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 힐, 힐!-36화 (36/65)

36

김푸름은 늘 병결과 조퇴 일색으로 학창시절 내내 단 한 번도 개근상을 받아본 적 없던 백한빈이 대학에 입학해 처음 사귄 친구였다.

사실, 낯을 많이 가리는 한빈은 꽉 막힌 구속에서 벗어나 서툴게나마 반짝반짝 빛나던 동기들 사이에서 늘 겉도는 저를 챙겨주던 푸름을 처음에는 꽤 부담스러워 했었다.

같은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인기가 좋고 선배, 교수, 하물며 성격 나쁜 조교에게마저 곧장 점수를 따는 동기가 왜 저를 이렇게 챙기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남자 신입생끼리 모여 군대 이야기를 떠들던 날에 우연히 지나가듯 병력 때문에 면제일 거라고 말했던 게 꼭 아픈 동생을 떠오르게 해서 신경 쓰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미 그때는 김푸름이라는 사람 자체를 친구로서 꽤 좋아하게 됐던 터라, 오히려 네 동생은 어디가 그렇게 아픈데, 하고 걱정만 됐을 뿐이다.

백한빈의 교내 인간관계는 모두 김푸름을 통해 생겼다.

가볍게 어울리는 학과 동기는 물론이고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하는 다른 과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발이 넓고 교우관계가 좋은 푸름을 통해 이어져 있다.

단 한 사람.

무용과 고신재를 제외하면 말이다.

“…푸한테 뭐라고 해?”

“뭐라고 하긴. 남친이라고 해.”

“미친 개소리 좀 하지 말고!”

5년을 알고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깨비 같은 얼굴로 성큼성큼 앞서 걷는 친구의 뒤를 몇 걸음 떨어져 따라가며 작게 속삭였던 한빈의 입에서 기어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고신재가 그런 핀잔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고신재 또라이와 고신재가 또?의 준말인 ‘고또’라고 불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고신재는 제게 딱 붙어서 소곤대는 백한빈을 향해 이 캠퍼스의 어느 누구에게도 향한 적 없는 다정한 눈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싫으면 사귀지도 않는 사람이랑 키스하고 섹스하는 무분별하고 음탕한 게이가 되어서 성소수자 편견 인구를 한 명 더 적립할지, 아니면 사실 우리 사귀어서 그러고 있었다고 할지 선택해도 되고.”

“와…….”

백한빈이 감탄스러운 인성에 새삼스러운 경의를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이 푸름을 따라 도착한 건 사진과가 주로 사용하는 5층의 가장 구석에 있는 기자재실 앞이었다.

그곳에는 기자재실을 알리는 푯말 아래에 작은 시트지 이름표가 따로 붙어있었다.

<어둠의 자식들>.

김푸름은 그곳을 이용하는 게 익숙하다는 듯 열쇠로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이제 낮게 속삭이며 묻는 건 고신재의 차례가 됐다.

“여긴 어디야?”

“기자재실인데 학과 소모임 방으로 주로 써.”

“‘어둠의 자식들’이?”

“암실 사진 하는 소모임이라. 푸름이가 소모임장….”

“-얌마들아!”

바로 들어가지 않고 미적대고 있자 문이 닫힌 안쪽에서 곧장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에 뜨끔한 한빈은 “들어가자, 들어가자.” 하면서 저보다 훨씬 더 커다란 사내를 질질 끌고 들어갔다.

평소의 서글서글한 표정 따윈 찾을 수 없는 김푸름은, 기자재실의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둘 다 여기 앉아.”

“으, 으응!”

“…….”

김푸름은 저를 마주 보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보며 바짝 유독 눈에 힘을 줬다.

나란히 앉은 고신재와 백한빈은 3학년이 될 때까지 곰과 뼈다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저와의 조합 못지않게 공통점 하나 없었다.

솔직히 백한빈이 창백하다 못해 좀 질린 것 같기까지 한 얼굴로 앉아서 데굴데굴 불안하게 눈을 굴리고 있지 않았다면, 푸름은 조금 전 제가 본 충격적인 광경과 이어진 폭탄 발언을 현실로 체감하지도 못했을 거다.

제 친구인 한빈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남자의 과한 오버 스펙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바짝 얼어서 움츠러든 채로 눈도 못 마주치는 한빈과는 달리, 그 옆에 비스듬히 팔짱을 끼고 흐트러짐 하나 없는 자세로 앉은 남자는 짙은 세피아톤 사진 속 고전 미남처럼 보일 정도로 느긋하다 못해 여유가 넘친다.

그 말끔한 얼굴에서 유일한 흠을 찾자면 김푸름이 주먹을 내지르며 생긴 입술 위의 작은 피딱지뿐이다. 아니, 사실 고신재는 그것마저도 일부러 만든 듯 잘 어울리는 남자다.

