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도화-10화 (11/146)

10화

“정선까지요? 슬마 카지노?”

“네.”

“요금이 많이 나올 텐데.”

“괜찮습니다.”

“허허. 안 그래 보이는 젊은이가…….”

쯧쯧. 택시 기사가 안타깝다며 소리 나게 혀를 찼다. 아침부터 도박하러 정선까지 가는 한심한 사람으로 오해받았으나, 도화는 해명하지 않고 뒷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피곤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탕진하기 위해 카지노로 향하는 젊은 청년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부모님은 계시고?”

부모님이란 말에 도화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첫 질문부터 도화의 민감한 치부를 후벼 팠다.

“도박할 돈으로 차라리 복권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불우 이웃도 돕고 운 좋으면 돈도 벌고. 안 그려?”

“…….”

“거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도박에 빠져 살면 못써. 그럴 돈으로 집 사고 결혼하고 자식새끼 학교 보내야지.”

그냥 여기서 내리고 다른 택시를 잡을까?

도화는 여전히 눈은 뜨지 않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밀린 잠을 자야 할 시기가 온 걸 무시하고 움직여서 그런가, 택시 기사의 말소리가 귀에 너무 거슬렸다.

“효자 노릇 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야. 그냥 밥 빌어먹지 않고 결혼해서 손주 안겨 드리는 게 효—.”

“아저씨.”

“효자… 어엉?”

더는 참지 못한 도화가 택시 기사의 말을 끊었다.

“잘 테니까, 정선에 도착하면 깨워 주세요.”

“아, 흠, 흠. 허허. 졸린 줄도 모르고 내가 너무 떠들었구먼.”

택시 기사는 머쓱하게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효도가 무엇인지 일장연설을 할 계획이었던 그였지만, 계속했다간 여기서 내린다고 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간만에 장거리 손님을 만났는데 입방정 떨다 놓칠 순 없다.

“푹 자시게.”

택시 기사의 대답에 도화는 고맙다고 짧게 대답했다. 등받이에 기댄 몸에서 힘을 빼고 창가 쪽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창문에 머리가 부딪혔지만, 개의치 않고 잠이 들었다.

* * *

비에 젖어 축축한 땅은 아이들의 둘도 없는 장난감이었다. 짚신이 젖을까 봐 근처 바위 위에 벗어 두고 옹기종기 모여 흙을 조몰락거리며 놀았다. 쪼그리고 앉아 놀다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가 하나둘 늘어났다. 그게 또 그리 재미있는지 쉴 새 없이 웃으며 노는 아이들의 옷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혼쭐이 날 테지만, 지금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나는 것은 나중 일이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엄마에게 혼나지 않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야, 야. 저기 칠푼이 왔다.”

“칠푼이가 왔다고? 어데?”

칠푼이란 말에 아이들이 모두 목을 빼고 두리번거렸다. 방금까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이좋게 놀던 아이들의 얼굴에 짓궂은 심술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한 아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칠푼이다!”

“왜 온 거래? 설마 우리랑 놀고 싶어서?”

여자아이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투로 말하자 나무 뒤에 있던 더벅머리 소년이 어깨를 움칠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깔깔대며 비웃었다.

“설마. 저런 냄새 나는 비렁뱅이랑 누가 놀까!”

“코가 썩어서 지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잖아.”

“용기가 가상해서 내가 놀아 준다.”

“뭐?? 야, 진짜?”

낄낄대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더니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진흙을 한 움큼 쥐어 그 속에 돌멩이를 넣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이 너도나도 남자아이를 따라 진흙 속에 돌멩이를 집어넣었다. 나무 뒤의 소년은 충분히 도망칠 시간이 있음에도 바보처럼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엉망으로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소년의 눈동자는 묘한 기대감으로 일렁였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이! 칠푼이! 이거나 받아랏!”

한 아이가 먼저 칠푼이라 불린 소년을 향해 진흙 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덩어리는 진흙의 묵직한 무게 때문에 나무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걸 본 다른 아이가 나무를 향해 달려가며 던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나무 뒤 아이의 누더기 옷에 진흙이 터지듯 묻어났다.

“윽…!!”

소년의 신음이 신호탄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무 근처까지 가서 돌이 든 진흙 덩어리를 던지기 시작했다. 저들끼리 놀 때보다 더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쉴 새 없이 새로운 덩어리를 만들어 던졌다.

소년은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었는데도 바닥에 못이 박힌 것처럼 도망가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놀아 준다고 했는데…?’

소년이 도망가지 않은 이유였다.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도통 끼워 주질 않으니 멀리서 구경만 했다. 냄새가 난다고, 옷이 더럽다고, 말도 어눌하고 얼굴도 못생긴 칠푼이랑은 같이 놀기 싫다는 구박만 받았던 아이에게 ‘놀아 준다.’는 말은 너무나 달콤했다. 거지에게 적선이라도 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냄새가 난다고 해서 피부가 벌게지도록 계곡물로 씻었고, 옷이 더럽다고 하니 손가락이 아프도록 비벼 빨았다. 말이 어눌하다길래 나무와 꽃을 상대로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얼굴이 못생긴 건 해결책이 없었다. 태어나길 이런 걸 어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효과가 있었는지 ‘놀아 준다.’라고 했다. 놀아 준다니까 진흙 속에 돌을 넣어도, 그걸 제게 던져도 도망가지 않았다.

‘무슨 놀이인지는 모르지만, 놀아 준다고 했으니까. 새로운 놀이인가 봐.’

한참을, 온몸이 얼얼해질 정도로 맞았다. 나중에는 옷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흙 범벅이 되었다. 아이들은 진흙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냐고, 역시 칠푼이라고 깔깔댔다.

퍽!

