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72)화 (72/111)

#72

청난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네… 네가 감히 연화문을 모함해!”

백매가 청난을 끌어안았다. 덕분에 청년이 탁상 위를 쓸어 버리며 날아온 문구에 더러워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청년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백매가 있는 한 그 손이 청난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백매가 그 손을 덥석 잡고 꼼짝하지 않았으니 소년은 더 내지를 수도, 다시 뺄 수도 없었다.

“누구 앞이라고 결례를 범하느냐.”

백매의 음성은 절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고, 그를 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귓가에 똑똑히 박혀 들어갔다. 청년은 순간 주춤하는 듯싶었지만 다시금 기백을 일으켜 큰소리를 내질렀다.

“대체 어느 문파에서 왔기에 연화문을 이리 혼란케 하느냐!”

“제가 어찌 혼란케 하겠습니까. 그저 시체의 품에서 이곳의 패를 보고 제보를 하러 온 것인데, 무엇을 오해하신 것인지요.”

흥분한 청년에 비해 청난의 목소리는 무척 평온하였기에, 그는 이 소란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청년은 흥분한 기색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아직 내키지 않는 듯 두 눈초리에 담긴 시선은 그리 부드럽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처럼 설렁설렁 양손을 앞으로 모아 포권을 취했다.

“이리 찾아와 주셔서 아주 망극하기 그지없습니다. 귀하의 사문은 어디이십니까?”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도 청난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포권을 취하였다.

“수야각입니다.”

“아? 그으…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움을 준다는 그 수야각 수사? 사제가 함께 다닌다고 하는?”

“호오, 저희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지요.”

“하하하하하하하! 역시 사기꾼! 사기꾼이었어! 어디서 이 몸을 속이려 드느냐! 수야각에는 제자는커녕 가르칠 스승조차 없다는 것을 세상천지가 다 안다. 어떤 천치가 그런 뻔한 거짓말을 치고 다니나 했더니, 이렇게 반반한 자일 줄이야! 그 옆에 있는 미인은 돈으로 꼬신 게지? 얼씨구, 사기꾼이 돈은 많아서는…….”

청년은 작정하고 망신 줄 요량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백매는 자신에 관한 헛소리는 참을 수 있어도 제 사존에 관한 건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이를 부득 갈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저자를 갈가리 찢어 버려도 시원찮을 것 같았다.

“네놈 따위가 조롱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 사기꾼 새끼가 말이 많네.”

이 멍청한 청년은 백매의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더욱 도발하였고 심지어 검을 뽑아 들기까지 하였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다른 제자가 그를 말리려 들었지만 백매의 분노는 이미 비탈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탓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청년은 검을 수평으로 들고 찔렀다. 백매는 한 손으론 청난의 허리를 휘어 감았으며, 반대쪽 손으로는 허리에 묶여 있던 검집을 빼 들어 가뿐하게 검날을 막았다. 상대는 멈추지 않고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백매 또한 단 한 수도 놓치지 않고 막아섰다. 청년의 움직임은 크고 화려한 방면에 백매의 몸놀림은 간소하였다. 백매의 표정 또한 무심했으니, 그가 지루해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 이게! 비겁하게 피하지 마라!”

“네 실력이 떨어지는 걸 누굴 탓하느냐.”

청년은 백매의 호흡에 휘말려 점점 초식이 엉망이 되어 갔다. 급기야 주변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으로 휘둘러 대기까지 하였다. 그 탓에 일반인들은 위험을 피해 도로 내려갔으며, 연화문의 다른 제자들은 입으로만 그를 말리거나, 또 다른 이를 찾으러 떠났다. 청난은 백매가 잘 방어해 준 탓에 여유롭게 젊은이들의 싸움을 구경하였다.

사실 청난의 말 몇 마디면 백매는 손을 거두고, 사과까지 마다치 않고 할 터였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백매는 사과하려고 저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더구나 명백히 상대의 잘못이었을뿐더러, 청년이 중생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연화문의 최근 행적까지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으니, 청난은 그들을 위해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너희는 입만 살았구나. 상대도 가늠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네 스승도 별 볼 일 없는 작자일 게 뻔하지.”

‘오…….’

청난은 저런 말을 하는 백매를 처음 보았다. 예전엔 얌전하기만 하더니.

하지만 청난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사실 과거의 백매나 지금의 백매나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의 청난은 모두에게 대우받았으니, 그가 이토록 화낼 일이 없었을 뿐이었다.

