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 * *
세상은 정말 끔찍하게 불공평했다.
보통 사람이 울면 좀 얼굴도 벌게지고 추해지기 마련인데, 누군가는 우니까 그저 처연한 미남으로 탈바꿈할 뿐이다.
“저기서 그러면 어떡해, 미친놈아!”
그건, 사랑을 고백하고도 미친놈 소리를 듣는 고신재의 이야기다.
느지막한 저녁.
맑은 보랏빛과 차츰 섞이기 시작한 여름 석양을 배경으로 예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울린 사람의 인성을 가늠하게 될 정도로 곱디고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지금 근처의 인적 없는 골목 구석이었고, 타인의 소리라고는 저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종종 지나가는 차 소리뿐 이었다.
게다가 욕을 먹은 당사자인 고신재가 근 한 달 동안 이 갈라지고 쉰 목소리가 죽을 만큼 듣고 싶었으니 문제 될 것도 하나 없었고 말이다.
“……미안.”
“왜 울어, 고신재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후우, 그러게….”
사실 고신재라고 한들, 한 달 만에 보는 백한빈 앞에서 이렇게 한심하게 질질 짜고 싶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는 것도 살며 울어본 적이 있어야 조절할 줄 아는 거다.
울고 싶은 날마다 더더욱 고집스레 그걸 삼키고 웃는 것만 연습한 남자는, 그렇게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나자 그걸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고신재는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터트리며 제 눈가를 두 손으로 꾹, 눌러 가려버렸다.
“……하아, 잠깐, 만.”
“…….”
덕분에 덩달아 말문을 잃은 건 백한빈이었다.
심지어 잘못한 건 저쪽인데 왠지 내가 잘못했나 싶은 기분이 드는 상황마저 익숙했다.
술에 취해 꿈인 줄 알고 고신재와 밤을 보냈던 그 날도, 고신재는 저렇게 귀까지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했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숨을 고르며 울기는커녕 왜 걔는 되고 나는 안 되냐고 악에 받쳐 따지더니 이젠 친구 할 맘 없어졌다고 선포하기까지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거 엄청 의미심장했네.
저보다 키도 덩치도 월등한 남자를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펑펑 울린 장본인인 백한빈은, 저도 모르게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며 멋쩍게 턱까지 긁적였다.
그 와중에 고신재는 그 긴 팔로 꽃은 또 얼마나 소중히 안고 있는지.
솔직히, 보고 있다 보면 헛웃음이 날 지경이기도 했다.
“…야. 고신재. 나 뭐 좀 묻자.”
끄덕끄덕.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신재는, 눈을 가린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화 의지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백한빈은 평소에는 끔찍하게 싫어했던 덥고 끈적이는 공기가 오히려 정신을 몽롱하게 해서 내키는 대로 입을 열 도움을 주는 것에 감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진짜 나 좋아한 건 맞아?”
뻔하고 촌스러운 질문이지만, 다른 많고 많은 질문보다 백한빈 그가 정말 궁금했던 건 이것 하나였다.
고신재는 나를 좋아했을까?
나와 친구로 있고 싶어서 그렇게나 철저히 속였다는 사람이, 저와 매일같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까지 허락하게 된 그 많고 많은 날 중에 정말 나를 좋아한 날이 있기는 했을까?
조금 전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제게 사랑한다 말할 뻔한 바보를 앞에 두고도, 백한빈은 고신재의 마음을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요동치는 폭풍을 겪은 뒤 바다를 무서워하게 된 선원처럼, 백한빈 역시 분노와 배신감이 잠잠해진 지금 무엇보다 크게 남은 건 막연한 두려움뿐이었다.
함께한 순간순간의 파편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의심하는 게 무서울 정도로 진심 같기만 한데, 모든 조각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그래서 무엇이 진심이었다는 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비겁한 연인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지금도 너무 좋아해.”
“…….”
