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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08)화 (108/111)

#108

청난의 표정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청난은 속으로 한숨을 참아 내곤 여전히 태연한 낯을 하였다.

“걱정 마세요. 제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스승은 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책사의 선심은 감사하나, 생각 속에 있는 지식은 눈앞의 칼을 막을 수 없지 않소.”

“그럼 칼로 막으면 되지 않겠나요. 진 공자께서는 아실 겁니다.”

청난이 진영을 돌아보았다. 청난은 한쪽 눈을 감거나,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에게 남몰래 언질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영은 그의 응시하는 두 눈동자가 자신을 북돋는 것 같았다. 진영은 때를 놓칠세라 빠르게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요! 제가 봤어요. 사존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인계에서 사존의 옆이 가장 안전한 곳이에요.”

해류진군이 같이 있을 테니까. 그의 곁이 위험해진다면, 인계는 이미 명계의 삼도천에 통째로 담금질된 후일 것이다.

확신에 찬 아들의 말에 진 대인은 곤란해졌다. 그가 아는 청난은 뛰어난 지략가였다. 아는 것이 많았고, 그 지식을 적재적소에 썼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주변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뛰어난 인재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너무 병약했다. 솔직히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좀만 추워져도 바들바들 떨었던 그가 생각났다. 진 대인은 그를 위해 최고의 의원을 모시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줄 수 있지만,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둘도 없는 존재가 되는 건 탐탁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안건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단지 얼마나 잘 거절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진영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무턱대고 거절만 한다면 그와의 의가 상할지도 몰랐다.

진 대인은 고민하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큰 기대감 없이 질문을 던졌다.

“책사의 사문이 어디시오?”

“화 선사와 동문입니다.”

“호오……! 흡!”

진 대인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다가 입을 꾹 막았다. 그는 청난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찻잔 위에 거슬리게 뭉쳐 있는 찻잎을 서로 떨어뜨리고 있을 뿐, 자신의 반응에 기분이 상한 것 같진 않았다.

진 대인이 큼큼 헛기침을 하였다.

“미안하오. 그날 화 선사가 보여 준 술법이 과히 대단하니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소. 책사를 낮잡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소.”

“물론입니다. 그는 참 대단하죠.”

청난은 화나긴커녕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눈은 둥글게 휘었고, 음성은 더욱 간드러졌으니 제아무리 눈치 없는 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난은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키운 제자가 대단하다는데 기쁘지 않은 스승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지금 옆에 진주국이 있었더라면 ‘바르게 잘 커 주어 다행이지.’라며 아닌 척 자랑했을 것이다. 그럼 그는 이렇게 대답했겠지. ‘네가 스승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이제 와 생각하면 자신의 앞이 안으로 굽는 건 다 형을 닮은 탓인 것이라, 청난은 생각했다.

“그럼 영이는 두 분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것이오?”

그렇다면 안심이 된다. 진 대인은 방금 전 아들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화 선사의 곁이라면 정말 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지도 몰랐다. 지금 이 마을을 지켜 주고 있는 것도 그의 선술이 아닌가.

진 대인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꿀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살핀 청난의 표정이 그새 안 좋아졌을 줄은 몰랐다.

우수에 찬 청난의 눈빛이 훌쩍 내려앉았다. 어딘가 고민이 있어 보였고, 그 고민은 진 대인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십 년 전 자신과 있으려던 그에게 버럭 화를 냈던 건 자신이 아니던가. 그때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청난에게 구명보다 중한 것은 없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물론 여전히 그의 의무를 재촉하겠지만 그때처럼 화내진 않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가 생각났다. 그가 떠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언제 돌아올지 시간을 재게 되었다.

모든 게 안정되어서 아무 걱정 없이 그와 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청난은 근심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그에게 제자가 되어라 권유한 그때부터 이미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 된 것이다.

내가 그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때도 백매가 자신을 이리 아껴 주었을까?

청난은 그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진 환경은 충분히 그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제 속셈을 채울 수 없었다. 백매에게 그런 악독한 스승에게 자란 아이라는 틀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손가락질받았으니, 어찌 은애하는 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책사……? 어디 아프오?”

진 대인이 조심스럽게 청난의 어깨를 쥐었다.

청난은 그제야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와 표정을 갈무리하였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제 표정이 어떤지 어찌 알까. 이곳에는 거울도 없는데.

진 대인의 의아함은 또다시 깊어졌다. 다행히 병이 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체 어째서 갑자기 실연당한 이처럼 처량한 우수를 품고 있는가.

‘내가 말을 잘못했더냐?’

‘몰라요.’

두 모자는 말없이 눈빛만으로 의사를 주고받았다.

