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불래에서 돌아온 도화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다. 휴대폰 문자 확인만으로는 만족 못 한 도화는 직접 통장을 들고 근처 ATM기에 가서 통장 정리를 했다. 커다란 ATM 기기에서 지지고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이내 기기가 통장을 퉤 뱉어 냈다.
주르륵 출금만 찍히다 제일 마지막에 입금 3억이 떡하니 자리 잡은 것이 믿기지 않아 볼을 꼬집었다. 얼얼했다.
“진짜네.”
그는 누가 통장을 훔쳐 갈세라 가방에 넣고 앞으로 맸다. 그리고 그 길로 중고차 매매점으로 향했다.
“……?”
아니, 가려고 했다. 사실 몇 걸음 걷지도 못했다.
“으으…….”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30대 초반 정도 되는 남자가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비척비척 걷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깨가 굽다 못해 등과 허리까지 앞으로 수그리며 걷고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땀이 줄줄 흘러 바닥에 떨어질 정도다. 어찌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남자를 발견하고 멀찍이 떨어졌다.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사소한 일에도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관여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젊은 사람 몇 명이 ‘119 불러 드릴까요?’ 하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평범한 사람 눈에는 남자가 건강이 좋지 않아 저러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도화의 눈에는 저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여 신경이 쓰였다.
남자의 등에 시커먼 것이 매달려 있었다. 양어깨를 옴팡지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손이다. 게다가 보이기만 한 게 아니라 들리기도 했다.
태아귀인가 싶었으나 태아의 손이라기엔 크다. 못해도 한 살은 되어 보였다. 어쩌면 태아귀가 원한을 먹고 저만큼 자란 것일 수도.
“으….”
도화의 곁을 지나가던 여자가 도화가 흘린 신음을 듣고 힐끗 쳐다봤다. 그냥 소리가 나서 반사적으로 쳐다본 여자는 도화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가까이 다가왔다.
“저어… 어디 아프세요?”
“괜찮습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저기 카페 가서 좀 쉬실래요?”
“괜찮습니다.”
“아니면 저기 약국 있는데 약이라도…….”
괜찮다고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도화에게 말을 걸었다. 심지어 도화의 팔을 붙잡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잦았는지 도화는 당황하지 않고 팔을 붙든 여자의 손을 단호하게 떼어 내며 말했다.
“이명 때문에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냉랭한 표정으로 거절하자 여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더욱 붉혔다. 하지만, 여전히 도화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젠장. 3억 때문에 너무 신나서 모자를 까먹었어.
급히 가방 구석에 구겨져 있던 캡 모자를 꺼내 푹 눌러쓴 그는 목표했던 중고차 매매점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기 울음이 다시 고막을 파고들었다.
‘아, 미친…. 무슨 애 울음소리가 이렇게 커?’
이대로 계속 듣다간 청각에 이상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아기 울음에 반응하는 사람은 도화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 등에 매달린 아기는 귀신이었으니까. 아기를 등에 업은 남자는 울음소리보다는 어깨와 등이 너무 무겁고 아파서 저 상태인 듯했다.
‘원한이 얼마나 지독하면 벌건 대낮에도 저리 매달려 있을까.’
도화는 최대한 아기 울음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원한의 대상에게 저 정도로 물리적인 행사를 할 정도면 원귀에서 악귀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단순 귀신이든, 원귀든, 악귀든 간에 사람이 아닌 것과 시선을 맞추는 것은 금물이다. 귀신이라면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반가워서, 원귀라면 자신의 복수를 도와 달라고, 악귀라면 절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서 따라올 게 뻔했다. 특히 원귀는 엮이면 더욱 피곤해진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멀어지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저 원귀는 남자의 등에 매달린 상태라 눈이 마주칠 일은 없었다.
문제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악을 쓰며 울어 대는 저 소리다.
“어머. 이게 무슨 소리지?”
빠르게 남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는데 근처 자판에서 장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귀를 후비며 혼잣말을 했다.
‘소리가… 들리는 건가?’
분명 방금까진 아무도 저 울음을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원귀의 원한이 갑자기 강해졌다.
“어윽…!”
이번에는 뒤에서 억눌린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등교하던 학생 하나가 귀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원귀가 매달린 남자와 가까운 거리라 타격이 큰 듯했다.
그래도 무시하고 꿋꿋하게 길을 가려던 도화의 눈에 저 멀리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젠장.’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자아이를 본 이상, 도화는 도저히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원귀가 매달린 남자의 걸음 속도는 너무 느려서 이대로라면 저 아이가 남자를 지나칠 게 분명했다.
다 큰 성인도 원귀의 악다구니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데 어린아이는 두말할 것도 없다.
결국, 도화는 다시 몸을 돌려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비 오듯 땀을 흘리던 남자는 아까 봤던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멈춰 서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도화는 그런 그가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오히려 울컥 치미는 분노를 다스렸다.
도화는 남자의 팔뚝을 붙잡고 대로변에서 벗어났다. 출근과 등교가 겹친 이른 아침 시간만 아니었다면 당장 남자의 멱살을 쥐고 질질 끌고 갔을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흡연 룸과 쓰레기통만 있는 좁은 골목으로 남자를 데려간 도화는 다짜고짜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뻑! 소리가 날 정도로 손은 거칠었다. 당연히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으헉!!”