“단 한 번도… 백한빈, 너 안 좋아한 적 없어.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인터넷으로만 이야기할 때도…, 언젠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
고신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뱉은 다음, “내가 조금 더……, 사람처럼, 살게 되면. 그러면.”하고 덧붙였다.
사실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로만 하는 고백은 어쩌면 본질적으로는 온라인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하지만 백한빈은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아주 오랫동안 대화해온 남자가 눈앞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신재는 백한빈이 사랑에 빠졌던 그 목소리로 볼품없는 고백을 이어갔다.
“네가 좋아하는 나를 부러워했을 만큼, 좋아해.”
“…….”
“아직도 지금의 나는 네가 좋아한 나를 무슨 수를 써도 따라잡지 못할까 봐 무서울 정도로, 좋아해. -정말, 백한빈 널 좋아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게임에서 처음 나 도와준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
“…나한테 백한빈 너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서.”
중간중간 몇 번이나 목소리가 먹먹해지기도 하고, 옅은 한숨과 함께 잘리기도 했지만, 고신재는 제게 떨어진 질문에 고집스러울 만큼 충실히 답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커다란 손으로 여전히 물기가 가득한 눈가를 마구 문지른 다음에 뿌옇게 변한 눈으로나마 기어이 마주 보려고 시도도 했고 말이다.
덕분에 백한빈은 제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건 오로지 이 끈적한 더위 때문일 거라고, 애써 저 자신에게 이르며 동요를 감춰야 했다.
그래서 백한빈은 그가 가장 잘하는 부루퉁한 척을 했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말은, 사실 제가 고신재에게 돌려줘야 했던 문장이라는 걸 벌써 밝힐 수는 없는 탓이었다.
“그, 그렇게…, 좋아하면. 그럼 네 친구한테는 왜 그랬는데?”
하지만 그런 백한빈의 노력이 무색하게, 솔직히 고신재는 제가 사랑하는 남자가 간신히 꺼낸 두 번째 물음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
“그래! 솔직히 그게 제일 열 받았다고!”
고신재는 너무 문질러서 이제 조금은 발갛게 일어나기까지 한 눈가를 다시 한 번 문지르고는, 오늘따라 한심할 정도로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로 백한빈의 말을 곱씹었다.
백한빈이 그게 제일 열 받았다고 하니 그거야말로 얼른 해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친구가 있던가?”
뻑뻑한 눈을 한참이나 깜박이다 이내 평이하게 흘러나온 물음은, 앞선 고백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백한빈의 말문을 막기 충분했다.
“-있지, 왜 없어! 너희 과 김유민!”
“아…….”
뭐라 말을 더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고신재의 표정은 어딜 봐도 ‘걔는 내 친구 아닌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한빈은 만난 이후로 최소 30분은 눈물을 쏟아낸 남자가 드디어 익히 알던 그 인성을 슬며시 내보이는 걸 안도의 사인으로 여겨야 할지, 혀를 내둘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어질 대답에 조금은 뒷목이 뻣뻣해졌다.
사람 이름을 놔두고 ‘사진과 걔’라고 부르는 건 기본에 그럭저럭 같이 놀기는 좋다느니, 보기엔 그래도 꽤 착하고 순진하다는 말을 빙긋이 웃으며 쏟아내던 그 표정이 여전히 생생해서였다.
“그건…,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상황이 아무리 그래도 절대 그런 식으로는 안 둘러댈게. 너랑 거리가 있는 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생각이 짧아서.”
미안한 것투성이인 고신재의 사과 목록에 또 다른 것이 추가됐다.
하지만, 한빈은 그 깍듯한 사과를 듣고도 고신재의 말이 얼른 이해가지 않아 뿔테안경 너머로 뾰족한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상황이 그렇다’는 게 무슨 말이야?”
“김유민이 너랑 나를 의심했거든.”
“의심?”
“내가 네 시간표 따라서 바꾼 거나 평소에 내가 너 챙기는 거 조용히 보고 있다가, 교양 사진 과제 보고 난 다음엔 둘이 사귀는 거 아닌가 의심하더라고.”
