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첫 감촉은 부드러웠다.
유독 얇고 보드라운 살덩이가 가볍게 붙는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허리가 바로 서며 힘이 들어갔고, 그게 떨어지는 순간에는 하아, 하고 저도 모르게 옅은 탄식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백한빈이나 저나 내심 술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작 입을 맞추고 나니 그런 걸 짚을 느긋함 따위는 없었다.
그보다도 욕심껏 다시 한 번 더, 또 조금 더 깊게 입술을 부딪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왜 자꾸 웃어?”
“헤헤.”
평소에는 작은 입매를 꾹 다물고 시종일관 뚱한 얼굴로 있느라 작은 미소 한 번 건지기 어렵던 남자가 자꾸 웃어서다.
고신재는 자꾸 아이처럼 키득대고 웃는 작은 입술을 제 것으로 덮어 부딪치며 “응, 왜?” 하고 달래듯 물었다. 그러자 백한빈이 팔을 쭉 뻗어 남자의 목을 감아 안으며 작게 속삭이듯 대답했다.
“그냥. …좋아서.”
‘좋아서’.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었다.
고신재 역시 제게 체중을 기대며 안긴 마른 몸의 따끈한 체온과 말랑말랑한 작은 입술의 감촉 앞에서 제가 무릎 위에 앉히고 감싸 안은 사람의 성별 같은 건 이미 저만치로 날아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고신재와 백한빈의 상태는 좀 다르기는 했다.
백한빈처럼 그저 좋다는 라는 숫된 단어 하나만으로는 간지러운 속내를 다 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미친. 뭐야.
이 애교 뭐야. 진짜 뭔데. 백한빈 너 진짜 술 금지야.
고신재는 차마 당사자에게는 하지 못할 말을 삼키며 그 대신 욕심껏 창백한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고 빨았다. 그러자 한빈은 입술이 부딪힌 채로도 또다시 헤헤 웃어댔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평소에는 작은 입을 꽉 다물고 심드렁하게 있는 게 기본이면서 맥주 조금 마셨다고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말이 되나.
솔직히 이제는 휘두르는 한빈이 문제인지, 아니면 휘두른다고 휘둘리는 제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싶은 신재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열이 눈꺼풀 위까지 손을 뻗어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만 같았다.
살짝 고개를 틀어 조금 더 깊게 입술을 부딪치자 백한빈은 응, 하고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낸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참 묘한 욕구를 자극하는 부추김이었다.
백한빈에게는 콤플렉스 그 자체라 낯선 이가 있는 곳에서는 소리를 줄이기 바빴던 저 목소리가 좀 더 크게 터지는 걸 듣고도 싶고, 지금처럼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빼앗고 싶기도 했다.
딱 키스만 한번 해 볼 거라 저 자신에게 남겼던 유예 따위는 완전히 잊은 고신재는, 제 품 안에 온전히 안긴 마른 몸의 무게감을 그리며 습하고 부드러운 점막 안으로 천천히 혀를 움직였다.
“흐으…….”
그건 분명 감히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혀가 닿을 때마다 미끄러지는 감각은 살며 느꼈던 그 어떤 것보다 여렸고, 중간중간 터지는 한숨을 멋대로 가로채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혀를 과감히 움직이는 만큼 무릎 위에 올라탄 마른 허벅지가 들뜨며 움찔거리는 거였다.
제 몸 위에 올라탄 마른 몸이 작게 전기라도 통하는 듯 튀어 오를 때마다 그 어떤 의미도, 반응도 없어야 할 동성과의 행위에 들뜬 게 저뿐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받는 것 같은 안도가 찾아왔다.
같은 게이라고 둘러댔던 거짓말에 백한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참이나 유린하던 입술을 가볍게 떼어내자 어느새 제게 온전히 체중을 기댈 정도로 힘이 풀린 한빈이 얕게 헐떡이는 숨을 토해냈다.
그 더운 숨이 닿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이마를 맞대고 있던 고신재는, 늘 안경에 가려진 상태라 잘 보이지 않던 콧잔등과 뺨 위의 작은 주근깨 몇 개 위로 욕심껏 키스하다가 이내 곧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걔랑은 뭐했어?”
숨을 할딱이는 한빈은 제가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응? 한빈아. 걔랑은 뭐 했어?”
“…하아, 뭐, 뭐얼…?”
“내 얼굴을 한 그 친구랑 ‘좋은 거’ 했다고 했잖아. 그렇지?”
“으응….”
대답은 하는데 정말 알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고신재는 살짝 풀린 눈을 깜박이며 숨을 고르는 남자의 등을 살살 쓸어 달래주며 그가 흐린 이성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더욱 단순명료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키스 말고. 뭐 해 주는 게 제일 좋아?”
백한빈은 아무리 헤젓고, 깨물고, 빨고, 숨을 빼앗고 제 타액을 삼키게끔 깊게 파고들어도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했다.
