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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99)화 (99/111)

#99

대신선이 충격받은 와중에도 백매와 청난의 화기애애한 대화는 이어졌다. 백매의 고개는 저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를 비롯한 마음은 청난에게 가 있었다. 대신선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 그… 제발, 나 좀 보시오……!”

“보고 있잖소.”

백매는 정말 공과 사의 나눔이 확실했다. 장군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칼같음이었다. 홍조를 띠던 낯은 사라지고, 차가운 냉기가 그 위에 깃들었다. 지금 막 적군의 목을 치고 왔다 하여도 믿을 것 같았다.

이대로는 그들의 분위기에 휘말려 저도 모르게 ‘안녕-’ 하고 인사하고 떠나 버릴 것 같았다. 대신선은 황당한 얼굴색을 감추고는 본론을 이었다.

“백매선, 그대의 스승이 내 사문을 파멸시킨 자를 비호하고 있소. 이는 천륜에 어긋나는 것이오. 하늘의 질서를 지키는 선군이 왔으니, 돌이킬 기회를 주겠소.”

백매가 시선을 돌려 진영을 바라보았다. 대신선을 볼 때보단 나았지만, 여전히 냉기가 가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세상은 청난과 그 외로 이분된 듯하다고 진영은 생각했다.

진영은 숨이 턱 막혀 말을 내뱉지 못했다. 대신 빠르게 고개를 도리질하였다. 백매는 그 모습을 보더니 다시 휙 돌려 대신선과 마주하였다.

“아니라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장 의심되는 자요.”

백매의 낯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거 아오? 당신의 사문에서 난 자가 내 사문을 멸문시켰소. 이것은 의심 따위가 아니오. 내 선단도 걸지. 그러니.”

백매가 말을 잠시 끊었다. 이 잠깐의 순간 동안, 진영은 자신이 한겨울 산꼭대기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 냉기에는 그 누가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백매가 이를 부득 갈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시간 버리는 짓 하지 말고 당장 한연화나 쫓아!”

그의 분노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떠한 것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선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여느 때처럼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망언이오!”

“이것이 망언이라면 그대의 의심은 망상이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을 줄줄이 나열해 주길 원하오? 그대는 무얼 보았소. 설마 연화문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한다 하진 않을 것 아니오.”

알고 말하는 것일까. 그 말은 대신선을 강하게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오래 묵은 만큼 화법도 뛰어났다.

“백매선도 수백 년을 살아 알지 않소. 그 많은 사건 중 완벽한 증거가 있던 게 얼마나 있었소. 모든 것은 맥락으로 파악하여야 마땅한 법일진대, 어찌 단편적인 것으로 맞다 확신하며, 또 어찌 단편적인 것으로 아니라 확신할 수 있겠소?”

대신선은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막말을 하진 않았다. 그의 말은 이치에 어긋난다 할 수 없었다. 백매가 다시 그의 말을 받았다.

“사건에 맥이 있다면, 생에도 맥이 있지 않지 아니한가. 이 어린 생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게.”

“연화문에도 수많은 어린 맥들이 있었소. 하나의 생으로 그들의 넋을 달랠 수 있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소?”

서로 다른 입장이 대치했다. 청난이 생자를 위한다면, 대신선은 제 신자들을 위했다. 설사 죽은 자라 하더라도. 청난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악인이라 규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려웠다.

오래된 신선과 가장 추앙받는 신선의 대립은 이 땅에 크나큰 부담이 될 터였다.

청난의 차가운 시선이 대립하는 두 신선을 오갔을 때, 백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부탁에도 안 되겠소?”

“백매선께서 부탁이라는 말도 아는 줄 몰랐구려.”

“수야각 소각주였는데 몰랐을 리가 없지 않은가.”

“모르는 줄 알았지.”

“신선이 되고는 처음이긴 하네.”

“저 청년이 그리도 중한가?”

“아니. 하지만 사존이 중하오. 그가 아낀다면 그것이 어떤 한낱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하여도 아껴 주고 싶은 것이 제자의 마음이지.”

“보통의 제자들은 그렇게까지 안 한다네.”

“……이 일은 대봉인이 파괴된 것과 연관되었다 생각되오. 그러면 내 일이 아니겠소? 내 일을 마무리하고 직접 선군들의 마음을 달래러 가리다.”

“이렇게 말을 길게 할 수 있는지도 몰랐소.”

“…….”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처럼 살벌하던 대화는 어느새 우습게 변했다. 백매가 한발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대신선 또한 한발 물러났다.

‘형제 같네.’

청난과 주국도 종종 저러곤 했었다. 생각이 서로 다를 땐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꽤나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눈치 좋은 주 사질이 차를 끓여 왔다. 그러면 분위기가 차츰 진정되었었다.

