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 힐, 힐!-44화 (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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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재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내뱉었다.

사실 그 역시도 나름대로 며칠 전부터 나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한빈이 개강 첫날 술에 취해 쏟아냈던 문장들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가나다라123’은 5년을 알고 지냈어도 걔에 대해 아는 거 하나 없고 물어보면 싫어한다며 속상해했지만 현실의 저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정작 때가 닥치자 침묵이 익숙한 입이 자꾸 다물어지는 건 왜일까.

고신재는 백한빈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작게 숨을 들이켰다가 제 어머니에게도 단 한 번 한 적 없는 어리광을 부리듯 입을 열었다.

“한빈아. 나 네 옆에 가서 앉아도 돼?”

“……여기서?”

“그냥 옆에 가서 앉기만 할 게.”

잠깐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한빈은, 함께 볼 게 있다는 것처럼 노트북을 테이블 가운데로 옮겼다.

솔직히 고신재는 그래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이상한 영화를 함께 보는 것처럼 말을 나누면 될 테니.

게다가, 마른 어깨의 온기가 맞닿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니 기분도 좀 괜찮아졌다.

노트북 바탕화면은 아마도 백한빈이 직접 찍은 사진 같았다.

고신재는 그걸 빤히 눈에 담으면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꽤 이상한 이야기일 거야.”

“뭔데.”

“…….”

“들어나 보자고. 뭔데.”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고신재의 머리로는 순간 지금의 평화가 어그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작은 속삭임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걸 평화라고 표현하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지 모를 정도로 뻔뻔하지 않았던 탓이다.

최소한, 그에게 이건 온라인 속 ‘가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첫발이었다.

느릿느릿 말을 잇는 고신재의 목소리는 딱 백한빈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스물한 살 땐가. 집에서, 어떤 여자애를 만나게 했어.”

“…….”

“뭐. 평범했지. 밥 먹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쇼핑도 좀 했나.”

노트북 화면은 어느새 천천히 어두워지더니 그 화면 앞의 두 사람의 모습을 천천히 반사하기 시작했다.

13인치의 까만 화면 안에서 고신재는 정면을 보고 있고 백한빈은 그런 고신재를 곁눈질하는 채다. 신재는 저를 보는 한빈의 마른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말을 이어갔다.

“보통은 그 정도였어. 우리 엄마는 종종 나를 그렇게 자랑하는 걸 좋아했거든. 무용하는 건 싫어해도 그것 덕분에 보기 좋게 된 건 마음에 들어 했어. 갤러리에 있는 건 직접 와야 볼 수 있지만 나는 다르잖아. 말하고, 걷고, 움직이고.”

사실 백한빈은 이쯤에서부터 벌써 고신재 그가 말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것에 어느정도 동의했다. 고신재가 그 자신을 묘사하는 표현 모두가 하나같이 지독할 만큼 건조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 그 위화감은 곧이어 이어진 평이한 문장 앞에서 모두 머릿 속에서 증발했다.

“그런데 그 날 만난 애는 헤어질 때쯤 그러는 거야. 갑자기 너무 어지럽다고.”

“……뭐?”

“너무 어지러워서, 어디서든 좀 쉬고 갔으면 좋겠대.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애 맞은편으로 하필 걔 친가 삼촌인가가 사장으로 있는 호텔이 보여. 한빈이 너는 이걸 뭐라고 해석해?”

백한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덧 완전히 까맣게 꺼진 모니터 위로 거울처럼 비친 찡그린 표정은 그 어떤 문장보다 확실한 답이었다.

덕분에 고개를 돌려 백한빈을 마주 보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고신재는 모니터에 비친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조금은 찡그리듯 웃었다.

“바로 알아듣네?”

“…아니, 야. 대체….”

“-그런데 난 그때, 지금 당사자도 아닌 너조차도 바로 알아듣는 그걸, 바로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못했어. 연기하는 애라고 하더니, 진짜 연기 하나는 탁월했거든.”

“…….”

“굳이 변명하자면 밖에서는 걸을 때도 붙어 걷지도 않을 정도로 거리 두고 말도 엄청 작게 하면서 입 가리고 웃던 작은 애였다고. 내 어깨에나 올까 싶던 애가 얼굴색까지 진짜로 창백한데 누가 처음 만난 날에 호텔 가서 뒹굴자는 소리를 하는 건 줄 알았나.”

