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가구를 치우고 집을 나온 도화는 연창 고등학교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카페로 가야 했다. 변태 새끼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도화는 주간 카페 알바와 야간 PC방 알바를 모두 그만둔다고 말했다. 물론 새 알바생을 구할 때까지는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당일에 바로 빠질 순 없어서였다. 물론 착수금으로 거액이 통장에 들어왔다지만, 언제 또 빈털터리가 될지 모르니 뭐든 대비해 두어야 했다. 일을 원만하게 그만두어야 나중에 다시 알바를 구할 때 전화라도 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카페 사장님한테는 내일 하루 쉰다고 양해를 구했다. 워낙 성실하게, 다른 알바생의 대타도 군말 없이 몇 년을 해서 그런지 푹 쉬고 오라며 용돈까지 받았다. 예의상 한 번은 사양하고 난 뒤에 받았다.
다음 날.
도화는 혹시 일어날지 모를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서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을 귀령면까지 가방에 넣었다. 현관 밖으로 나서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도화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진짜 싫다. 여름.’
도화는 진저리를 치며 지하철로 향했다. 매해 최고 온도를 갱신하는 여름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도화는 특히나 더 여름을 싫어했다. 스승의 죽음이 있던 때와 호윤이를 잃어버린 계절이 모두 여름이라 그랬다.
평일 오전,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아비규환이었다. 길 찾기로 예상 소요 시간을 검색해 보니 약 한 시간 정도가 떴다. 한 시간이나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버텨야 한다니.
모자를 꾹 눌러쓴 도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은장도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저승차사가 흑립을 썼다면 아무 소용 없는 경계이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저승차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안심하고 밖으로 나온 도화는 출구 근처 도로 위가 매우 시끄러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출근하는 차로 꽉 막힌 도로라고 해도 움직이는 차가 거의 없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와 교통 혼잡을 정리하는 소리가 났다. 도로 확장 공사라도 하나?
궁금해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확장 공사가 아닌, 도화가 기피하고 싶은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2차선 도로 중 하나를 통으로 막고 있으니 난리일 수밖에. 경찰차와 구급차만으로도 도로가 꽉 찼는데, 렉카까지 출동해서 교통 혼잡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젠장. 사망 사고는 아니어야 할 텐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고 현장엔 피가 인도 근처까지 흘러내릴 정도로 흥건했다. 도화는 가방에서 귀령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근처 어딘가에 저승차사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 기척을 숨겨야 했다. 귀령면은 쓴 사람의 기척을 흐리게 만들어 준다. 저승차사의 흑립처럼 완벽하게 모습까지 없애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잡한 도심에서 쓰기엔 꽤 쓸 만했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사용하는 데 불편한 것도 없었다.
단지, 도깨비의 귀물이기에 도화는 귀령면을 쓰기 싫었다. 도화는 도깨비가 싫었다. 저승차사만큼이나.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학교나 찾자.’
카페 알바는 빠지지만, PC방 알바는 가야 했다. 그러니 최소 8시 전에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 도화는 빠르게 사고 현장에서 벗어나 학교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선후가 다닌 고등학교에 간다고 해서 이선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추적의 초점을 이선후로 정한 이상 그의 최근 정보가 수집된 곳부터 다시 훑기로 했다. 하계의 여우들은 몸 사리기로 유명하니 제대로 된 탐문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출구에서 약 20분을 걷다 보니 딱 봐도 학교임을 나타내는 높은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 있는 학교치고 운동장이 무척 넓다. 정문으로 가니 학생들이 한창 등교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입은 교복은 한눈에 봐도 디자인에 공을 들인 게 보였다. 정문 너머로 보이는 학교 내부 조경도 돈을 쏟아부은 게 티가 났다.
‘있는 놈들만 다니는 학교 같은데. 그러면 이선후도 괜찮은 집안인 건가?’
하지만, 화린이 보내 준 정보에는 이선후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가 사용된 적이 없다고 적혀있었다. 그렇다고 현금을 쓴 흔적도 없다고 했다. 정확히는 3년 전, 다온을 만나고부터 지금까지.
마치 사람이 증발한 것처럼 생활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돈은 다온이 화린에게서 훔친 재물로 쓴다 해도 요즘 시대를 살려면 필수로 해야 하는 통신사 가입조차 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부모가 사망 신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했다.
도화가 가장 먼저 간 곳은 학교가 아닌 학교 주변 분식점이었다.
이선후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이 넘었다지만, 사진 속 얼굴이라면 분명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얼굴만 보면 여우족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수려했다.
학교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분식집 문을 열자 딸랑- 하고 종이 울렸다.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던 주인이 종소리만 듣고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저어, 말씀 좀 묻겠습니다.”
“저희는 뭐 안 사니까 그냥 가세요.”
아무래도 잡상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주인은 내다 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주인의 박대에 기분이 상할 만도 하건만. 도화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했다.
“사람을 찾는데요. 잠깐 나오셔서 사진 확인 좀-.”
“아, 시발. 뭐야. 왜 문을 막고 있어요?”
