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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메인 탱커
험악한 표현이지만, 고진영은 제 동생이 사람 하나 죽인 줄 알았다.
정말이지 그 의구심에는 어떤 과장도 없었다.
고진영의 평화로운 퇴근길이 순식간에 심장을 조이는 스릴러로 변모한 건, 지인과의 저녁 약속을 가는 차 안에서 제 동생의 이름이 떠오른 전화를 허둥지둥 받은 때였다.
사실, 진영은 처음엔 제 동생이 전화를 잘못 걸었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만인지 가늠도 안 되는 동생의 전화를 빨리 받겠답시고 팔꿈치로 클락션을 울리기까지 했는데, 정작 전화를 건 당사자는 흔한 인사 한마디 없이 고요했기 때문이었다.
“어, 신재야. 왜.”
-…….
“…똑똑. 여보세요?”
그냥 전화 끊을까.
고진영은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거치대 위의 휴대폰 액정 위로 답답하게 쌓여가는 통화 시간을 보면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직감이 자꾸 그를 잡아 세웠다.
“…….”
진영은 작게 틀어뒀던 라디오를 끄고, 귀에 걸린 핸즈프리 이어폰 너머에 신경을 집중했다.
다행히도 그 노력은 무색하지는 않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로 저만치에 청각을 집중하고 있으려니, 저만치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신재. 신재야.”
-…….
“신재 너, 혹시……, 지금, ……울어?”
입 밖으로 직접 꺼내놓고도 믿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고진영은 제 물음 끝에 딸려 들어온 탁한 숨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덕분에 스무 살부터 자차를 몰아 나름대로 운전에는 자신이 있던 진영은, 차가 꽉 들어찬 채로 꼼짝하지 않는 도로 한복판에서 눈앞이 새하얘지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고신재. 왜 그래.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어?”
-……형.
“어. 어, 그래. 형이야. 왜 그래. 고신재. 무슨 일이냐고!”
-지금, 와, 줄 수…, 있어?
낡은 축음기의 마지막 움직임처럼 툭툭 끊어져 들린 물음을 이해한 순간의 서늘함이라니!
고진영은 누군가 각얼음이 가득한 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와르르 쏟아붓는 것 같아 어깨를 조금 떨기까지 했지만, 얼이 빠졌던 정신은 똑바로 들었다.
“너 지금 어디야. 형 바로 갈게.”
-…????…, 병원….
“고신재 너 다쳤어?!”
-……나, 말고-.
전화는 거기까지였다.
저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에 갈라진 목소리로 ‘네, 전데요.’ 하고 대답하던 것 같던 동생은,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가늠조차 안 되는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 것이 무색하게 곧장 통화를 끝내버렸다.
“진짜 미치겠네! 나 말고 누구!”
고진영은 대답할 이 없는 꽉 막힌 외침을 토해내며 이번에는 실수가 아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을 담아 그의 운전 생활에 거의 없던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고진영이 제 동생이 말한 병원에 도착한 건, 속을 발칵 뒤집은 통화로부터 거의 한 시간 반이나 지난 후였다.
허둥지둥 달려가서 “키가 이-만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보호자로, 누가 입원했을 텐데요.” 같은 허술한 문장으로 행방을 묻자 병원 직원은 조금 이상한 표정을 했었다.
솔직히 진영은 그 표정에 1차로 심장이 철렁했다.
오는 내내 전화를 다시 걸어도 받지 않던 제 동생이 ‘보호자’가 아니라 사실은 이름 모를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환자로 입원했으면 어떡하지, 싶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직원은 ‘키가 이-만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병실로 올라갔어요. …23층이요.”
“가, 감사합니다!”
사실 그때까지 진영은 제게 안내해주는 직원이 왜 그렇게 묘한 표정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저를 살피는 시선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보다도 최소한 제 동생이 다치지 않은 게 확실하다는 안도가 더 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진영은 엘리베이터에서 제가 버튼을 누른 23층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자마자 직원이 제 동생을 곧장 기억해낸 이유도, 왠지 따끔따끔 박히는 것 같던 시선의 의미도 머잖아 깨닫게 됐다.
/ 23층 특 실 /
……확실히, 스물다섯 살의 보호자가 선택하기에는 인상적인 선택지였을 거다.
고진영은 왠지 쭈욱, 힘이 풀릴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서며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
“…수술 같은 건 안 들어갔으니까 심하게 다친 건 아닌가. 아니, 대체 누구야. 누군데 대체….”
그렇게 울면서 전화까지 했냐고.
진영은 살며 가장 긴 것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혼자 꽉 막힌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게나 소원했던 동생의 전화이건만 기뻐할 새도 없이 떨어진 폭탄에 여전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였다.
