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도화-1화 (2/146)

1화

띵동- 메일 왔어요!

탁자 위에 올려 둔 휴대폰에서 메일 수신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막 씻고 나온 도화는 김이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비비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또 의뢰인가…?”

알림창을 내려 제목만 확인했는데 피로가 확 밀려와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20분. 요 며칠 무리해서 일한 탓에 한동안은 부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블로그에 공지 글을 올리기도 전에 도착한 의뢰 메일이 무척이나 난감하다.

하지만, 도화는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책상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익숙한 초록 창을 띄워 바로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제목에 짧은 인사 한 줄이 다인 메일이지만, 어차피 이 메일 주소로 오는 메일의 95%는 의뢰 메일이니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다.

따각.

가벼운 클릭 한 번으로 메일을 열어 본 도화는 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괬다.

안녕하세요. 도방님. 우선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관상을 잘 봐주신다 하여 의뢰드립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이걸 어찌한다…? 거절해? 말어?

도화의 얼굴엔 짜증이 역력했다. 어려운 건 아닌데 피곤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싫었다. 사실 방금 메일 여느라 마우스 클릭 한 번 한 것도 귀찮았다.

하지만…….

의뢰금은 천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만 원?”

의뢰 메일 끝에 적힌 의뢰금이 너무 매력적인 동시에 위험해 보였다. 관상 한 번에 천만 원. 짭짤하다 못해 독을 탄 느낌 아닌가. 평소 관상 의뢰는 건당 오만 원이었고 좀 더 자세히 봐 달라며 웃돈을 얹는 경우도 끽해야 십만 원이 다였다. 하루에 수십 건씩 들어오긴 하지만, 간단하게 봐주는 것도 심력을 써야 하는지라 들어오는 대로 다 했다간 몸이 버티지 못할 터였다.

자신이 보는 관상은 통계적인 정보가 아닌 운명의 신 가믄장 아기의 흔적을 엿보는 것이다. 신의 힘을 엿보는 것은 이미 신의 손에서 떠난 흔적일지라도 매우 힘들고 위험한 짓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건당 백만 원이라면 모를까. 오만, 십만 하는 푼돈을 받고 할 만한 일은 아니란 소리다. 아니, 백만 원도 거저다. 거저.

하지만, 천만 원은 좀 껄끄러웠다.

“껄끄럽긴 한데….”

거절하기엔 금액이 너무 크다. 저 돈이면 1년 치 월세에 관리비까지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아닌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적인 금액이었다. 저런 거 열 번만 하면 한동안 집세 걱정 없이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그래. 이번 건만 하자.’

마음을 정한 도화는 자신의 블로그에 들어가 빠르게 짧은 공지를 썼다.

한동안 관상 의뢰는 받지 않습니다.

하나만 아는 사람은 재오픈 공지가 뜰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둘을 아는 사람은 도방이 관상이 아닌 다른 쪽 의뢰를 집중하여 받을 것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정보와 주체 못 할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도방과 접선을 해 올 것이고.

도화는 의뢰 수락 메일을 보냈다. 메일 보내기를 누르고 10초 정도 지났을까.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어지간히도 급한가? 속으로 중얼거린 도화는 받은 메일을 열었다. 잘 부탁한다는 짧은 내용과 달리 첨부 파일은 묵직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압축된 파일을 풀어 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이 고화질로 여러 장 들어 있었다. 열 장 남짓이었지만, 파일의 크기가 컸던 이유였다.

이 정도 해상도면 굉장히 비싼 카메라로 찍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카메라인들 어딜 봐도 구도가 도촬이다.

‘아들이 데려온 며느릿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돈 많은 사모님의 의뢰인가.’

의뢰금부터 남다른 걸 보면 거의 확실했다.

도화는 여자의 사진들을 대충 살펴보며 견적을 냈다. 세세하게 봐 달라는 것인지 정면, 측면 사진 외에 귀, 손, 발… 심지어 옷 밖으로 드러난 신체에 있는 점까지 찍어 보냈다.

