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진영의 말대로 저잣거리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들어올 때에 얼핏 보았지만 마차 안 작은 창을 통해 본 것과 직접 걸으며 본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건축 양식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말이 양식이지, 그저 싸고 튼튼한 모양으로 수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찬 것들은 많이 달라졌다.
‘저 아저씨는 어쩌다가 밀을 팔게 되신 거지?’
예전에 저곳은 바닷고기를 팔던 점포였다.
바뀐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화초나 열매처럼 산에서 난 것들을 팔고 조리하는 곳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느 한 업종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해졌다. 청난이 고개를 돌려 한 점포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나가는 이들이 맛볼 수 있도록 시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음식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향과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저런 조리사는 어떻게 발굴해 낸 것일까.
“어멈, 이거 어때? 그 집 양반이 이거 참 좋아하잖아.”
“어제도 사 갔잖아요.”
“오늘도 먹는 거지! 다다익선, 다다익선!”
“하하하, 좋아요. 저야 간단해서 좋죠.”
다양한 호객 행위와 지나는 이들의 사담으로 인해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이 시국에 이토록 화기애애한 곳은 이곳뿐이리라. 청난은 자신의 옆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피해 측면에 붙어 걸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이 아이들은 집 안에 숨어 있었는데,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청난은 바뀐 거리를 편하게 둘러보았지만 그의 옆에서 함께 걷던 진영은 죽을 맛이었다.
‘주민들이 다 힐끔힐끔 쳐다보잖아…….’
청난은 모른 체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의 감을 생각하면 이미 눈치챘을 것 같았지만,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할 만한 이력을 생각하면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진영의 속을 모르는 청난은 한 가판대 앞에서 섰다. 그곳은 장신구를 취급하고 있었고, 십 년째 주인도 자리도 그대로였다.
청난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파는 닭꼬치가 맛있었는데.’
닭꼬치 가게 주인은 겁이 많아 옆 옆 마을 괴멸 소식을 듣자마자 봉문해 버렸었다. 아마 지금은 다른 업종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오, 이거 사형 닮았네요.”
어느새 곁에 온 진영이 판대에 있는 장신구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슬쩍 본 청난의 시선이 그것에 멈추었다. 평범한 귀걸이였다. 조금 독특한 점이 있다면 금색 구슬 아래로 꾸며진 장식이 보라색인 것 정도일까. 보라색은 장신구에 잘 쓰이지 않는 색이었다.
어쩐지 그것이 백매를 떠올리게 하였다. 금색 구슬을 들여다보면, 그의 환한 눈동자가 생각났다.
“이거 얼마죠?”
“사형 주려고요?”
“아니? 내가 할 거야.”
“사, 책사가요?”
“그럼요.”
청난이 귀걸이의 끝을 들어 올려 자신의 귀 옆에 가져갔다.
“안 어울리나요?”
“어…….”
안 이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얼굴이 날개라고, 그는 지나가다 보인 아무 귀걸이를 달아도 빛이 날 것이다. 하지만 어울리냐고? 글쎄. 처음 본 사람은 그에게 잘 어울린다 할지도 모르지만, 진영은 아니었다. 그것이 더 어울릴 사람을 알고 있으니. 찰나 동안 생각을 정리한 진영은 헤헤 웃음을 흘리며 대답하였다.
“책사를 위해 있는 귀걸이네요.”
“좋아요.”
청난이 만족스럽게 값을 지불했다.
제 귀에 대어 보았지만 걸지는 않았다. 그의 귀에 구멍이 나 있는지는 진영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소중한 것인 양 손수건으로 감싸 소매 깊숙이 넣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청난은 이곳저곳을 구경하였고, 그때마다 시선은 쫓아왔다. 청난이 길에서 파는 탕후루를 집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을 무렵에야 진영은 그가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라, 난이네~.”
“아, 누나.”
청난과 진영에게 다가온 이는 청난의 서점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주녕녕(朱盈盈)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업종은 바뀌지 않은 것인지 언제나처럼 양손에는 거대한 화분을 안고 있었다.
녕녕은 반가운 얼굴을 본 기쁨에 뜀박질하며 다가왔다. 그럼에도 두 개의 화분에 있던 흙이나 나뭇가지는 과하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었다.
‘무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그녀에 대한 청난의 호평도 여전했다.
녕녕은 청난의 옆에 화분을 쾅! 내려놓았다. 하필 그 장소가 청난의 발 옆이었기에, 청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저기에 깔렸으면 며칠을 더 잡혀 있어야 하겠고, 매아는 또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와- 화분이 참 튼튼하네요!”