드디어 23층.
제 동생이 누군지 모를 사람의 보호자로 함께 있다는 병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금 전 응급실에 올라온 환자와 같이 온 ‘보호자’의 가족이라고 말하자,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들이 동시에 스윽 시선을 교환하며 곧장 병실을 안내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진영은 잰걸음을 옮기며 다시 목 뒤를 뻣뻣하게 만드는 긴장에 주먹까지 힘을 줬다.
하지만, 진영은 그렇게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찾아온 병실의 슬쩍 열린 문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노크조차 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미안해.”
익숙한 목소리로 들리는 낯선 단어였다.
고진영은 그 나직한 사과가 귀에 걸리는 순간, 아직 환자의 이름이 붙어있지도 않은 병실 앞을 멍하게 다시 확인했다.
안에서 들리는 게 제 동생의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혹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현실 부정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영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병실 안에서는 조금은 탁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듣기 좋은 목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내가, 정말 다 잘못했어….”
“……내 휴대폰 어디에 있어?”
“아. 휴대폰…, 그, 집에, 있는데. 챙길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지금 사람 불러서 바로 가져다줄게.”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진영은 정말 살며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제 동생의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와 믿을 수 없는 태도 앞에서 차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고신재를 쥐락펴락하는 카랑카랑한 명령은 계속됐다.
“-내가 짐 싸 둔 것까지 다 가져와. 이제, 고신재 너 또 볼 일 없을 테니까.”
“…….”
“야. 뭐해? 너 돈 많잖아. 그 대단한 ‘비서님’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대단하잖아. -아니야? 빨리 연락해. 연락해서, 내 물건 다 가지고 오라고.”
“……한빈아. 나, 내가 정말 이럴 염치 없다는 거 아는데-.”
“뭘 아는데, 고신재 네가!”
기어이 병실 밖으로 날 선 목소리가 삐죽 튀어나오고 만 순간.
그때, 고진영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아, 하고 작은 탄성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삼켰다.
‘한빈아’.
저 예쁘장한 이름은, 고진영이 이미 아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저 쉰 듯한 특이한 목소리도 일전에 들어본 적 있었다. 동생인 척, 게임을 하면서 말이다.
“염치? 염치라고 했어, 지금? 진짜 사람 열 받아서 죽게 하려는 거야 뭐야?”
“미안. 미안해, 내가 또 잘못했어, 백한빈. 그러다가 또 아파, 응?”
“네가 정말 인간 새끼면 나한테 어떻게 그래!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야. 고신재, 너 진짜 역겨워, 알아?”
누구에게나 말 한마디 지지 않던 잘난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날 선 비난 앞에서도 제대로 된 대꾸는커녕 이 병실에 누워 있는 연인이 또다시 쓰러질까 쩔쩔매는 고신재에게서는 평소 악명의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진영은 생소하다 못해 얼떨떨하기까지 한 상황 앞에서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하지만, 백한빈은 그렇게 문 너머로 몸을 감추고 있던 고씨 집안의 다른 형제 역시 빠짐없이 겨냥하기 시작했다.
“‘청담동 왕자님’? 야. 그 좆같은 아이디는 뭐 어디서 샀어? 사도 꼭 너처럼 짜증 나는 거 산 건 대단하다, 그래.”
마침 문밖에 서 있던 그 좆같은 아이디의 주인은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백한빈의 날 선 목소리는 갈라진 채 옅은 헐떡임까지 실린 채로 계속 이어졌다.
“나랑 할 때는 혹시 ‘박종우’가 와서 도와줬어? 대체 나 어디까지 가지고 놀려고 그랬던 건데? ……아, 이래서 그럭저럭 같이 놀기 좋다고 했던 건가?”
사실 백한빈의 질문세례는 고신재의 답을 바라는 게 아닌 견딜 수 없는 분노의 토로일 뿐이었다.
고신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백한빈의 화를 부추길 뿐인 대답 대신, 날 선 물음들을 고스란히 맞고 있기만 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런 그라고 하더라도 마지막 문장 앞에서는 작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뭘 되물어. 다 들었거든! 보기에는 그래도 꽤 착하고 순진하다며. 지금 보니 차라리 그게 칭찬이었다, 싶네. 최소한 멍청하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한빈아. 네가 뭘 들었는지는 알겠어. …후우, 그런데…. 미치겠네. 그건, 정말로 오해야.”
“오해? 무슨 오해? 눈앞에서 보고 듣기까지 했는데, 여기에 무슨 오해가 있어? ”
“……그게, 김유민이 우릴 보고-.”