도화는 본인이 찍힌 것도 아닌데도 몰래 엿보는 구도의 사진을 쭉 보다 보니 기분이 불쾌해졌다. 하지만, 천만 원의 위력은 불쾌한 기분을 내리눌렀다. 1년 치 월세의 힘이란 대단했다.

“어디 간단하게 시작해 볼까?”

얼굴의 머리부터 코까지 모두 적절하게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감정이 풍부하고 인품이 좋아 보인다. 춘정이 좀 과한 감이 있으나 짝에 대한 애정 또한 깊으므로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탐스러운 눈썹이 눈보다 길쭉하니 돈이 마르진 않을 것이고, 입술의 위아래 모두 고르고 잘 겹쳐져 있어 부귀할 상이었다.

게다가 외모 또한 빼어나니 어떤 남자라도 사진 속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 관상이다.

타다닥, 타다닥.

도화는 방금 자신이 본 1차 관상을 빠르게 적었다. 이건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예의상 기본적으로 하는 관례였다.

대충 1차 관상 요약을 마무리 지은 도화는 주방으로 가서 뜨거운 물 한 컵을 가져왔다. 복층 구조의 자그마한 원룸 내에서 주방이라 불릴 만한 영역이란 싱크대와 냉장고 사이가 전부인지라 다시 컴퓨터 책상까지 돌아오는 데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후우.”

다시 의자에 앉은 그는 에어컨을 끄고 온풍기를 켰다. 원룸에 살아서 좋은 점은 전기와 가스를 펑펑 써도 부담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력을 써서 사진 속 인물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몸을 따뜻하게 할 준비를 해야 했다. 부디 따뜻한 물과 온풍기로 해결되길 바라며… 도화는 모니터 속 여자의 사진을 마주하고 눈을 감았다.

온 신경을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에 집중했다. 속으로 운명의 신 가믄장 아기를 부르며 사진 속 여인의 운명을 엿보았다.

아기님. 아기님. 가믄장 아기님.

이 아이는 어찌 살 운명입니까?

소리 없이 속으로만 하는 말임에도 도화는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아주 작게 속삭였다. 운명을 손보는 가믄장 아기는 아주 특별한 운명이 아닌 이상 태어난 직후 큰 줄기의 운명만 정해 놓고 손을 뗀다. 시대를 호령하는 지도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연예인,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사람은 가믄장 아기의 특별 관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인다.’

집중하다 보니 머릿속에 희미하게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이 흘러들었다. 애교, 교태, 심금을 울리는, 말솜씨가 좋은, 부드러운 귀, 풍성한 꼬리….

꼬리?

도화는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에 집중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캄캄하게 감긴 시야에 스쳐 지나갔다.

분명 꼬리다. 풍성하고 푹신해 보이는 꼬리. 게다가 귀가 부드러워 보인 것도 갈색 털 때문이었다. 심지어 꼬리는 3개나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삼미호?”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릿감을 떼어 내기 위한 의뢰인 줄 알았는데…. 못돼먹은 예비 시어머니의 심술이 아니라 육감이 예민한 어머니의 선견지명이었던 건가.

도화는 이름 모를 삼미호에 대해 어찌 알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봉꾼부터 사기꾼, 살인마까지 읽어 본 적은 있으나 인간 사이에 숨어든 요괴는 처음이다.

‘이를 어찌한다? 대놓고 여우 요괴 중 꼬리가 세 개나 되는 삼미호라고 알릴 순 없고….’

난감하다. 가믄장 아기의 흔적 중 뭐라도 나쁜 게 하나 보였다면 살짝 과장을 얹어서 풀이를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삼미호는 어딜 봐도 삼미호라는 것 외에는 평범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여우족이라는 의미였다.

