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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아
오늘 학식 개실패함 오후 1:10
뭐 먹었는데 오후 1:10
하마
오므라이스
어케 오므라이스에 햄이 없냐ㅠㅠ
말 안됨; 오후 1:11
‘오늘의 메뉴 : 오므라이스’.
5천만 사람 중 ‘하마’가 학교 앞 술집에서 울부짖던 그 낯선 사람일 리가 없다며 연신 부정을 이어갔던 고신재는, 학생 식당 키오스크 기계 옆 작은 칠판에 귀여운 글씨체로 쓰인 메뉴를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오늘의 메뉴 4000원.
얼결에 카드를 꽂고 결제까지 했는데, 오므라이스라니. 솔직히 살며 단 한 번도 달가워하지 않은 메뉴다.
그건 단순히 그가 7살에 처음 슈즈를 신어서만은 아니다.
군장성인 아버지가 일찍이 당뇨 초기 증상을 보이면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심심한 식단에 적응된 탓이다. 애초에 식권을 들고 줄을 서는 것마저 익숙하지 않아, 어울리지도 않게 쭈뼛쭈뼛했다.
애초에 살면서 오므라이스를 먹어본 기억 자체가 다섯 손가락을 전부 채우지도 못할 정도다.
“…탄수화물 덩어리….”
단백질이라고는 얇디얇은 계란 한 겹이 전부에, 식이섬유는 다른 사람을 따라 엉거주춤하니 같이 뜬 깍두기뿐이다.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보자 쌀알만 한 다진 야채가 있기는 하지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고신재는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서 한 입 먹었다.
기름에 달달 볶은 쌀알이 입안을 굴러다니는 감각이 생경했다.
그 때문일까. 그는 드물게 멍한 채로 손을 움직이다가 평소 같았으면 몇 술 뜨지도 않았을 음식을 바닥이 보이게 먹었다.
오늘 전공 없길 천만다행이지.
신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혀를 차며 일어났다. 예민한 성격에 몸이 조금이라도 둔한 걸 견디지 못하는 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머릿속이 정리된 건 아니었다.
생각은 발효되는 빵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기만 한다.
걔가 진짜, 정말 내가 아는 그 하마라고?
아냐. 아닐 수도 있지. 솔직히 아닐 확률이 훨씬 높지. …하지만, 하마가 그렇게 흔한가? 힐 먹는 하마라고 놀리는 건 내가 매번 했던 말이긴 한데.
그래. 만약에- 정말 만약에. 진짜 걔가 그 하마가 맞다면.
……뭐야. 게이야?
심지어는 날 좋아하는?
“고신재!”
“…….”
“얌마, 고신재!”
“-어.”
“뭘 그렇게 넋 놓고 걷고 있냐. 저기서 만나자고 해놓고.”
김유민이었다.
짧게 밀었던 머리가 채 자라지도 않은 그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같은 과라고만 말하기엔 너무 매정한, 군대 가기 전까지는 꽤 괜찮은 사이였던 동기다.
“신재야. 너도 이거 교양 잡으면서 주4 된 거 맞지?”
“……어.”
“사진과 교수가 하는 강의이기는 하지만… 교양인데, 뭐. 카메라 없어도 되겠지? 이번 신설이라 후기도 없던데.”
고신재는 대학 3학년 차인 지금까지 솔직히 굳이 누구와 맞춰 시간표를 짜 본 적 없다.
같은 과 사람들이야 전공에서 질리게 만나는데 굳이 교양까지 또 겹쳐 좋을 게 뭐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복학한 소심한 동기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김유민은 어차피 학교 코앞인 거 그냥 금요일 교양 하나 일찍 듣고 말지, 하며 건성으로 수강신청을 한 고신재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무려 이틀을 같은 수요일 교양을 듣자며 졸라댔다는 거다.
어쨌거나 김유민은 목표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왜, 화장실도 같이 가줄까? 그래? 손잡고 같이 강의실 입장이라도 해 줘?”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한껏 비꼬는 말을 근 3년 만에 듣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 까다로운 고신재가 시간표를 자진해서 옮겼으니 말이다.
한편, 고신재는 괜히 뻣뻣하게 굳은 듯한 목 뒤를 주무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니다.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와 떠올려보면 그 어둑어둑한 술집에서 울고 불던 남자의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름조차 모른다.
희미하게 남은 이미지라곤 10년도 더 전에 유행했을 것 같은 알이 큰 검은 뿔테안경과 부스스한 빗자루 같던 검은 머리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이 넓은 캠퍼스에서 다시 만난다고 한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 알아볼 확률 같은 건-
“으. 민트 초코 진짜 극혐이다.”
“네가 샀어?”
“기껏 밥 먹고 왔는데 옆에서 달달한 치약냄새 난다고 생각해 보라고!”
“알게 뭔데.”
……분명히,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저렇게 유치한 대화를 하면서 교양동 강의실로 들어오고 있으면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저 약간 쉰 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그 시끄러운 술집에서의 주정이 단박에 귀에 꽂혔던 이유를 새삼 다시 깨닫게 된 신재였다.
