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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재는 학교에서만큼은 꽤 점잖았다.
물론 소모임실에서 몰래 한 키스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부드럽고, 작은 아랫입술을 통통하게 부어오르게 할 정도로 수차례 이어진 입맞춤이기는 했다.
또, 쉬는 시간 없이 1시간 반을 연강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교수의 교양 강의 내내 본인이 왼손잡이인 장점을 한껏 이용하며 펜을 쥐지 않은 백한빈의 다른 손을 살살 만지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럼에도 고신재에게 ‘꽤 점잖았다’, 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정말로 캠퍼스 내에서는 딱 몇 cm만 더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손목 안쪽의 부드러운 피부를 훔치지도, 책상 아래에서 긴장한 채 꽉 오므라진 허벅지를 쓸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교양 끝나고, 학교가 아니면’.
하룻밤의 실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날 이후 백한빈이 근처를 오는 것조차 꺼렸던 높다란 주상복합 건물의 27층은 고신재 그가 내걸었던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부터 습관적인 미소나 다정한 목소리까지 싹 사라진 채 저보다 작고 또 가느다란 남자를 삼킬듯한 눈으로 내려보고 있던 남자는, 제 공간으로 백한빈이 들어오자마자 마른 허리를 곧장 제 품에 가두었다.
“-응….”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한빈의 고개를 잡아 올려 곧장 입을 맞추자 한빈의 입에서는 놀란 듯한 소리가 뭉그러진 채 흘러나왔다.
키스를 잘 하는지, 혹은 못 하는지.
사실 백한빈은 그런 걸 따지기에 조금 민망한 상대다.
술김에 했던 첫 키스 때는 숨이 부족해서인지 저절로 벌어지기라도 했던 입은 조금만 긴장해도 곧장 다물어지고, 설령 작은 입을 열고 혀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상대의 혀끝을 간지럽힌다거나 입술을 깨물고 빨아들이는 여유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고신재는 백한빈이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얼마나 제게 모든 것을 맡기든 상관없었다.
“
시, 신재야, 잠깐…, 하아, 잠깐만….”
사실 고신재 그에게 성욕은 살면서 몇 번 거슬린 적 없는 담백한 것이다가 어느 기점으로는 삶의 욕구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나뒹굴게 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앓는듯한 더운 목소리 앞에 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이 숨을 할딱이는 목소리 하나면 언젠가 봤던 근미래 세계관의 영화에서 목소리만 있는 인공지능 상대와 폰섹스를 하던 주인공의 심정을 알겠다.
어떻게 목소리만 아는 상대에게 반할 수 있냐고 한빈에게 물어볼 때가 아니다.
단추 하나 풀지 않고 있는데도 저 쉰 목소리만으로도 아랫배가 뻣뻣하게 땅기고 입이 마른다. 지금은 이렇게 헐떡일 때 반응한다지만,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다는 암담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고신재는 자신의 품에서 숨을 고르는 남자의 체온에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 긴장에 신경이 확 곤두서는 걸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천천히 해?”
“그…, 맞아. 그것도 그런데…. 후우. 아니, 나 진짜 여기까지 와서 빼려는 건 아니거든? 근데….”
“뭔데 뜸을 들여.”
“……혹시 집에 또 술 있냐?”
제 품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못 박는 쉰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백한빈이 바라는 건 정말로 뭐든 해 줄 작정이었던 고신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라 감히 확신하고 시작도 전에 밀어낼 생각부터 했던 몇 달 전의 저 자신을 떠올리면, 지금 고신재 그가 백한빈에게 못 해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이건 좀 여러 의미로 사람을 심란하게 한다.
혹시라도 들끓는 마음을 들켜서 한빈이 놀라기라도 할까 봐 애써 다정한 가죽을 뒤집어쓴 채 말을 잇던 고신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조금 좁히기까지 한 채로 되물었다.
“뭐?”
“뭐든 몇 모금만 마시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 물론 안 취할 만큼만.”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제가 그리 좋아하지 않을 말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 것 같은데.
고신재는 순간 정말 못나게도 삐죽 머리를 드는 열등감과 비슷한 색의 감정에 한숨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열등감이라는 감정 자체도 익숙하지 않건만, 그게 저 스스로를 향한 것임은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신재는 저를 올려다보는 남자가 이 한심한 속을 알아챌까 싶어 저도 모르게 찌푸린 인상을 얼른 펴고는 느긋한 척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또 누구랑 해보고 싶으신가?”
“야.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그게 아니면 술은 또 왜 찾는데. 나랑은 맨정신으로 못 하겠어?”
“진짜 그런 뜻 아니야. 정 그러면 너만 마셔도 돼. …아무래도 많이 깰 거라서 그래.”
또 가나다라123과 하고 싶냐는 말에 펄쩍 뛰며 곧장 부정해준 것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백한빈은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다.