“우리 같은 소리 하네. 닥쳐, 듣기 싫으니까.”
가끔은 상대를 마주하지 않고 목소리만 듣기에 선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백한빈’이 그랬다.
고진영은 제 동생에게 날 선 문장을 쏟아내는 남자가 당장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강한 척 쏟아내는 단어 하나하나에 울음을 꾹꾹 눌러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고신재 네 설명 같은 거 필요 없어. 아니, 듣고 싶지도 않아.”
“…한빈아.”
“너한테 친한 척하는 음침한 사진과 새끼랑 같이 다니는 거 많이 쪽팔렸을 텐데, 몇 달간…. 아니, 엄밀히 따지면 몇 년간 수고 많았고.”
“백한빈. 제발-.”
“나야말로 제발!”
그리고 ‘백한빈’의 말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깨달았다.
대체 저 남자에게 무슨 실수,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저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매달리고 애원해도 안 될 정도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구나, 라는 걸 말이다.
“……제발 부탁이니까, 고신재.”
“…….”
“꺼져. 우리 부모님 오시기 전에.”
병실 안에서는 매끄럽지 않게 툭툭 끊기며 흘러나오는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한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굳이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힘없는 발소리와 함께 고작 몇 센티의 틈으로 먼저 눈이 마주친 익숙한 흑갈색 눈동자는, 고진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덜덜 떨리는 숨을 토해내던 입술을 고집스레 깨물어 닫았기 때문이었다.
고신재는 자신의 형을 확인하자마자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와 슬쩍 열려있던 문을 빈틈없이 꽉 닫았다.
진영은 그 문이 잘 닫힌 걸 확인한 다음에야 툭, 먼저 말문을 뗐다.
“……쟤가 걔구나.”
저보다 시선이 높은 커다란 동생이 언제나 빳빳하게 쫙 펴져 있었던 널찍한 어깨를 구부정하게 한 채 바라보는 건, 고진영 그의 기억 전체를 통틀어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진영은 대답 없는 동생을 향해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나까지 끼어서 같이 게임 했던 ‘하마’.”
“…….”
“그리고, 부산 금정구에 산다던 ‘백한빈’. …네가 나한테 과자 하나 못 먹게 했던 택배 보낸 사람. 맞아?”
사실, 진영은 대답이 돌아오는 걸 기대하는 대신 ‘뭐야. 저 친구 부산 안 사네.’하고 농담 같은 문장을 덧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어휴, 왜 울고 그러냐, 또….”
태어나 기억이라는 게 존재하는 순간부터 쭉 함께했던 자존심 강한 동생이 일찍 철이 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다시 뚝뚝 떨어트리는데, 제아무리 잔소리 많은 고진영 그라고 한들 뭐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 * *
고신재 25년 인생의 첫 연애가 처참한 배드 엔딩 루트를 타기 시작한 지금.
거의 탈수기에 들어간 189cm짜리 거대 인형처럼 몸 안의 수분을 다 눈물로 뽑아낸 다음 소파 위에 그 큰 몸을 구기고 앉아 널브러진 동생을 보는 고진영의 얼굴은 전에 없이 멍했다.
사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듣기 전까지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저렇게까지 사과하는데….’ 같은 생각도 아주 조금은 했던 진영이다.
제가 대학원까지 보내며 눌러살았던 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도둑이라도 든 듯 뒤집힌 걸 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 꼴을 해 두고 쓰러지기까지 한 건가, 하고 혀도 조금 찼다.
……하지만 고신재가 뭘 그렇게 사과했는지, 또 ‘백한빈’이 누구인지 알게 된 이 순간.
고진영은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 전화를 걸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매달리던 동생을 향한 애잔함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였다.
좀 더 정확히는, 그런 걸 둘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너 그……남자랑, 사…, 사, 사귄다고?”
“어.”
“나- 남자…인데? 신재, 너어…, 그, 게, 게이…, 아니라며. 아닌데 속인 거였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완전 중요하지.
문틈으로 얼굴이나 보고 올 걸 그랬다, 야.
진영은 제게 톡 쏘아붙이는 동생에게 차마 꺼내지 못할 대답을 속으로 하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자 고신재는 신경질적인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나 뼛속까지 게이 된 지 오래니까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 하지 말고, 좀. 건설적인 조언 없냐고. 남자 사귀는 거 진짜냐는 질문만 몇 번을 해. 정신 좀 차려.”
엉엉 울며 전화할 때는 언제고, 특유의 성질머리를 못해도 70퍼센트는 복구한 고신재였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진영은, 운 흔적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도 한껏 투덜대는 그 뻔뻔한 태도 덕분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야. 네가 5년 된 친구 속여먹으면서 하루 한 뼘씩 몇 달간 꼬박 판 무덤을 내가 뭐 어떻게 도와줘.”
