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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78)화 (78/111)

#78

“그건 사존의 정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이것에 휘말릴 테고, 심하면 잡아먹히고 말았겠죠. 물론 제가 그리 놔두진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제자는… 당장이라도 한연화를 때려죽이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그야 당연히 안 되지 않겠니.”

“너와 내가 싸우면 이 땅이 무사하겠어? 이 땅에 서 있는 네 사존은 어떻고?”

“아니까 참는 거야.”

백매는 연화의 말에는 싸늘하게 대답하였다.

청난은 연화의 속을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분명 오래도록 봐 온 아이인데, 신선이 된 그는 자신이 알던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돌보던 아이였다.

청난은 혼을 내듯 단호하면서, 또한 달래듯 온화하게 말을 건넸다.

“연화야. 나를 좋게 평가하는 건 좋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없단다. 앞으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렴.”

“좋아.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그래. 그럼 쥘부채는 다시 연화가 갖는 것으로 하고, 다시 일로 돌아가야지. 어린 제자들을 세워 둘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도 괜찮지만.”

“안 돼.”

청난이 연화의 가벼운 말을 단칼에 잘랐다.

청난이 그 자리에서 몸을 돌리니 어느새 싸늘해진 요마의 시신이 바로 보였다. 청난은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사존, 요마의 기운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괜찮아. 잠시일 뿐이니까.”

백매의 만류에도 성큼 다가간 그는 요마의 앞에 서서 오른발을 뒤로 빼더니, 단숨에 그것을 걷어차 버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청난의 근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이 거대한 요마의 시신을 걷어찬다고 하더라도 미동이 없을 테고, 잘 차 봐야 조금 들썩이고 말아야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것은 땅을 데굴데굴 굴러 시선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작은 힘으로도 굴러갔다.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이 두 가지 사항은 하나의 사실을 알려 주었다.

저곳은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그곳은 어떻게 보아도 평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경악에 빠진 젊은 수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술법에 너희가 놀라면 되겠느냐. 잘 보도록 해. 배움은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달렸지.”

청난이 허리를 숙여 바닥을 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평평했지만, 요마가 쓸고 지나가며 생긴 핏자국 덕에 공간의 울렁임을 볼 수 있었다.

“이자는 진법 응용력이 정말 뛰어나. 이렇게 공간을 숨겨 놓다니, 요마가 도망쳐 나온 게 아니라면 계속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

청난은 누군지 모를 이 자의 실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악인을 두고 ‘아까운 인재’라 칭하던 장로들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재능을 이유로 악행을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청난이 한 걸음 내딛으니 보이는 것보다 아래에서 땅이 발끝에 닿았다. 청난은 거침없이 아래쪽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갈수록 땅은 깊어져 갔고, 청난은 순간 휘청거리고 말았다. 발아래가 정돈되지 못한 탓이었다. 누군가에게 부축을 요청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이번에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서 버린 것이었다.

청난은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화문의 제자들이 그를 향해 몰려갔다.

“상선, 제가 돕겠습니다.”

“제 손을 잡으세요!”

“제가 다리 힘이 좋습니다!”

“업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지극해진 태도에 청난은 얼떨떨했다. 그러나 곧 제 앞에 내밀어졌던 무수한 손들이 황급히 사라졌다. 대신 아주 하얗고 각진 손이 청난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제자가 사존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너 아니면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청난은 흔쾌히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제자들은 그 아래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고, 꺼림직하였다. 그러나 신선의 총애를 받는 데다 그 자신의 능력마저 뛰어난 진 태사숙의 눈에 들어 입신양명을 하겠다는 목적에 생각 없이 불쑥 달려오고 만 것이었다.

그들의 육안으로는 자신들의 발목이 땅속에 묻혀 있는 듯 보였지만, 아무런 감각도 불길함도 없이 멀쩡하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청난과 백매를 따라 열을 맞추어 아래로 향했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온 뒤에야 청난의 시야에 그곳의 진짜 모습이 들어왔다. 연화산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고, 그에 청난은 죽음의 땅 같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생명이 자랐던 흔적뿐이었다. 풀이며 나무며 썩어 문드러져 이제는 땅을 더럽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차단되었네요.”

“응, 불길한 기운이 고립되어 있으니 이럴 수밖에.”

죽은 나무들이 굽이치며 머리 위를 덮은 까닭에 이곳은 달빛도 잘 들지 않아 몹시 어두웠다. 다행히 수사들은 눈이 밝으니, 이 중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백매의 팔에 기대고 있는 청난뿐이었다.

“거기 바위가 있어요.”

“으응, 그래.”

청난은 백매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며 바위를 피해 갔다.

“이러고 있으니 꼭 내가 눈이 먼 것 같구나.”

“그렇다면, 제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해 드릴게요. 부족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하지. 넌 산도 바다도 가를 수 있는데, 이 노인의 눈 하나 못 고치겠느냐.”