저만 술을 마셔도 된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다.
“깨?”
“맨정신으로… 보면?”
“뭘.”
고신재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작은 입을 몇 번이나 달싹이던 한빈은 여전히 눈치를 보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몸, 이라거나…. 뭐. 그런 거….”
솔직히 고신재는 백한빈이 웅얼대듯 중얼거린 문장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일부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며 되물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여전히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인 한빈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던 저 이유가 정말 진심인 듯했다.
고신재는 저를 말 한마디로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신기한 상상 앞에서 잠시 한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빈아.”
“어, 어어?”
“내가 여기 올라오는 내내 한 생각을 말해줄까.”
여전히 긴장이 엿보이는 까만 눈동자에 스며든 궁금함은 참 풋풋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고신재가 백한빈의 각성을 위해 아주 조금만 내보일 그의 머릿속은 그 순진한 호기심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영역에 있었다.
“‘백한빈 오늘 참 단추 많은 옷 골라 입었네’.”
“…뭐?”
“집에 가자마자 저 단추부터 풀어야겠다. 여름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티셔츠 입고 다니면 그 안에 머리 처박고 빨기 좋을 텐데.”
끝이 발갛게 물든 뾰족한 눈을 가늘게 뜨며 뭐라 볼멘소리를 하려던 한빈은, 줄줄 이어지는 노골적인 문장 앞에서 저도 모르게 도로 다물어졌다.
애초에 괘씸한 도입부가 그나마 귀여운 편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저번에는 젖꼭지 깨물 때마다 다리로 허리 감고는 좋아 죽던데, 오늘은 깨물지 말고 살살 달래고 핥아볼까. 그러면 빨아달라고 조르려나.”
“…….”
“아, 그래. 또 오늘은, 처음엔 뒤로 말고 다리 벌려서 얼굴 보면서 박아야지. 넣을 때 표정 보고 싶으니까. 그땐 정말 참는 게 힘들 정도로 엄청 조였는데. 오늘은 콘돔 꼭 써야지. 안에 넣은 채로 싸고 싶으니까. -아니다. 집에 데려가자마자 현관에서부터 키스하고 선 채로 박을까.”
“…….”
“백한빈 성격에 문에 기대서 하면 소리 안 내려고 엄청 끙끙댈 텐데. 그것도 못 참게 푹푹 찔러대면 시작부터 엉엉 울지 않을까. 저 목소리로 울면 어쨌거나 엄청 야하기는 할 텐데….”
“……야!”
어떻게 그리 감췄는지 신기할 정도의 진득한 문장이 멈춘 건 갈수록 목덜미가 벌겋게 익던 백한빈이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지르고 나서였다.
거의 희롱에 가까운 음담패설 앞에서 한빈의 뾰족한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욱 사나워졌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 앞에서 움츠러들기는커녕 제 품에 안긴 뼈대가 가는 허리를 더욱 가까이 고쳐 안은 다음, 얄미울 만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래도 내가 맨정신으로는 너랑 못 할 것 같아, 백한빈?”
답을 다 알려준 다음 힘주어 묻는 시험의 의도는 단 하나다.
이번에야말로 빠져나갈 구석 따위 없게 하겠다는 거다.
한빈은 엉겁결에 짚은 단단한 어깨를 괜히 힘주어 움켜쥔 다음, 긍정이나 부정 대신 지금 머릿속을 가장 분명하게 채운 문장을 더듬더듬 끄집어냈다.
“여, 여기서 하는 건… 싫어.”
“밖에 소리 들릴까 봐?”
대답 대신 가슴팍을 때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신재는 얇은 셔츠 한 장 너머로 곧장 전해진 따끔한 감각에 찌푸리듯 웃었다.
현관은 싫다, 그렇다면 제게 두 번째 선택권쯤은 있을 터였다. 어쨌거나 오늘은 2순위 애인이 된 지 1일이니 말이다.
고신재는 읏차, 하고 마른 몸을 제 팔에 앉힌 자세로 안아 들고는 곧장 망설임도 없이 발을 옮겼다. 따뜻한 팔이 순간 놀라 목을 세게 끌어안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백한빈은 제가 남자의 품에 안겨 도착한 장소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팔뚝 위로 쫙 소름이 돋았다.
한빈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툭 입을 열었다.
“내려줘.”
“둘이서 하고도 남잖아?”
“그, 그래도 혼자 할래!”
“미안하지만 백한빈 넌 자기객관화를 잘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번 요청은 못 들어주겠는데.”
유리 부스와 큼지막한 욕조가 따로 분리된 짙은 회색조의 욕실은 이전 방문에도 사용한 적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방문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첫 방문에는 화장실을 쓰는 용도였고, 지금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게 주 용도다. 그 두 상황 사이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욕구를 해결하기 위함뿐이다.
