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청난은 다급하게 그녀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사존, 그 사람은 죽은 건가요?”
“아니, 숨은 쉬고 있어. 아주 정상적으로. 그런데 어찌 이렇게 석상 같을 수 있지?”
“요마귀괴에 씐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무언가가 없거나. 다행히 지금 당장은 숨을 부지하고 있는 듯하니, 이곳에 있는 자들과 함께 옮겨 면밀히 살피는 게 어떨까요? 이곳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피곤하신 상태로는 보일 것도 보이지 않겠지요? 그러니, 이만 쉬시는 게…….”
백매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가 쉬러 가도록 생각나는 것은 모조리 뱉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곳은 환경이 좋지 못하였고, 생존자들도 당장의 휴식이 필요했다.
제 뜻을 정하기 위해 청난이 적절한 사람을 찾던 도중, 마침 연화문의 한 제자가 청난에게 다가왔다.
“진 태사숙, 이 사람들의 상태가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합니다.”
어느새 달라진 저에 대한 호칭에 따라 청난 또한 그들을 대하는 말투를 달리하였다.
“그래, 안다. 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구나. 너희들도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 우선 이곳을 수습하고 돌아가자꾸나. 사람들을 옮겨 주겠니?”
“사람… 이면, 죽은 자들도 말입니까?”
“그래. 죽어서까지 이곳에 남겨진다면 어찌 안타깝지 않겠느냐. 사람이면 사람답게 보내 주어야지.”
“아, 네!”
그 제자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그들은 큰 소리로 다른 제자들을 부르더니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하였다.
연배가 높은 이들로 보이는 자들을 주축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분하였고, 산 자의 이송을 중심으로 주변을 척척 정리해 나갔다.
“저들이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걱정이 참 많구나. 그만 들어가마.”
속을 그대로 들킨 백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청난이 그를 달래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부인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이 바위로 가려진 곳 중 가장 안쪽이었고, 그만큼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가, 아가. 손 좀 빌려 다오.”
청난은 백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백매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그가 일어날 수 있도록 천천히 부축해 주었다. 백매는 그가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안쪽으로 걸어가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제껏 사존의 길을 막아 본 적이 없었고, 이번 또한 그러하였다. 그가 가는 길에는 이유가 있겠지.
바위 안쪽은 놀랍게도 바닥이 더 험난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리 넓지 않은지 한 사람분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막다른 길이 나오자 백매는 이전처럼 손끝에서부터 빛을 모아 주변을 밝혔다.
그곳의 광경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얽혀 있었고, 곳곳에는 원형을 알아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말이지… 공간 활용은 뛰어나구나.”
청난은 덮쳐 온 악취에 소매로 코를 가렸다.
“나가서 이곳도 알려 주어야겠구나.”
“제자가 알릴게요. 사존께서는 이만 돌아가시는 건 어떠신가요?”
백매는 청난을 바라보고 양손을 벌렸다.
청난은 이번에도 어린 제자의 속뜻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흔쾌하게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는데, 백매의 두 팔이 오므라지기 직전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사존?”
“잠깐.”
청난의 두 시선은 무참하게 쌓여 있는 인영들에게 향했고, 백매는 그 시선을 따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인영에 파묻혀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보았다.
“사존!”
“어서 꺼내 주어라!”
백매가 빠르게 시체들을 밀어제치며 그 안에 있는 옅은 호흡을 찾았다. 오래지 않아 백매는 한 사람을 꺼내 안았다.
청난은 얇고 하야며, 아무런 궂은일을 하지 않은 듯한 손가락을 보고 귀한 집의 소저일 거라 생각했다. 한 묶음으로 길게 땋인 머리카락을 보았을 때는 거의 확신하였다. 그러나 백매가 안아 든 이는 청난의 예상과 달랐으며, 심지어 그가 아는 인물이었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진영!”
청난은 넓은 방 가운데 홀로 놓인 탁상 앞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사실 이 방은 ‘넓다’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광활하다고 해야 할까. 중소 문파의 강당도 이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연화의 방이었다.
홑겹의 단조로운 의복, 곱게 묶은 머리, 반듯한 자세.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고, 그 때문에 팔목을 감고 있는 하얀 붕대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또한, 평소라면 그의 맞은편에 있었을 백매는 보이지 않고, 대신 탁상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화문복을 입은 앳된 소년이 양 무릎을 모은 채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그는 청난의 잔이 빌 때면 쫄쫄쫄 다가와 빈 잔을 채워 주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잔을 늘 채워 놓을 필요는 없대도.”
“하지만 사조님께서 태사숙을 서어엉심껏! 모시라고 하셨으니, 그 명에 충실할 겁니다.”