방금까지 출타했던 정신이 돌아왔나 보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남자는 거친 바닥에 갈린 얼굴을 만지지도 못하고 신음했다. 도화는 그런 남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
“어이, 천하의 개새끼 씨. 정신이 들어?”
“무… 뭐? 개샠- 으… 내 얼굴. 흐으…!”
다짜고짜 제게 욕을 한 것에 화를 내야 할지, 이유도 없이 제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것에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시멘트 바닥에 야무지게 갈린 얼굴에서 번진 통증 때문에 남자는 정신이 없었다.
“너 어깨에 뭐가 달렸게?”
“흐어… 어깨…? 어깨가 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끙끙대던 남자가 어깨라는 라는 말에 몸을 흠칫 떨었다. 역시. 이 남자는 제게 붙은 게 무엇인지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
“아기가 이렇게까지 원한이 깊긴 힘든데….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얼마나 몹쓸 짓을 했길래 이럴까.”
도화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물론 원귀의 손은 피해서 쳤다. 어차피 남자를 여기까지 끌고 온 이상 모른 척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원귀를 직접 만질 필요는 없었다. 백해무익한 존재가 저런 원한을 가진 귀신이니 말이다.
“아기라니…? 어, 어디에?!”
“형씨 등에.”
“드, 등?”
남자가 기겁해서 손을 등으로 뻗었다. 팔을 이리저리 꺾어 어깨와 허리를 만져 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없잖아! 어디서 구라 치고 있어! 이 새끼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남자는 눈을 벌겋게 물들이고 도화에게 달려들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던 도화는 살짝 상체를 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남자를 피했다. 남자는 다시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응애- 응애-.]
남자의 신음 소리를 아기의 울음이 덮었다. 묘하게 울음 속에 깔깔대는 웃음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아 도화의 매끄러운 미간이 일그러졌다. 도화는 엎어진 남자의 등을 발로 꾹 밟으며 말했다.
“네 사정이 뭔지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우는 건 잠깐 쉬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한테 한 말은 아니었다. 남자의 등에 매달린 태아귀한테 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손만 보고 태아귀가 아닌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태아귀가 맞았다.
원한이 쌓이고 쌓여 몸이 부푼 것이었다. 쯧, 귀찮게 됐네.
비록 몸은 죽었지만, 이승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게 원귀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고 가지각색의 미련을 갖는다.
보통 복수심으로 원귀가 되며, 한이 깊어지게 되면 자아가 흐려져 복수의 목적을 잊고 단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악을 끼치는 악귀가 된다.
“무명(無名)아.”
도화는 한숨을 쉬며 아기를 불렀다. 저 개새끼한테 이름을 물어 봤자 모를 리 뻔하니 무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보통 태아귀가 생기는 이유는 태어나지 못하고 낙태 당한 한 때문이니까. 정당한 죽음을 얻지 못한 원한이니 원망의 대상에게 달라붙은 것일 테고….
이 남자가 제 자식을 어미 배 속에서 태어나지 못하게 한 천하의 개새끼란 의미였다.
“너 이러다 악귀가 되면 환생도 못 하고 소멸될 수가 있어. 그건 알고 이렇게 한을 불리는 거냐?”
[응애- 응애-!!]
역시… 아기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악귀가 된 것은 아니니 진심을 담아 말하면 감정은 전달될 것이다.
“네 엄마는 어쩌고. 엄마 안 보고 싶니?”
[…….]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 울음이 거짓말처럼 그쳤다. 갑자기 찾아든 적막에 귀가 먹먹하다. 도화는 먹먹함을 풀려고 침을 한 차례 삼키고 이번에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원래는 당신 같은 쓰레기하고는 말도 섞지 않는데, 네놈 때문에 윤회 길에 들지 못할 당신 핏줄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야.”
“내 핏줄? 결혼도 안 했는데 애가 있을 리가 없잖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남자의 감정이 느껴졌는지 태아귀가 다시 울 준비를 했다. 도화는 또 고막을 고문당하고 싶지 않았다.
“너 가짜 무당이지? 어디서 날 속여 먹으려고- 커헉!!!”
퍼억!
도화의 발이 남자의 옆구리에 꽂혔다. 남자는 차인 옆구리 쪽으로 몸을 수그리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땀으로 푹 젖은 옷에 흙먼지가 범벅이 되었다.
“당신이 죽인 아기가 등에 매달려 있는데… 이대로 내버려 두면 곧 당신 숨통도 조일 것 같단 말이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기의 손이 저 정도로 커진 걸 보면, 조만간 저 손으로 남자의 목을 조를 것이 분명하다.
“이 새끼는 포기하고 네 갈 길 가면 안 될까?”
[응애!!]
단호한 거절이다. 평소라면 ‘그래, 네 팔자 스스로 꼰다는데 내가 뭐라 할 것도 없지.’ 하고 무시했을 텐데.
‘하필 태아귀일 건 뭐람.’
도화는 원귀에서 악귀로 변해 가는 이름 없는 태아귀가 마치 자신 같아서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본인도 복수를 놓지 못했으면서 녀석에게 복수는 포기하고 그만 저승으로 가라는 건 우습지만서도… 자신과 같은 길을 가게 하긴 싫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