화끈한 통증과 함께 이마에서 뜨끈한 것이 주르륵 흘렀다. 진흙이 잔뜩 묻어 뜨지 못한 눈을 간신히 뜨니 시야가 붉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눈과 주변에 묻은 진흙을 닦아 내자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뜨끈한 것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며 다시 붉어졌다.

‘피…인가.’

놀이가 아니구나.

소년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뒤늦게 이것이 놀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모난 곳으로 부딪혔는지 길고 깊게 찢어진 게 손끝에 느껴졌다. 순식간에 서 있는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그걸 본 아이들이 던지던 것을 멈췄다.

“치, 칠푼이가 꼴에 피는 빠, 빨갛네…!”

누군가 말을 더듬으며 외쳤다. 설마 내 피가 붉은색이 아닌 이상한 색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칠푼이도 사람인데. 파란 피나 검은 피가 흐를 거라고 믿었던 건가.

소년은 핑 도는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간신히 나무를 짚고 기대서서 아이들을 쳐다봤다. 줄곧 괴롭힘을 당했지만, 피가 날 정도로 상처 입은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더는 돌멩이와 진흙을 던지지 않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피가 너무… 많이 나는 거 아냐?”

“죽을지도 몰라.”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웅성댔다. 물론 피 흘리는 소년이 걱정되어 한 말이 아니었다. 비렁뱅이 칠푼이라지만, 자신들이 던진 돌 때문에 죽으면 크게 혼이 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머… 멍청아! 사내놈이 저 정도도 못 버틸 거면 그냥 죽어 없어지는 게 낫지!”

“아암! 맞아! 맞는 말이야! 좀 긁힌 거 가지고 호들갑은!”

호들갑이라.

소년은 조금 긁힌 것치고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닦고 또 닦다가 결국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목소리가 컸던 녀석들이 제일 먼저 모습을 감췄다.

‘어지러워.’

조금 긁힌 것치곤 피가 점점 더 많이 쏟아진다. 소년은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바닥만 쳐다봤다.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다 이내 감아버렸다. 피가 눈에 들어와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너무 어지럽기도 했고.

이대로 잠들면 좀 위험할 것 같다. 죽진 않겠지만.

그때였다. 후두둑- 어깨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쏟아졌다. 나뭇잎에 달려 있던 빗방울이 떨어진 건가 싶었지만, 이내 요란한 빗소리가 났다.

소년은 죽진 않을 거란 생각을 정정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이 정도로 피를 흘리고 비까지 맞는다면 위험했다.

일어나야 해.

없는 힘을 끌어모아 움직이려던 소년은 ‘왜?’라는 의문에 멈칫했다.

왜 일어나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살아 봤자 다행이라고 안심해 줄 사람 하나 없는데. 왜 다쳤냐고 걱정해 줄 사람도 없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더니 점점 체온을 빼앗았다. 몸이 덜덜 떨리고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빗물이 앞을 가린 피를 씻어 냈지만, 소년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냥 나무에 기대어 몸을 축 늘어뜨렸다. 가물가물 잠이 쏟아진다. 잠은 세찬 빗소리도 희미하게 만들었다.

* * *

깊은 잠을 자면서도 도화는 잔뜩 화난 사람처럼 인상을 썼다. 팔짱을 낀 팔에 힘이 들어가서 갈라진 근육이 더욱 도드라졌다.

꿈이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 잊고 지내다가도 깊은 잠이 들면 불청객처럼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기분 나쁜 꿈.

‘멍청한 것들. 칠푼이고 팔푼이고 간에 피가 붉은 건 당연한 거 아냐?’

의식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금 꾸었던 꿈이 또렷해질수록 도화의 기분은 바닥으로 치달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은 그냥 밀린 잠을 자고 내일 움직일걸. 후회막심이다.

“깨, 깼나?”

룸미러로 도화를 살펴보던 택시 기사가 슬쩍 말을 걸었다. 꿈 때문에 잔뜩 인상을 써서 그런가 주눅이 든 눈치다.

눈을 뜬 도화는 미터기부터 확인했다. 214,300원.

예상 금액을 살짝 초과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어차피 20만 원을 넘긴 시점부터 과도한 택시비를 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 얼마나 남았습니까?”

“다 왔는데… 저기, 저기서 세워 주면 될까?”

“네.”

도화는 지갑에서 오만 원 네 장과 만 원 한 장. 천 원 네 장과 삼백 원까지 정확하게 준비했다. 거스름돈을 받을 것도 없이 깔끔하게 계산을 마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택시 기사가 말한 ‘저기서’에 도착하는 사이 백 원 올라 버렸다.

“…….”

“…….”

택시는 멈췄고 미터기도 멈췄다.

“이십일만사천사백 원….”

택시 기사의 말끝이 살짝 떨린 것은 도화가 정확하게 이십일만사천삼백 원을 현금으로 준비해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화는 지갑에서 백 원을 더 꺼내지 않고 그대로 쥐고 있던 돈을 택시 기사의 손에 올렸다.

“백 원…….”

“운전 조심하세요. 아까 거기 휴게소에 들르면 화장실은 꼭 다녀오시고요. 가다가 어깨가 아프다던가 눈이 침침하면 졸음 쉼터에서 푹 자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도화는 돈이 모자라다거나 좀 깎아 달라는 말 대신 택시 기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미친놈인가?

택시 기사는 빠르게 멀어지는 도화의 뒷모습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 원을 못 받아서 화가 난 것도 이유이지만, 이상하게 오한이 돋았다. 방금 한 말 때문에 단순히 도박에 빠진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무당인가?’

무당이란 생각이 들자 괜히 어깨가 묵직하고 뻐근한 것 같다.

“에잇…!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창문을 내린 그는 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는 핸들을 돌렸다. 괜히 무서워서 빨리 정선을 뜨고 싶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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