고신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 유리벽에 등이 닿은 백한빈의 셔츠 단추를 풀면서 긴장한 목덜미에 쪽쪽 입술을 떨어트렸다.
“단추도 뭐 이리 작은지 모르겠네.”
“시, 시끄러!”
“한빈이 넌 내 옷 안 벗겨줘?”
“…….”
나긋나긋하게 흘러나온 문장을 시끄럽다고 타박한 건 백한빈인데, 곧장 조용해진 것도 백한빈이었다.
고신재는 제 말에 그렇지않아도 어정쩡하게 갈 곳을 잃었던 마른 팔이 곧장 석상처럼 굳은 걸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애초에 맨살이 스치고 닿는 감촉만으로도 어찌할 바 모르며 어깨를 움츠리고 날카로운 숨을 들이켜는 몸을 옷을 벗긴다는 핑계로 맘껏 훑을 수 있는 것부터 다시 없는 특혜였으니 투정할 생각은 없었다.
“…흐…!”
고신재는 백한빈이 예상하지 못하는 순서대로 긴장으로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마른 몸의 옷을 벗겨냈다.
유독 단추가 많은 셔츠, 움츠러드는 다리에 걸려 쉽게 내려가지 않는 청바지, 그다음은 안에 챙겨 입은 반팔 티.
물론 그것들을 벗기면서 한빈이 감히 손가락 하나 못 대는 제 옷도 하나씩 직접 벗은 건 물론이었다.
고신재는 짙은 회색 드로즈 하나만 남기고 제 팔뚝이나 될까 싶은 마른 다리를 움츠리는 백한빈을 보며 야살스레 눈웃음쳤다.
“벌써 좀 섰어? 하여간 밝히기는.”
“…완전 어이없어! 누가 할 소리를!”
“봐. 너 여기 앞에 좀 젖은 것 같은데.”
“고신재 너도 조, 좀 섰잖아!”
“아니지. 난 원래 큰 거고.”
시답잖은 농담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이 별거 아닌 대화에 어깨가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움츠러들었던 한빈의 앙상한 어깨가 간신히 좀 펴졌다는 거다.
고신재는 샤워부스로 따뜻한 물이 봄비보다도 더욱 가볍게 쏟아지게 한 채로 가벼운 장난기로 움직이는 것처럼 천천히, 슬슬 피가 몰리기 시작한 한빈의 중심을 가린 천 조각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손바닥만 한 속옷은 이 마른 몸에서 그나마 살이 붙은 엉덩이 아래로 벗겨내고 나자 뜨뜻미지근한 물기와 함께 늘씬한 다리를 타고 쉽게 흘러내려서 벗기는 데 그리 품이 들지 않았다.
“-하아, 흐….”
뼈대가 가늘고 마르면 왠지 크기도 작을 것 같다는 흔한 생각과는 달리 못해도 평균은 되는 백한빈의 성기는, 얄궂을 만큼 커다란 남자의 손안에서는 딱 장난스레 잡아 흔들기 좋은 크기가 됐다.
“…으, 아, 앞에, 그러지 마….”
“좋아하면서.”
“아니, 아, 흣!”
살면서 샤워부스가 섹스에 적합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던 고신재는, 완전히 서기 전에는 조금 말랑말랑한 편인 백한빈의 성기와 제 것을 함께 쥐고 앞뒤로 흔들고 귀두의 갈라진 부분을 문지르면서 이 네모난 공간이 주는 폐쇄성에 퍽 만족 했다.
그러나 살며 단 한 번도 민감한 부분의 쾌락을 다른 이의 손에 맡겨본 적 없는 백한빈은 좀 사정이 달랐다.
단단하고 따뜻한 기둥에 꾹꾹 짓눌리는 낯선 감각 앞에서 꼭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한빈은, 옅은 전기가 통하듯 움찔거리는 허벅지 사이의 것을 멋대로 만지는 남자의 손등 위를 제 손으로 덮으며 어깨를 달달 떨었다.
물론 그 정도로는 제 손보다 훨씬 더 커다란 남자의 손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른침이 꼴깍 삼켜지는 검붉고 커다란 기둥도 다 가려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짓 몇 번에 수치도 모르고 부푸는 제 중심에 고신재의 시선이 끈질기게 닿는 게 창피해 죽을 것만 같았다.
“…쪽팔려….”
“벌써 그러면 안 될 텐데. 아, 안경 벗자.”
더운물이 주는 습기와 얼마쯤 튄 물에 렌즈가 뿌옇게 변한 안경을 마지막으로 대신 벗겨주는 고신재의 손은 뭇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사실 백한빈은 차라리 제 시야를 온전히, 또 합법적으로 가려주는 그걸 차라리 계속 끼고 있고 싶었더랬다.
“-아, 흐으으!”
