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90)화 (90/111)

#90

“어이쿠, 조심하거라. 무엇에 그리 당황한 것이더냐?”

청난의 도움으로 중심을 잡은 백매는 여전히 눈 둘 곳을 찾지 못하였다. 그가 시선을 마주치기는커녕 고정도 하지 못한 채 사방을 헤매자 청난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다시 살폈다.

“아, 그래. 다른 사람 몸을 싫어했지 참. 스승은 먼저 나가 볼 테니 천천히 씻고 오거라.”

“아, 아니요! 아니에요! 제자가 어찌…….”

“나는 다 씻었으니 괜찮아.”

청난이 백매를 스치는 순간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 것 같았다. 그는 이번에도 육지에서 걷는 것처럼 방해 없이 앞으로 곧장 나아갔다. 그는 금방 물 위로 올라섰다. 그의 뒷모습 역시 물에 흠뻑 젖었으니, 백매는 차마 그를 볼 수도, 부를 수도 없어 이번에도 오해를 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다른 사람 몸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아니, 싫어하지만, 사존은 싫지 않단 말이에요…….’

백매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고 싶었지만, 수면이 그의 허리를 때리고 있었으니, 아가미가 없는 인간은 틀림없이 숨이 막히고 말 것이었다.

백매는 더는 목욕할 생각이 들지 않아 저벅저벅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달은 밝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문득 마른하늘에 내리친 벼락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번쩍 강렬한 빛이 비쳤다 사라졌다.

백매는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눈을 비볐다. 그러던 순간 한 번 더 반짝였다. 콰광! 이번에는 굉음까지 동반하였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번개가 치기 시작한 것이다!

백매는 서둘러 바위에서 내려와 복도를 달렸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며 실내가 지저분해졌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청난의 방으로 달려가던 백매는 마침 막 나오려던 청난과 마주쳤다.

“사존……!”

“그래, 보았다. 우선 나가…….”

청난은 상대와 마주 보며 대화해야 한다는 예절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자신의 애제자와 대화를 하기 위해 그와 마주 보았다. 다만, 얼굴을 바라보니 가슴이 보이고, 가슴을 보니 벗은 상체가 보였을 뿐이었다.

아무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선자라 할지라도 이런 모양새는 과했다.

‘고뿔에 걸리면 어떡하려고.’

물론 그럴 리 없었다. 백매와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고뿔이 걸린다면 더 이상 수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청난은 자신이 떠나면 백매는 어떻게 지내며 누가 그를 챙겨 주기는 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느라 피곤함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나와 버렸던 차였으니, 그런 건 마땅히 생각하지 못했다.

청난은 마침 들고나왔던 망토를 그의 어깨 위에 둘러 주었다.

“……너는 우선 옷을 입으려무나. 스승은 나가 있으마.”

청난은 그렇게 알몸 상태인 백매 위에 망토를 걸쳐 준 채 자리를 떴다.

백매는 이미 그가 말을 다 못 이었을 때부터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얼음같이 얼어붙어 있었다. 이젠 그가 자리를 떠나 변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백매는 이것이 자신의 천겁인 건 아닐지 크게 한탄했다.

평소의 백매라면 자책하며 구석에 처박혔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백매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서자 청난이 먼저 나와 있었다. 백매는 그의 뒤로 다가가 어깨 위에 망토를 덮어 주었다.

“고뿔에 걸리실 거예요.”

청난은 백매와 눈을 맞대고 살풋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겠구나.”

바깥 풍경은 간혹 번개가 내리친다는 것을 빼고는 무척이나 평온했다. 그 탓에 저 번개가 누가 부린 환혹술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나, 땅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탄내는 그것이 실제라는 것을 되짚어 주었다.

“저걸 맞고도 살아남는 사람이 정말 있었나요……?”

“아니, 없지. 생존한 존재는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을 테니. 함께 있다간 누구 하나는 말려든다. 따로 있자꾸나.”

청난의 발이 공중을 내딛으려던 찰나에 백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청난이 뒤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렇게 마주 본 백매의 표정에서 불안함을 보게 된 건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사존, 저희 오늘이 마지막인가요?”

청난은 바로 ‘그렇겠지.’라고 대답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쩐지 꺼내면 안 될 말을 입에 담는 것 같아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으려면, 누군가 휘말리는 일은 없어야겠지?”

청난이 맞잡은 손을 풀었다. 백매도 그의 손을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백매가 수야각에 온 지 십 년. 그동안 최선을 다해 왔다. 많은 이들은 백매의 업적을 입에 담았으며 명실상부 뛰어난 수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존을 따라잡기에는 충분하지 못했고, 이별할 시간이 어느새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을 넘보고 말았구나.’

