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106)화 (106/111)

#106

진영이 보았던 ‘청 책사’는 나이에 비해 명석하였지만, 행동과 말투가 그 또래와 닮아 어색함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부터, 아마도 자신에게 정체를 알려 주고 난 후부터 이렇게 어르신 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

‘아니다. 그보다는 날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에 가깝겠다.’

하긴 삼백 년간 신앙되어 온 해류진군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데, 스물두 해를 산 평범한 양민은 얼마나 어려 보이겠는가.

“그래서 무어가 놀랍냐며 물은 것이냐?”

“아, 별건 아니고, 서어어언-군이 아니라 사형 말이에요. 신선이란 게 놀랍지 않아요? 평범한 사람은 단 일 초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운을 다 쓰는 것일 테니까요.”

“내가 평범하던가?”

“갑자기 납득이 되네요.”

천겁을 맞고 신선의 자격을 얻었지만 명을 달리했고, 그랬더니 기억을 가진 채 환생한 전 수야각주라는 이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주민들과 대화는 모두 끝냈느냐?”

“네! 에… 혹시 불편하셨나요?”

선뜻 대답한 진영은 한 박자 늦게 그가 훌쩍 떠나 버렸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갑자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응, 불편했지. 네 의도는 알겠다. 내가 주민들과 화해하길 바란 것이겠지?”

진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해야지.”

“아, 네. 맞아요! 사존이 전처럼 마을에서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 하지만 내가 불편해할 일은 아니지 않더냐. 그들이 나와의 관계를 돌리고 싶다면, 그들이 마땅히 사과하겠지. 아니라면 그뿐인 게다.”

“사존은 이 마을이 싫어지셨나요?”

“아니.”

청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대답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거대한 해류진군 상과 더불어 재잘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신상 앞에서 신선 놀이를 하고 있었다.

청난은 그들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좋아해.”

그저 그 한 마디뿐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진영은 청난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금까진 칼같이 쳐 냈으면서. 애정하면 친분을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그는 애정하나, 먼저 다가가진 않았다. 그저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저 해류진군 신상처럼.

신에 가깝다는 그 이명은 오롯이 그의 선술 덕은 아닐 것이라. 진영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청난이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를 뵙고 싶구나.”

“예?”

진영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뛸 뻔하였다.

늘 그랬다. 청난은 정말 말을 이상하게 한다!

“사존, 화 사형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을 하세요? 평소처럼 진 대인이라고 불러 주세요.”

“음? 여기서 매아가 왜 나와?”

청난은 진영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스승이 제자의 부모를 뵙는 것이 뭐가 문제지? 그에게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었기에 혹여나 이 또한 수선계만의 독특한 문화인 건지 잠시 고민하기도 하였다.

청난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저 표정! 진영은 자신의 새로운 스승이 본인의 일에는 눈치가 전무한 게 아닐까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제껏 연애도 한 적이 없을 터였다. 수사니까.

진영은 과장되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 하신 말씀은 마치 상견례하자는 것처럼 들렸어요. 사존과 사형이 서로 연모하시는 걸 뻔히 아는데, 제가 안 놀라겠어요? 이 제자는 심장이 여든 개라도 부족하겠습니다.”

진영의 모습은 마치 애정 행각이 과한 부모를 보며 한탄하는 자식을 떠올리게 하였다. 진영 또한 그것을 의도하여 장난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존께서 그대로 얼음이 되어 굳으실 줄은 몰랐다.

“사… 존?”

청난의 동작은 찻잔을 든 그 상태로 멈추었다.

진영은 방금 전 청난을 신상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심성을 얘기한 것이지 이렇게 몸이 굳어 버리는 것을 뜻한 게 절대로 아니었다.

이내 청난은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삐걱대며 진영을 돌아보았다. 청난의 눈동자가 폭풍처럼 흔들리고, 그의 양 볼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경지에 어울리지 않게 솔직한 모습이었다.

“그런, 거 아니, 란다, 아가.”

“아~. 제게도 숨기실 거예요? 전 원래 수선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혼인에 대해서 별생각 없어요.”

진영은 일부러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두 사람의 연애의 방해물이 될 생각은 없었다. 둘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그랬다.

사랑의 오작교 노릇은 자신과 정말 맞지 않는다. 과거 간단하게나마 선술을 가르쳐 주었던 사부 아래에 있을 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청난이 힘없이 대답하였다.

“정말… 정말 그런 게 아니다.”

청난의 속눈썹이 낮게 내려앉아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미모의 눈동자에는 음울이 드리워졌으니, 진영은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만 같아 당황스러웠다.

“어… 그것이…….”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그래, 무슨 말을 하던 중이었지? 그래, 네 어머니, 진 대인께 가자꾸나. 네 장래에 대해서 아셔야지.”

