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 이 학생! 당연히 기억하지. 얼굴은 참 잘났는데 공부 머리는 없었던 모양이야.”
“기억하다마다. 맨날 학원 빼먹고 PC방 가던걸?”
“그 학생 기억하지. 맨날 현질로 템 사고 강화하다 다 터트리고 또 사고. 게임을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 도박처럼 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경찰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잘살고 있진 않은가 봐?”
아침 일찍 나왔는데 늦은 오후가 될 때까지 얻은 정보는 이선후가 멍청하다는 것과 학교를 빼먹고 PC방을 다닐 만큼 게임에 빠져 살았다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킨 점포는 손에 꼽을 정도라 더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선후의 담임이었던 선생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모두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하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다. 어찌나 크게 나던지 지나가던 사람이 도화를 쳐다볼 정도였다.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배고픔도 잊고 있던 도화는 그제야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더 돌아다녀 봤자 시간 낭비일 것 같아서 도화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하철역을 찾기 위해 큰 길가로 이동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도화를 불렀다.
“거, 경찰 선생님!”
경찰 선생님? 날 부르는 건가?
오늘 내내 경찰 사칭을 했던 도화는 진짜 경찰이 주변에 있을까 봐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도화를 경찰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은 제일 처음 만났던 분식점 주인이었다. 경찰이란 외침에 지나가던 사람 몇 명이 분식점 주인과 도화를 쳐다보긴 했으나 곧 다들 자기 갈 길을 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뛰어오느라 숨이 찼는지 주인은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아까 물어봤던 이선후 학생 말인데요. 몇 년 전에 학교 선생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요.”
“선생들이? 뭐라 했습니까?”
도화의 질문에 주인은 앞치마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학생 이름은 말하지 않아서 선후 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예인 할 것 같던 놈이 도박에 빠져서 정선 죽돌이가 됐다더라고요.”
“도박…. 정선이면 카지노 말입니까?”
“네네. 강원랜드요.”
정선 강원랜드라. 거긴 서울이 아니잖아.
도화는 화린이 말했던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을 거란 주체가 다온인지 이선후인지는 말하지 않았었다. 화린이 찾는 사람은 다온이니, 그녀만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고 이선후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확률이 높았다.
서울에서 정선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아무래도 알바를 확실하게 그만둔 다음에 움직이는 게 나을 듯싶다.
“정보 감사합니다.”
“저어… 명함이라도 한 장 주시면 또 생각나는 게 있을 때 연락드릴-.”
“아니오. 됐습니다. 그럼 이만.”
도화는 명함을 달라는 주인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빠르게 대로변으로 움직였다. 명함이라니. 경찰 사칭도 최대한 삼가야 하는데 명함까지 만들어 뿌릴 리 없지 않은가.
뒤에서 경찰 선생님!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도화는 모자를 꾹 눌러썼다. 한동안 이 동네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도화는 자신의 키와 덩치 때문에 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침에 나왔던 지하철 출입구를 찾는 것은 쉬웠다. 아침에 보았던 교통사고 현장 근처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망이었던 도로는 하얀 래커로 성의 없이 그은 선과 채 지우지 못한 피 얼룩만이 큰 사고가 있었음을 알렸다.
‘귀령면… 이제 벗어도 되지 않을까?’
가면을 썼다 해서 답답하거나 불편하진 않지만, 스승의 유품을 사용할 때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승사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집까지 쓰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아침, 그 일만 없었어도 그냥 벗어 버렸을 텐데. 잠시 잊고 있던 변태 저승차사가 떠오르자 짜증이 치솟는다.
* * *
카페와 PC방 알바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뒤였다. 도화 혼자서 최소 두 사람 몫을 하던 탓에 그를 대체할 만한 후임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도화를 보기 위해 왔던 손님들을 붙잡아 둘 만한 인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장님들은 시급을 더 올려 줄 테니 계속 일해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붙잡았지만, 도화는 죄송하단 대답으로 거절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도화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카페와 PC방 사장은 성에 차지 않는 알바생을 구하고 나서야 도화를 놓아주었다. 그럼에도 언제든 일하고 싶으면 연락하고 심심하면 놀러 오라고 매달렸다.
다온을 찾는 의뢰에 정해진 기한은 없었지만, 무려 한 달이나 지체된 상황이라 도화는 조급해졌다. 그래도 분식집 주인이 준 정보를 토대로 틈틈이 이선후의 소식을 찾아보긴 했다. 하지만, 학교 근처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분식집 주인이 알려 준 것이 전부였다.
