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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91)화 (91/111)

#91

연기의 효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기가 구 안을 채워 나갈수록 백매는 몸속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영맥이 제자리를 잃고 마구잡이로 섞여 드는 것 같았다.

땅을 밟고 있는 건지, 하늘을 밟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누워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백매는 오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 것이 진짜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다 청량함이 무뎌진 감각을 일깨웠다.

백매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면 움직였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뒤엉켰는데, 오직 그 청량함만이 길이 되어 주었다.

백매는 곧 누군가를 잡았다. 그 순간, 깊은 바닷가에서 한순간에 들어 올려진 것처럼, 오감이 트이며 저를 붙잡은 손이 보였다.

“사존.”

“괜찮느냐?”

“네… 사존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헤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존께선 면역이 있으셨던 건가요?”

청난은 일어나 백매의 손을 끌어당기며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아니. 하지만 네 신음 소리가 들리는데, 스승이 응당 일어나야 되지 않겠느냐.”

“제자가 너무 나약…….”

“하지 않다. 나약하지 않아. 스승이 잘못했다. 어째 놀리지도 못하겠구나. 그만 잊고 해야 할 일을 하러 가자꾸나.”

백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한연화는 보이지 않았으며, 붉은 연기는 여전히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그 농도가 옅었으며, 또한…….

“퍼지고 있네요.”

“그래. 아무래도 이것이 영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더구나. 이렇게 흩어져서는 제 효능을 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미 흩트려 놓고 간 것을 치료하는 데엔 시일이 좀 걸리겠어.”

“한 공자는 무슨 속셈일까요? 저희를 해치려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 해치려고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었겠느냐.”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사존께서 당하셨을 리 없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또 실언을 했어. 이제 한 공자를 찾으러 가자꾸나. 멀리 간 게 아니길 바라야지.”

청난은 검집을 잡았다. 평소대로라면 그다음으로 영기를 운용하며 검을 빼내 어검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검은 한없이 조용했다.

“……아.”

영기를 운용한다는 건 기가 영맥 사이를 순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 영맥이 어스러졌으니, 지금은 처음 수련을 시작한 입문생과 다를 바 없게 된 것이다. 청난은 처음엔 당황하다가 곧 파하핫 웃었다.

“생각보다 나는 영력에 의존하며 지내 왔구나.”

“사존 그리 쉽게 말하지 마세요. 이러다 악귀라도 찾아오면 어찌합니까.”

“내가 영력이 없지, 손발이 없느냐. 내겐 여전히 검이 있는데, 무엇이든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느냐.”

청난은 손으로 검을 잡아 뽑았다. 여전히 그의 검은 날카로웠다. 그가 반대쪽 손을 뻗자 백매가 그 손을 잡았다.

“저도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습니다.”

“안다. 평소에 있던 것들이 없으니 적적해 그런다. 내 귀여운 제자가 스승을 달래 주면 어떻겠느냐?”

청난이 이리 말하니 백매가 어찌 거부를 하겠는가. 백매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의 귀 끝이 붉어졌으나 청난은 미처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올 때에는 어검을 했었으니 이토록 높고 넓은 산인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기에 길이 나 있기는커녕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당장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어떤 땅은 단단한가 싶더니, 어떤 땅은 갑자기 꺼져 버리니 험난하기로는 손꼽힐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 산에 있는 사람 셋은 모두가 무인이었기에 산길에 발목이 잡힐 일은 없었다. 백매는 청난과 단둘이 손을 맞잡고 걸으니 마치 산보를 나온 것 같았다. 날은 또 어찌나 좋은지, 달빛은 얼마나 밝은지. 이대로 이 손을 잡고 동굴에라도 가 한밤을 지새우고 싶었다.

“몹시 고요하구나.”

백매는 청난이 단순한 감상을 말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실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이상한 건가요? 애당초 이곳은 사람이 없어 온 것이니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할 테고, 동물은 감히 사존께… 아.”

“맞아.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산 것이 아니지만.”

산에 무엇도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길이 없으면 사람이 없을 테고, 먹을 것이 없다면 동물은 떠날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귀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사람이 귀신을 피하듯 귀신 중에서도 사람을 피하는 개체는 많았다. 그런 혼령들에게 이런 무인 산은 훌륭한 거처였다.

백매의 수행 수준은 탁월했기에 평범한 귀신들은 감히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게 늦고야 말았다. 지금의 자신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으니, 귀괴요마가 알짱거릴 만하지 않은가?