근 한 달간 마음고생을 원 없이 하지 않았더라면, 예전의 백한빈은 이 말에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을 만큼 얻어맞은 한빈은 그 등골 오싹한 문장을 들으며 식당에서 저와 고신재의 관계를 슬슬 떠보던 김유민의 의미심장한 말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땐 ‘박종우’라는 이름과 고신재의 관계를 유추하는 데 푹 빠져 정말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냐며 연거푸 되묻는 걸 두고 감히 의도를 되짚어 볼 여유가 없었다.
한편, 고신재는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말을 잃은 백한빈을 향해 여전히 좀 쉰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상냥한 비난을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한빈아. 김유민 소름 돋게 단순해.”
“그, 그래도… 진짜 괜찮아, 그거?”
“장담컨대 졸업하기 전까지 한 학기에 한 번씩 먼저 친한 척 먹이만 주면 정신 못 차릴 거야. 그리고, 내가 말을 그렇게 해둬서…. 너 볼 때마다 혼자 우월감 느낄 바보라. 정말 괜찮아.”
“……어이없어. 자기가 뭔데?”
“그냥 그런 애야. 물론 아무리 그래도 다른 방법 생각 안 하고 말을 그렇게 한 건……, 생각이 짧았어. 그냥 내가 다 잘못했어.”
백한빈은 잠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던 또 다른 화제를 끄집어냈다.
“…그럼 고신재 너. 내가 택배로 보내준 건 다 버렸어?”
사실 이건 한빈 그 역시도 완전히 떳떳하지는 못한 일이기는 했다.
고신재 역시 비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신 쓰면서 업보의 절대량으로 치면 백한빈의 거짓말은 애교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부산에 사는 척하려고 몇 사람이나 거친 건 사실이었다.
고신재의 대답은 곧장 흘러나왔다.
“아니.”
“그거 다 어딨어. 지갑도 안 보이던데. 과자는 다 먹은 거야?”
“그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
“너…, 너희 집 아무리 뒤져봐도 없던데!”
기껏 울음이 좀 그쳤나 싶더니 나오는 말마다 뺨을 간지럽게 하는 말에 결국 한빈은 조금 말을 더듬어버렸다.
하지만 고신재는 또 다른 고해성사 앞에서 그 동요를 짚어낼 여유 따위 없었다.
“……형 방에 숨겨뒀어.”
“와. 진짜 짜증 나네. 그래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거지! 너희 형, 거기서 살지도 않으면서!”
“응. 그것도 미안해.”
이제 고신재는 평범한 대화보다 모든 걸 제 탓으로 돌리는 게 당연할 정도로 들숨 한 번에 “미안”, 날숨 한 번에 “잘못했어”를 반복한다.
백한빈은 간신히 눈물은 그쳤다지만 단정하고 예쁜 눈매가 영 신경 쓰일 정도로 붉게 부어오른 남자의 얼굴을 대답 대신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한때 말 한마디 없이 그저 함께 하는 침묵조차 다디달았던 날들도 있었건만 이제 고신재는 그 고요를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한빈은 여름의 더위를 한 모금 베어 문 다음, 천천히 그걸 내뱉는 숨에 천천히 입을 뗐다.
“고신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새겨들어.”
근처의 나무 어디선가 매미가 시끄럽게 목청을 틔우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건만, 백한빈의 목소리는 그 방해에도 묻히기는커녕 그 어떤 때보다도 선명하게 고신재의 귀에 내리꽂혔다.
“나 고신재 너 용서 안 했어.”
“응.”
“우리 지금, 친구도 아냐. 당연히 애인은 더더욱 아니고. 그거 둘 다 완전히 쫑났어. 이건 팩트야.”
“……응. 알고 있어.”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 하나하나가 속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아 갈수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던 고신재는, 백한빈이 유독 힘주어 덧붙인 부사 앞에서 심장이 달음박질쳤다.
