뚝 세워진 두 개의 고층 건물은 멀리서 봐도 음울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지금 컨디션으로 저길 들어갔다간 한동안 골골댈 게 뻔했다.
그래서 근처 숙박업소부터 돌기로 했다. 카지노 건물 옆에 호텔 건물이 있었지만,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이 호텔에 머물 돈이 있을 리 없으니 잘하면 모텔, 아니면 여관, 그것도 아니면 노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에서 지낼 수도 있었다.
한참 걸어 내려가다 보니 사북 시장이 보였다. 현대화되어 깔끔한 입구와 내부는 너무 한산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보다 길게 줄지어 선 점포 수가 훨씬 많을 정도였다.
카지노 근처라 일확천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원귀들이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사북 시장은 깨끗했다.
시장 밖도 여러 점포가 많았다. 그중 도화의 눈에 가장 많이 보인 것은 모텔과 전당포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였으나, 이곳에 카지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도화는 가장 가까운 모텔부터 돌기 시작했다. 지갑 속 위조 경찰 배지를 보여 주며 이선후란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면 순순히 숙박 명부를 제공했다. 실종자 찾수? 모텔 주인들 모두 비슷한 질문을 했다. 이런 일이 일상인지 도화가 경찰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혹시 이름을 허위로 작성했을지 몰라 사진까지 보여 주며 찾았지만, 네 시간이 지나도록 이선후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늦은 낮 시간이 되자 텅 빈 거리에 사람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몰골과 퀭한 눈을 한 사람들은 근처 국밥집에 들어가 배를 채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마침 인근 모텔이란 모텔은 다 돌아본 도화는 더 안으로 들어가 여관 거리를 살폈다. 여기서도 모텔 거리와 마찬가지로 주린 배를 문지르며 비척비척 여관을 나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화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최대한 벽에 붙어 그들을 관찰했다. 카지노 빌딩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보다 모텔이 좀 더 진득거리는 느낌이었다면, 여관은 진득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악의도 나쁘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미련을 마주하는 것도 최악이다.
‘날 보는 것 같아서 기분 더러워.’
악의와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몇백 년 동안 악의와 미련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그나마 이곳의 사기는 돈에 대한 갈망, 미련, 그리고 해소되지 못한 갈증에 잠식된 절망이 대부분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만약 악의까지 섞여 있었다면 철수했을 것이다.
부디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선후가 나타나길 바랐다.
그때였다.
“하, 하루만 어찌 좀 안 될까요? 오늘은 진짜 밀린 방값까지 싹 갚는다니까요?”
여관 골목 깊숙한 곳에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골목을 들여다봐도 목소리만 들릴 뿐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관 안에서 나는 소리인 듯했다.
“시끄러워!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 고막에 딱지가 않겠어!”
“아아이! 사장니임~! 제가 진짜! 진짜로 오늘 잭팟 딱! 터트려서 따따블로 갚아드린다니까요?”
“에라이!!!”
주인의 짜증 섞인 고함과 함께 골목 끝, 허름한 여관 철문으로 사람 하나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굴러 나왔다.
“아이고. 내 엉덩이야! 사람 잡네. 사람 잡아! 그깟 푼돈 내가 오늘 따따블로 준다니까!!”
“푼도온? 그래, 따따블?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너 여기 내려와서 나한테 꿔 간 돈만 해도 얼만지 알아? 빌린 돈에 밀린 방값에, 온갖 곳에 쌓인 외상값은 어쩔 건데?”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보스턴 백 하나를 들고 나오며 외쳤다. 보스턴 백은 크기에 비해 안에 든 것은 별로 없어서 홀쭉했다. 그는 따따블을 외치던 남자에게 냅다 던졌다.
“가방 안에 내 통장 번호 적은 종이 넣어 놨으니까 밀린 방값, 슈퍼하고 식당 외상값 모두 이번 달 내로 입금 해. 알았어?!”