김푸름은 제 시선을 알면서도 고갯짓 한 번 안 하고 백한빈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남자 대신, 갈수록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제 친구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백한빈. 너부터.”

“…으, 으응….”

사실 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기자재실에 있는 다른 두 남자는 동시에 속으로 혀를 찼다. 심드렁한 얼굴로 툭툭 말하는 게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백한빈이 이렇게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긴장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어서다.

푸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백한빈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잖아.”

“……내, 내가, 언제?”

“학기 초 개강파티 때 술 취해서 엄청 떠들었잖아.”

“내가? 내가 그랬다고?”

“어. 게임에서 만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팅 못 한다고. 5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아는 거 하나 없다고.”

맞아. 그랬지. 고신재는 속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전에 없이 엄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김푸름의 말에 백한빈은 잔뜩 긴장한 채 굳어있던 것으로도 모자라 입까지 벌어졌다.

까만 눈동자는 한 곳을 진득하게 보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리고, 초조하게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손은 붉은 기운이 하나도 없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한빈은 쉰 것처럼 들릴 정도로 쥐어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혹시 그때 다른 말실수는….”

“딱 저렇게만 말했어. 또, 내가 괜히 네가 취해서 실수로 말한 거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입단속 해서, 그때 같은 테이블에 있던 하은이랑 성일이 빼고 아는 사람도 없고.”

“…아….”

솔직히 그 순간 고신재는 학기 초에 김유민이 저와 함께 교양 사진 과제를 함께 하게 된 사진과 사람이 백한빈 걱정을 하더라며 어이없어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순수하게 감탄도 했다.

제게 같은 과 동기라는 사람은, 필요할 때만 세상 친절하게 다가오고 그 용도가 다하면 남보다도 못한 견제나 하는 존재인데 백한빈은 동기가 아니라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었다.

그 덕분에 게임 속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도 전해줄 호의와 애정이 있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고신재가 잠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빠진 사이, 김푸름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잠시 딴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던 고신재의 정신을 퍼뜩 들게 할 정도로 정확히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 5년간 좋아했다던 게임 친구, 남자냐?”

고신재는 부스스한 머리를 초조하게 쓸어넘기며 안절부절못하는 한빈을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또, 김푸름은 그런 두 사람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얼른 대답을 꺼내지 못하던 한빈이 입을 연 건 다짐과도 같은 작은 한숨과 함께였다.

“…후우, 그러니까…, 어. 맞아.”

“부산에 있는 내 동생한테 대신 보내달라고 한 건 그 친구한테 보낼 선물이야?”

솔직히 그 순간은 백한빈뿐만 아니라 고신재까지도 꽤 놀랐다.

하지만 김푸름은 눈을 커다랗게 뜬 두 사람을 보며 그게 뭐 대단한 발견이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왜. 뭐. 남자이름이었잖아. ‘박종우’.”

“…….”

“게임 친구한테 보낼 선물인데 부산에 산다고 뻥쳐서 부산 주소로 보내야 한다고 할 때부터 어, 이거 좀? 싶었어.”

기자재실로 들어온 내내 어떤 뚜렷한 감정도 말끔한 얼굴 위로 떠올리지 않던 고신재의 입에서 작은 헛웃음이 터졌다.

항상 백한빈 옆에서 사람 좋게 웃고 떠드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완전히 곰인 척하는 여우였다.

보통 눈치도 아닌 데다가 그걸 매일 보는 백한빈에게 들키지도 않을 만큼 철저하기까지 하다.

한편, 백한빈은 제가 학기 초에 술에 취해 가나다라123을 좋아하는 걸 떠들어댄 것도 모자라서 친구가 이미 못해도 몇 주 전부터 자신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은 후폭풍이 왔다.

석상처럼 바짝 굳어있던 한빈은 팔로 동굴을 만들어 머리를 박은 채로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며 제 허술함에 몸서리쳤다.

긴장도 되고, 안심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하고.

단 한 가지로는 말할 수 없는 온갖 간지러운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귓가도 빨갛게 변했다.

푸름은 그런 한빈을 보며 잠시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게이도 여돌을 좋아해? 백한빈 너 ???? 꽤 좋아하지 않았냐. 예쁘고 노래 좋다고.”

“그, 그건 별개지! 가수는 가수고 진짜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지.”

“그런가.”

“그치!”

“…그럼 이건 대답하기 싫으면 대답 안 해도 되는데, 혹시 한빈이 너 여자는 만나봤어?”

확실히 김푸름은 제 친구가 기분 상하지 않게 진심을 풀어내는 데는 선수다.