성기를 잡고 흔들지 않는 다른 손으로 작은 엉덩이를 잡아 벌리자 그 은밀한 골 사이로 따뜻한 물줄기가 곧장 부딪치고 또 타고 흘렀다.
한빈은 그 간지럽고 또 수치스러운 감각에 저도 모르게 뾰족한 목소리를 냈다가 가까스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무엇에 반응하는지 이미 들킨 후라, 그 반항 아닌 반항은 고신재의 집요함을 더욱 부추겼을 뿐이다.
“힉, 흐으, …야, 잠깐, 읏!”
긴장으로 꽉 다물어진 입구를 원을 그리듯 굴리고 좁은 틈새를 장난치듯 꾹 누르자 한빈은 제 허리를 꽉 끌어안은 남자의 품에서 벌벌 떨면서 손조차 가만히 두지 못했다.
고신재의 어깨를 짚었다가, 팔뚝을 움켜쥐었다가, 또 자꾸 한심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가 하며 자꾸 움찔대는 몸에서는 불안이 뚝뚝 넘쳐흘렀다.
혹여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기라도 할까, 갓 친구에서 연인이 된 남자의 마른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고신재의 입이 천천히 열린 건 그때였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엄청 떠네.”
“안, -흐으, 안, 떨거든!”
“…….”
아직까지 고집스러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좋게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걱정스럽게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신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고민을 차치하고서라도 고신재는 이제야 잠자리에서의 백한빈을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섹스할 때 투정도 곧잘 하고 제법 적극적이기까지 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모두 다 꿈이라서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백한빈 역시 백한빈이 아니라 온라인 속 ‘하마’였기에 가능한 것도 있었다는 거다.
고신재는 제 중심과 함께 맞잡고 앞뒤로 흔들던 것을 놓아두고 딱딱하게 얼어붙은 몸을 더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러자 뼈대가 그대로 짚이는 백한빈의 배에 반쯤 단단해진 기둥이 꽉 맞닿으며 꼭 조여지는 듯한 모습이 됐다.
한빈은 노골적으로 닿는 감촉에 그렇지 않아도 긴장으로 얼어붙은 몸을 더욱 굳히며 배가 쑥 들어가게끔 힘을 줬다.
“-흐…….”
“많이 무서우면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되니까, 솔직히만 말해.”
따뜻한 물줄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섞여 들린 문장에 내내 고신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던 백한빈이 처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쳤다.
솔직히 고신재는 그 순간에야 온라인 속의 ‘가나와 하마’가 아니라 고신재와 백한빈으로 처음, 제대로 마주 보는 실감이 났다.
“…무서운 게 아니라…, 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플까 봐?”
“……그것도 있고.”
“다른 게 더 있어?”
품 안에서 망설이며 바르작대는 몸의 감촉이 저와 비교할 수 없이 가늘고 연약한 뼈대 위에 아주 부드럽고 귀한 얇은 가죽을 덧대 만든 인형 같아서, 고신재는 그 위를 제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쓸면서 달래듯 이어 물었다.
하지만 한빈은 그 부드러운 질문에도 곧장 입을 열지 못하고 한동안 따뜻한 물을 가만히 맞으며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댔다.
고신재는 그런 한빈을 재촉하는 것 대신 인내심 좋게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발갛게 물든 얼굴의 예민한 선을 따라 입술을 떨어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뱃가죽에 닿은 단단한 기둥의 감촉에 긴장한 채던 한빈은, 간지럽게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허둥지둥 작은 입을 우물거렸다.
“…그, 그게….”
“응.”
“그, 있잖아. 그게, 진짜……,”
“진짜?”
“…지, 진짜로, 들어…, 가?”
턱 끝에서 귓가로, 그리고 막 가느다란 목으로 입술을 움직이던 고신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마쳐진 질문을 머릿속으로 재조합했다.
‘그게, 진짜로, 들어 가?’
솔직히 그 문장이 완성된 순간 고신재는 백한빈이 저를 얼마나 긴장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터질뻔했다.
하지만 여기서 웃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를 정도로 정신을 놓진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빼진 않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호기 좋게 말해놓고서 묻는 게 저런 거라니. 정말 귀여워 죽을 것 같지만 그 얘기를 지금 하면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콤플렉스에 옷을 벗고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백한빈에게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지도 않다.
고신재는 발갛게 익은 말랑말랑한 귓불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한 번 깨문 다음, 제 첫 섹스 상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담을 친절히 전해주었다.
“뿌리 끝까지. 전부 다. 어쨌거나 해 봤잖아, 우리?”
힉, 하고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고신재는 물에 젖은 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 나긋하고 단정한 이목구비와는 딴판인 질 낮은 농담 같은 문장을 이어갔다.