“내, 내가 타고 온 차 못 봤어? 벤츠라니까? 집에 가면 다른 차도 있-!”
“벤츠 좋아하시네. 너처럼 벤츠 타고 와서 버스 타고 집에 가는 놈들이 널린 곳이 이 바닥이야. 한 며칠 안 보인다 했더니. 이번엔 뭐 팔아서 내려왔냐?”
“그야, 내 아내가 준 돈으로…….”
아내라는 말에 여관 주인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찼다.
“니 마누라는 도망도 안 가냐? 혹시 좀 모자란 애를 꼬셔서 살고 있는 거 아냐?”
“다온이, 걔가 얼마나 똑똑하고 예쁜데!”
다온? 설마 이선후?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도화가 등을 똑바로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길게 내려온 떡 진 머리카락 사이로 퀭한 눈과 거뭇하게 죽은 피부, 칙칙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얼굴이 완전 썩었잖아?’
아무리 나이를 먹고 도박에 빠져 산다 해도 얼굴이 저렇게 망가지긴 힘들다. 아무래도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몸을 돌리려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아 멈췄다.
최근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30대 초반의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비척비척 걷던 남자.
‘태아귀가 매달려 있던 천하의 개새끼?’
저 남자는 한 달 전, 통장 정리를 하러 나갔다가 만난 남자였다. 그때 태아귀를 떼어 던졌는데, 다행히 다시 붙진 않았는지 어깨와 등은 깨끗했다.
도화는 휴대폰으로 가지고 있던 사진을 확인했다. 다시 봐도 저 남자와 이선후와의 접점은 모르겠…….
‘어? 점이 똑같네?’
입술 옆에 있는 점이 똑같다. 저 남자의 점이 좀 더 칙칙하고 쭈글쭈글했지만, 위치가 같았다. 이선후가 맞는 건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오지게 고생을 했다지만, 세상 풍사를 혼자 다 감내한 사람처럼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건가 싶었다.
“똑똑하고 예쁜 여자가 미쳤다고 너 같은 새끼랑 사냐? 상상의 인물은 아니고?”
“얼굴 보여 줘?”
“휴대폰도 없는 새끼가 전화는 무슨. 거, 버스 탈 돈도 없어 보이는데 카지노 가서 각서 쓰고 오든가.”
각서 쓰라는 말에 이선후일지도 모르는 남자의 눈이 홱 돌아갔다.
“각서? 그깟 6만 원에 내가 인생 역전할 기회를 버릴 것 같아?”
여관 주인은 그럴 줄 알았다며 바닥에 침을 퉤! 뱉고 돌아섰다.
“가망 없는 새끼구먼. 시체 치우기 전에 쫓아버려야지. 원.”
그렇게 여관 주인은 올해 들어 벌써 셋이나 뒈졌다고 투덜대며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지 다른 여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바닥의 남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삐 골목을 빠져나갔다. 대낮에도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둑한 여관 골목에 남자와 홍도화, 단둘만 남게 되었다.
도화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남자를 불렀다.
“이선후 씨?”
움찔.
남자가 도화의 부름에 반응했다. 대답은 안 했지만, 크게 움찔거린 몸이 남자가 이선후임을 알렸다.
“누, 누, 누구세요?”
그는 방금까지 벤츠가 어떻고 아내가 저떻고 하던 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불안한 눈으로 도화를 쳐다봤다.
도화가 어둑한 그림자에서 천천히 나오자 히익!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도화의 큰 키와 덩치를 본 이선후가 덜덜 떨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갈 구석을 찾았다.
“다, 당신! 그때 그 조폭!!”
“조폭 아닙니다.”
“조폭이 아니면 뭐야! 아무 이유 없이 선량한 사람을 팼으면서!”
“선랴앙…?”
등에 태아귀를 달고 다니는 놈이 스스로 선량하다 말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당장 정신 차리라고 주먹 찜질을 해 주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에 꾹 참았다.
“이선후 씨.”
“뭐, 뭐요. 왜.”
“다온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