“아. 치즈 케이크 먹고 싶어.”
“이거 끝나고 후문 카페 갈래?”
“거기 케이크는 좀 신맛 나서 싫어.”
“치즈케이크가 다 신맛 나지. 그럼 무슨 맛이 나.”
“아 쫌. 안 그런 케이크도 있다고.”
하마는 치즈 케이크를 좋아한다.
혼자 치즈 케이크를 홀로 사다가 식사 대신 먹고 있다는 말을 종종 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커피는 또 못 마신다고 했다. 마시면 심장이 무서울 정도로 너무 빨리 뛴다고 했었던가.
고신재는 제가 아는 하마를 떠올리며 입에 까만 빨대를 물고 성의 없는 대답만 이어가는 마른 체격의 남자를 눈으로 쫓았다.
마침 ‘하마’라는 별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예민한 인상의 남자와 그 친구가 고른 건 둥그런 좌석 배치의 오른쪽 구석으로, 딱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건 술집의 어두운 조명이나 흐려진 기억 속이 아닌, 밝은 곳에서 처음 보는 자칭 ‘하마’의 얼굴이었다.
“…….”
솔직히 뭐랄까.
굳이 저 인상을 보면 떠올리는 단어를 꼽자면, 미안하지만 하마보다는 허옇게 질린 여우 귀신이 먼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피부는 술기운과 어두운 조명이 사라지자 더욱 파리하니 창백하고 입술 색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오죽하면 저 거대하고 촌스러운 까만 뿔테안경이 꼭 인간 흉내를 내는 도구처럼 붕붕 떠 보일 정도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홑꺼풀의 눈은 꽤 큼직한 편이지만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 커다란 안경과 덥수룩한 까만 머리카락은 그나마 있는 장점도 감춰버린다.
……쟤가 진짜 하마일까.
고신재는 딱 봐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한참이나 뜯어봤다.
그건 얼마나 느긋한 태도던지, 웬만한 사람은 고신재 그가 지금 누군가를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그때, 각자 이야기를 하며 떠드는 교양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오. 꽉 찼네요. 내일까지가 수강 정정 기간 맞죠?”
“예에.”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퍽 젊은 교수였다.
허겁지겁 자세를 고쳐 앉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났다.
“교양 강의는 오랜만인데. 복작복작한 거 보니 좋네요. 이 중에서 얼마나 정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출석부터 해볼까요. 난 학생들 얼굴 외우는 거 좋아하는 편이라.”
신재는 휴대폰으로 출석 버튼을 누르며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맞은편을 다시 한 번 지긋이 눈에 담았다.
고개를 숙이니 심란한 뿔테안경만 보이는 남자는 한참 살펴봐도 무슨 과인지 얼른 짐작되지 않았다.
그래도 1학년 때 교수가 한 명 한 명 직접 출석을 부르던 때에는 대답하는 걸 보면서 무슨 과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전자출결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OT인데도 거의 다 왔네요. 자, OT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죠. 이번 강의는 교양이니만큼 사진의 시옷자도 모른다 싶은 분들부터 들을 수 있도록 진행할 거에요. 사진의 역사나 이론도 조금, 소개하고픈 사진가에 대한 이야기나 철학적 화두도 조금.”
<사진으로 바라보기>.
하얗고 널찍한 보드 위에 조금은 뾰족한 필체의 글씨가 큼직하게 적혔다.
그러고는 이런 특정 전공의 교수들이 교양 강의를 맡았을 때 늘 하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입문교양 수준에 충실할 거고요. 20퍼센트는 출결, 30퍼센트는 변별력을 위해 중간고사는 작은 시험을 볼 거에요. -사진과 친구들이라고 무조건 좋은 점수를 따 갈 거라는 생각은 말아요. 사진의 완성도나 스킬을 보는 게 아니니까.”
나이가 몇이 되든 시험이라는 말에 저절로 한숨을 쉬는 사람들 때문일까.
교수는 웃으며 “중간고사는 강의를 잘 들었으면 충분히 답변할 수 있는 수준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라는, 살며 몇십 번은 족히 들은 것 같은 문장을 달래듯 던졌다.
“그리고 강의 계획서에서도 미리 적어두었다시피 2인 1조의 과제가 가장 큰 퍼센트인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죠. -자, 요 과제가 무엇이냐, 하면.”
2인 1조 과제.
그건 김유민이 간만에 만난 동기, 고신재를 조르고 졸라 저와 같은 교양을 듣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신재는 꼼꼼한 강의 계획서 속에서 유독 이질적으로 ‘OT때 설명할 예정’이라고 짤막하게 적혀있던 과제를 떠올렸다.
“2인 1조 파트너의 사진을 매 주 한 번씩 찍는 거예요.”
물론, 시선은 여전히 덥수룩한 머리를 숙인 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다.
머릿속으로는 ‘김유민 사진을 매주 찍고 앉아 있어야겠네.’ 하는 심드렁한 생각도 조금쯤 했다.
“매주 배운 이론을 활용할 주제가 나갈 거고요. 마지막 시간은 제출한 사진 중 함께 보고 싶은 조의 사진을- 전부는 아니지만 몇 개 볼 거에요.”
