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시체! 괴물의 시체가 있습니다!”
“얘들이 또…….”
기세 좋게 대답하는 것은 좋으나 또다시 ‘괴물’ 운운에 청난은 걱정마저 들었다. 청난이 아마도 연화가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 아이들은 요와 마, 괴와 귀를 구분하지 못하느냐?”
“몰라. 근데 그런 것 같지? 어차피 다 퇴치해야 하는 건데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고.”
“그건 너 같은 천재나……. 아니다, 우선 눈앞에 있는 것부터 정리하자꾸나.”
청난은 연화에게도, 연화문 제자에게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괴물’의 상태를 미리 듣고 싶었지만, 사실 물어도 마땅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청난은 소리 지를 힘을 이동하는 데에 써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이들이 등불을 밝혀 둔 덕에 청난도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청난은 이곳이 지금까지와 다른 곳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청난에겐 긍정적이나, 세계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청난은 실험이 진행되었던 흔적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는 실험체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방금 전에 해치운 요마의 재료로 쓰인 듯한 사슴과 쥐 반쪽을 비롯하여, 동물뿐 아니라 평범한 것과 거리가 먼 요마의 시체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으며, 또한 어느 것은 그 원형이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의 찌꺼기만이 남아 있었다.
불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심지어 제자들 중에는 구역질을 호소하며 낮에 먹은 것들을 뱉어 낸 이들까지 있었다.
“사존이 말한 게 이런 건가?”
“맞아.”
연화는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그 중앙으로 들어가 사체들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이곳은 동굴이나 틈새처럼 밀폐된 공간이 아닌 그저 들판 한가운데였기에 그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았다. 따라서 진법이 그려져 있다면, 이 많은 사체들이 누르고 있는 땅밖에 없었다.
과연, 연화가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치워 내니 그 아래에는 여러 갈래의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하나의 진법의 모양이 다 드러나자 연화는 발길질을 멈추었다.
“죽은 것들도 참 많다. 못 버틴 건가.”
“아니면 죽이고 나서 진법을 쓴 걸지도 모르지. 여긴 연화산인데, 넌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
“사존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헛말했네. 네가 알았으면 조치를 했겠지.”
연화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땅에 그어진 것들을 매만지며 질문했다.
“사존은 이게 무슨 흔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실험이겠지. 무얼 얻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청난은 지금까지 본 것들을 생각했다.
처음 본 건 아랑 마을. 아니, 먼 과거의 불새였다. 불새 자체는 자연적으로도 무수히 발생하는 요마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의 기원으로 간다면, 그것 또한 욕망의 결과였다. 신수 인면조를 갈망하는 인면수가 있는 것처럼, 불새 또한 불사조를 갈망하는 것들이 변화한 것이다. 그런 것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심음으로써 불새로 타락하고야 만다.
그다음에 본 것이 아랑 마을에서 본 쌍영근의 늑대였다. 그 후에는 그것과 비슷한 것들을 수없이 목격했고, 오늘은 사슴도, 쥐도 아닌 것까지 목도했다.
그것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 그것은…….
“결합.”
“결합… 말인가요?”
묵묵히 청난의 옆을 지키고 있던 백매의 의문에 청난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금까지 본 기이한 것들을 생각해 보거라. 원본을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더냐? 아니면 무언가가 새롭게 변화한 것이 있더냐. 모든 것은 따지면 둘 이상의 것을 꿰어 놓은 것이지 않으냐. 아마 쌍영근인 건 그 탓일 것이다. 두 개를 연결하였으니, 각각의 영근이 섞인 것이지.”
“굳이 그런 시도를 하는 까닭은 짐작되시나요?”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 싶다. 힘을 원한다면 더욱 확실하고 쉬운 길이 있으니.”
“맞아. 그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가깝겠지만.”
연화가 일어나 청난에게 다가왔다.
“연화,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아?”
“난 사존의 생각이 궁금해. 좀 더 말해 줄래?”
“좋아. 내가 생각을 말하면 네가 짚어 줘.”
“응, 그럴게.”
청난은 한 걸음 걸어 나가 시체의 앞에 섰다. 그 탓에 연화는 방금 온 곳으로 또다시 돌아가야 했다. 백매 또한 당연히 그를 따라갔다. 청난은 다시 말을 이었다.
“범인은 생명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어. 여기,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거세게 발버둥 치다 죽은 것처럼 괴이한 자세들을 하고 있지. 반대로 왼쪽에 있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 범인이 굳이 죽은 모습을 두고 나눠 놓은 게 아니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쓰였다는 것이지. 아마 바탕이 된 건 오른쪽, 부품이 된 건 왼쪽일 거야.”
