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도화-2화 (3/146)

2화

자전거에서 내린 도화는 구석에 한가득 쌓여 있는 폐기물 봉투 뒤 전봇대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누가 훔쳐 가지 못하게 자물쇠를 걸고 일부러 폐기물 봉투를 쌓아 자전거를 감췄다. 인적이 없다 해서 사람이 아예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폐가에서 지내는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의 눈에 자전거는 쏠쏠한 용돈으로 보일 테니 이렇게 숨겨야 했다.

자전거 열쇠를 주머니에 넣은 도화는 골목 끝을 가로막은 허름한 벽으로 다가갔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그는 손에 기운을 실어 벽을 두드렸다.

똑똑똑똑똑-.

정확하게 다섯 번. 벽을 치는 둔탁한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그러자 흐린 구름에 가려졌어도 어슴푸레하게 빛을 내던 달이 사라졌다. 어둑하던 골목에 새카만 어둠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끊어져 덜렁거리는 전깃줄을 가리고 제구실을 못 하는 전신주도 사라졌다. 도화의 자전거와 폐기물 쓰레기봉투들까지 어둠 속에 감쪽같이 먹혔다.

완벽하게 어둠에 삼켜진 골목은 마치 막다른 벽을 두드린 손님을 감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발끝까지 어둠에 삼켜진 것을 확인한 도화는 벽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뎠다. 도화의 몸이 벽 너머로 쑤욱 사라졌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어둠은 사라졌다. 지저분한 골목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재개발 지역의 적막에 익숙해졌던 귀가 갑자기 쏟아진 왁자지껄한 소음에 먹먹할 지경이다.

테이블마다 술과 음식이 없는 곳이 없다. 혼자 한 테이블을 차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테이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럿이 둘러앉은 곳도 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왁자지껄한 이유는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었다.

도화는 빠르게 사람들을 훑었다. 혹시 자신이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오! 이게 누구신가? 도방 선생 아닌가?”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도화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도화와 비슷한 키였지만, 도화보다 두 배나 큰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여강진.”

“요즘 통 보이질 않더니. 무슨 일이신가?”

여강진이라 불린 남자는 이 시간에 나타난 도화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강진뿐 아니라 꽤 많은 이의 시선이 도화에게 쏠려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여우족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흠. 여우족이라. 얼마 전에 꼬리가 꽤 많이 달린 여우가 불래(不來)에 오긴 했지.”

강진은 도화에게 보란 듯이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말했다. 이 뒤의 정보는 맨입으로는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도화는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강진의 손에 쥐여 주었다.

“너무 짠데?”

강진의 시선이 아직 닫히지 않은 도화의 지갑을 슬쩍 훑었다. 초록색 한 장, 파란색 서너 장이 눈에 들어왔다.

쳇, 더 뜯어내고 싶어도 뜯어낼 게 없구먼. 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지만, 여전히 도화의 어깨에 팔을 두른 상태라 도화의 귀에 속삭이는 꼴이 되어 버렸다. 대놓고 비아냥대는 꼴이었지만, 도화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무표정이었다.

“나중에 한탕 치면 한몫 챙겨 주기다?”

여강진의 말에 도화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여강진의 말은 빈말이었다. 수백 년간 쉬지 않고 크고 작은 의뢰를 해결한 홍도화가 여태 원룸 생활을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도화 또한 한탕 하더라도 강진에게 한 몫을 떼어 줄 여유가 없지만, 항상 그랬듯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뿐이었다.

“5층 2번째 방.”

“감사합니다.”

여우가 묵고 있는 방을 알려 준 강진은 수고하라며 도화의 등을 툭툭 쳤다. 계단을 오르는 도화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강진은 몸을 돌려 프런트로 향했다. 그리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안내데스크에 두 다리를 올렸다. 참으로 거만한 태도였지만, 누구도 그런 강진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도화가 여우족을 만나기 위해 온 이곳은 ‘불래不來’라고 불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평범한 인간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며, 평범치 않은 인간은 불래에 왔다는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채 쫓겨난다.

한마디로 하계의 인간은 절대 낄 수 없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하계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불래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달은 수입이 영 시원찮단 말이야. 쯧.”

포스기를 만지던 강진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산적 같은 외모와 달리 기기를 만지는 손놀림은 능숙했다. 매출을 보니 심란했던지 강진은 곧 재고 관리 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 * *

5층 2번째 방 앞에 선 도화는 고민하는 기색 없이 바로 노크했다. 그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은 매우 호화로웠다. 1층도 호화롭긴 했으나 워낙 다양한 외양의 사람들이 활개치기에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방 안에는 체구가 작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외모는 30대 초반으로 보였으나 깊은 눈빛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그 ‘도방’이군요.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도화의 방문에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마치 도화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듯 테이블 위의 찻잔도 두 개였다. 방금 막 차를 우려낸 것인지 모락모락 김이 났다.

“앉아요.”

“실례하겠습니다.”