“한빈이 너는 이쪽, 아랫배 쪽에 살도 없고 피부도 얇아서 끝까지 처박으면 조금은 불룩해질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사, 사람 몸이 어떻게 그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아무리 뼈만 있대도, 야, 놀려도 정도가 있지, 씨이….”
“놀리는 거 같아?”
고신재는 시선을 내리깐 채로 바들바들 떨리는 뾰족한 눈꼬리를 감상이라도 하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좀 더 정확히는 떨리는 눈꼬리에서 뻣뻣하게 굳는 목과 움츠러든 쇄골로, 어깨로, 긴장으로 뾰족하게 선 연한 갈색의 유두와 시선만으로도 훤히 짚이는 뼈대 하나하나로 집요하리만치 느릿느릿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건, 꽤 단단해진 제 커다란 성기가 닿아있는 백한빈의 푹 꺼진 마른 배였다.
갓 연인이 된 남자의 시선이 끈질기게 고정된 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한빈의 허벅지가 저절로 작게 튀었다.
여전히 엉덩이골 사이의 작은 입구를 단단하고 섬세한 손가락이 만지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간지러움이 뱃속부터 번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가장 속을 근질거리게 하는 건, 살짝 처진 눈을 반달로 만들어 예쁜 눈웃음을 치는 남자의 뜻 모를 말이었다.
“뭐. 마침 환경도 갖춰졌겠다. 이참에 자기객관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백한빈은 그 의미심장한 문장의 뜻을 곧장 물어봤어야만 했다.
하필 그 순간 저와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된 남자의 가슴 위로 제가 손을 대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지만 않았어도, 분명 물어보긴 했을 거다.
아니 하다못해 손바닥 아래 닿은 그 완벽하게 단련된 근육 아래의 심장 박동이 그렇게나 요란하게 뛰지만 않았더라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느긋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목소리와는 달리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고신재의 떨림은 왠지 낯부끄러울 정도로 빨라서, 한빈은 감히 그 어떤 의문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창백한 피부는 따뜻한 물과 흥분이 준 열기에 울긋불긋해지고 긴장으로 얼었던 근육은 꽤 말랑말랑하게 풀렸다.
고신재는 가늘게 떨리는 목을 한 번 깨물고는 백한빈을 곧장 안아 들고 샤워부스 밖으로 나갔다.
미리 틀어둔 물은 어느새 커다란 직사각형의 욕조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아, 흐….”
“한빈아. 다리 벌려봐.”
석조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앉는 감촉마저도 자극이라는 듯 크게 떨리는 숨을 토해내던 한빈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고신재는 그 망설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잘 안 벌려두면 아플 수도 있으니까. 응?”
“…….”
이어질 행위를 분명하게 암시하는 노골적인 문장은 꼭 어린아이를 달래듯 다정했다.
한빈은 욕조 안의 따뜻한 물에 담가진 발과 종아리에서부터 시작된 열이 혈관을 타고 위로 올라와 아랫배의 깊숙한 곳으로 몰리는 것만 같은 기분에 허벅지 안쪽을 덜덜 떨면서도 아프다는 표현에는 덜컥 먼저 겁을 먹었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하지만 직접 몸을 열 준비를 하는 백한빈을 내려다보는 고신재의 시선이 제 허리를 다리 사이로 품는 백한빈의 마른 허벅지 안으로 꽂혔다.
붉은색으로 물들고 커진 곧은 모양의 성기를 감추기에는 숱이 많지 않고 가는 음모와 그 뒤로 늘어진 고환.
그리고 지금, 이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꽉 다물어져 있을 입구까지.
따뜻한 욕조 안에 기꺼이 무릎을 꿇기 시작한 남자는 제 인생에서 감히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가까이 기울일 것이라 생각한 적 없는 그것들을 보면서 목 뒤가 흥분으로 뻣뻣해졌다.
“-아, 후으으읏!”
따뜻하고 부드러운 혀가 사타구니 안쪽 여린 살에 닿는 순간, 한빈은 오늘 냈던 그 어떤 소리보다 날카로운 숨을 들이켜며 벌어진 제 허벅지를 반사적으로 오므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안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남자의 탐욕스런 행위가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고신재, 아, 안 돼, 하지, 하지 마아, 흐응, -히이익!”
허벅지 안쪽, 갑작스러운 자극에 되레 커진 성기의 단단한 기둥뿌리.
고신재의 입술과 혀는 민감하고 연약한 부위 여기저기를 꼭 간질이듯이 적시고 빨았다.
한빈은 제 모든 신경이 집중된 민감한 부분을 한껏 맛보는 상냥한 침범 앞에서 허벅지를 조였다가, 물이 잠긴 종아리를 첨벙댔다가 하며 낯선 쾌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 저항 아닌 저항이 이어질수록 한 손에 잡힐 듯 마른 허리를 붙든 남자의 손과 팔에는 더욱 힘이 들어가고, 마른 배가 살짝 접힐 정도로 허리가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고신재는 제 입술이 더욱 닿기 좋게 들썩이는 다리 사이에 제 고개를 파묻고는 이내 보기 좋게 일어선 성기를 곧장 입안에 집어넣었다.