그래서 그 여자애 얘기는 왜 이렇게 길어지는데.

한빈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문장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저 역시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남자처럼 모니터를 통해 얼굴을 봤다.

그러자 고신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겠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안 했어. 걔 호텔에 혼자 남겨두고 곧바로 다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왜, 하지 그랬냐.”

“나 게이라니까?”

“아.”

입문 게이보다 더더욱 진심이 된 한때 짝퉁 게이 고신재의 뻔뻔한 말에 조금 입술을 삐죽이던 백한빈의 표정이 꽤 숙연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고신재의 목소리는 덕분에 더욱 가벼워졌다.

물론,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뒤로 쫙 소문이 났더라고.”

“무슨 소문.”

“아토 화랑 강서진 대표가 그렇게나 으스대던 둘째 아들한테 하자가 있다느니,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본 숙맥이라느니 하는 소문?”

스물다섯에 옆자리의 남자와 첫 키스와 첫 섹스를 모두 처음 한 백한빈은 솔직히 그 말에 조금은 억울해졌다.

고신재 쟤는 대체 어떤 발랑 까진 세상에서 살고 있나 싶기도 하고, 더 솔직히 말하면 ‘몸소 겪어본 입장’이라 더 기가 차다.

누가 하자가 있어. 누가 숙맥이야, 쟤가?

나직하게 말하는 고신재를 따라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백한빈은, 잠시 제가 어디에 있다는 것도 잊고 뾰족하니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 그때가 몇 살이었다고?”

“스물한 살.”

“스물한 살에 뭐 얼마나 대단해야 하는데!”

“보통은 그런 거야?”

“아, 씨. 당연하지! …진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누가 하자가 있어, 누가!”

“그렇지. 어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고신재는 당사자인 저보다도 더 씩씩대고 날뛰는 백한빈의 말을 꼭 달래듯이 반복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당사자인 저보다도 더 씩씩대고 분해하는 걸 본다는 건, 한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덕분에 조금 용기가 나기도 했고 말이다.

고신재는 잠시 짧게 숨을 삼킨 다음 그걸 내놓는 문장에 섞어 토해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게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나 봐.”

“아, 당연히 그러시겠지! 자기 아들 욕하는 거 듣고 화 안 날 엄마가 어딨냐?”

“……맞아. 확실히, 화가 나셨지. 그래서인지 어느 날은 대학 간 이후로 한 번도 안 부르던 날 집에 부르기까지 하셨으니까.”

고신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던 순간의 기억을 다른 곳도 아니고 카페에서, 옆에는 갓 사귀기 시작한 남자를 곁에 두고 술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내심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백한빈의 저 순진하다 못해 천진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 얼마 안 가 어떻게 바뀔지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러고는 지하에 있는 손님 방에 들어가라고 하더라.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나랑 눈도 안 마주쳤어. 나 때문에 망신 샀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에이. 그게 어떻게 너 때문이야! 그리고 망신은 무슨….”

“-그리고, 거기에는 가운을 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고신재는 어느 순간부터 말 한마디, 숨 한 모금조차도 아깝다는 듯 귀 기울여 경청하던 백한빈의 말을 드물게도 잘라 끊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말을 멈추면 새로운 거짓말을 더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기어이 내뱉고 만 최초의 고백은 생각보다 꽤 담담한 척 흘러나왔다.

“그 사람들은 나한테 꾸벅 인사하더니 보란 듯이 하기 시작했어.”

사실은 심장은 크게 덜컹거리고 손도 조금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래도 그걸 들키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빈은 그 담담한 문장을 이해했지만, 또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몇 초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한빈이 바로 옆에서 휙 바람 소리가 날 것만 같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 곧장 물었으니 말이다.

“뭘?”

“그 두 사람이.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는 남자랑, 여자가 했다고.”

“……네 앞에서?”

“응.”

“너 보는 앞에서?”

“응.”

“너네 엄마가 불러서 집에 갔더니?”

액정이 꺼진 노트북 모니터에 비친 얼굴로나마 백한빈을 마주 보던 고신재의 시선이 처음으로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

한빈은 그 침묵 앞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을 막지도, 감추지도 못하고 있다가 삐끗하니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왜…, 왜애?!”