청난이 껄껄 웃다가 그만 또다시 휘청거렸다. 그에 청난의 안경이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백매는 잠시 멈추어 그것을 주워 들려고 했는데, 그보다 조금 더 빠른 손길이 있었다. 이곳에 백매보다 빠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단 한 존재뿐이다.

“이거 참 보기 드문 기구야.”

“연화야, 돌려줄래? 앞이 안 보여.”

“어차피 써도 안 보이잖아?”

“음… 그렇네. 그럼 구경해.”

청난은 연화의 모습이 흐릿하였지만, 그가 안경을 바로 써 보고, 거꾸로도 써 보며 키득키득 놀고 있다는 것은 얼핏 알 수 있었다. 청난이 내민 손을 거두자, 하얀 다른 손이 대신 뻗어졌다.

“돌려드려. 네 게 아니잖아.”

“왜 네 손을 뻗어? 네 것도 아니잖아. 적당히 보다 사존한테 돌려줄게. 사존, 이건 어디서 났어?”

연화는 백매의 시선은 가볍게 무시하고, 허리를 숙여 가며 청난과 눈을 마주쳤다. 양손으로 안경을 잡고 청난의 얼굴에 댈 듯 말 듯 하는 모습이 꽤나 장난기가 넘쳐 보였다. 청난은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이 제 얼굴에 다가왔을 때 덥석 잡아 귀에 걸쳤다. 연화는 순순히 손을 놓아 주었다.

“아버지께서 구해 주셨어.”

“아버지라면, 청운?”

“그렇지. 예전 아버지는 돌아가… 셨을 테니까?”

청난이 대답을 바라는 듯 백매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청난은 그저 고개로 가리키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그의 어깨가 푹 닿아 기대는 모양새가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그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던 탓이었다. 청난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를 유지하였다.

백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에 청난이 고개를 들었을 무렵, 그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네. 시일에 맞춰 등선하셨습니다.”

신선이 되는 비승이 아닌, ‘등선’. 그 말은 그가 지닌 수명을 모두 소모하여 자연사했음을 뜻했다.

“다행이야.”

청난의 대답은 짧았다. 백매는 혹시라도 청난이 울적해할까 그의 기분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애당초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청난은 그저 이야깃거리가 없어 대화를 길게 잇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연화는 동상이몽인 두 사람을 보며 즐기고 있었으니, 자연히 이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러다 청난은 자신의 말이 충분하지 않아 그들이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방금 전 주제에 부가적인 설명을 붙였다.

“아버진 각종 독특한 서적을 모으시는데, 사실 서적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특이한 걸 좋아하셔. 그러다 눈이 안 좋아져서 말을 했더니, 서양의 좋은 물건을 안다며 이걸 구해다 주셨어.”

“이런 안경이라면 강호에도 있을 텐데, 굳이 서양의 물건을 구해 와? 값을 두둑이 치렀을 텐데.”

“친분 덕분에 적절한 값을 치르셨다고 하셨지. 그런데 얼버무리셨던 걸 생각하면 비싸긴 비쌌던 모양이야.”

청난은 푸훗 웃으며 대답하였다.

청운은 일단 사고 보는 경향이 있어, 청난이 그나마 가계부를 정리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런 것에 능한 편은 못 되었다. 결국 늘상 구멍이 나고 말았다. 다시금 생각해도 그들 부자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랑 마을 주민들의 성품이 좋은 덕택이었다.

청난이 걸음을 빨리할 수 없는 탓에 선두로 움직이던 그들은 어느 순간 일행 무리의 중간으로 넘어와 있었다. 갈수록 땅이 질펀해지기까지 하는 마당이라 청난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야 했다.

청난의 시야는 뿌연 안개가 자욱할 뿐 무엇 하나도 분간할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시야가 막히니 본능이 다른 네 가지 감각을 증폭시켰다.

백매는 말이 없었고, 연화 또한 굳이 말하지 않았으니, 청난이 들을 수 있는 것은 발걸음에 서로 부딪히는 죽은 것들의 소리와 어린 제자들의 불안 섞인 불만들뿐이었다. 또한 청난의 발이 떨어지는 곳마다 진흙이 튀어 올랐다. 처음에는 신발 등을, 그리고는 발목을, 또 다음에는 종아리를 덮치는 것이 마치 무언가가 아래에서부터 꾸물꾸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아 기분이 불쾌했다.

‘내가 시야에 너무 의지했었구나.’

앞이 보이지 않는 탓일까, 그는 평소와 달리 요동치는 표정을 막지 못했다. 청난의 불쾌해 보이는 낯에 백매가 그를 살폈다.

“사존, 혹시…….”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백매의 걱정의 말은 누군가의 외침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청난은 기다리던 말에 소리를 내질렀다.

“무어냐! 속히 말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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