사실 이건 고신재 그에게도 제가 직접 하게 될 거라 살며 단 한 순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낯선 것이라, 신재는 순식간에 목구멍 근처까지 쑥 들어온 같은 남자의 기둥에 순간 반사적으로 옅은 기침을 토해낼 뻔했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걸 기꺼이 참아냈다.
젖은 귀두 끝이 제 볼 안쪽 부드러운 점막에 비벼지자마자 야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그 어떤 때보다 앓듯이 커지고, 허벅지 안쪽이 경련하며 떨렸기 때문이었다.
“흐으으, 응, 앗! 아, 제발, 흑, 신재야, 아.”
천천히 기둥을 빨고 그 끝을 서툴게나마 입술로 문지르며 살살 긁자 한빈은 거의 울 것처럼 유일하게 자유로운 손발을 어찌할 바 모르고 남자의 단단한 어깨를 붙들고 칭얼댔다.
고신재는 갈라진 목소리에 담겨 나오는 제 이름에 눈이 시릴 정도로 열이 오른 채로 들린 허리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내렸다.
하나하나 그 위치를 짚을 수 있는 마른 척추뼈를 타고 내려오면 이내 갈라진 둔덕이었다.
“--히잇, 힉!”
발갛게 익은 마른 몸이 들썩일 때마다 고신재의 허리까지 찬 따뜻한 물이 덩달아 찰박거리며 꼭 서로의 살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고신재는 입에는 백한빈의 성기를 물고, 손으로는 자극으로 움찔대는 작은 입구를 거의 찌르고 벌리면서 그 순간마저 백한빈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거기에 심지어는 최소한의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릿속까지.
고신재가 자각하는 모든 것은 품에 안긴 이 마르고 발간 몸이 차지하지 않은 것 하나 없었다. 그건 몸을 반쯤 담근 이 따뜻한 물속에 사실은 머리꼭지까지 처박힌 느낌이기도 했다.
“하아, 하아, 흐….”
타액으로 끈적해진 성기를 입에서 뱉어내자 한빈은 미지근한 공기가 달라붙는 감각마저 자극이라는 듯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고신재는 이 순간 그 작은 몸짓을 달랠 부드러운 키스를 마른 몸 이곳저곳에 떨어트릴 여유가 없었다.
따뜻한 물기에 젖고 풀어져 한결 손가락을 쉽게 잡아먹는 좁디좁은 점막 속.
파고든 관절이 깊어질수록, 좁은 틈이 부드럽게 풀어질수록, 이 좁고 따뜻한 곳을 밀고 들어갔을 때의 감각을 분명히 기억하는 성기가 빳빳하게 서서 자꾸 흉폭한 충동을 부추겼다.
하지만 고신재는 머리 꼭대기까지, 아니 어쩌면 그 위까지 넘실대는 흥분 사이에서도 지난 첫 섹스가 준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고신재는 갈라진 긴 한숨을 토해내며 크게 물을 가르고 일어났다.
“……한빈아, 후우, 잠깐만.”
“…으응…,”
한빈은 마른 뱃가죽이 서로 닿을 만큼 단단히 움켜잡고 다리 사이를 희롱하고 또 침범하던 남자가 손을 놓자마자 꼭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져 석조 바닥에서 숨만 간신히 헐떡였다.
한편, 잠시 자리를 비운 고신재가 들고 온 건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팩이었다.
“…….”
그걸 직접 사용해 본 적도 구매해본 적도 없던 한빈은 몸 안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간지러운 감각에 떨면서 멍하게 눈을 깜박이다가, 제2순위 애인이 된 남자가 그 봉투를 이로 찢어낼 때쯤에야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순간, 백한빈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저게 왜 당연하다는 듯이 집에서 나와. 얼마나 누굴 데리고 오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신재는 저를 올려다보는 백한빈의 붉은 눈꼬리 끝에 걸린 울컥함을 어렵잖게 읽어냈다.
“백한빈. 무슨 생각하는 줄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하아, 아니면, 뭐!”
“화내지 마. 실수로라도 안에다가 하면 좋을 리가 없잖아. 저번에도 위험했고. 긁어내는 것도 힘들었잖아?”
힘없이 벌어진 다리 사이로 다시 자리를 잡고 축 늘어진 골반을 들어 올리는 손이 유독 능숙하게 느껴진 한빈은 나긋나긋 달래듯 흘러나온 듣기 좋은 목소리에 되레 울컥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 순간, 충동적으로 절 품에 안는 고신재의 단단한 어깨를 이를 세워 콱 깨무는 선택을 했다.