“어디 가서 처음인 것처럼 서투르게 굴지 말라고.두 번 다시 하자 있다는 소리 돌아다니는 거 용납 못 한다니까 처신 제대로 하라고. 어디 가서 순진한 척하면 강서진 대표 둘째 아들 아다 떼어먹었다고 웃음거리나 된다고.”

“…….”

“잘난 척, 하려면 제대로 하라면서.”

낯선 이들의 관계를 지켜봐야 했던 순간보다도 고신재를 더 치욕스럽고 또 수치스럽게 했던 건, 제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막말로 저를 지우고도 남았을 사람이니까.

혹 시기를 놓쳐 낳고 나서라도 백번이고 천 번이고 버리고 말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든 그래도 나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기대 따위가 남아서.

그래서 고신재는 제가 더 열심히 하면 아주 먼 미래라도 좋으니 그저 보기 좋은 볼거리따위가 아니라 이 대단한 집안의 일부가, 정확히는 저 역시도 고씨 성을 가진 일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굴욕적인 기대와 구걸을 품었었다.

그날, 그 순간 전까지 마음속 깊은 곳 어디엔가- 저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하게 몰래 말이다.

백한빈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지도, 하다못해 고작 노트북 모니터 화면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의 헛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을 어떻게 한 건지 열리지도 않고, 당신들 미친 거 아니냐고 욕을 해도 잘만 세우고 또 잘만 소리 지르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해.”

“…와….”

“뭐. 그래도 그 짓을 하는 걸 매 주 한 번씩은 봤더니 군대 가기 전까지 봤더니, 그래도 나중에 입대할 때 되레 엄청 기분 좋았으니까. 완전히 최악은 아니었어.”

“야, 고신재!”

듣는 백한빈에게는 전혀 위로 되지 않는 덧붙임에 결국 한빈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커졌다.

고신재는 그제야 나란히 앉은 이후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제 옆자리에서 하얗고 마른 목에 퍼런 핏대가 설 만큼 굳어있는 백한빈을 눈에 담았다.

한편 백한빈은 제가 기세 좋게 소리친 것과는 달리 저만치에 앉은 사람들의 눈이 이쪽으로 쏠린 걸 깨닫고 울컥함이 뚝뚝 묻어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이를 악문 다음, 잇새로 나오는 문장처럼 작게 말을 이었다.

“-신재, 너 집에서 엄청 구박받아? 막 생활비도 없고 그래?!”

“……그래 보여?”

솔직히 욱해서 꺼내놓고도 그건 아닌 것 같긴 했다.

하지만 한빈은 저를 보며 어울리지도 않게 조금 힘없이 웃는 고신재를 보며 되레 속에서 불이 났다.

백한빈은 며칠 전 저를 품에 안은 고신재의 심장이 얼마나 요란하게 뛰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그 단단한 가슴 위에 손을 올리자 밑에서 저보다도 더 크게 박동치는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아무리 여유로운 척, 느긋한 척 굴어도 속으로는 얼마나 심장이 뛰고 있는지 손가락이 저릴 만큼 선명하게 전해져서 제 입이 다 마를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속으로는 시끄럽게 떨면서도 겉으로는 느긋하고 익숙해 보였던 모든 것들이 그 대단한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억지로 익혀진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뒤통수가 뻐근해진다.

아무리 대단한 집구석이라고 해도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제가 함께한 고신재는, 저 잘난 새끼는, 손꼽는 부잣집에서 버릇없을 만큼 고이고이 자라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지냈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돌아버린 집안 교육인지!

한빈은 입을 열면 얼굴도 모르는 남의 가족에 대한 심한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뭐라 대답도 못 하고 열이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심호흡만 했다.

한편 저를 대신해서 화를 내는 마르고 창백한 남자의 이목구비를 조금은 얼떨떨하기까지 한 눈으로 뜯어보던 고신재는, 백한빈의 궁금증을 풀어줄 설명을 느릿느릿 덧붙였다.

“그런 쪽으로는 전혀 걱정 안 해도 돼. 오히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이름으로 등기부터 쳤으니까.”

“……등기?”