“한심한 새끼.”

백매는 검집으로도 그를 상대하는 것을 멈추고는, 방어가 비어 있는 복부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그는 백매의 발에 배를 정통으로 맞고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사형!”

“감히!”

“이런 수모를 주다니!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곁에서 지켜만 보던 이들이 뒤늦게 검을 빼어 들었다. 백매는 여전히 검집에서 검을 빼내지 않았고, 그것이 그들을 더욱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검을 뽑아!”

백매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백매는 검집을 수평으로 잡고는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 같은 풍압이 몰려와 그 너머에 있는 이들을 모두 넘어트렸다.

백매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서 청난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새 몸을 두르던 거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였다.

“따분하시지요. 제자가 금방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내가 지루할 턱이 있겠느냐? 네 뛰어난 무예를 보니 내 가슴이 설레는구나.”

“사존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래, 그래. 네가 바람인지, 바람이 너인지 모르겠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사존의 검법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런 말 말아라. 내가 보기엔 너는 이미 굉장하단다. 다음에 이 스승에게 초식을 더 보여 주지 않으련?”

“물론입니다. 다만, 사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그럴 리 없어. 너는 뛰어나!”

청난은 훌륭하게 자란 제자에게 칭찬을 멈추지 않았고, 백매는 기뻐하였다. 그들은 다정한 사제 관계였다. 주변에 너덜거리는 연화문복을 입은 청년들만 아니었더라면 꽤나 보기 좋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크윽……. 가서 사숙을 모셔 와!”

“으응!”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가상했으나, 귀찮았다. 청난이 슬슬 이 난장판을 정리하려는 마음을 먹었을 무렵에, 웅장한 소리가 귀를 울려 대었다.

그것은 큰 종이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음성 같기도 하였다. 만약 후자라면 필히 평범한 자는 아니리라. 그 소리는 점점 잦아들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되었다.

“이 친우야, 왔으면 내게 오지 그랬나.”

강렬한 기백이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청난은 마치 산불을 목전에 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 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백매의 두꺼운 손등이 청난의 손에 닿은 순간 시원한 바람이 그를 감싸 안았다.

그 ‘산불’은 저벅저벅 사람의 발소리를 내었다. 그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거세졌다.

“헉, 사조님……!”

“사, 상선께서 오셨어……!”

“뭐, 상선?”

“진짜다! 진짜 신선이야!”

“연화진군!”

청난은 누군가의 외침이 있기 전에 이미 그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다.

몇 안 남은 민간인들은 범접하지 못할 존재에 납작 엎드렸으며, 연화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웃어른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청난과 백매만이 목과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화는 그 기백과 달리 인상착의는 차분한 편이었다. 그의 의복은 다른 평범한 연화문 제자들보다도 단출하였고, 긴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올려 묶었다. 그는 아무런 장신구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신선이 아니었더라면 저잣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듯했다.

방금 전까지 백매와 다투던 어린 제자는 감히 신선을 앞에 두고 예를 표하지 않는 백매에게 경고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입을 열려던 순간, 방금 전 자신들의 사조, 연화진군이 한 말이 떠올랐다.

“치… 친우……?”

그의 눈빛에 경악이 들어섰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잘못 들은 것이겠지?’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시기적절하게 백매가 대답하였다.

“난 너 같은 친우를 둔 기억이 없어.”

“응, 나도 반가워.”

허물없이 퍽 친근해 보이는 모습에 어린 청년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정말, 정말 잘못 건드렸구나. 부디 저 굉장하신 손님께서 자신을 잊어 주길 바라며 고개를 보다 깊숙이 숙였다.

연화는 백매의 뚱한 반응은 무시하고 곧바로 시선을 청난에게로 돌렸다.

“오랜만이야, 은사님. 그간 잘 지냈어?”

“덕분에 그리 편하게 지내진 못했지.”

청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연화는 아예 바로 앞으로 다가와 청난과 시선을 맞추려 하였지만 백매의 경계에 한발 물러서야 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날 미워하진 말아 줘. 나름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렇지, 화백매?”

“나한테 묻지 마. 언제쯤이면 내가 널 싫어한단 걸 기억할래?”

“알고 있어.”

연화는 저를 향해 절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전혀 상관치 않았다. 결국 많은 이들의 궁금증과 불편함을 대변하여 한 사람이 작은 목소리를 건넸다.

“사, 상전. 이분들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