“맞아. 이식하기 위한 실험이지. 왼쪽이 가지고 있는 것을 오른쪽에게 넘기기 위한. 수야각의 진법은 공간을 지배해. 이식을 위한 장치로 안성맞춤이지.”
청난의 가설에 연화가 말을 덧붙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럼 무엇을 이식하려는 건지 알겠어?”
청난은 잠잠히 생각했다. 이 두 무리 중 하나는 분명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야각의 진법을 쓰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청난은 고민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대답하였다.
“영근을 이식하려는 것일 거야. 그것도 수계 영근을.”
“응.”
청난은 오랜 습관에 따라 추론의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인어, 게, 상어. 그리고 이건 갈매기인가? 왼쪽의 시신들은 모두 바다에서 난 것들이야. 그리고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지.”
“영근이군요.”
“그래, 맞아. 역시 내 제자야.”
청난의 칭찬에 백매가 발그레해졌다. 시야가 어두운 탓에 그것을 보지 못한 청난이 설명을 이었다.
“바다에서 난 것들의 대부분은 수 계통의 영근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들은 서로 다른 해역에서 왔을 거야. 인어랑 상어는 한 바다에 서식하지 않으니까.”
“그건 다양한 표본을 위해서일 거야.”
“표본?”
“응, 실험이라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려면 여러 방안을 면밀히 살펴야 하니까.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또 반복하면서 실패할 확률을 줄여야 할 테고.”
“그럼 혹시… 십 년 전 대봉인을 파괴한 건…….”
백매의 속삭이듯 작은 소리에 청난이 고개를 획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맞아. 지금껏 이어져 온 대봉인이 깨진다면, 그 안에 있는 고대의 것들이 튀어나오지. 오차 없는 실험을 위해서라면 오래된 표본도 필요로 할 거야. 이 실험장을 만든 자가 대봉인도 깼다고 생각해. 그가 유일한 수혜자니까.”
지금까지 꽉 막혀 왔던 것이, 하나의 실타래가 풀리자 줄줄이 연결되어 결론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난은 누군가 제 말을 끊을까 봐, 혹은 이 생각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할까 봐 쉼 없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럼 범인이 누구일까. 선계에 줄이 있거나, 선계의 존재겠지. 삼백 년 전 일과 동일범이라면, 그는 평범한 인간일 수 없어.”
“삼백 년 전에도, 뭔갈 봤어?”
“아…….”
연화의 말에 청난은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날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청난은 자신의 볼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미 그에게 많은 걸 알려 주었고, 또 방금 전까지 자신과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는가. 이제 와 비밀이라 고수하기도 민망했다.
‘그의 추론은 예리하니 큰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고.’
청난은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응. 너희가 열일곱 때였던가.”
“그럼 사존이 ‘진청난’이었을 때? 전생에서도 발견했던 건 몰랐네.”
다행히 연화는 지금껏 자신에게 숨긴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건 아닌 듯싶었다. 덕분에 청난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는 수야각 술법을 훔치려는 줄 알았다. 물론 내 성심성의를 다해 범인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지. 만약 이런 결과를 낳을 줄 알았더라면, 나 혼자만 안고 있을 게 아니라 후폭풍을 각오하고서라도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청난의 시선이 기울어지면서 바닥으로 향했다. 아무리 전생이라 구분 지어도, 아무리 고의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해 보아도, 결국은 이 사태의 원인에 저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거둘 수 없었다.
청난의 시선을 따라간 백매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허공을 잠시 머물렀을 뿐 결국 백매의 품속으로 돌아와 버렸다. 백매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양 나직하게 그를 위로했다.
“그자를 놓친 건 사존의 잘못이 아니에요.”
“수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는데 어찌 내 탓이 아니겠느냐.”
“하, 하지만 사존께서 전력을 다해 임하셨더라도 잡았을 거란 보장은 없잖아요.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던 것입니다.”
“아닐걸. 사존이 최선을 다했다면 잡았을 거야. 최고의 수사잖아.”
자신의 말을 엎어 버리는 발언에 백매는 저 연화문의 신선이 부디 선계로 돌아가 버리길 바라고 또 바랐다. 저 녀석은 지금까지 저와 사존께 일말의 도움도 된 적이 없지 않은가. 백매는 그의 말을 부정하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 이번엔 잡을 거야. 최고의 수사잖아.”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은 보다 마음에 드는 것이라 움켜쥐었던 주먹을 폈다. 청난의 작은 코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마음이 놓였다.
“맞아. 그러니 너희가 날 좀 도와줘.”
“응, 좋아. 그리고 화백매야, 네게 맞으면 정말 아파. 넌 검으로 하늘에 올랐지만, 난 아니잖아. 좀 봐주지 그래?”
“그럼 적당히 해.”
“응? 검으로 오른 게 아니야?”
청난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