아무리 백매가 남과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 하여도, 어쨌든 저들은 삼백 년 동안 신선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지내 왔다. 그로 인해 쌓인 정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못 할 무언가겠지. 분명 대신선은 자신이 모르는 백매의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청난은 속눈썹이 낮게 내려앉았다. 조금 심통 난 것처럼도 보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백매는 여태 대신선을 상대하느라 청난을 보지 못했다. 대신 진영이 그 모습을 포착하고 해결된 의문 대신 또 다른 물음표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알겠소. 내 이번엔 물러나리다. 대신! 내 연락 좀 받으시오. 진전을 알아야 다른 이들을 달래거나 하지 않겠소?”

“알겠어.”

백매는 끝까지 무덤덤한 표정에서 바뀌지 않았다. 대신선을 그 모습을 보고 손사래 치며 곧장 몸을 돌려 떠나려 하였다.

“아, 선사가 아직 인간인 건 알지만, 어쨌든 도가에 몸담지 않았소? 백매선을 생각해서 자중하게.”

“예?”

대신선은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불길처럼 화르륵 타며 사라졌다.

청난이 엉덩이를 바닥에 던지며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사존,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아. 괜찮아. 긴장이 풀려 그런지 힘이 안 들어가는구나.”

“그럼 제자가…….”

백매는 무릎을 굽혀 앉아 청난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는 청난을 안을 듯 양손을 벌렸다. 그런데 갑자기 손을 거두더니 고개까지 휙 돌려 버렸다.

“매아?”

“아니, 사존… 그것이…….”

“응?”

청난의 부름에도 백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먼 곳으로 가려는 듯 보였다. 고개만. 그 모습이 약 먹기 싫어하는 개를 생각나게 하였다. 그 모습이 귀여웠지만, 웃을 순 없었다.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을 피하는데 아무런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난의 눈썹이 축 처졌다.

이 상황에서 가장 불행한 자를 뽑는다면, 분명 그들 사이에 낀 진영일 것이다. 진영은 양방향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선군께서 저러시는 건 사부님 용모 때문인 것 같네요. 원래도 몸이 약하셨잖아요. 이러다 고뿔에 드실까 걱정됩니다.”

진영은 제대로 청난을 스승처럼 모셨다. 하지만 청난은 그 모습에 감격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진영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가슴팍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가슴을 보았다.

맨가슴을.

옷깃은 벌어져 거의 배꼽까지 보일 지경이었고, 허리끈은 매듭이 풀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머리에 묶여 있어야 할 물색의 머리 끈은 떨어져 옷깃 사이에 아슬아슬 걸쳐져 있었다.

청난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확실히 청난은 껴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전생 때에는 입장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덕지덕지 입었지만 현생 동안에는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 날이 추워도 중의 이상을 걸치려 하지 않아 청운이 한숨을 낳곤 하였다.

하지만 얇게 입고 싶은 것이지,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고 싶은 건 아니다. 그는 어쨌든 명문가의 자제였다. 가슴팍을 내놓고 다니는 건 꿈에서라도 해 본 적이 없었다.

“…….”

“급히 달려오시느라 그러신 거죠? 덕분에 제가 살았어요. 이 구명지은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아니… 그럴 거 없다. 말한 대로 난 형님의 은혜를 갚는 것뿐이니.”

진영은 섬세한 손길로 청난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 퍽 익숙해 보였다. 청난은 자신의 피부가 온전히 가려지고서야 얼떨떨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선군, 이제 보셔도 괜찮아요.”

“하아……. 그들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이들이 아니라 다행이구나.”

얼마나 이상한 자처럼 보였을까. 십 년 전 선계에 가 얼굴도장을 찍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말 한마디 나눠 주지 않았을 것이다.

백매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진영은 그에게 머리 끈을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머리까지 묶어 주기는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사존, 잠시만요.”

“응.”

백매가 머리 끈을 들고 청난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그의 뒤에서가 아니라 앞에 앉은 그 자리에서였다. 그 탓에 청난은 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 모양새가 되었다.

두근거린다거나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선도 심장이 뛰는구나.’

다른 사람의 심장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으니,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지, 느리게 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치 약초를 배합한 차를 마신 것처럼 편안해졌다. 딱히 무엇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콩닥거리는 그의 심장 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머리를 다 묶은 백매가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청난은 귀공자 같은 깔끔한 용모를 되찾았다.

진영이 또다시 청난과 백매를 번갈아 보았다. 청난은 백매와 대화 중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진영의 모습을 보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기에 청난은 백매를 대하듯 ‘말해 보거라’라며 운을 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청난의 입술이 떨어지기도 전에 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정말로 전 사부님의 제자가 되나요?”

“오, 싫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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