진영은 제 스승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풍당당한 소음을 낸 화분의 건재함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으럼! 누구 제품인데! 큰집의 소공자 맞지?”
“예, 진가의 진영입니다.”
“서로 친한가 보네요?”
“그럼요. 제가 두 번째로 친할걸요?”
진영이 말끝을 올리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첫 번째는 백매였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청운이라 여기고 아무 말 없이 넘겼다. 청운의 팔불출은 마을 개도 알 정도였다.
“난이에게 좋은 형이 생겨서 기뻐. 공자도 알다시피 워낙에 연약해서 언제 픽 쓰러진지 모르겠는데 도움은 또 안 받으려고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걱정 끼쳤다니까.”
“아니, 누나아…….”
이어지는 녕녕의 한탄 아닌 한탄에 청난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무어라 할 수도 없었고, 뭣보다 청난은 그녀에게 약했다. 결국 청난이 강변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음에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은 탓에 상처가 번져 한 달을 고생한 이야기까지 나온 후에야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때는 청난이 이 마을에 온 지 오래지 않은 때로 불과 네 살에 불과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청난은 전생의 나이 탓에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걸 부끄러워했었다.
녕녕은 그 긴 이야기 동안 다른 주민들 이야기를 하는 데에 망설이는 경향이 전무했다. 그녀의 성향을 생각하면 청난과 다른 주민들 사이에 생긴 골 따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영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랬어. 운이 아저씨가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청 공자가 잘못했네요.”
“그렇지. 그래서 지금도 엄청 걱정해.”
“하하… 이젠 안 그래요. 그나저나, 저희 아버지 보셨나요?”
백매가 들으면 공감 못 할 말을 하며 청난은 주제가 원상 복귀되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너희 아저씨 아까 돌아가시더라. 장을 얼마나 보신 건지 양손이 모자라 보였다니까? 들어 드릴까 했다가 너무 기분 좋게 걷고 계셔서 그냥 왔지. 이제 보니 네가 돌아와서 그러셨구나.”
“하하하… 아버지께서 유별나시죠.”
그의 팔불출적인 면모는 여전히 낯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머쓱해하는 청난의 모습을 다르게 해석한 녕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만 챙기지 말고, 네 몸도 챙겨. 우리 마을에서 네가 제일 약해.”
‘아닌데. 절대 아니에요, 누님.’
진영은 하마터면 진심을 입 밖으로 터트릴 뻔했다.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잔병치레가 잦고, 신체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보완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다. 아마 백매선을 제외하면 이 마을에서 그가 가장 강할 것이다.
“참, 국숫집 아저씨가 월병 달인이 된 건 알아?”
“그랬어요? 몰랐네요.”
“공자는 먹어 봤죠?”
“그럼요. 이 마을에서 그 집 월병 안 먹어 본 사람 없을걸요?”
“들었지? 가서 먹어 봐.”
그 밖의 다양한 ‘맛집’들을 줄줄이 나열하던 녕녕은 지나가던 무엇을 보고 퍼뜩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심부름에 늦었다며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그녀가 남긴 맛집 목록의 대부분은 청난이 먹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고른 것이라 생각되지만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그녀만이 알 터였다.
쌩하니 멀어지는 그녀의 옷자락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진영이 의문을 띄웠다.
“……형?”
“제가 공자보다 어리거든요.”
“에엑, 정말요? 말도 안 돼.”
“그렇게 말도 안 돼요? 다들 동안이라던데.”
청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게도 외모만 따지면 청난이 더 어려 보였다.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근육이 붙지 않은 얇은 몸선 때문에 더 어리게 보였다. 하지만 침입한 요마를 물리치고 마을을 구한, 더 나아가 중원 곳곳에 선행으로 덕을 쌓은 이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이 주는 정신적 충격은 꽤나 컸다. 아무리 그의 속은 삼백 년 전 수선계를 호령했던 대수사라는 것을 앎에도 말이다.
청난은 다정하게도 설명을 이어 주었다.
“아마 일 년, 혹은 이 년 정도 차이 날 거예요.”
“왜 ‘아마도’죠? 아, 제 생년을 모르시는구나. 가을에 태어났어요. 이제 스물두 살이 되었네요.”
“그런 게 아니에요. 모르는 건 제 쪽이죠. 고아다 보니 정확한 생년을 몰라요.”
기억은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확실히 태어나던 그때부터 모든 순간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난 그해가 어떤 해인지 알려 준 사람은 없었고, 갓 태어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데다가, 특히 청난은 거의 혼절에 가까운 잠을 청한 일도 많아 날을 세어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때가 겨울이라는 것이었다. 친부모의 사인이 폭설이라 말할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