충분히 그 답을 알면서도 일부러 깐 밑밥 다음에 슬쩍 흘러나온 질문은, 일찌감치 백한빈의 짝사랑 상대를 눈치채고도 한참이나 생각을 정리한 사람다운 침착함마저 담겨있었다.

백한빈은 김푸름의 물음에 담긴 온갖 고민을 어렵지 않게 읽어내고는 저 역시 전처럼 떨리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최대한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니. 안 만나봤어.”

고신재는 지금쯤 제가 끼어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었다.

아무리 김푸름이 반쯤 눈치챈 상태였다고 한들, 어쨌거나 백한빈이 제 친구에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성정체성을 오픈하게 된 건 사람이 오지 않는 캠퍼스 구석에서 저 마른 몸을 끌어안고 키스하던 제 잘못이었으니 말이다.

남자친구라고 말하라느니 하는 건 새파랗게 질린 한빈을 위한 농담이었을 뿐, 그는 백한빈을 위해서라면 어떤 말도 할 생각이었다.

백한빈은 게임 친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떤 확신도 없었는데 ‘이렇게’ 끌어들인 건 저라고. 확실한 게이인 건 제 쪽이고 한빈은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고민하는 단계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나게 할 작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넘칠 듯이 걱정 많은 백한빈에게 괜한 짐을 하나 더 지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김푸름의 말은 고신재가 혀끝에 품고 있던 그 많은 문장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그럼 설마 첫 연애가 저거라고?”

“……‘저거’?”

고신재는 짙고 곧은 눈썹 하나를 휙 치켜뜨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의 나직한 물음은 이어진 격앙된 목소리에 금세 묻혔다.

“한빈이 너 여자친구 만난 적 없잖아! 그럼 첫 연애가 남자인 거로도 모자라 저거, 고신재인 거야?! 선물 보낸 그 게임 친구는? 걔한테 선물까지 보내면서 그냥 친구로 남기로 한 거야? 대체 왜?! 뼛속까지 게이라고 해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남자인데!”

“-‘대체’는 왜 들어가지?”

‘저거’ 2연속에 이어서 ‘대체’라는 단어까지 따라붙은 고신재가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뾰족하게 끼어든 질문은 이번에도 완벽히 무시됐다.

심지어는 백한빈조차도 고신재의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먹이 한 번 안 줬다.

솔직히, 한빈은 이 순간 기자재실 겸 암실인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고신재 그가 한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뭐라고 하긴. 남친이라고 해.」

「그게 싫으면 사귀지도 않는 사람이랑 키스하고 섹스하는 무분별하고 음탕한 게이가 되어서 성소수자 편견 인구를 한 명 더 적립할지, 아니면 사실 고신재가 내 애인이라 그러고 있었다고 할지. 뭐 원하는 쪽으로 선택해도 되고.」

백한빈은 제 친구의 걱정 반, 신중함 반인 시선 앞에서 이제야 퍼뜩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정신 차려보니 어영부영 고신재와 입술을 부딪치고 있는데, 이건 진짜 안 될 일이다.

고신재 앞에서는 늘 말리기만 한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수습해본다고 해도, 지금 상황은 좀 특수하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도 따로 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뽀뽀하고 있었다고 하면, 아무리 저렇게 착하고 속 깊은 친구 녀석이라고 해도 질색할 것 같다.

한빈은 턱을 긁적이며 하고많은 세상 남자들 중 왜 하필 ‘저거’냐는 질문의 답을 고민했다.

솔직히 이건 백한빈으로서도 꽤 어려운, 아니 아직 그조차도 이유를 찾지 못한 물음에 가까웠다.

고신재가 왜 갑자기 나한테 꽂혀서 이러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하필 고신재랑 사귀냐는 말에는 뭐라고 대답해.

백한빈은 저도 모르게 슬쩍 시선을 굴려 제 옆에 앉은 남자를 눈에 담았다.

살짝 나른하게 처친 온화한 눈매, 살며 본 어떤 사람보다 예쁘고 오뚝하게 뻗은 높은 콧대, 딱 예쁜 분홍색 입술에 그 모든 이목구비가 여백 없이 꽉 찬 작은 얼굴. 확실히 고신재는 지금 이 순간 제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과분하다.

그래서일까.

덕분이라면 덕분에, 한빈은 반박 불가의 이유를 찾아냈다.

“…자, 잘생겨서…?”

“…….”

“…….”

“아. 목소리도 좋고. 아! 그…… 게임 친구한테는, 전부터 보내기로 했던 선물 보낸 거야. 무, 물론 좋아하기는 했는데. 지금은…. 어, 얘, 얘랑 그렇게 됐어.”

