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86)화 (86/111)

#86

“‘반신’이라고? 그 말만 들어서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이 떠오르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려 주겠니?”

“맞아요! 반신반인!”

청난은 또다시 눈을 끔뻑였다.

전생의 진청난의 가문인 진가 또한 널리 유명세를 떨친 명문이었다. 오죽하면 부모님의 생신마다 수야각으로 선물이 들어왔을까. 삼백 년 동안 어쨌기에 부모가 바뀌어 실은 제가 반신반인이라는 소리가 나왔단 말인가.

“아쉽게도 난 신이 아니란다. 어쩌다 그리 전승이 된 걸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른들이 그렇게 불러요.”

“그렇구나. 알았다. 내가 너흴 너무 붙잡았구나. 좋은 꿈 꾸거라.”

“네!”

“네!”

아이들은 다시금 짐을 이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청난도 발걸음을 옮겼다.

청난이 처소로 돌아가자 그곳에는 청난을 바라보고 서 있는 백매가 있었다. 그가 돌아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애당초 다시 잘 것도 아닌데 이곳으로 발을 돌린 이유도 딱히 없었다.

아무리 스스로 변호해 보아도, 그는 제 제자가 보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사존.”

백매가 뛰쳐나갔던 그때의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시종 소년과 나눈 대화 때문일까. 청난은 그에게 말을 건네기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전처럼 말을 건네기 어려웠다. 청난이 답지 않게 시선을 휘저으며 그의 옆에 섰다.

“춥지 않으냐. 감기 걸려.”

그가 감기 따위 걸릴 리 없다는 건 알았다. 그저 무안함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백매는 먼저 화제를 이끄는 재주는 없었으니 그가 말하지 않는다면 정적 속에서 육박 칠일을 보낼지도 몰랐다.

“아, 제자는 추위를 타지 않아 괜찮습니다. 하지만 사존께서 고뿔에 걸리실까 염려됩니다.”

백매는 자신의 피풍의를 벗어 청난의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그의 힘없는 어깨에서 흘러내릴까 목 앞의 끈을 단단히 여며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탓에 두 사람은 가까이서 마주 보게 되었다. 청난은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지만, 백매는 또다시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의 이러한 거절은 분명 청난의 탓이었다. 그러니 어찌 이제 와 제 감정을 토로할까. 상처를 주는 건 이미 충분했다.

“그리고… 제자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청난은 그의 말이 거대한 흐름처럼 느껴졌다. 윗물에서 띄운 것은 아랫물에 자연히 흘러들어 오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청난은 그가 드디어 마음을 정리하였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여전히 제 눈길을 피하고 있잖은가.

계속 바라던 것인데, 청난은 가슴이 아려 왔다. 지금 어디론가 숨어 저 말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백매의 이어진 목소리가 그럴 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상한 곳이 있어요. 이곳 연화문에.”

“……아.”

청난은 지금 자신의 이마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그와 제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인의 생을 짊어진 자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니, 십 년 전 백매를 탓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물론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혼냈겠지만.

청난은 스스로를 혼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귀냐.”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 가서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 가자.”

청난이 앞섶을 정리하곤 오른발을 앞으로 뻗는 순간, 그는 단숨에 올라가는 부유감을 느꼈다. 그렇게 허리에서부터 당겨 올려진 청난은 곧 백매의 품에 안정적으로 착지하였다.

“…….”

지금까지 수없이 이래 왔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다급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기분은 평소 같지 못했다. 지금까진 어떻게 제자의 품 안에 안겨 다닐 생각을 했던 건지. 청난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백매의 경공이 멈춘 곳은 큰 처소의 앞이었다. 그곳은 그저 ‘처소’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거대했다. 청난은 전생에 이곳에 여러 차례 온 경험이 있었다. 연화문주를 보기 위해서. 이곳은 연화문주가 생활하는 곳이었다.

‘문주가 범인인가. 아니면 그도 당한 건가.’

차라리 전자가 나았다. 문주가 범인이면 문주만 제압하면 될 테지만, 문주가 당했다면 그보다 강할 상대의 무위는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한, 문주마저 당했다면, 다른 이들은…….

잠깐.

‘이곳에 오면서 누굴 만났던가? 숨소리가 들렸던가? 많은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코골이 따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청난은 한숨을 내뱉으며 답이 없을 생각을 떨쳐 냈다.

“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느냐?”

백매는 고개를 저었다.

“음? 네가 들어가지 못할 연유가 있더냐?”

“그게 아닙니다. 저는 사존을 모셔 오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요. 그 누구도 없었어요. 술진도 없었고요.”

“그럼에도 네가 날 데려온 이유는, 그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문제여서겠지.”