아니, 저 작은 입안은 말랑말랑한 살덩이를 쓰는 데 서툴다기보다는 애초에 저항할 의지조차 없는 것에 가까웠다.
사실 고신재는 그 환대가 입을 맞추는 내내 묘하게 머리 한구석을 살살 긁으며 거슬렸었다.
……꼭,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것 같아서.
어쨌거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건 효과가 있었다.
저를 안은 남자의 단단한 팔이 자신을 놓지 않으리라는 믿음마저 느껴질 정도로 완전히 긴장을 풀고 늘어져 있던 한빈의 입에서 나름의 고민이 뚝뚝 떨어지는 대답이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음…, 뒤로 안아주는 거…?”
“…….”
때로 발화자의 의도는 상황의 특수성 앞에서 왜곡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백한빈이 고심 끝에 꺼낸 말은 하필 이 순간에 나오기에는 참 얄궂을 만큼 중의적인 문장이었다는 뜻이다.
눈치도 빠르고 주변을 잘 살피던 평소의 백한빈이라면 알 수 있었을 거다.
저를 품에 안은 남자의 곧고 예쁜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는 것도, 입술 끝을 올려 웃고는 있지만 그게 정말 기꺼운 미소는 아니라는 것도 놓치지 않고 짚어내고도 남았다.
하지만 지금의 한빈은 알코올로도 모자라 제 호흡을 멋대로 빼앗고 조율한 입맞춤 앞에서 평범한 이성도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난 그냥 백허그가 좋았어’ 같은 상세한 부연설명이 가능할 리도 없다.
한편, 잠시 침묵하던 고신재는 꾹꾹 억눌린 한숨과 함께 퍽 뾰족하게 헛웃음 쳤다.
그뿐일까. 제 품에서 끔벅끔벅 눈만 굴리는 남자를 보며 낮은 중얼거림을 쏟아내기까지 시작했다.
“……재미 많이 봤구나.”
“으응?”
“누구는 아까워서 손도 못 대던걸….”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뾰족한 문장은 백한빈을 향한 게 아니다.
아니, 애초에 실존하는 누군가가 있지도 않다.
정말 굳이 대상을 찾는다면 백한빈이 푹 빠진 게임 친구 ‘가나다라123’이니, 그게 누구인지 아는 이상 이렇게 울컥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짓이다. 고신재 역시 머리로는 그걸 모르지 않았다.
고신재는 다리를 벌리고 무릎 위에 앉힌 백한빈의 사타구니와 제 중심이 아슬아슬하게 맞부딪히는 걸 내버려두며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선은 넘었다.
돌아갈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돌아갈 거라면, 지금이어야 한다.
……분명히 알고 있다.
“-뒤로, 어떻게?”
“흐으읏!”
커다란 손이 제 허리를 가운데 두고 벌어진 엉덩이골 사이를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뻣뻣한 청바지 원단 너머로도 말랑말랑한 부피감이 느껴지는 부위는 남자의 손이 닿자마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딱 키스만 해 볼 거라며 우스운 유예를 건 것도, 백한빈의 웃음에 휩쓸린 것도 아닌 그 자신만의 첫 움직임을 시작한 고신재는 마르고 가는 허리를 제 중심으로 더욱 가져다 붙이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옷 위로 만지는 건 역시 좀 시시한가.”
“……왜, 왜, 갑자기 그래!”
“싫어? 만지지 마?”
“시, 싫다는 게…, 아니라, 그, 너무 갑자기잖아!”
“싫지는 않고?”
고신재는 제 몸에 빈틈없이 맞물린 허벅지가 대답 대신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걸 느끼며 꽉 억눌린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싫다고 말했으면 이 들끓는 속에 찬물이 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는 늘 창백했던 뺨이 상기된 채로 허둥지둥 말을 잇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목 뒤쪽이 더 뻣뻣해지기만 한다.
백한빈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건 게임 속 ‘가나다라123’이다.
현실의 ‘고신재’가 아니다.
백한빈에게 고신재는 가나와 목소리가 비슷한 같은 학교 사람일 뿐이다.
어디에도 할 수 없는 연애 상담을 할 수 있는 친구쯤이 지금 현실의 백한빈과 고신재의 관계로는 꽤 잘 쳐주는 정도라는 걸, 아주 짜증 날 정도로 잘 안다.
……그런데 지금. 그랬던 백한빈이 처음으로 어설픈 기회를 준다.
다시 있을지 모를 기회를.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친구의 선은 더욱 선명해지기만 해서 감히 다른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다른 선택지를 흔든다.
고신재는 그 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 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만 안 해도 된다는 거지, 한빈아.”
“…….”
“고개라도 끄덕여줄래. 응?”
지금 이 밤에 백한빈이 저를 돌아봐 준 게 어떤 이유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임시 ‘가나다라123’?