분명 그건 분명 적잖이 아팠을 거다.
어쨌거나 단 한 번도 타인을 무는 데 쓴 적 없던 치아의 뾰족한 부분으로 힘조절조차 하지 않고 깨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 흔한 아야, 하는 작은 소리도 내지 않고 물에 젖어 유독 짙게 보이는 흑갈색 눈썹을 그림처럼 살짝 휘어 찌푸린 채 웃기만 했다.
“한빈아.”
심지어 커다란 석조 타일의 욕조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나직하고 다정하기까지 했고 말이다.
“나는 한빈이 너 아프게 안 할 건데.”
“…….”
“응?”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들어 가 있는 탓인지 부피가 늘어난 욕조의 물이 엉덩이골 사이에서 소름 돋을 만큼 간지럽게 찰랑거렸다.
하지만 백한빈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갑내기 연인의 능숙함을 탓하기라도 하듯 단단한 살덩이를 깨문 이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한편, 미안하지만 고신재는 그 따끔한 통증에 더욱 속이 더워졌다.
해명할 건 생겼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그에게 중요한 건 제 어깨의 따끔함보다도 백한빈이 보이는 반응 그 자체였다. 물론 고신재는 그렇게 들뜬 제 속을 곧이곧대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저, 애정과 욕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을 뿐이다.
“…좋아. 그럼 계속 물고 있어, 백한빈.”
백한빈은 고신재의 말을 퍽 잘 따랐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한빈은 뭉툭한 기둥이 제 좁은 입구를 천천히 여는 감각에 순간 입에 물고 있던 남자의 어깨를 더욱 세게 깨문 채로 허리를 들썩였다.
하지만 한 손에 절반 이상이 들어오는 마른 허리를 단단히 붙든 힘줄 돋은 손은 마른 골반을 잡아 올리며 제 성기를 물어들기 시작하는 구멍으로 힘이 들어가지도, 또 그 다정하고 흉폭한 침입을 피할 수도 없게 했다.
“아, 히익…!”
“왜. 계속 물고 있지. 이제 안…, 후우, 안, 깨물 거야?”
신재의 입에서 그 역시도 더운 숨으로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툭 불거진 귀두를 간신히 집어넣어 걸친 정도인데도 눈앞에서 플래시가 터진 것처럼 시야가 깜박거리고, 온 신경이 부드럽게 꽉 조이는 연결점의 자극에만 연결된 것처럼 오싹해진 탓이다.
‘그게’ 어떻게 들어가느냐며 걱정했던 건 모두 기우였다.
따뜻한 물로, 또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벌리고 축축하게 만든 백한빈의 뒤는 고신재의 굵직한 성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쭉 잡아먹었다.
“--히으으읏!”
한빈은 뭉툭한 귀두가 내벽을 긁으며 들어와 이내 뒤이어 단단한 부피감으로 제 뱃속 깊숙한 곳을 가득 채우고 짓누르는 감각에 숨을 삼키기만 할 뿐 제대로 뱉어내질 못하며 헐떡였다.
굳이 따지면 전신을 통틀어 고신재가 침입한 범위는 극히 일부다.
하지만 백한빈은 그 좁고, 또 범위가 국한된 자극에 머리카락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빠듯한 부피감에 휘둘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고신재의 것이 제 안으로 점점 깊숙이 밀려 들어올 때마다 몸 안의 모든 장기는 물론이고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목구멍 아래로 같이 쏠렸다.
심지어는 그가 잠시 멈춰서 긴 한숨을 내쉴 때마저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고신재가 제 등을 쓸고 눈가며 콧잔등 위에 정신없이 입 맞출 때마다 몸이 둥글게 말리며 뱃속 깊숙한 곳에서 짓눌린 무언가가 헉, 하고 심장을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하아, 백, 한빈. 숨 제대로 쉬어.”
고신재의 입에서 듣기 좋은 나긋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는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고신재 너도 마찬가지라며 핀잔을 주었을 한빈이다.
하지만 백한빈은 제 엉덩이와 허벅지에 닿는 남자의 단단한 체온에 되레 숨을 헉, 하고 들이키며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러자 흥분해 꺼덕거리며 앞으로 줄줄 액을 흘리는 제 성기가 긴장으로 근육 하나하나의 모양이 도드라진 고신재의 복근에 닿아 그 완벽한 몸을 더럽히는 게 보였다.
정말로 다 들어온 거다. 뿌리 끝까지.
몸이 닿을 정도로, 전부 다.
고신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열에 풀린 눈꼬리를 바들바들 떠는 백한빈의 손을 가져다 직접 스스로의 배꼽 아래의 경계를 꾹 누르도록 했다.
그건 꽉 조이는 좁은 곳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 넣던 고신재도, 또 두꺼운 기둥이 속을 채우고 또 콱콱 뭉개듯 짓누르는 감각에 허덕이던 백한빈도 채 예상할 수 없던 범위의 자극이었다.
