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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0화 (프롤로그) (1/146)

프롤로그

자정이 넘은 시간.

도화와 묵범은 갑작스러운 호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집 근처 공원으로 뛰쳐나왔다. 얼마나 급했으면 꼭 필요한 물건도 챙기지 못했다.

“좀 떨어져.”

도화가 묵범의 허리를 발로 차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가 아니라 저걸 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묵범은 여유롭게 도화의 발을 피하며 서운하단 표정을 지었다.

“저거 처리하면서 너도 같이 처리해줘?”

“제가 처리되면 아쉬운 건 홍도화 씨 아닐까요?”

“내가 왜?”

“그야…….”

그때 둘이 ‘저것’으로 부르던 것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도화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의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자 밝은 달빛 아래 섬뜩한 얼굴이 드러났다.

멀리서 보면 앙상한 팔과 다리를 한 여자였지만, 드러난 얼굴은 절대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눈과 코가 있어야 할 곳에 오로지 커다란 입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어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온통 뾰족한 이빨로 가득한 입이.

그것의 이빨이 검은 도포 소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도화의 도포는 이빨에 거칠게 긁혀도 작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런 놈들은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채워야 해.”

“그걸 지킬 놈이면 우리가 잡으러 나오지도 않았지요.”

“하긴. 그렇긴 해.”

[더러운 차사 놈들……!!!]

“더러운 건 우리가 아니라 아귀, 당신의 입 냄새가 아닐까요?”

묵범은 빠드득, 이를 가는 그것을 ‘아귀’라고 불렀다. 그는 손으로 우아하게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다 삼켜버릴 테다!!]

아귀가 거대한 입을 쩍 벌리자 묵범을 묶으려고 꿈틀대던 도화의 부용삭이 아귀에게 달려들었다. 아귀의 얼굴엔 눈과 코는 없고 이름에 걸맞게 커다란 입만 자리 잡고 있어서 얼굴 전체를 칭칭 감아야 했다.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매섭게 입질하던 아귀는 본인의 주 무기가 제압당하자 손톱을 세워 도화를 공격했다.

하지만 도화가 뒤에서 아귀의 머리채를 잡고 확 끌어당긴 탓에 손톱은 도화에게 닿지 못했다. 대신 아귀는 잡혔던 머리채를 끊고 재빨리 도주하기 시작했다.

“손버릇도 나쁘군요.”

손에 남은 아귀의 머리카락을 바닥에 털어버린 도화는 목에 걸어 둔 작은 은장도를 잡아 뽑았다. 그러자 한 뼘보다 짧은 길이였던 것이 순식간에 길쭉한 장검으로 변했다.

“현천!”

[에잉, 쯧. 이젠 하다 하다 아귀냐?]

현천이라 불린 검이 평범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도화의 손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아귀를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아귀를 따라잡은 현천은 아귀의 양 발목을 긋고 물러났다. 베어진 곳이 벌어지며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더럽혔다.

[내 다리!! 크아악!!]

부지불식간의 공격에 아귀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래도 기를 쓰고 도망치려 하자 이번에는 묵범의 부용삭이 아귀의 몸을 칭칭 감았다.

아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것만큼 고통도 참지 못하는지 소음이 대단했다.

쓰러진 아귀에게 달려간 도화는 느긋하게 다가오는 묵범에게 외쳤다.

“야, 묵범. 빨리 처리해.”

“빨리하고 뭐 하게요?”

“복상부에 뒤처리 신고해야지. 너 때문에 늦어서 피해자가 생겼잖아!”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당신이 갈증 난다고 편의점에 들르느라 그런 거잖아요?”

“입이 제대로 달렸으면 말도 똑바로 해야지. 편의점에서 네가 사탕이란 사탕은 죄다 쓸어 담아서 그거 계산하느라 늦었잖아.”

“흠….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밤에도 일하려면 단 게 필요하거든요.”

묵범의 대답에 도화는 질렸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단것도 적당히 처먹어야지.”

“홍도화 씨가 단 걸 안 먹으니 성격이 까칠한 겁니다. 가끔 제가 주는 사탕도 먹어요. 그리고 아귀, 당신도 굶고 다니니 아무거나 주워 먹으려는 거 아닙니까? 배가 고프면 제사 때 집에 가서 잿밥이나 먹지. 왜 소화도 잘 안 되는 인간을 먹으려고 합니까?”

“……?”

[미이칭노미이…….]

부용삭에 포박된 아귀도 어이가 없었는지 틀어막힌 입으로 중얼거렸다.

“빨리 처리나 해.”

도화의 거듭된 요구에 묵범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1998년. 2월 3일. 오후 5시 32분에 태어난 박미희 씨 맞습니까?”

묵범은 휴대폰 화면에 뜬 것을 읽으며 물었다. 그러자 온전치 않은 발음으로 묵범에게 욕을 퍼붓던 아귀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대답이 없으니 스캔하겠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아귀의 얼굴에 가져댔다. 그러자 휴대폰 화면에 아귀의 입만 있는 얼굴과 평범히 보이는 여자 얼굴이 동시에 떴다.

“맞네요.”

“그러면 빨리 잡아넣어.”

[황금 같은 월차에 이게 무슨 봉변이냐. 쯧.]

현천이 투덜거리는 것을 무시하며 묵범은 손목에 찬 팔찌에서 붉은 구슬 하나를 꺼내 아귀에게 던졌다.

[끄으아아—!!!]

아귀는 부용삭만 남기고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용삭은 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각자의 주인에게 날아들었다.

“국장님한테 특근, 야근 수당 톡톡히 받아내야겠어.”

“제가 힘 좀 써보겠습니다.”

둘은 두 사람이 도착하기 직전, 아귀에게 공격당할 뻔해서 기절한 공원 관리인을 벤치에 눕혀놓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근처에 CCTV 있지 않았나?”

“있었던 것 같군요. 우리 찍혔겠는데요?”

“아, 왜 흑립 안 썼냐고 복상부한테 또 한 소리 듣겠네.”

급한 연락만 아니었어도 흑립을 까먹진 않았을 텐데. 홍도화가 혼자 구시렁거렸다.

“뭐 복상부가 알아서 뒷수습하겠지요. 그런 일 하라고 있는 부서니까요.”

“경위서는 네가 써.”

“…왜요?”

내내 부드럽게 대답하던 묵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화를 쳐다봤다.

“홍도화 씨도 흑립을 안 썼으니 같이 씁시다.”

“아, 몰라!”

모른다고 냅다 소리 지른 홍도화가 주차장으로 뛰었다. 그 뒤를 묵범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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