백매는 그를 잡았던 손을 내리고 떠나려는 스승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콰광!

갑자기 등 뒤가 번쩍였다. 그 순간, 백매는 청난에게 달려가 그를 와락 안아 버리고 말았다. 백매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다급하게 손을 풀었다.

“헉, 죄, 죄송합니다! 놀라서 그만 결례를…….”

그러자 청난이 획 뒤돌아보았다. 그는 마치 화난 사람처럼 다급하게 팔을 휘둘러 백매의 가슴을 때렸다. 백매는 청난이 갑자기 저를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탓에 그대로 넘어지고야 말았다. 백매가 그를 부르려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피슝-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 소리의 근원은 백매가 서 있던 자리를 통과하며 강하게 땅에 박혔다.

그것은 어떻게 보아도 화살이었다!

“누구냐!”

청난이 소리를 질렀다. 다만, 그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탓에 이미 화살이 날아온 경로로 달려 나간 후였다.

마침 오늘은 달빛이 밝았기에, 백매는 지붕 위에서 그의 손에 잡힌 인물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한연화 공자, 한 문주가 시킨 건가요?”

청난은 빠르게 그를 제압했다. 청난은 저보다 어린 이들에게 유약하였지만, 감히 애제자를 공격한 자를 봐줄 만큼 무르진 않았다. 다만, 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그를 짓누르는 행동에 비해 말투는 부드러웠다.

“당신의 사정을 봐 드리겠습니다. 말해 보세요. 매아를 노린 건가요? 아니면 저?”

연화는 입술을 짓누르며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청난은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연화가 자신들에게 가졌던 감정을 모르지 않았기에, 또한 이 아이를 이토록 내몬 것은 연화문이기 전에 선문의 어른들이었기에. 저 또한 그 어른 중 한 명이었으니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냐? 내가 백매를 아끼는 건 너도 알 텐데.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은사님은 정도를 행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당신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정녕 두려운 것은 잘못된 이들에게 무릎 꿇어야 할 모멸감이지요.”

“서로 다른 것을 타고났다는 것이 안타깝구나.”

연화는 다시 입을 닫았다. 청난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를 제압한 채 땅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여전히 번개는 마른하늘을 놀라게 하고 있었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곧 청난은 번개를 맞고 비승을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 하여도 살아서 돌아가진 못하겠지. 그러면 백매 혼자 연화를 압송할 텐데, 무어라 말하여야 두 문파 간의 전쟁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매는 연화를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보였다.

‘처음 사귄 친구였을 테니, 많이 놀랐겠지.’

청난은 착잡했다. 백매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곧 입을 열었다.

“사존, 이상합니다. 제가 화살 하나에 다칠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화살을 쏘면 자신의 위치가 들키니 다음 행동을 하기에 좋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어째서…….”

백매는 연화가 이곳에 없는 듯 본인 앞에서 그의 심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청난은 백매가 노려졌단 사실에 화가 나, 중요한 사실을 잊고 말았었다.

한연화가 유명해진 건 그의 책략 덕택이었다.

청난이 깨달았을 때는 한발 늦고야 말았다. 등 뒤로 제압된 연화의 손에서부터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날려 땅에 박힌 화살촉을 중심으로 그려진 원 반경 내의 곳곳에서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사존, 이건…….”

“과연, 술진을 쓰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건가.”

청난이 주변을 경계하는 틈을 노려 한연화가 그의 턱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청난이 몸을 기울이며 손쉽게 피하자 연화는 또다시 틈을 노려 반대쪽 발로 그의 복부를 노렸다.

이어진 공격에 청난은 그만 그를 잡았던 손을 놓고야 말았다. 애당초 그를 안타깝게 여기고 가볍게 포박한 탓이었다.

뒤로 크게 도약한 한연화가 손의 결박을 풀어내곤 손을 들어 보였다. 그가 감춘 것은 물건이 아닌 그의 손 그 자체였다. 그의 손바닥에는 둥근 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 나간 뒤집힌 진이 그려져 있었다.

“숨기고 접근하다 들킬 염려를 만드는 것보다, 내가 직접 데려오게 만들었군요. 역시 한 공자입니다.”

“제겐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자리는 이 어린 제자에게 양보해 주세요, 사존.”

“너……!”

백매가 발끈해 달려가려 했지만 붉은 연기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변을 가득 채운 붉은 연기는 연화의 손짓에 따라 운용되었다. 그것은 주변을 빙 두른 원의 형태를 갖추더니 곧 높게 솟으며 구의 형태가 되었다. 청난과 백매, 그리고 연화까지 모두 그 구 안에 갇힌 모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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