“엄마가 외삼촌이랑 원수지간이라, 외삼촌 아들딸들이 상속받는 건 죽어도 못 보셨거든. 외할아버지 옆에서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죄다 빼앗아다 나랑 형 이름으로 올렸어. …뭐, 덕분에 매해 재산세로만 제법 나가고.”

‘절대 이 담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지 마라’.

고신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저를 가르쳤던 가정교사에게 그 말을 몇 번이고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이날, 이때까지는 그 말을 제법 잘 지켰다.

흠잡을 데 없는 집안의 구성 중 하나로 꽤 괜찮은 얼굴을 하고서 속없이 웃으면서, 저도 정말 그곳의 일원인 양 그럴듯한 흉내를 내며 살았다.

아홉 살에 친구들의 스케치북을 몰래 훔쳐봤던 그 날 제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이상하다는 걸 처음 알았고, 스무 살에는 그 세상마저 무너져 검디검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는 발조차 닿지 않는 곳에서 웃는 얼굴로 쉼 없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태엽 인형이 된 양 허우적대는 게 고신재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입을 열어 그 높다란 담 안의 이야기를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왠지 몇 년간 단 한 번도 바닥에 닿은 적 없는 발끝에 무언가 닿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뭐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너도 한밑천 미리 챙겼단 소리잖아.”

“…….”

“너한테 계속 좆같이 굴면 연 딱 끊어버려! 먹튀라고 욕하든 말든, 줬다 뺐을 수는 없잖아! 고신재 네가 꿀릴 게 뭐가 있어? 아니다, 씨이, 신재 네가 오히려 거기 있는 거 더 긁어 나올 수는 없어?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하게!”

“…….”

……연을 끊어?

꿀릴 게 없어?

내가 그 집안의 것들을 가지고 나와서 후회하게 해?

고신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린 적 없었던, 아니 정확히는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문장의 연속에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고 낮고 쉰 목소리로 그르렁대듯 말을 쏟아내는 제 연인인 남자의 예민한 얼굴을 멍하게 눈에 담았다.

한빈은 그 보기 드문 얼빠진 얼굴에 속이 더 탄다는 듯 얼마 남지 않은 음료를 빨대도 마다하고 컵 채로 들어 꿀꺽꿀꺽 털어 넣고는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말을 이었다.

“신재 너 이렇게 보니 되게 잘 자랐네. 환경에 비해 애가 참 건강하게 잘 컸어.”

“…이상하지는…, 않아?”

“뭐가 이상해. 하나도 안 이상해! 누가 이상하대! …야, 고신재 넌 성격만 좀 특이한 거지, 안 이상해. 애가 착해! 씨이…. 야! 그냥 저녁 오늘 나랑 먹어! 내가 살 게, 맛있는 거 먹자!”

“…….”

“아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땐 매운 거 먹어야 돼 이럴 땐. 아 진짜 저혈압 치료 미쳤네.”

사실 그 순간 고신재는 갈라지기까지 한 목소리로 저 대신 펄펄 날뛰는 백한빈에게 “스트레스 받게 해서 미안.”, 하고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과는커녕 물을 흠뻑 머금은 스펀지가 목을 막은 양 짧은 대답조차 잘 나오지 않아서, 고신재는 옅게 떨리는 한숨을 간신히 삼키며 뒤늦게 눈을 몇 번이나 깜박였다.

“왜. 저녁 먹을 거지? 괜찮지?”

고신재는 노트북을 탁 덮으며 저를 바라보는 연인이 제 한심한 일렁임을 눈치챌까 싶어 답지도 않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지만 눈치 빠른 백한빈은 그 동요를 이미 진작에 눈치챈 게 분명했다.

마르고 또 조금은 서늘한 손가락이 테이블 아래로 옅게 떨리는 남자의 커다란 손등 위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세게 덮어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작품후기]

흐름상 다음 편까지 가지고 와야 자연스러워서 오늘 두편 올리려고 했는데 묘하게 길어져서 ㅠ ㅠ... 텀이 길어지는 것 같아 결국 한 편 먼저 가지고 왔어요.

다음 편은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오겠습니다!!

곧 이번 챕터도 끝나겠네요!

항상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요새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따뜻하고 포근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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