“아. 진짜 도움이 안 돼.”
“싹싹 비는 수밖에 더 있어?”
“……빌어도 안 되던데.”
“얘 좀 봐. 네가 거짓말 한 게 최소 몇 달인데 하루로 되겠냐. 너야말로 정신 차려, 인마.”
구구절절 틀린 말 하나 없는 대꾸에 고신재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진영은 왠지 스산한 기분에 소파에 있는 쿠션 하나를 가져다 품에 안은 채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나라면 네 목소리만 들어도 진짜 열 받을 거 같으니까… 뭐, 찾아가는 건 추천 못 하겠다.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
“새벽 3시 이럴 때 구구절절 연락하고 그러지도 말고. ……후우, 사실 넌 지금 뭘 해도 열 받는 새끼일 거긴 해. 어떻게 해도 욕은 먹어.”
“…욕먹는 건 상관없어….”
……와.
진-짜 누군지 궁금하다.
고진영은 축 처진 채로 흘러나온 동생의 말에 저도 모르게 커어, 하고 흘러나올 뻔한 소리를 간신히 삼켰다.
한편, 고신재는 그 명쾌한 대답 덕분에 머릿속이 꽤 복잡해졌다.
매일매일 사과하고 또 하는 건 어려울 것 하나 없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제 백한빈이 그렇게나 좋아해 줬던 제 목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게 되었을 걸 생각하니 솔직히 제게 남은 게 뭐가 있나 싶어진다.
목소리도 듣기 싫은데 얼굴은 더 보기 싫을 거고.
찾아갔다가 또 그렇게 숨도 못 쉬고 파랗게 변해서 쓰러지면…….
고신재는 저도 모르게 상상한 끔찍한 가정에 까슬하게 일어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살며 단 한 번도 이렇게 자신감 없는 생각을 할 일 없던 고신재는, 병실에서 넘실대는 울음을 꾹꾹 참으며 소리치던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금 비참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퍼뜩 떠오르는 물음도 하나 있었다.
“……형.”
“어, 어어?”
“그런데 여기, 박 비서님도 오고 그랬어? 사람 없을 때.”
“박 비서님? 어차피 도우미님 오시는데 박 비서님이 올 일이 뭐가 있어. 박 비서님 바빠, 되게.”
고신재도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그에게 ‘박종우 비서’란, 제 생활 전반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직접 얼굴을 자주 볼 일은 없는 휴대폰 너머의 남자였다.
제가 무언가를 요청해도 진짜 움직이는 건 그 아래의 다른 직원들이었고, 박 비서는 어머니의 수족처럼 움직이며 저와 본가를 연결하는 소통 창구에 가까운 남자였다.
고신재가 조용히 미간을 좁히고 있자 옆에서 의아한 물음이 이어졌다.
“갑자기 그건 왜?”
“…걔가…, 박 비서님을 알길래.”
“그건 좀 신기하네. 그런데, 뭐. 알면 안 돼?”
“……형이 본 그 택배, 박 비서님 이름이랑 주소로 받았어. 이름 박종우인 척하고.”
“와…. 너는 진짜 무덤 하나 파는 거로는 모자랐나 보다?”
고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찌나 울었는지 아직도 눈가가 뜨끈뜨끈했다.
‘걔’.
그건 늘 백한빈이 짝사랑 상대를 지칭하던 단어였는데, 이제 고신재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됐다.
나를 좋아할 일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막막한 기분이 이런 것일지 몰랐다.
이 막막함을 안고, 백한빈이 온라인 속 ‘가나’를 좋아했을 것을 생각하니 대체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더욱 뼈아프게 실감 났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워지기만 했다.
……이 짝사랑이 어떻게 될지.
“…걔가 나 진짜 다시 안 봐주면, 이제 어떡하지….”
“…….”
얼굴을 가린 고신재에게서는 낮게 앓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제아무리 술술 답을 내어줬을지라도 저 낮은 중얼거림만큼은 방법이 없던 진영은, 그 역시도 왠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추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작품후기]
안녕하세요. 오늘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 주신 코멘트도 모두 기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추천도 감사드려요!! 아, 'ㄷㅈㄱ'님, 후원쿠폰 역시 감사드립니다!!
정말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갑작스러운 눈으로 도로가 눈으로 잔뜩 덮였는데요.
다들 내일 하루 날씨로 곤혹스러운 일이 없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어요. ㅠ ㅠ
피곤한 하루 중에 보러 와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