“네, 맞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다. 들어가자.”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난을 치더라도 울퉁불퉁한 곳보다 평평한 화지가 더 편한 법이다. 하물며 그보다 더욱 복잡한 술진을 그려 넣는 데, 텅 빈 건물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사존, 조심하세요.”

“걱정 말아라. 네가 내 곁에 있어 줄 게 아니냐.”

청난은 거침없이 나아가려다 잠깐 멈칫하였다. 말을 하고 나서 생각하니, 오해할 법한 말인 것 같았다.

“물론이에요, 사존. 저는 언제나, 언제까지고 사존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

그가 자신의 속을 알아차린 걸까? 아니, 그는 애당초 저리 말해 왔다. 자신이 모르는 척해 온 것이지.

“……그래.”

청난은 다시 발걸음을 놀렸다. 청난은 문을 열기 위해 문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음?”

그런데 이것이 열리지 않을 줄이야. 힘을 줄 때마다 덜컹거리는 것이, 술법으로 닫아 놓은 게 아니라 그저 뻑뻑해서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청난은 다시금 자신의 악력을 처참하게 깨달았다.

‘사람이 이렇게 힘이 없을 수도 있나?’

……있지.

본인이 그랬다. 백매가 없을 땐 툭하면 쩔쩔매곤 했건만, 함께 다니는 동안 그가 사소한 것까지 먼저 나서서 도와준 덕에 나약한 몸 상태를 까먹을 뻔했다.

청난이 무안하여 문에서 손을 떼려고 하였다. 그런데 하얗고 커다란 손이 청난의 손등을 덮었다. 그는 청난이 다치지 않게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우고는 그의 힘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쾅. 문이 부딪히며 진동과 함께 내부에서 인 먼지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청난은 서둘러 자신의 코와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그 탓에 백매가 무슨 표정을 지었었는지 볼 틈이 없었다. 코를 찌르는 쾨쾨한 냄새. 이 모든 것이 이곳이 버려진 폐가라고 말해 주었다.

‘폐가라고? 그럴 리 없지.’

연화문은 제일 문파다. 문주의 처소를 어찌 이렇게 방치하겠는가. 청난은 얼마 전 이곳에 들러 현 연화문주와 담소 아닌 담소를 나누었었다. 청난이 길치가 아닌 이상 이곳은 그곳과 같은 곳이 분명했다.

단 사흘 만에 이렇게 망가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신의 영역이자, 술법이지.

게다가 기이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있다. 먼지바람이 크게 지나가고 간신히 눈을 뜬 청난의 앞에는 방금 전까지 문을 잡고 있던 듯한 자세로 멈추어 서서 저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문은 백매가 연 게 아닌 모양이었다.

“태사숙!”

그는 청난을 보좌하던 시종 소년이었다.

그는 청난을 보더니 밝게 웃음 지었다. 그는 그 잠깐 사이 어떤 좋은 대접을 받은 것인지, 한층 상기되어 있었다. 소년의 양 볼은 포동포동 부어 있어 마치 다람쥐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먹이 대신 자랑거리를 양 볼에서 뱉어 내었다.

“태사숙! 태사숙! 마침 찾아가려고 했어요! 가장 먼저 태사숙께 알려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가, 어찌 여기 있어?”

“헤헤, 연화선께서 약조를 지켜 주셨습니다. 이젠 저도 어엿한 수사라고요! 저도 태사숙 같은 사람이 될게요!”

“연화가……?”

소년은 계속해서 재잘거렸으나, 청난은 그의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화가 손을 써서 일반인을 수사로 만들어 주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수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고도 어려웠다. 영근을 지니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영근은 타고나는 것으로, 태어나며 가지지 못했으면 그 생애 동안은 수사가 될 수 없었다. 얼마 전 청난이 이 아이의 맥을 살폈을 때, 그는 분명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연화가 아이를 속인 건가?’

그저 아이를 놀리는 짓궂은 장난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청난을 덮쳐 온 불안감은,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년은 연화에 대해 사소한 것들을 재잘거리더니, 손끝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너무 어두웠기에 무엇도 분별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안에 누가 있는지, 누군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화?”

청난이 불러 보았지만, 들리는 대답은 없었다.

“……아가, 나는 네 사조와 할 말이 있구나. 너는 먼저 돌아가 있거라.”

“네! 선군께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올게요!”

“아니, 잠깐, 아가……!”

청난은 소년을 저지하고자 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손안을 메웠던 부피감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소년이 뿌리친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아니, 떨어졌다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손안에 있던 것이 풍화되듯이 한순간에 가루가 된 것은 전생과 현생을 다 따져 보아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이라면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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