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82)화 (82/111)

#82

“연화진군은 아직 아무런 기별도 없느냐?”

“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군께서는 평소에도 연락이 뜸하셨거든요. 아마 선계에 가신 게 아닐까요? 요즘은 특히나 바빠 보이셨거든요.”

“그런 것도 알아?”

“물론이죠! 진군께서 내려오신 날엔 등불이 꺼질 틈이 없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급이 낮아도 그분께서 오셨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어요.”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청난은 그렇게 화제를 마무리했지만, 영 꺼림칙함을 거둘 수 없었다. 그가 사라진 시기가 하필 이러하였고, 또한 이곳에 자신이 있는데 아무런 기별도 하지 않는단 것이 의아했다.

‘진짜 스승이 아니긴 하나…….’

어쨌든 그가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고 있으니, 적어도 그 호칭의 무게 정도의 영향은 있지 않겠는가.

의원이 말하길 청난의 손은 길어야 사흘이면 완치될 것이라 하였다. 청난은 지루한 시간을 시종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었다. 청난은 옛것은 잘 알았지만, 새로운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어린 시종은 옛것은 모르나 새로운 것을 잘 알았다. 거기에 청난의 정체를 알고 있어 불편한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으니, 그와의 대화는 꽤나 즐거웠다.

청난과 시종 소년이 한창 대화를 나누던 때에,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연화문도들은 기척을 숨기는 데에 뛰어났으니, 이는 청난이 들을 수 있도록 고의적으로 숨기지 않은 것일 거다. 청난은 그 의도에 응답하여 보이지 않는 허공에 소리를 내었다.

“어여 들어오거라.”

그 말에 모습을 드러낸 건 연화문복을 입은 두 제자였다. 그들은 낯이 익은 이들로, 바로 백매에게 짧은 가르침을 받았던 화수 속성의 영근을 가진 제자들이었다. 어째선지 그들의 얼굴은 기대감에 상기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태사숙! 지난번에 짚어 주신 대로 수행하였더니, 단계가 증진하였습니다! 이건 모두 태사숙 덕분입니다! 태사숙께서 날아오르셨을 때 태어나지 못했다니, 이것은 제 평생의 한이며, 비통함입니다!”

두 사람 중 머리카락이 짧은 아이의 이름은 해성이었다. 해성은 백매와 함께 만났던 그때에는 무표정에 말수가 적어 무척이나 진중해 보였지만, 청난이 일어난 이후 찾아와 몇 마디 배우더니 점점 친근하게 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첫 만남 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인 듯 보일 정도로 신이 나서 들떠 있었다. 청난은 그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몇 마디 해 준 것이 무어 큰 것이라고. 전부 너희의 노력이 이루어 낸 성과이니, 남의 공으로 돌리지 말거라. 그나저나, 오늘은 사람이 더 있구나.”

“하하, 눈치채셨나요? 영력은 태사숙에게 어떤 장애물도 되지 못하나 봅니다. 전혀 속일 수 없어요.”

“내 칭찬은 그만하고 다들 부르거라. 답답하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태사숙!”

해성은 잽싸게 포권을 취하더니 손짓으로 문 너머에 있던 이들을 불렀다.

그 손짓에 온 이들은 다섯이었고, 전부 지학을 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청난을 똘망똘망하게 바라보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푹 숙이곤 다시 들 생각을 않았다. 더구나 그들 중 누구도 말문을 열지 않아, 결국 해성이 대신 입을 열었다.

“이들은 제 사제들입니다. 저처럼 화수 쌍영근인데, 태사숙께 가르침받은 것을 넌지시 말했더니, 꼭 뵙고 싶다고 성화지 뭡니까. 혹여 태사숙께 불편을 끼친 것이라면 돌려보내셔도 저들은 원망치 않을 겁니다.”

그 아이들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청난이 찻잔을 들어 올리는 기색 하나에 어깨를 들썩였다. 해성과 다른 아이가 처음 청난을 찾아왔던 때와 비슷했다. 그들은 꼬박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긴장을 풀고 지금과 같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청난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않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들을 어찌 내칠 수 있을까.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저는 지금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니.

청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려 보이는구나. 나이가 어떻게 되지?”

“여, 열둘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열다섯이고, 가장 어린아이가 열둘입니다.”

사제들을 대신해 해성이 첨언하였다.

“그럼 네가 막내겠구나. 나는 연화나 백매와 달리 비승하지 않았어. 너희와 같은 인간이지. 더구나 이번 생엔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이룩하지 않았으니, 너희는 편하게 불러도 된다. 아무도 탓하지 않아.”

“하…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서로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고받았다.