아르바이트를 모두 관두고 먼저 한 일은 고등학생 시절 살았던 그의 집에 가 보는 것이었다. 사람에게서 얻을 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으니 귀신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10년 전에 살던 곳이기에 이선후를 기억하고 있을 귀신이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지박령이라도 있길 바라며 간 곳에서 다행히도 늙은 지박령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아, 그 젊은이? 쯧쯧. 안됐지. 태어날 때부터 아주 지독한 선망귀가 붙더니 결국 집안을 말아먹었지 뭐야.]
늙은 지박령은 말은 안 됐다고 하면서도 낄낄 웃으며 즐거워했다.
[말아먹었지. 아주 싹 말아먹었어.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말이야. 어찌나 살벌하게 하던지, 여기 있던 귀신들도 말려들까 봐 죄다 도망하고 나 하나만 남았지. 낄낄.]
[어디 갔냐고? 난들 아나? 여기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데 말이야. 자네 몸을 준다면 내 알아봐 줄 순 있네. 아주 먹음직스러운 몸이군. 반은 돗가비인데, 반은 무엇인고?]
도화는 지박령의 웃기지도 않는 제안을 무시하고 돌아왔다.
‘지독한 선망귀.’
분식집 주인 말대로 선생들이 말한 정선 죽돌이가 되었다던 학생은 이선후가 맞는 듯했다.
선망귀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자가 지천을 떠돌다 인연 있는 후손이 태어날 때 붙는 원귀이다. 보통 자신이 붙어 있는 후손의 인생만 불행하게 만드는 정도로 끝이 나는데, 이선후에게 붙은 선망귀는 원귀에서 악귀로 변하는 중일 수도.
어찌 되었든 이선후에게 붙은 선망귀는 이선후 하나만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망가트렸다는 것을 보면 보통 원귀가 아닐 것 같다. 만약 지박령이 말한 말아먹었다는 말이 사업이나 건강을 망쳤다 수준이 아니라 ‘죽었다’라면?
업보 중 가장 중 죄는 살인이다. 같은 원귀들도 도망쳤다는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살인을 한 것 같다.
‘완전히 악귀로 변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군.’
원귀는 발에 챌 정도로 많아도 악귀는 발견하기 참 드믄데.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한 달 전, 원귀에서 악귀로 변이하려던 태아귀가 떠올랐다. 그 원귀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태아라 내 말을 알아들을 순 없으니 그냥 그대로 악귀가 되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입 안이 썼다. 부모의 잘못된 선택이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혼을 원귀로 만들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태아귀의 업보는 부모가 져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물론 뱃속에서 강제로 죽임당한 아이의 혼이 모두 태아귀가 되는 것은 아니니 억지이긴 했다. 하지만, 도화는 그때의 그 태아귀만 생각하면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온갖 고생을 했던 제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답지 않게 아직도 그 태아귀가 신경 쓰였다.
‘잊자. 지금은 그 녀석을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침대에 누워 있던 도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제 겨우 아침 7시 30분. 알바도 하지 않으니 늦잠을 자도 좋으련만, 도화는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다고 도화가 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몸을 한계까지 혹사한 다음에 몰아 자는 생활을 했다. 그가 하루에 아르바이트 두 개를 하고 집에 와서도 관상을 본다거나 손금을 보는 등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기력을 써야 하는 일도 쉬지 않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쉬는 주말에는 불래에 가서 정보를 캐거나 평일 동안 받은 추혼 의뢰를 수행하러 다녔다. 언제나 불래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도화는 포기하지 않고 돈이 생길 때마다 정보를 모으는 데 아낌없이 썼다. 빠듯한 생활비 충당을 위해 부업으로 하는 관상과 추혼 의뢰 역시 그다지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의뢰가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소모하는 기력에 비해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힘들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온통 너덜너덜해진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도환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불래에 돈을 쓰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린 부모, 호윤의 행방, 스승을 죽인 저승차사의 정체. 수백 년 개같이 번 돈을 쏟아부었으나 건진 것은 없었다. 되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쓸데없는 정보만 들어와서 한동안 불래에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한동안 집에만 있어야겠어.’
며칠 전 새벽, 잠깐 편의점에 나가려다 근처를 돌아다니는 저승차사를 보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때 그 변태 저승차사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근처에 망자를 데리러 올 일이 있던 것이겠지. 귀령면을 쓰고 다녀올까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자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못 간 편의점을 가기 위해 나온 도화는 근방에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집에서 조용히 죽는 일도 있으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 생각했다. 저승차사가 얼마나 바쁜데. 고작 나 하나 찾겠다고 새벽잠을 포기하고 하계를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다.
귀령면을 얼굴에 쓴 도화는 자전거 열쇠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슬슬 몸에 한계가 올 느낌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정선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큰마음 먹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없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물론 택시비는 엄청 깨지겠지만.
평소의 도화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었지만, 두둑해진 통장을 믿고 자전거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