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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73)화 (73/111)

#73

“누군지 몰라? 내 친우인 백매선과 그의 사존이신 진 선사님이야. 결례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

“…….”

청난은 연화가 자신들의 정체를 이토록 시원하게 밝혀 버릴 줄은 몰랐다. 도무지 믿기 힘든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들은 건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고, 그나마 재빠르게 연화의 말을 이해한 몇 명조차도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소에도 연화진군이라는 신선과 함께 지낸 덕인지 신선의 존재에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버럭 내지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존재가 입증된 신선과 삼백 년 전 죽은 인물은 별개였다.

“하, 하지만 백매선의 스승이시라면……. 말도 안 됩니다.”

이번에 들린 목소리는 또 다른 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든 자가 아무도 없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청난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당연하게도 환생을 겪었다는 기록 따위는 없었다. 청난 또한 환생이란 누군가의 이론뿐인 사상 내지는 공상 속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삼백 년이 지나도록 생존한 자가 있다면, 신선이 되었거나 귀도에 든 자일 뿐이리라. 수사 진청난이 신선이 된 기록이 없으니 후자를 떠올리는 것은 마땅했다.

연화는 청난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웃는 낯을 하며 목소리를 향해 돌아봤다.

“내가 뭐라고 했지?”

연화의 목소리는 청난을 닮은 듯 온화했는데, 어쩐지 고개 숙인 이들은 흠칫 놀라며 심지어 바들바들 떠는 이까지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 또한 그런 이들 중 한 명인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연화문의 제자가… 진 태사숙께 인사드립니다.”

기척이 느껴져 뒤쪽을 돌아보는 청난에게 한 수사가 넙죽 엎드려 절하였다.

“이럴 필요 없다. 일어나거라.”

청난은 그에게 다가가 팔을 받쳐 일으켜 주었다. 그랬더니 다른 방향에서 연달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사드립니다!”

“인사드립니다!”

“인사드립니다!”

“…….”

청난은 그 모습에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인사하지 않으면 누가 죽이기라도 하는가? 어째서 저들은 이리도 다급한 것일까. 그 모습은 마치 폭군의 앞에서 죄를 청하는 선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청난은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남의 집 살림에 무어라 참견할 수는 없었으니, 저들의 허리 통증을 조금 덜어 줄 뿐이었다.

“연화, 물어볼 게 있으니, 들어가자꾸나. 아니면 우리와 함께 나가도 좋고.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좋아, 아주 좋아. 최근엔 연화문에 온 적 없지? 내가 안내해 줄게.”

연화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자, 여전히 고개 숙인 이들이 급히 발을 움직이며 길을 만들어 주었다. 청난은 연화를 따라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 역시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 연화가 쓱 뒤돌아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백매는 왜 또 그런 표정이야?”

“기분 나빠.”

“무엇이?”

“알잖아.”

“적응해. 별수 없잖아?”

“네가 별수를 안 쓰는 거잖아.”

연화는 백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입 끝을 올린 채 미소 지었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갔다.

청난의 시선이 연화를 향했다. 눈도, 촉도 전만 못하였지만, 고개 숙이며 절을 하는 저들이 당장 입을 열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얼핏 알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당장에라도 산을 내려갈 민간인들이 여럿 있었다.

‘내일 정도면 소문이 돌려나.’

소문 중의 소문이 바로 신분 높은 자들에 대한 것이고, 그중에서도 으뜸이 인간을 뛰어넘은 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빨리 퍼질지는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삼백 년 전 수사에 대해 아는 자도 나올 테고, 그렇게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가겠지.

청난은 그런 것들에 마음을 두려 하지 않았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옮기는 이들이 자정하지 않는 한 소문의 주인공은 무엇을 하든 피해를 볼 뿐이다. 그러니 신경 쓸수록 더더욱 손해였다. 차라리 백매와 나들이나 가며 잊는 것이 나았다.

연화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은 그의 방이었다. 사실 벽 사이로 얼핏 본 내실 속 침상을 보기 전까진 누군가의 방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곳은 개인의 공간이라기엔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청난은 처음엔 강당에 왔다고 생각했다.

연화는 방 주인답게 가장 중앙에 앉았다. 청난은 그의 왼편에, 그리고 백매는 청난의 옆에 앉았다. 그 탓에 그의 오른쪽은 텅 비었고, 청난도 허공을 바라봐야 했다.

연화가 말을 틀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청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화.”

똑똑.

그런데 하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예상치 못한 일에 문을 바라보며 눈을 빠르게 깜박이는 두 사제와 달리 연화는 매우 여유로웠다.

“응, 들어와.”