상상만 하던 안전한 하룻밤 섹스 상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술기운에 몸이 동해서 붙잡은 아무나?
떠오른 예시들은 하나같이 고신재 그의 대단한 자존심과는 동떨어진 구차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보다 더 심한 무언가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빌어먹을 친구만 아니면 된다.
그러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목맬 정도로 빠진 짝사랑 상대와 붙을 만해진다. 처음부터 내가 가질 걸 하는 후회는 이미 포기했다.
남자니까, 그러니까 안 돼.
하마가 가나다라123의 연인이 될 수 없는 건, 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 대전제 아래에서 고신재는 그 감정의 무엇이든 부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절대적이라 믿었던 이유 단 하나를 가리고 나면.
그까짓 걸 지우고 나면, 그러면, 남은 건 하나같이 눈앞의 남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뿐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신재는 한참이나 우물쭈물 망설이던 마르고 예민한 남자의 고개가 작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토록 기다렸던 온전한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마른 몸을 품에 안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을 침대가 아닌 곳에서 보내지 않는 건 고신재 그의 마지막 한 줌의 자존심이었다.
백한빈은 싫어하겠지만 고신재는 백한빈의 모든 것이 다 작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건 171cm와 189cm로 거의 20cm는 차이 나는 키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골격 자체가 튼튼하고 널찍했던 고신재와는 달리, 백한빈은 딱 보기에도 흉곽이 작고 뼈가 가늘었다. 백한빈 역시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늘 품이 넉넉한 옷을 입으며 정확한 몸의 선을 가리기 바빴으니 말이다.
목소리 못지않게 콤플렉스인 걸까, 덕분에 고신재는 종종 그리 어림짐작했었다.
하지만, 그 몸을 가리던 천 조각들을 기꺼이 치워낸 지금.
그는 제 생각의 방향이 이제껏 퍽 잘못됐었음을 깨닫는 중이다.
“…흣…!”
이제껏 살며 수없이 봐왔던 흠잡을 데 하나 없이 단련된 근육들보다도, 고신재는 연한 갈색의 유두를 이를 세워 깨물고 핥을 때마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섬세하고 늘씬한 골격이 더 보기 좋았다.
“우, 으응, 흑!”
차라리 가리길 잘했지.
입술을 떨어트리고 그 위를 빨아들일 때마다 헐떡이는 숨을 따라 팽창하고, 줄어들고, 또 경련하는 것이 고스란히 짚어지는 이 몸을, 빌어먹을 ‘가나다라123’이 아닌 다른 어떤 남자가 알지 못해 다행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야한 걸 눈앞에 두고 멀쩡할 수 있는 새끼는 없다. 절대.
고신재는 백한빈의 가슴께에 있는 작은 돌기를 아프지 않게 혀로 굴리면서 생각했다.
그때, 상체를 뒤틀며 간질간질한 자극을 참던 한빈이 작게 뾰족한 소리를 냈다.
“-그만, 해. 아프단 말야…!”
뒤늦게 입을 떼고 확인한 백한빈의 젖꼭지는 내일이 되면 퉁퉁 부을 게 뻔해 보였다.
하지만 귀여울 만큼 여리게 입술에 걸리는 이 작은 것의 감촉이 좋아서, 또 이걸 핥고 깨물면 배가 훅 꺼지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팽팽한 근육의 흐름을 훑는 게 좋아서 제가 얼마나 이것에 매달려 있었는지 가늠하는 걸 잊었던 그다.
고신재는 이제 살짝 숨이 닿기만 해도 마른 어깨가 움츠려지는 작은 돌기를 탐욕스럽게 눈으로 훑으면서도 목소리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애인의 것을 냈다.
“미안해, 그만할게.”
“…씨이….”
“아프면 말해. 응?”
아쉽긴 하지만 맛볼 건 많다.
예컨대, 저절로 오므라드는 마르고 창백한 다리 사이에서 조금 전부터 줄줄 선액을 흘리고 있던 짙은 붉은 색의 성기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 적당한 크기의 기둥을 모르는 척 그 근처의 민감한 피부만 슬쩍 손바닥으로 훑었다.
사실 백한빈의 몸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혀로, 더운 숨으로, 그리고 집요한 시선으로 집어삼키던 남자는 단 한 군데, 이 흥분한 성기만은 건드리지 않은 채 내내 내버려두고 있었다.
물론, 살짝 처진 느슨한 눈매에 걸린 세상 간지러운 눈웃음과 마음에 품은 지 오래인 목소리에 홀린 백한빈은 그 의도적인 방치 따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작품후기]
내일도 노블로 오겠습니다!~~
추천, 선작,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한번에 들고 오려고 했는데... 쉬는 날인데도 생각보다 일이 좀 생겼네요!! ㅠ ㅠ 흑흑.
그래도 내일이면 정말! 챕터3이 다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