“기말고사는 없나요?”
“기말고사가 사진 제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말 없다!
교수의 말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리 쉽게 보지 말라는 듯한 어조의 문장이 뒤따랐다.
“이번 시간과 마지막 기말 발표 주를 이렇게 두 번을 빼면 13장의 사진이 나와야겠죠. 웬만하면 카메라로 찍는 걸 추천하고 싶기는 하지만…. 난 정 카메라가 없다, 싶은 사람은 그 주에 배운 것과 주제에 충실하게 폰카로 찍어도 괜찮아요.”
분명 언제였나 형이 여행 갈 때 쓰겠다며 샀던 DSLR이 먼지가 앉은 채로 장식장 안에 처박혀 있을 거다.
적당히 그 카메라를 빌려다가 교수가 내주는 주제에 맞춰서 사진을 찍으면 될까.
신재는 작은 스케줄러 한편에 생긴 것만큼이나 반듯한 글씨체로 메모를 남겼다. ‘<사진으로 바라보기>, 기말고사 없음. 대신 사진 과제.’
“-아! 그런데.”
하지만, 아직 교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조는 같은 과 사람하고는 짜는 거 금지입니다. 낯선 사람의 사진을 꾸준히 찍는 게 목표니까요.”
옆자리에서 곧장 작게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김유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고신재는 벌써 울상인 제 동기를 향해 쐐기 같은 문장을 툭 던졌다.
“유민아. 너 이거 때문에 나 끌고 왔던 거 같은데.”
“…망했네….”
“망하기는. 교양인데 뭐. 그냥 부담 없이 하자.”
김유민은 태평하다 못해 우아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눈을 샐쭉하게 떴다.
정성껏 다듬어 허투루 난 이파리 하나 없는 난초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모르고 들으면 그저 다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유민은 안다.
사실 고신재라는 인간은 오랜만에 복학한 제 사정 따윈 관심도 없을 거다. 야박한 지레짐작이 아니다.
신입생 때부터 입학 한 달 만에 ‘무용과 걔’라고 말하면 ‘아 걔, 나도 봤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에 띄던 미남이 고신재다.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봤을 땐 딱히 진한 인상도 아닌데도, 그것이 모여 유독 단정하니 곧은 느낌을 주고 유독 갸름한 얼굴형과 짙고 긴 속눈썹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더욱 빛났다.
심지어 전공에서도 손꼽히는 피지컬에 대충 전해 듣기만 해도 혀를 내두르게 되는 배경이라니.
여름 바다를 한 입 베어 문 것 같은 청량한 얼굴과 상냥한 말투를 했지만 절대 웬만한 성격이 아님을 대학 첫 MT부터 누누이 알게 됐다지만, 그럼에도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고신재였다.
성별이나 나이를 떠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끔 시선을 잡아 끄는 능력은 속된 말로 끼다. 매력이라는 표현도 쓸 수 있을 거다.
무용수가 연습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타고난 힘이 부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때문에 고신재의 주변엔 늘 그의 옆을 차지하고 싶은 이들로 ‘붐볐었다’.
“아무래도 우리 주변은 같이 할 사람을 찾은 것 같지.”
“……그렇네.”
무슨 과인지 모를 옆자리의 두 사람이 한참이나 말을 걸고 싶어서 눈치를 보던 걸 뻔히 알면서도 눈짓조차 주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 해놓고는, 무슨!
김유민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한숨을 숨기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조 못 정한 분들?”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다고. 세상에 쉬운 일이라곤 없다니까.
김유민은 아직 덜 자란 머리를 멋쩍게 쓸면서 손을 들었다. 중형 규모의 강의실에서 짝을 구하지 못한 건 자신들과 저만치에 앉은 두 사람 뿐이었다.
“남은건 사진과 친구들이랑… 이쪽 둘은 같은 과인가요?”
“예에. 그렇습니다.”
깍듯이 대답한 김유민이었지만, 솔직히 오랜만의 복학에 긴장한 터라 조금은 싱숭생숭한 걸 감출 수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남는 사람들끼리 될 거면 그냥 옆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호의를 보였을 때 받아주는 게 나았다.
미안하지만 딱 봐도 저쪽의 두 사람은…….
군대 가기 전 학점을 말아먹은 탓에 남은 학기가 중요해진 유민은 목소리를 줄이고 작게 투덜거렸다.
“남아도 어떻게 저런 새끼들만 남냐? 둘 다 과제라면 지지리도 안 할 것 같지 않아?”
김유민은 관상을 믿는 편이다.
그리고 김유민 나름의 관상학에 빗대어 보면, 검은 머리를 부스스하니 이마를 다 덮도록 기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뿔테안경과 그나마 소극적으로 손을 들고 대답하는 덩치 큰 남자, 두 사람 모두 교양 과제에 열과 성을 다하는 타입은 아니다.
게다가 괜히 사진과 사람이랑 같이 했다가 되려 점수를 짜게 받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하지만 제 동기는 조금 다른 생각인 듯 했다.
“-김유민. 안경 낀 쪽이랑은 내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