연화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그 너머에 있던 것은 각종 산해진미를 손에 든 연화문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곧장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연화, 백매, 청난 순으로 앞에 탁상과 음식들을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왔던 것처럼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들이 두고 간 음식은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북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와 남에서 잡히는 생선, 동쪽에서만 잡히는 짐승의 고기와 서쪽에 사는 새고기가 함께 탁상에 올라와 있었다. 황제가 받기에도 과한 수라라고 할 수 있었다.

꼬르륵.

그런데 하필 부끄러움도 모르는 배가 아우성치는 탓에 청난은 음식을 물리는 것을 비롯해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사존, 식사 먼저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일 주향 사이 천지가 뒤집히지는 않을 거예요. 혹여 그런다 하더라도 사존께서 쓰러지시는 것보단 나을 테지요.”

“그런 불길한 말은 마라.”

“백매 말이 맞아. 먹어야 크지. 근데 많이 크긴 했네. 그때에서 얼마나 지났지? 삼 년 되었던가?”

청난은 큼큼 헛기침을 내뱉다가 그들의 권유대로 젓가락을 들었다.

“십 년 되었지. 대부분의 사람은 삼 년 만에 이 정도로 자라지 않아.”

“흠, 그랬던가. 잊고 있었네.”

연화의 대답은 무심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동자는 청난에게 고정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부담스러워.’

그는 예절 교육이 엄격한 집안의 자제였고, 그 예절에는 식사 도중 타인을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항목 같은 건 없었다. 그러므로 과거엔 이러한 적이 없었다. 청난은 요즘 들어 삼백 년이란 시간이 정말 긴 시간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청난은 애써 시선을 무시하고 제 앞에 놓인 것 중 가장 두툼한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씹을 때마다 입 안으로 육즙이 퍼졌다. 그 감촉은 꽤나 달콤했다. 과거의 청난은 수야각의 제자로서 고기 음식은 가급적 멀리했었고, 다시 태어난 청난은 그만큼 부유하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이런 고기는 정말이지,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맛에 대한 감동은 그새 침울한 것으로 바뀌었다.

일 년간 봐 왔던 참상의 피해자들은 이러한 음식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값진 것뿐 아니라, 소박한 음식조차도 먹기 힘들었다. 먹는다 하여도 안전하지 못하였다. 불안 속에서 몇 년을 사는 이들이 즐비해 있는데, 어째서 그 원인과 근접해 있는 이곳은 이토록 부유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 음식들은 세 명이 먹는 것치고는 과하게 많았다. 정말 과하게.

“연화야, 평소에도 이리 먹는 걸 즐기느냐?”

연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필요도 없는데 먹어서 뭐 하겠어. 사존이 온다니까 준비시켰지. 왜, 별로야?”

청난은 그의 말에 내심 안심하였다. 그는 전부터 저를 잘 따랐으니 이번엔 조금 과했을 뿐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참, 그래서 네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줄 거야?”

“오, 사존이 나한테 도움을 청한 적은 처음이야. 뭐에 관한 건데?”

“그건…….”

똑똑똑.

또다시 문소리는 눈치도 없이 말을 끊어 대었다.

“상선, 들어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연화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인 것은, 청난을 넋 나가게 하기 충분했다. 정말 가관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이번에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식사에 악사와 무희는 왜 필요한 거지?’

그들은 당연한 듯 자리를 잡았고,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정해진 듯 곡을 연주하였으며, 또 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청난이 고개를 돌려 연화를 바라보니 그는 흥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들어 봐. 이 곡 참 감미롭지? 내가 좋아하는 곡이야. 이토록 악기를 잘 다루는 악사는 선계에서도 손꼽혀.”

“…….”

그는 참 익숙해 보였다. 이것은 저를 반기느라 과해진 모양새는 아닌 듯했다. 청난이 애써 말을 고르는 사이 백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뭐긴. 연주를 듣잖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최고 중의 최고의 악사와 무희인데. 맘에 안 들어?”

“어. 우린 놀러 온 게 아니야. 네 입에서 나올 몇 마디가 필요할 뿐인데, 이런 불필요한 일은 대체 왜 벌이는 거야?”

“그렇구나, 불편하구나.”

연화는 다시 만난 이래로 한 번도 표정을 구긴 적이 없었다. 청난은 과거의 그의 환경을 생각했을 때 신선이 된 덕분에 성격이 바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화의 표정이 이렇게 한순간에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부른 이들을 향해 화내고 있었다.

“내 친우들이 불편해하는구나. 너희의 연주가, 무용이 고작 이 정도뿐이라니.”

“죄, 죄송합니다, 상선!”

청난은 한숨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지겠지. 왜 이 아이는 갑자기 폭군이 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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