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97)화 (97/111)

#97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책사! 제가 안 그랬어요!”

진영은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듯 청난의 다리를 붙잡았다. 청난은 하마터면 그 힘에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알아요, 알아. 그러니까… 좀 놔 주세요, 공자. 제가…….”

청난은 차마 대치하고 있는 상대 앞에서 ‘몸이 약해 쓰러지겠어요’라고 말하지 못하였다. 다행히 진영은 눈치 좋게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청난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 다시 말에 무게를 쥐었다.

“무언가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방금 보았다시피, 이 아이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럴 힘이 있겠습니까?”

“진 선사, 당신이기에 참는 거요. 당신의 사문이 멸문되었다면 그리 서 있을 수 있었겠소?”

“그럼요. 이미 멸문하지 않았습니까. 그 슬픔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나, 이 아이는 무고합니다. 그럼에도 선군들께서 이 아이를 벌해야겠다면, 감히 제가 대신 그 죄를 갚겠습니다.”

“허어, 과히 오만하오. 선사가 그럴 능력이 되오? 착각 마시게. 그대의 내력과 백매선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게 가당키나 하겠소?”

“압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유일무이한 환생자이며, 제 제자는 그 백매선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자의 명성에 기대는 저마저도 하지 못한 일을 이 청년이 해냈겠습니까.”

“선사, 적대적이시오.”

“그래 보입니까?”

“그렇소.”

양측에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진영은 분위기에 질식되어 사망한 사람이 있었는지, 이제껏 읽었던 옛이야기 책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청난이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짓는, 호감을 절로 사는 미소였다.

“하하, 오해십니다. 제가 왜 제 아이의 동료분을 적대하겠습니까.”

‘아이의 동료’라는 말은 어쩐지 하급자를 지칭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였고 또 청난의 목소리가 몹시 나긋했기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낸다면 소인배나 하는 화풀이처럼 보일 듯했다.

대신선이 대답하지 않고 있자 그의 뒤에 있던 철선을 쥔 선사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말했다.

“선사, 아이에게 몇 가지 묻고자 할 뿐인데, 비켜 주시면 아니 되시겠습니까?”

청난은 옆으로 움직이며 진영의 몸을 가렸다. 그 행동에 담긴 뜻은 명백했다.

“이 아이가 한 짓이 아닙니다.”

“그걸 선사께서 어찌 아십니까?”

“인계의 일을 맡기로 한 것이 제 제자이지 않습니까. 그가 수행하는 내내 저와 함께 행동했습니다. 그러니 잘 알 수밖에요.”

“흠……. 해류진군은 어디 계십니까?”

“심부름 보냈습니다.”

“허어… 신선을 심부름꾼으로 썼다고?”

가장 뒤에 있던 신선이 허탈하게 웃었다. 청난은 그저 미소를 유지한 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진영은 그에게 이토록 능글맞은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선? 후손? 삼백 년?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진영은 불과 반 시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눈을 뜨니 낯선 곳에 있었다. 진영의 마지막 기억은 자신의 집이었다.

스승님께서 방문한다며 전서구를 보내오셨기에 급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였었다. 그분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셨으니, 언제 문을 두드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뭐든 마시거나 먹는 걸 본 적이 없었지만, 손님에게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순 없었으니, 무엇을 내는 게 좋을지 고르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방문을 열었고, 눈을 뜨니 모르는 곳에 있었다.

문제는 장소뿐만이 아니었다. 장소만 바뀌었다면 납치라도 당했나 했을 터. 문제는 눈을 뜬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책장 사이에 끼어 있었다.

“…….”

자기 몸집은 생각 안 하고 건물 틈 사이로 들어가려는 뚱뚱한 고양이처럼 말이다.

“으으읏샤!”

진영은 엉덩이를 뒤로 쭈욱 내밀고는 옷을 벗듯이 끼어 버린 상체를 잡아 꺼냈다. 무사히 나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틈이 좁은 탓에 손등이 쓸려 피가 났다. 흐를 정도는 아니었기에 진영은 후 입바람을 한번 불고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이 집이었으면 아프다고 아버지나 경이 누나를 찾았겠지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럴 정도로 철이 없진 않았다.

‘의약방… 인가?’

코가 맹맹해질 정도로 강한 풀 냄새가 아니더라도, 붕대나 금창약 같은 연고가 사방에 널려 있으니 어떻게 보아도 여기는 환자를 돌보는 곳이었다.

‘갑자기 혼절이라도 했나. 하지만… 이런 양식의 건물은 아랑 마을엔 없어.’

이렇게 천장을 높게 짓는 건축법이 최근 수도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더구나 관리가 잘되어 막 지은 듯 깨끗하였다.