‘여우가 인간을 좋아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꼬리 하나도 아니고 세 개 가진 여우가 인간 틈에 있는 건 난감한데. 이거 여우족은 알고 있긴 한 건가?’

아, 그냥 거절해 버릴걸.

천만 원에 홀랑 넘어가 버려서 골치 아파졌다. 게다가 서서히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춥다. 온풍기를 풀로 틀었는데도 추웠다.

한참을 추위와 싸우다 보니 조금씩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을 마시며 잔뜩 긴장된 몸을 풀고 있자니, 문득 오래전 스승이 제게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제자야. 넌 정을 줄일 필요가 있단다.]

강산이 수백, 수천 번 바뀌어도 잊히지 않는 충고였고, 여전히 제겐 맞지 않는 충고였다.

‘정이라니. 이건 정이 아니라 괜히 의뢰를 잘못 마무리 지었다가 부스럼이 생길까 봐 이러는 거라고요. 스승님.’

삼미호인 것을 무시하고 좋은 이야기만 썼다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홍도화가 ‘도방’이란 이름으로 쌓은 명성과 신뢰는 무너질 게 뻔하니 고민하는 것이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의뢰인과 이름 모를 사진 속 삼미호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우선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에서 본 것은 빼고 적자.’

어차피 삼미호라는 정체만 뺀다면 관상과 흔적의 내용은 거의 흡사했다. 빠르게 풀이를 마무리한 도화는 메일 보내기를 누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 위에 던져 놓았던 모자를 꾹 눌러쓰고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2시 40분.

컴퓨터를 켠 지 벌써 1시간 20분이나 지났다. 이제 곧 1시가 될 텐데, 도화는 그대로 지갑과 열쇠를 챙기고 원룸을 나섰다.

달칵.

작은 열쇠는 자전거 바퀴에 둘둘 말린 체인 자물쇠용이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나머지 와이어 락과 번호키를 풀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항상 자전거를 타러 나올 때마다 바퀴 두 개가 무사한 것에 감사하는 도화였다.

새벽이지만, 여름이라 공기는 후끈했다. 일기예보엔 비 소식은 없었는데. 볼을 스치는 바람 속에 습기가 묻어났다.

‘비가 오기 전에 해결 봐야 해.’

도화는 얄팍한 통장 사정을 상기하며 제발 편의점에서 비싼 우산을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옆에 쌩- 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보며 잠시 택시를 탈까 고민했지만, 괜히 비싼 택시비를 내고 비를 맞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힘주어 페달을 밟았다.

도화의 힘찬 페달질에 낡은 자전거가 삐걱거렸다. 마치 살려 달라는… 아니, 그만 보내 달라는 비명 같기도 했지만, 도화는 애써 무시하며 달렸다.

무더운 새벽이라 그런가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도화의 원룸은 번화가와 동떨어진 구석진 곳에 있었고, 지금 그가 가려는 곳 또한 인적이 드문 곳 재개발 지역이었다.

도화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자 더욱 속도를 올렸다. 아마 경륜 감독이 보았다면 당장 선수로 영입하고 싶어 할 정도 아닐까 싶은 속도였다. 자전거가 더욱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도화는 아쉽지만, 자전거의 비명을 무시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였다. 도화의 신체는 이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자전거가 버티질 못했다. 이거마저 망가지면 한동안은 뚜벅이 신세다.

이번에 들어올 관상 의뢰비로 좋은 자전거를 살까 했지만, 비싼 자전거일수록 도둑 당할 확률이 높기에 빠르게 포기했다.

도화의 자전거는 어느새 으슥한 산 밑 길로 진입했다. 강북의 거리란 어딜 돌아보아도 산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이 정도로 산 밑 마을은 드물었다.

재개발 지역이라 전기도 끊겼는지 불이 켜진 집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가로등도 모두 불이 꺼진 상태. 컴컴한 골목을 능숙하게 달리던 도화는 골목 끝에 다다라 멈춰 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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