청난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였으나, 진청난으로서 대우받게 된 이후로 저도 모르게 그 시절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윗사람의 위압감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으니, 이 아이들은 더더욱 긴장을 풀지 못하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용기를 짜내어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태… 태사숙…….”

“좋아. 너희가 그리 부르고 싶다면 그리하여라. 그럼, 나의 사질들이 날 찾아온 연유가 무엇일까. 이 노부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겠지?”

해성이 알려 준 것이 있으니 그들의 목적은 뻔하였다. 하지만 청난이 짐작하는 것과 그들이 직접 말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더욱이 사문의 어르신이 있음에도 가르침을 자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았다.

청난은 망설이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저도 모르게 주전부리에 손을 가져갔다. 하필 그 손이 붕대를 감은 쪽이라 시종 소년이 그것을 냅다 들어 청난의 입 앞으로 건네주었다. 청난은 이 아이들이 아직 저를 보지 않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었다가 옆에서 저를 보고 있는 두 명의 시선을 깨닫고 벌린 입을 다물었다. 청난은 그런 적 없는 척 시종 소년의 손을 돌려 그의 입에 간식을 넣어 주었다.

소년들은 그 우스운 모습을 곁눈질로 본 것인지 그제야 살포시 입을 열었다.

“태사숙께 배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혹… 혹여 폐가 되지 않는다면…….”

“좋다, 좋아. 이 사숙이 긴 잠을 잤더니 너희의 검법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구나. 펼쳐 줄 수 있겠느냐?”

물론 잘 안다. 해성의 검을 봐준 게 어제였으니. 하지만 가르치기 전에 개개인의 역량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했다. 아이들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대답하였다.

“네!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청난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여유롭게 주전부리를 집었다. 과하게 달지 않아 맛이 좋았다.

아이들은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아 들어 초식을 맺었다. 수야각의 초식이 흐르는 물결 같다면, 연화문의 초식은 거센 불과 같았다. 그들의 검은 단숨에 불타오르며 순식간에 끝이 났다.

“고생했다. 너희가 보기에 어떤 것 같으냐?”

청난은 해성을 비롯한 두 청년에게 물었다.

“섬세하고 빠른, 좋은 검법입니다. 하지만 힘이 몹시 부족해요. 저희처럼요. 수영근의 심법이 거의 남아 있질 않으니 다른 이들에 비해 내공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저희보다 심하네요.”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구나. 아무리 수야각의 심법이 남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수영근을 익히는 문파는 남아 있을 텐데. 너희들, 기초심법을 게을리하였구나.”

청난의 말에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하였다.

“그… 그건 어릴 때 다 떼었습니다. 더 이상 배울 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뒤로 다시 수련하지 않았겠지?”

“하, 하지만 그거론 더는 증진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또래들보다 뒤처지는데…….”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느냐. 기초가 왜 기초인지 정녕 몰라?”

“그… 그치만… 저희도 어서 연화진군처럼 연화문에 어울리는 화력을 내려면 더 뛰어난 것을 익혀야 하지 않습니까…….”

청난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얘야, 그렇게 뛰어난 것만 탐내다간 네 몸이 못 버틸 것이다. 아무리 수련해도 네가 연화선처럼 되는 건 불가능해.”

“어째서요! 수영근을 수련하지 않아서인가요? 수영근이 그렇게 중요해요?”

무리 중 가운데에 있던 소년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웃어른께, 심지어 수영근을 수련하던 자에게 이런 발언은 과히 적절치 못하였다. 그는 곧 허리를 깊게 굽히며 죄를 청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부디 이해해 주세요.”

“아니다. 이해한단다. 내가 이유를 설명해 주마. 네가 연화선처럼 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렇게 타고났어. 그는 천영근이야. 천영근과 쌍영근의 차이는 수백 년으로도 메울 수 없어. 그 순정한 정도가 전혀 다르다. 연화가 그저 내공만 큰 줄 아느냐. 이건 어쩔 수 없는 진리다. 그걸 깨달아야 해.”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져 버린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집안의 재력이나 신분 따위가 그러하다. 수사들은 그런 속세를 부정하고 수련에 매진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수사야말로 타고난 재능으로 시작해서 재능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영근은 모든 수사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우뚝 서는 존재들이었고, 더구나 비승하기에 이른 존재를 자신 따위와 비교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연화는 스스로 지상에 내려와 범부들과 어울렸으며, 이곳에 자신의 거처를 두기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감히 넘보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이들을 망칠 뿐이다.

“너희 사존은 아무 말 않으시더냐.”

“그게… 어쩔 수 없다고만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침울함이 감돌았다. 몇몇 이들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난은 그들의 사존을 탓할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수영근의 수련은 수야각을 따라올 곳이 없었고, 여타 문파들은 그만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수야각의 빈자리를 노리느라 자신들의 비술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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