진영은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불도 하나 없어 어두운 탓에 진영은 근처에 있는 등불을 들어 심지를 비볐다.

“끄으으응……. 됐다!”

맨손으로 심지를 비볐을 뿐인데, 그곳에 불이 붙었다!

이것은 자신의 영력을 형태화한 것으로, 비효율적이었으나 화영근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익힐 수 있는 술법이기도 했다.

진영은 제대로 된 술법을 배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스승의 주사가 ‘가르침’이었다. 화수 쌍영근인 진영에게 토 속성 술법을 알려 주질 않나, 금단을 맺은 이들만 할 법한 술법을 강요하지 않나. 하여튼 참으로 기가 막힌 가르침을 받았었다.

대부분은 익히지 못했지만, 이런 간단한 술법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없었더라면 스승이 술에 취할 때마다 어떻게든 재워 버리고 지붕 위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게 불을 켠 등불을 들고 복도를 걸었다. 아무도 없는 것인지, 모두 잠든 것인지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러다 복도 끝이 보였다. 어두운 복도 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 탓에 이질적으로 보였다.

진영이 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쏴아아.

밤하늘의 싸늘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진영의 목덜미로 스쳐 지나갔다.

“으으으……!”

진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곳 또한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이곳이 어딜까. 그리 생각하며 두 걸음을 걸었을 때였다.

“네놈이구나!”

어디선가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진영은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앞을 보고, 또 양옆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귀, 귀신? 아니, 마귀?’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꼭 바닥에 붙어 있으란 법이 없잖아?

진영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고장 난 태엽처럼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

그곳에는 척 봐도 분노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남성이 있었다. 눈을 마주치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주치니 그가 내뿜는 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죽는다!’

제 본능이 그렇게 외쳤다.

땅을 밟는 것이 팔인지 다리인지도 분간 안 될 정도로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산을 지나 건물이 들쭉날쭉한 마을에까지 다다랐다. 진영은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제 뒤통수를 찌르는 살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잠시 돌아보니, 어느새 저를 쫓는 이는 셋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마실 나가는 듯 그 걸음걸이가 여유로웠다. 그럼에도 그들의 한 걸음이 진영의 다섯 뜀박질만 하여 도저히 틈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달리다 청난과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진영은 저를 쫓아온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청난과의 대화를 듣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저를 쫓아온 이유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멸문? 내가 무슨 수로 제일 문파를 멸문시켜?

정말 억울했지만, 저들의 사이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제 앞에 있는 청난이 자신이 아는 친우가 맞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저들의 대화를 정리하면, 청난은 삼백 년 전에 살았던 자신의 선조가 아닌가. 그럼 신선 아닌가? 하지만 청난이 아랑 마을에서 자랐다는 것은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알았다. 어떤 할 일 없는 신선이 인간 마을에 죽치고 살겠는가.

진영은 선조를 닮아 표정을 숨기는 것엔 재주가 없었다. 하지만 청난은 뒤돌아 그를 살필 겨를이 없으니, 제 후손이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철선을 쥔 신선이 청난을 달래듯 말하였다.

“선사,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지 마세요. 대인께서도 반은 신선이라 하실 수 있는데, 속세의 정 따위로 동료끼리 의가 상한다면 이보다 큰 손해가 어디 있겠나요.”

“맞습니다. 저흰 선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어때요, 오해를 풀고 저희와 회포를 푸는 것이.”

뒤에 있던 신선이 재빠르게 맞장구쳤다. 그들의 태도는 너무 가벼웠다. 마치 오늘 나온 간식을 누가 먹을 건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청난이 코웃음 쳤다.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에도 조금씩 짜증이 서렸다.

“선군들께서도 속세의 정으로 내려오신 게 아니셨습니까. 다들 연화문 출신이셨잖습니까.”

청난은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심지어 전에 만나 본 대신선마저도 어떤 영근을 가지고 있는지, 인계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몰랐다. 알 바 아니었으니까. 고로 이것은 떠보기에 불과했다. 아니라면 비웃음 한번 당하고 말겠지만, 정답이라면 이 순간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답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답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대신선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아니오. 이건 사사로운 정이라 할 수 없소. 연화문이 어떤 곳이오? 이 일에 선계의 유지가 달렸으니 응당 꼼꼼히 살펴야 하지 않겠소?”

연화문 출신임을 부정하진 않았다. 청난은 비죽이며 웃었다.

“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수야각이 멸문하였을 때도 이처럼 나서 주셨겠습니다. 그들의 선조로서 감사 인사 드립니다.”

말과 달리 청난의 목과 등은 뻣뻣했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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