소년은 또다시 쪼르르 와 청난의 잔이 비었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렇게 집요하니 청난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나름 운동도 되지 않을까.
사귀의 흔적에서 진영을 발견한 지 오늘로 이 주가 지났다.
사귀의 흔적을 조사해야 했다.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저지할 방법은 있을지 면밀하고 또 면밀하게 살펴야 했고, 그곳의 피해자들은 이상이 없는지, 아니라면 치료 방법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규모라면 인근 지역에도 피해가 갔을지도 몰랐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예방하여야 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청난이 할 수 있는 건 차를 마시며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것 정도였다.
청난은 소년을 잠시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와도 되느냐?”
“안 됩니다! 태사숙께 무슨 일이 생기신다면, 제가 산 밑으로 쫓겨날지도 몰라요…….”
소년이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애먼 애가 내쫓겨서는 안 되지 않는가. 정말이지 청난을 잘 아는 이의 처사였다.
이렇게 앳된 감시자가 붙은 것은, 아니나 다를까 청난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사실, 청난이 깨어난 건 불과 나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귀의 흔적으로부터 돌아와, 갖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연화의 방에 눕혀져 잠들 때까지 청난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욱 건강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열흘이나 잠에서 깨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많은 의원이 다녀갔으나, 그들의 답은 같았다.
‘그저 무리해서 쓰러졌을 뿐입니다. 곧 깨어나실 겁니다.’
하지만 백매는 온전히 믿지 않았다. 자신이 살펴보았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불안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온종일 청난의 곁을 지켰으며, 마침내 눈을 뜬 청난이 처음 본 것은 자신의 가슴 위에 고개를 기댄 채 저를 바라보는 백매의 모습이었다.
청난은 그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눈가엔 한 방울의 눈물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곧 표정을 바꾸었고, 걱정 담긴 시선으로 청난을 찾았다. 청난은 그를 안심시키는 한편, 찰나 동안 보았던 그의 공허한 눈동자가 도저히 잊히지가 않았다.
그 탓에 청난은 쉬어 달라는 그의 말에 도저히 거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고.
“읏.”
“태사숙, 괜찮으세요?”
짧은 신음에 시종 소년이 헐레벌떡 다가와 그의 손목을 살폈다. 찻물이 조금 튀었을 뿐 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잠시 잊고 말았구나.”
청난은 붕대가 감긴 손을 얌전히 다리 옆에 두었다.
그건 청난이 쓰러지고 닷새 무렵의 일이었다.
닷새 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던 청난은 불현듯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백매의 호통에 의원이 도착할 무렵에는 고통에 몸부림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의원은 어제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백매는 청난이 스스로를 상처 입힐까 그를 안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청난이었기에, 그의 하나뿐인 존재였기에, 감히 강하게 붙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그곳엔 차가운 청난의 몸을 데우던 화로가 있었고, 뿌리치는 청난의 손은 그곳에까지 닿았다. 백매의 눈은 빨랐고, 행동 또한 빨랐다. 다행히 그가 화로와 부딪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강해도 너무 강했고,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청난은 화상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백매의 몸과 부딪쳐 손목의 근육이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청난이 열흘 만에 일어나 본 그 표정에는 이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청난은 전해 들은 사실을 떠올리며 털털하게 웃었다.
‘아무리 신선이라도 결국 인간의 육체가 진화한 게 아닌가. 신체와 부딪쳐서 손목이 나갈 수도 있다니…….’
혹여 청난이 움직이다 상처가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그는 분명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청난은 하나 남은 제자의 얼굴이 땅에 박히기 전에 얌전히 자리를 보전하며, 회복에 좋은 약재를 달여 마셔야 했다.
‘매아가 잘하고 있기도 하고.’
청난이 가볍게 차를 홀짝였다. 다시금 그의 곁에 온 시종 소년은 이번엔 다른 향의 차를 따라 주었다.
백매는 청난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러 떠나갔다. 청난은 그 모습에 안심하였으면서, 한편으로 헛헛하기도 하였다. 제자의 하산을 목전에 둔다면 이런 기분일까. 청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자리를 비우는 백매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 연화문주에게 얻어 낸 것이 바로 저 시종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청난의 수발을 들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연화문주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인지 이 소년은 첫 만남부터 여러 방향으로 의욕이 넘쳤다.
이 시종 소년은 아주 앳되어 보였는데, 보기와 달리 나이는 열다섯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열정적이었으며 매우 선하였는데, 지나치게 덜렁대기도 하였다. 그 탓에 청난은 그가 저를 돌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를 돌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청난은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하니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연화는, 그날 밤 이후 단 하루도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