사진 확인 좀 해 달라는데 뒤에서 남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도화에게 짜증을 냈다.
“야, 너 코피 나는 거 아냐?”
“뭐? 코피?”
“허약한 새끼네. 이거. 문에 부딪혔다고 피나 흘리고.”
다짜고짜 문을 밀고 들어오다 도화의 등에 막혀 얼굴을 세게 부딪혔나 보다. 난데없이 욕을 듣긴 했으나 문을 막아서고 있던 제 잘못이 크기에 도화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비속어를 남발하던 남학생들이 입을 벌리고 도화를 올려다봤다.
“와… 겁나 잘생겼다.”
“…….”
초면 욕질에 멈칫한 도화를 남학생들이 에워쌌다.
“와… 형, 키 몇이에요? 키 겁나 크네. 연예인이에요?”
“운동해요? 덩치 미쳤는데? 만져 봐도 돼요?”
“와, 씨발. 무슨 돌덩이야. 허벅지에 손톱도 안 박히네.”
“…….”
요즘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초면인데 욕을 하며 몸을 만지다니.
도화는 조용히 몸을 뒤는 빼는 것으로 학생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변태 저승차사 같은 소름 끼치는 손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이 자신의 몸을 허락도 없이 만지는 것은 싫다.
하지만, 학생들은 도화가 싫은 기색을 보이는 것을 아는지 무시하는 건지 손을 펼쳐서 도화의 어깨 길이까지 쟀다.
“어머. 미안해요. 나는 또 신문 보라고 온 아저씬 줄 알았네.”
밖이 시끄럽자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고개만 내민 주인이 당황해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학생들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하마터면 꺼지라고 주먹을 휘두를 뻔한 도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주문을 받아 적는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약 10년 전 연창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람인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십 년 전이요? 작년에 졸업한 애들도 벌써 다 까먹었는데 십 년 전 학생을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사진 한번 보시겠습니까?”
“사진?”
바빠 죽겠는데 귀찮게 군다는 주인에게 이선후의 사진을 띄운 휴대폰을 내밀었다.
“십 년 전 사람을 어떻게 사진으로 알아봐요? 말이 되는 소리를…….”
도화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주인은 휴대폰 속 이선후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누구인지 알아본 반응이었다.
“기억나십니까?”
“아~ 이 학생! 당연히 알지요. 다른 애들은 다 까먹어도 얘는 기억해요. 얼굴이 이런데 어떻게 잊겠어?”
주인은 이선후의 사진을 보더니 반색하며 도화에게 대답했다.
“이름이 선… 선우랬나? 선오?”
“이선후입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왜 찾으세요? 학교 다닐 때나 자주 왔지, 졸업하고 나서도 오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어?”
“대학 진학이나 유학 같은 이야기는 들으신 적이 없습니까?”
“선후 학생이 얼굴은 연예인 상인데 공부가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성격이 참 좋아서 분식집 아줌마한테도 미주알고주알 제 이야기를 늘어놓긴 했는데, 어디로 진학한단 이야긴 못 들었네. 그런데… 누구신데 선후 학생 이야기를 물어보는 건지…….”
주인이 도화에게 누구인지 묻자 뒤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던 남학생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화를 쳐다보았다.
도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 줬다. 지갑 속 참수리 마크가 그려진 경찰 신분증을 본 주인은 어머어머, 호들갑을 떨며 손에 있는 물기를 앞치마에 슥슥 닦고는 자세를 똑바로 했다.
“경찰이셨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진작 말씀하시지.”
주인은 의심을 싹 걷고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기억나는 대로 다 말하겠다고 했다.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주문한 떡볶이와 튀김이 나왔는데도 입에 넣는 둥 마는 둥 도화와 주인만 쳐다봤다.
“야, 시발. 경찰이래. 그래서 피지컬이 개 쩌나?”
“병신아. 동네 경찰서 가 봐라. 저거 반만 한 덩치도 없다. 다 배로 갔지.”
“그런데 저 얼굴로 경찰 하는 건 너무 손해 아니냐?”
학생들의 수다는 도화의 몸에서 얼굴로 옮겨갔다. 분식집 주인도 아까부터 도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시선을 돌렸다.
작게 ‘이 나이 먹고 주책이야.’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도화는 개의치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질리도록 본 반응이다.
“시발 부럽다.”
“…….”
그래도 초면에 욕은 좀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그 학생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건가요? 좀 뺀질뺀질해도 남한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았는데…….”
주인은 두려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죽이는 사고가 끊이질 않다 보니, 무려 십 년 전에 끊어진 인연에도 두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아닙니다. 범죄 관련은 아니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화는 고개를 저으며 주인을 안심시킬 대답을 했다. 그리고 도움을 주어 감사하단 인사를 한 뒤 분식집을 나섰다. 가짜 경찰 행세는 최대한 짧고 빠르게 치고 나와야 했다.
분식집에서 나온 도화는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근처 건물 차양 밑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딜 가 보지?’
무려 십 년 전 일이니 당연히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선후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인근 상점에서 좀 더 수소문을 해 볼 가치는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