이름 하나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꾹꾹 눌려 담긴 한빈의 문장이 천천히 이어졌다.
“하지만, 이대로는 내가 억울해서 안 되겠어.”
“…….”
“25년에서 5년이면 인생의 5분의 1인 거 알아? 심지어 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는 아예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인생의 5분의 1을 고신재 너랑 보냈어, 나.”
고신재는 저를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앞에서 꽃다발을 품에 안은 손을 말아 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보다 먼저 인사한 게 너였고, 밤에 만나 같이 노는 거로도 모자라 아무한테도 말 못하는 우울한 투정도, 비밀도 살면서 너한테만 털어놓아 봤어. …심지어, 그러다 널 좋아하기까지 했지. ‘이쪽’도, ‘저쪽’도 모두.”
“한빈아.”
“-그래서 더 억울하다는 거야!”
철렁한 마음에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된 변명 같은 사죄를 이어가려던 고신재의 말은 그보다 더 세게 터져 나온 백한빈의 덧붙임에 자연스레 잘렸다.
“나는, 5년을 같이 보내고도 고신재 너라는 인간이 대체 뭐였는지 더 헷갈리게만 됐는데, 고신재 너는 비겁하게 혼자 멋대로 내 바닥까지 들여다봤잖아! 이러는 게 어딨어?”
…덕분에, 고신재는 너무 미안하면 오히려 입조차 안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물어본 당사자인 백한빈 역시, 애초에 고신재가 제 물음에 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잠시 흐르는 침묵을 대신 채워준 건 쉬지도 않고 울어주는 매미와 저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종종 들리는 차 소리였다.
“정말, 알고 싶어.”
“…….”
“내가 정말 바보같이 5년을 허공에 날린 건지, 아니면 최소한…, 바보같이 속긴 했어도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었는지, 알고 싶어. -그러니까, 잘 들어. 이건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야. 고신재.”
백한빈은 티셔츠가 피부에 달라붙는 감촉이 유독 생생한 게 저를 바라보는 흑갈색 눈동자가 젖어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름밤의 더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책임을 가늠하는 것 대신, 저를 지독히도 괴롭힌 모든 감정의 부유물을 끌어모아 내뱉는 것처럼 힘주어 말을 이었다.
“친구도, 애인도 아닌 상태로 딱 한 번만 다시 시작해.”
“…….”
“현실에는 리겜 같은 것도 없고 한 번 죽으면 끝인 거지만. 아직도 네가 나 가지고 논 거 생각하면 죽을 만큼 자존심 상하고 화나지만! …불쌍한 내 5년을 위해서 정말 딱 한 번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겠다는 거라고.”
“…….”
“그러니까, 이번에는 절대… 아무것도 속이지 마.”
대단한 말주변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번도 연습한 적 없던 문장이 이렇게 술술 흘러나오는 건, 상대가 호불호가 분명했던 백한빈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양극단을 모두 찍어본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백한빈은 꽃다발을 안은 채로 멍하게 얼이 빠진 남자를 올려다보며 짧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정말, 봐준다. 고신재.”
“…….”
‘봐준다’.
고신재는 제가 들은 속삭임을 입안에서 굴려 중얼거려보았다.
사실 그는 최근에도 저 표현을 들은 적 있었다.
그건,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도저히 제 발목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그 지독하게 추운 하얀 대리석의 감옥에서 제 필요와 효용성을 가늠하던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더욱 신기했다.
그저 끔찍한 굴욕을 줄 뿐이었던 그 표현이, 저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올 때는 무너진 땅 위에서 질식하던 제게 유일하게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게.
……그 짤막한 단어가 모든 것을 놓기 직전마다 자신을 붙잡아주는 남자의 곁에 다시 설 기회라는 게.
“아, 미치겠네! 그만 좀 울어, …이 울보 못난아!”
사실 백한빈이 마지막에 탄식처럼 덧붙인 단어는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걸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