“어어……. 네, 좋아요.”

청난은 평소의 재빠른 행동력을 발휘해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뻔하게 말을 돌리니 진영은 발을 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디 자신이 저 사이에서 한 마리의 까마귀가 되지 않길 바라며, 진영은 얌전히 청난의 뒤를 따라나섰다.

큰집의 큰 대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었고,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처럼 무겁고 조용하게 그저 존재했을 뿐인 그곳이 이렇게 인기척으로 가득 차 있으니, 청난은 새삼 시간이 지났음이 느껴졌다.

진영은 집주인답게 성큼 걸어 들어가며 그와 눈이 마주친 남녀노소 모두와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 집의 인부들은 마을 주민들과 왕래가 적은 편이었고, 요마의 습격을 받던 그날에 큰집으로 피신하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 청난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영은 넓게 정리된 길을 놔두고 샛길을 골라 걸었다.

“이리 돌아가시는 데에 다른 연유가 있으신지요.”

“하하, 다들 걱정이 많거든요. 괜한 소리를 할까 봐요.”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라 칭찬받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이미 성년이 지났고, 또… 책사가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길이 정리되지 않은 탓에 진영은 혹여나 청난이 다칠까 천천히 걸었다. 청난은 그런 그의 둥근 뒤통수를 마냥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다들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하는 거지?’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연유가 짐작되지 않았기에 청난은 조금 불만스러웠다. 뒤에서 뜨거운 시선을 느낀 걸까. 진영은 다른 주제를 열었다.

“어머니는 서재에 계실 거예요. 늘 거기 계세요.”

“예전에도요?”

“네. 그곳에서 업무를 보시거든요.”

“흐음…그러고 보니 진 대인은 무얼 하시던 분이신가요? 무예도 예사롭지 않으시던데.”

“아.”

진영의 발걸음이 일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는 대대로 상인 가문이었어요.”

“예… 에?”

“저희 어머닌… 상인이세요. 하하, 안 어울리죠? 선조가 수선 집안이었던 것에 자부심을 느끼셔서 무예를 연마하시거든요.”

“확실히 무골이 좋으셨죠. 저는 군인이실 거라 생각했어요. 큰집의 어르신이 조정에서 일하시던 분이라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그럴지도 몰라요. 어머니께서 하시는 게 많으시거든요. 황실에도 연줄이 있으실 거예요.”

진영은 정리되지 않고 길게 뻗어 길을 막아선 나뭇가지를 높게 들어 올려 주었다. 진영이 청난보다 조금 더 크기도 했고, 워낙 높게 든 덕분에 청난은 편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청난이 양손을 모아 소리 없이 인사를 건네었다. 진영은 별거 아니란 듯 자신의 말을 이었다.

“저희 집이 조용했죠? 사실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본점 근처에 본가가 따로 있는데 주로 거기서 지냈거든요. 그러다 오 년 전에 위험해져서 여기에 정착하셨어요. 저도 그때 맞춰 산을 내려왔고요.”

“선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다고 했죠?”

“맞아요. 선술은 심심풀이로 가르쳐 주셨고, 사실은 그냥 요양 간 거였죠.”

“그래도 그 덕분에 영혈이 열려 있어요. 수선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지만, 사실 이미 이전부터 시작했던 거죠. 술법만 잘 익히면 그 나이대의 다른 수사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진 않을 거예요.”

“정말요?”

진영이 화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부푼 기대감과 안도감이 섞인 미소는 다소 어리숙해 보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수선은 나이가 중요하다고 들었거든요. 수사가 못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어요.”

“못 될 게 있느냐. 네가 한다면 하는 것이지.”

이제는 지나는 사람도 없어 청난은 말을 편하게 하였다.

진 대인은 서재에 있다 하였다. 보통 서재는 정문에서 가장 떨어진 곳에 두기 마련이었기에 되레 후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진영의 발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고, 안쪽으로 향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진영은 평범하게 걷지 않았다. 일직선상으로 걸어도 될 길을 굳이 빙 돌았고, 괜히 나무를 두드리기도 하였다. 청난은 그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사존께서 이미 알고 계신가 보네요.”

“기문진법이겠지. 수사들이 영력을 불어넣는 술진과 달리 자연물로 방위를 점하여 사용하는 진법. 서재가 제법 잘 감추어져 있구나. 아마 형님께서 하신 것이겠지? 서재에 중한 게 많은가 보구나.”

“형님… 아, 네. 맞아요. 하산하신 선조께서 후인을 위해 누구나 사용 가능하도록 만드셨어요.”

“그럼 지금 네가 무얼 하고 있는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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