그럼 여기 있어야 할 것들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연화는 어느새 산 중턱까지 내려왔다.

그가 사용했던 법기는 완벽히 다루기엔 버거운 물건이라 결국 자신마저 영향을 받고 말았다. 연화는 어쩔 수 없이 제 발로 뛰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돌아갈 곳도 없었다.

연화는 품 안에 넣었던 구슬을 꺼냈다. 그 붉은 구슬에는 푸른빛이 얼핏 감돌았다. 그것은 청난과 백매를 감쌌던 붉은 연기였으며, 청난의 영기가 담겨 있었다.

지금의 청난은 영력이 없고, 이곳엔 미약하나마 그의 영기가 있다. 그러니 천겁이 무슨 수로 제 주인을 찾겠는가.

연화는 구슬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우선 신선이 되고, 그 후에 사죄드리면 돼. 이제까지처럼 이해해 주시겠지.’

연화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마침 벼락이 떨어졌다. 그것은 주인을 찾기라도 하는 것인지 점점 간격이 좁아져 갔다.

‘천겁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때까지만 두 사람에게 안 들키면…….’

연화는 발 빠르게 내려가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무성히 내려온 넝쿨 사이로 얼핏 보이는 동굴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안은 깊진 않았으나, 생각보다 넓었고, 넝쿨을 잘 정리한다면 밖에서는 바위로 보일 것 같았다. 연화는 돌아다니다 발각될 바에는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동굴 안은 꽤나 서늘하였다. 어른들이 연화의 몸에 걸어 놓은 온갖 장신구들은 모조리 법기였으며, 연화문이란 이름에 걸맞게 화기를 띤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연화는 동굴 벽에 기대어 앉아 제 귀에 걸려 있는 귀걸이를 떼어 냈다.

멀리서 보면 단조로운 금빛 구의 형태인데, 가까이서 본다면 오밀조밀 새겨진 문양을 볼 수 있었다.

“…….”

연화는 말없이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동굴의 안쪽으로 던져 버렸다.

타탓, 탓, 탓.

그것이 땅에 부딪힐 때마다 잔불이 튀었다. 그뿐이었다.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도구는 아무리 고귀한 것이어도 잔불이나 튀고 말 뿐이다.

그러다 문득 동굴 안쪽에서부터 한풍이 불어왔다. 안쪽이 막혀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는데, 대체 무슨 구멍에서 바람이 불어왔단 말인가.

연화는 주변을 경계하며 일어났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했다.

연화는 검을 뽑아 들어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서늘한 한기가 코끝에 닿은 순간, 검을 날렸다!

팍!

무언가가 동굴 벽에 부딪히며 자갈이 굴러떨어졌다.

연화는 멈추지 않았다.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수평으로 베어 냈다. 그 감각은 결코 허공을 벤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있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 손목을 잡았다. 연화는 땅을 박차고 공중을 돌아, 발등으로 그것을 걷어찼다.

퍼버벅! 둔탁한 소리가 그것이 땅을 굴러 벽에 처박혔음을 알려 주었다.

연화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적과의 사투를 계속했다. 그렇게 검이 세 번쯤 공중을 날았을 때, 연화는 제 머리카락에 걸려 있던 장신구 중 한 개를 뽑아 동굴 안쪽을 향해 던졌다.

장신구가 바닥에 닿자 순식간에 강한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주변을 밝혀 주어 그제야 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불에 말려든 것은 다섯의 귀신들이었다. 그리고 연화는 그들 뒤로 빼곡하게 차 있는 수많은 눈들을 보았다.

“……!”

적어도 스물의 귀가 연화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이건 피해야 해!’

개체 하나하나의 힘은 약했으나 수가 너무 많았다. 연화는 장신구 두어 개를 던져 시선을 끌고는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단검을 던지자 즉시 날아가 방해되는 넝쿨을 잘라 내었다.

그 순간 동굴 밖의 달빛이 비치며 시야가 환히 밝아졌다. 연화는 땅을 끌며 걸음을 급히 멈추었다.

-그르르르르…….

달빛이 보여 준 것은 사람보다 거대한 수십 마리의 짐승이었다. 큰 상아와 거대한 입들. 그것은 이것이 평범한 짐승이 아님을 시사하였다.

뒤에서는 귀가, 앞에서는 괴가 포위하고 있는 데다가 자신은 제 꾀에 말려들어 영력을 잃은 상황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억지로 쥐어진 장신구 몇 개와 검뿐.

그리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화는 검을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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