도화는 사양 않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집에선 그렇게 춥더니 자전거로 질주했다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급한 일이긴 하지만, 마시면서 이야기하죠.”

도화는 땀을 흘리면서도 뜨거운 차를 거절하지 않았다. 1층에서 여강진에게 준 돈이 얼마던가. 땀 흘려 번 돈을 순식간에 써 버렸으니 먹을 것이든 정보든 간에 본전은 찾아야 했다.

“이런. 내 소개가 늦었군요. 여우족의 화린이라고 해요. 소소하게 어린 여우를 돌보고 있지요.”

“그러시군요. 하지만, 삼미호는 어리다고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도화는 쓸데없는 설명은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우족은 매우 폐쇄적인 종족이다. 인간 틈 속에서 활동하는 여우족은 매우 극소수이다. 하지만, 그만큼 영향력은 끝내 줬다. 존재 그 자체로도 사람을 홀리니 말이다.

자신을 화린이라 소개한 여인은 도화의 대답에 눈을 반짝였다.

“호오….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소문이 사실이라고…?

도화는 화린의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혹시 의뢰금 천만 원을 제시한 의뢰인이… 당신입니까?”

“맞아요. 아, 의뢰금이 너무 적었나요?”

순간 그렇다고, 삼천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양심이 막아섰다.

“아닙니다. 너무 후하게 제시하기에 의심을 좀 한 것뿐입니다.”

화린은 도화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미소를 지웠다.

“사실, 그 아이는 삼미호가 아닙니다. 본디 꼬리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해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분명 꼬리가 세 개였습니다.”

도화의 질문에 화린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

“고 맹랑한 녀석이 제 꼬리를 훔쳐 달아났답니다.”

화린이 치맛자락을 올려 슬쩍 꼬리를 내보였다. 여인의 매끈한 다리가 허벅지 위까지 아슬아슬하게 보였으나 도화는 미세한 동요도 없었다. 그는 화린의 다리가 아니라 꼬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풍성한 5개의 꼬리 사이 사이가 뭔가 허전했다. 자세히 보니 짧다 못해 흔적만 남은, ‘꼬리였던’ 것이 세 개가 보였다. 꼬리를 훔쳤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관상이 궁금하여 제게 의뢰 메일을 보내신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도화는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화린을 경계하며 말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본 것은 상관없다. 도화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제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삼미호인 줄도 모르고 관상을 봐 달라는 인간이 신경 쓰여서, 인간이 저를 의심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 곁에서 지낼 여우가 걱정되어서 스스로 불래에 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불쾌했다.

도화가 불쾌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화린은 제 할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름은 다온. 저를 따라 잠시 인간 세상에 나왔다가 제 꼬리를 세 개나 훔쳐 달아난 괘씸한 녀석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다? 말은 쉽지. 이 동네만 돌아다녀도 반나절이다.

‘천만 원에 여우 찾기란 밑지는 장사야.’

도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그래도 너무 바빠서 관상 의뢰는 그만두기로 하지 않았던가. 평일 낮에는 카페 알바를, 밤에는 피방 알바를. 그리고 주말은 불래에서 제게 들어온 의뢰를 해결했다.

불래의 고객들은 모두 큰손이다. 고로 불래에서 의뢰를 받는 해결사들 역시 큰손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도화는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꽤 긴 세월을 살면서도 차는커녕 월셋방을 전전했다.

불래를 이용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당연히 도화도 인간이 아니었다.

도깨비. 정확하게는 반쪽짜리 도깨비였다.

“당신의 재정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천만 원으로 서울 전체를 뒤지는 건 너무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군요.”

“아…! 물론 더 드려야지요. 크게 세 장 정도면 만족하실까요?”

화린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크게 세 장?

“3천?”

“어머. 이 화린을 뭘로 보시고.”

“……?”

3천이 아니면 뭔데?

도화는 천 단위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화린의 말에 도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3억.”

“…억?”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3천도 좀 안 믿기긴 했다. 지금껏 이런저런 일을 해 왔어도 천 단위 보수를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2천만 불러도 홀랑 넘어갈 각이었는데 억이라니. 그것도 무려 3억…!

“반응을 보아하니 제 의뢰를 수락하실 것 같군요.”

“하지만… 서울 전역을 홀로 수색하는 것은 역시나 힘든 일입니다.”

“3억은 선금. 다온을 무사히 제게 데려온다면 3억을 더 드리도록 하죠.”

꿀꺽.

도화는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크게 삼켰다. 너무 속을 드러낸 듯했지만, 6억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선금 3억. 그 돈이면 원룸이 아닌 투룸… 좀 더 욕심을 부려서 쓰리룸으로 옮겨 갈 수 있을 것 같다. 위치도 강북 구석탱이에서 벗어나고 말이다.

“하겠습니다.”

“좋아요. 돈은 강진을 통해 안전하게 보내도록 하지요. 다온에 관한 정보는 메일로 보내 놓을게요.”

그렇게 팔미호의 꼬리를 훔친 어린 여우 찾기 계약이 성사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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