“힉, 히익, 흐- 이, 이상, 해…. 으응, 하아, 힉…!”
“제대로, 손, 대고 있어. 움직일 거니까.”
“시, 시러어, 아, 거기, 싫, 흐아앗!”
발버둥 치는 백한빈의 창백한 몸을 단단히 짓누르듯 안은 채로 허리를 처올리기 시작한 고신재의 핏줄 선 팔로 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타고 흘러내렸다.
깊게, 얕게, 또다시 깊게. 때로는 넣은 그대로 꾹 짓누르면서.
물에 젖은 근육은 뼈 모양이 그대로 덧그려지는 야윈 몸에 부딪힐 때마다 머리까지 울릴 듯이 큰 소리가 났다.
하지만 기쁘게도 그보다 더 큰 건 좁디좁은 연결점을 지나 움직이며 안을 쾅쾅 처박고 짓이길 때마다 커지는 야한 목소리였다.
“흐으…. 아, 앗! 흑. 흐아아, 읏.”
전립선 자극뿐만 아니라 쾌감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백한빈은 아랫배가 짜릿하게 울리는 감각에 평소에 그 뚱한 표정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 쉽게 울었다.
고신재는 제가 성기를 안쪽까지 푹푹 처박을 때마다 살점 하나 없이 깡마른 사타구니 위의 아랫배 근육이 밀려 움직이는 걸 백한빈이 직접 손바닥 아래로 느끼게 하다가, 이내 그 손등 위를 제가 직접 꾹꾹 눌러댔다.
그러자 한빈은 고개를 뒤로 꺾고 발가락 끝까지 확 곱은 채로 벌벌 떨면서 눈물과는 다른 의미로 찔끔찔끔 울던 제 성기에서 팍, 하얀 정액을 먼저 터트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이른 사정을 탓할 이성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흐으으, 아, 히익! 하, 하지 마아, 으응, 흑!”
“백, 한빈. …하아, 너, 나 똑바로, 봐. 이거. 꿈 같은 거…, 그딴 거, 아니야. 절대.”
“흑, 알았으니까, 알았, 어, -흐으, 아, 그러니까.”
“……‘가나’가 아니라, 나라는 거, 알아?”
“고신재, 제발!”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내벽이 꽉꽉 누르는 직접적인 자극보다도 제 이름을 헐떡이며 크게 부르는 저 날카로운 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더욱 사정할 뻔했다는 건, 아마도 고신재 그만이 평생 품어야 하는 비밀일 거다.
“-제발, 누르지 마, 흐, 으응, 이상해, 미칠 거 같아, 그러니까, 흑….”
고신재는 무뚝뚝한 사진과 백한빈이 섹스할 때는 이렇게 코가 빨개질 정도로 울고 칭얼댈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게 이렇게나 다행스러운 일 일 줄 몰랐다.
백한빈의 일 앞에서는 언제나 한심하기 짝이 없을 만큼 유치해지지만, 이 작은 입에 키스하고 어리광을 듣는 가상의 남자를 단 몇 초 정도 상상했을 뿐인데 한심한 질투심에 눈가가 시큰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너 많이, 좋아해. 백한빈. 정말, …하아, 정말 그래.”
“아, 흐으, 응, 으응, 아, 제발, 천, 천히-!”
“내가, 걔보다 더…, 훨씬 더 많이,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고신재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제가 깊게 박아넣은 따뜻한 안에서 그대로 사정했다.
급하게 숨을 헐떡이는 백한빈의 몸은 갈빗대 하나하나가 크게 요동치는 게 선명히 그려져 보일 정도로 체격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그 달뜬 움직임을 열기에 반쯤 풀린 눈으로 내려다보던 고신재는 이내 여전히 목마르다는 양 백한빈의 작은 가슴께에 제 입술을 허겁지겁 떨어트렸다.
그는 제 첫 번째 애인이 된 남자와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아직, 상대는 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작품후기]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에 올리는 새 편이죠? ㅠ ㅠ
정말정말 빨리 오고 싶었는데... 환절기라서 그런지 이석증이 심하게 와서, 완전히 눈에 띄는 차도가 보일 때까지 쉬고 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10월부터는 자주 오려고 했는데... 당분간은 2-3일에 한번씩 연재하려고 합니다!! ㅠ ㅠ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댓글과 추천, 선작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늘 감사합니다!!
++ ++ 정말 정말 정말 죄송스럽습니다만 감상에 지장이 될 것 같은 댓글은 삭제했습니다 ㅠ ㅠ....
그냥... 가상 세계의 평균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안의 평균은 그러하지 않았는데 오해를 빚었네요ㅠ ㅠ 정말 죄송스럽습니다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 ㅠ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