나름대로 심각한 이유를 상상하기라도 했는지, 김푸름은 그런 이유로 사귀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묘하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고신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한 줌의 연민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 은근한 표정은 어딜 봐도 ‘새끼, 아쉬울 거 하나 없으면서 오래 짝사랑한 사람도 못 잊은 한빈이 녀석이랑……. 너 인마. 은근히 순정파구나.’하는 찝찝한 측은지심이 섞여 있어서, 고신재는 저도 모르게 올라오는 떨떠름한 얼굴을 감추지도 못했다.

심지어 김푸름은 누구 친구 아니랄까 봐 속 터지게 하는 덴 도가 텄는지, 그윽하기까지 한 말투로 말을 붙이기까지 했다.

“고신재.”

“…뭐.”

“내가 앞으로… 백이랑 둘이 있는 거 주의할게.”

“뭐?”

“짜식. 너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쌀쌀맞았었구나. 내가 조심하마.”

물론, 백한빈이면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뒤통수를 얻어맞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남자가 또 고신재였다.

신재는 그 짙고 곧은 눈썹을 살짝 치켜뜬 채로 은은하게 웃으며 멋쩍게 코를 쓱 문지르는 푸름에게 조금 전부터 저를 향했던 독설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 김푸름?”

“어엉! 그럼, 그럼!”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사귀는 게 누군데 웬만한 게 눈에 들어올까.”

상냥한 껍질을 뒤집어썼다뿐이지 실질적인 내용은 은근한 개차반인 문장을 이해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만 해도 턱이 두 번이나 빠질 듯이 입을 크게 벌린 김푸름은, 괴성 섞인 문장으로 제 친구의 안목을 탓했다.

“허어어어억. 배액! 너 진짜 저 인성이랑?! 정말? 진짜냐!? 남자 보는 눈 무슨 일이냐 대체! 야, 얼굴 말고 인성도 좀 보고 사귀고 그래!”

“……하, 하하하. 그러게.”

“‘그러게’? 뭐가 ‘그러게’야, 백한빈?”

말 한마디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꼬박꼬박 붙잡는 고신재의 허벅지를 테이블 밑으로 살짝 꼬집으려다가 단단한 근육에 손가락이 밀려나기만 한 한빈은, 그 위를 주먹을 쥐어 콩콩 때리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때 테이블 위로 작은 은색의 열쇠가 쓱 내밀어 졌다.

대놓고 뭐라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테이블 아래로 작게 투닥대고 있던 백한빈은 제 앞에 난데없이 주어진 그 작은 쇳조각을 보며 잠시 손장난을 멈추고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흠, 흐흠. 푸, 뭐야?”

“여기 예비 키.”

“그런데?”

“……분명히 말하는데, 딱 뽀뽀만이다.”

솔직히 백한빈은 제 친구의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 근엄한 얼굴로 말을 잇는 김푸름의 낮은 호통 같은 문장은 이 열쇠의 의미를 충분히 자각하게 하기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어딜 겁도 없이 밖에서 그러고 있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너네? 아직도 게이 새끼가 욕인 세상에서….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인마들이. 야! 왕자. 이건 너도 새겨들어! 솔직히 네가 문제지, 그치! 딱 보니까 한빈이는 그만하라고 하던데, 어?”

“…….”

“…….”

구구절절 틀린 말 하나 없다.

겁도 없이 밖에서 그러고 있었다는 것부터 솔직히 네가 문제가 아니냐며 고신재를 따지는 것까지 정확하게 꿰뚫어봤다.

심지어, 김푸름은 누가 백한빈 친구 아니랄까 봐 뽀뽀라고 하는 것까지 비슷했다.

뒤늦게 푸름이 건넨 열쇠의 의미를 자각한 한빈은 단순히 귀가 살짝 붉게 물든 것을 넘어서 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훅 열이 올랐다.

민망하고, 온전히 사실을 말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한데 그 흔한 편견이나 욕 한마디 하지 않고 이 와중에도 제 걱정을 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속이 몽글몽글했다.

푸한테 진짜 잘해야지.

한빈은 차마 뭐라고 대답도 못하고 작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은 열쇠가 꼭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커다란 손을 지닌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꺼낸 진지한 물음 때문이었다.

“정말 ‘뽀뽀’까지만 가능해?”

“야 이 새끼야!”

“미친 새끼가!”

누가 사진과의 곰과 뼈다귀 듀오 아니랄까 봐, 김푸름과 백한빈은 동시에 라임까지 맞춘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작품후기]

+++원래 금요일에 업데이트 하려고 했는데요. 내용상 한 편만 올리고 끊으면 애매하고 연참을 해야 하는 편이라서요. 하루 더 쓰고 두편으로 토요일 자정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 ^

오늘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친 발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씩씩하게 잘 낫겠습니다!! 헤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즐겁게 글을 쓰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럼 이틀 뒤인 18일 금요일에 다음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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