진영은 고개를 저었지만, 동시에 끄덕이기도 하였다. 진 대인이 생각하기에 그는 분명 이 까닭을 아는 터였다. 어쩌다가 제 아들이 이렇게 비밀이 많아졌을꼬. 진 대인은 소리 없이 한탄하였다. 비밀이 많은 건 제 아들이 아닌 이 놀랍고 의아한 청 책사였지만, 진 대인은 어머니로서 사소한 것도 다 아쉬웠다.

“좋소. 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소. 피곤한 것 같으니 돌아가 쉬는 게 좋겠소.”

진 대인이 먼저 일어났다.

의구심은 여전하였지만, 제 아들이 바라던 길이 눈앞에 있었다. 어찌 부모로서 그것을 거절할 수 있을까. 마지막 고집으로 그의 안전 문제를 짚어 보았지만 그마저도 걱정이 없어졌으니, 더 이상 그를 잡는 건 제 욕심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기 자신을 달래 주는 것 정도. 청난의 얼굴빛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이젠 서로가 필요한 시간을 가져야 할 때였다.

‘더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테고.’

진영은 그리 어리숙하진 않았다. 제 눈엔 마냥 아이로 보이지만 그는 타고난 상재였다.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마을을 산책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내었다.

그 재능을 가지고 수사가 되겠다고 하니, 진 대인은 자신의 선조에 대한 기록이 떠올랐다.

선조의 사정으로 하산하였지만, 어쨌든 그들의 몸에는 신이 된 이들과 같은 피가 흘렀다. 진즉에 되돌아가야 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모험을 겪는 것이 제 아들이 아니길 바랐지. 지금까지의 선조들이 그랬고, 진 대인 자신 또한 그랬다.

‘이젠 정말 때가 되었나 보군.’

물에 살던 고기는 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진법은 들어가는 것은 어려워도 나오는 건 비교적 쉬웠다. 진영이 말하길, 도둑을 막을 수 있다면 좋으나, 그러지 못했다면 빠르게 내쫓겠다는 선조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 하였다.

정말 그의 형다운 생각이었다.

서재를 나오고 정문이 보이는 곳까지 짧다면 짧은 거리를 걸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부대끼는 풀 소리를 들은 덕에 청난은 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미 결론은 내었다. 그것에 미련을 두어 뭐가 좋겠는가.

청난이 굳었던 팔다리를 쭉 늘이며 기지개를 켰다. 청난의 어깨가 세 바퀴 돌아갈 무렵, 진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고 보니 화 선사는 어디 가신 거죠?”

“집에 다녀온다 했다.”

“‘집’… 그렇, 군요.”

그 ‘집’이 어딘지 짐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영은 아무것도 물은 적 없는 양 고개를 돌렸다.

“제 아버지께서 장에 가셨다고 하셨지요? 돌아오셨을까요?”

“그러셨을 거라 생각해요.”

청난이 집에 있는 줄 알고 있으니 지금쯤 조리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늘에 떠 있는 해는 아직 노란 빛을 내었다. 이대로 귀가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장터에 가 보실래요? 그새 많이 바뀌었어요.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어때요? 불편하시다면, 더는 권유하지 않을게요.”

“아가 그리 눈치 볼 거 없다. 네가 원한다면 가야지.”

청난이 진영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성큼 발을 내디뎠다.

‘제자가 많았다고 했던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진영은 서재에서 ‘진청난’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자료라고 해 봤자 선조인 진주국의 일기 정도가 다였다. 일기에는 그 까닭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진주국의 동생이었지만, 수야각주로서 생을 끝마쳤다. 그러니 그에 대한 모든 것은 그곳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일기에 적힌 진청난에 대한 이야기 중 필자의 주관이 들어 있지 않은 곳은 그 부분이 유일했다.

‘해를 본 날에는 해를 좋아하는 동생 이야기를 길게도 적어 놓으셨지. 차를 본 뒤에는 제 동생은 다른 차를 좋아했다는 말이 잔뜩 쓰여 있었고…….’

그 일기를 보며 진영은 팔불출도 유전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청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제자를 다섯이나 두었다는 것. 재능이 뛰어날수록 개인의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자를 적게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아이들을 좋아해 오히려 즐겼다고 한다. 그 탓일까, 청난은 아이 달래는 걸 잘한다. 정확하게는 ‘아이 취급 하며 달래는 것’을 잘한다.

확실히 아이 취급 받은 진영은 쓰다듬음받는 와중에 생각했다.

‘저 이제 스물둘이에요.’

하지만 그를 달래는 청난의 표정이 기뻐 보였기에, 이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그의 애정을 편히 받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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