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헤엑, 헥, 헥, 그, 그 옷이 완성되었으니 찾으러 오시래요. 헥헥, 두 분을 찾느라고 온 가게를 다 돌아다녔어요!”
“그러니, 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네 덕에 새 옷을 빨리 입어 볼 수 있겠구나. 이걸로 주전부리라도 사 먹거라.”
청난이 품속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쥐여 주었다. 아이는 한 번의 거절도 없이 냉큼 받아 들고는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공자님!”
아이는 뺏기기라도 할세라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갔다.
옷가게로 돌아가니 주인장이 크게 반겨 주었다. 그는 옷을 다 갈아입은 청난을 보며 다시금 호들갑을 떨었다. 백매는 그것에 기분 좋게 맞장구쳐 주었다. 과거의 백매는 사회성이 좋았는데, 현재에는 남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지 사회성이 떨어진 건 아니라는 것에 청난은 내심 안도하였다.
청난과 백매가 가게를 나서자 주인장은 입구 밖까지 쫓아 나와 배웅해 주었다. 넓은 대로에는 대체로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이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연화문이 있는 산문으로 가는 대로의 양옆에는 가게와 가판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호객하는 자와 물건을 사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청난이 백매와 함께 그들 사이를 유유히 지났다. 그러는 와중 한편에 들어선 과일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청난은 그곳으로 가까이 가 진열된 자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거 얼만가요?”
“한 바구니에 6전이에요.”
“물가가 많이 올랐네요. 한 바구니 주세요.”
“아무렴요. 시국이 이리 되고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 해요.”
과일 장수는 자두 한 바구니를 청난에게 건네었다.
“푼돈은 평소처럼 연화문에 달아 두면 되지요? 선사님 성함이 어찌 되시나요?”
“아.”
청난은 바구니를 건네받고는 품속에서 동전 여섯 개를 꺼내어 건넸다. 과일 장수는 저에게 건네진 동전을 보고 어리둥절한 모양새였다.
“연화문의 수사가 아닙니다.”
“아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 근방에서 귀태 나는 분들은 전부 연화문의 수사님들이시거든요. 지금 보니 공자의 옷은 그렇게 휘황찬란하지 않으시네요. 아주 잘 어울려요.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고개를 살짝 숙인 청난의 머리관이 빛을 반사하였다.
청난의 의복은 백색으로 보이기도, 청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은은한 미가 돋보이는 것이었다.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을 높게 묶고는 단조로우면서 은은한 멋을 낸 관까지 썼다. 거기에 그가 타고난 분위기까지 덧대어지니 누가 보아도 기백 넘치는 수선 자제의 모습이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검 하나가 달려 있는데, 이것은 백매가 준 것이었다. 하지만 청난의 몸으로는 제대로 휘두를 수 없으니, 차라리 도망가는 게 나을 것이었다. 물론 도망도 제대로 못 하겠지만.
백매가 척 보아도 귀한 검을 건네주었을 때, 청난은 그것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백매는 겉치레용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꿋꿋하게 건네주었다. 인상의 중요도를 아는 청난은 결국 받아 들고는 허리에 걸쳤다.
청난과 백매는 외모도 빼어나며, 걸음에서 드러나는 풍채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그들을 감싼 의복이며 장신구 또한 길거리에서 흔히 파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을 내었으니, 명문자제라 오해하기 충분하였다.
“마침 연화문에 찾아가려던 차이긴 합니다. 요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던데, 부인께서는 아시는 바가 있으실까요?”
“어머, 그래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네요.”
“으음…….”
청난은 과하게 눈썹을 들썩이며 곤란한 모습을 하였다. 그의 연기는 어색하였으나, 외모가 주는 호감이 밑바탕에 깔린 덕분일까, 과일 장수는 그의 연기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빼 들어 도리질하며 양쪽을 살피더니 귓속말하듯이 소곤대었다.
“알았어요. 연화문을 도우러 오신 선사님들이니, 두 분만 알고 계셔야 해요. 요즘 하도 흉흉해서 말 한번 잘못 꺼내면 밉보이기 십상이거든요.”
“고맙습니다.”
“음, 어려움을 겪는 건 잘 모르겠는데, 요즘 제자들을 많이 뽑아 가긴 해요. 예전에 비해 거의 곱절로 늘었지, 아마? 시국이 이러한 탓인 것 같긴 한데… 영 꺼림칙해서 말이에요. 어쩔 땐 잠도 안 온다니까요.”
“음… 그렇단 말인가요…….”
청난은 과일 장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청난의 입매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그의 진중한 모습에 과일 장수는 걱정이 들었다.
“선사님, 무슨 일 일어나는 건 아니지요?”
“아,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저흴 부른 것과 같은 이유인 모양입니다. 늘상 해 오던 것인데 규모를 좀 키웠나 봐요.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
청난이 양손을 흔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녀는 백매의 눈치를 살피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하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청난은 걱정 말라며 그녀를 거듭 안심시키고서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청난과 백매는 유달리 눈에 띄는 탓에 가는 곳마다 시선을 받아야 했다. 다행인 것은 그들을 붙잡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수사처럼 보이는 탓이리라.
‘아무리 그래도 다가오는 이 한 명 없다니.’
청난은 이곳에서 수사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얼핏 알 수 있었다.
수야각이 있는 산이 수야산으로 불리듯, 연화문이 있는 산은 연화산으로 불리었다. 청난은 연화산의 산문에 서서야 한 가지 잊고 있던 것을 상기하였다. 바로 과거의 수야각이 속세와 가장 가깝게 지낸 문파였다는 것이다. 지리적 입지와 문파의 성향은 크게 맞닿아 있다. 수야각이 속세와 가까이 지낸 것은, 그만큼 가까운 탓이었다. 그 말은 즉, 대부분의 문파가 수야각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수야각도 일반인이 오고 가기 마냥 편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니 연화문은 얼마나 힘겨울까. 청난은 벌써부터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청난의 발걸음이 망설이자 백매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청난을 바라보았다.
“사존, 제자가 모실까요?”
“아니다. 네게 안겨서 간다면 그들이 어찌 보겠느냐? 얕보여 좋을 것 없으니 직접 오르마.”
“그럼 직전에 내려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평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을 게다. 누가 볼지 어찌 알겠느냐. 네가 답답하더라도 참아 주거라.”
“답답하지 않아요.”
“그럼 다행이고.”
청난은 자신이 스스로의 말을 지킬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산을 오른 지 일 주향가량 지난 무렵, 백매의 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사존, 여기 경치가 좋은데 잠시 구경하고 가면 안 될까요?”
“음… 여기가 말이냐……?”
“네.”
청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저 똑같이 생긴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평범한 숲인데, 무엇이 그의 마음을 끌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청난은 마침 숨이 차오르던 차였기에 기쁘게 수락하였다. 마침 근처에는 적당한 바위가 있었고, 울창한 나무는 큰 그늘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휴식을 취하기 좋았다. 청난의 발이 적당히 쉬었을 무렵에 백매의 관광도 끝이 나 다시 산을 올랐다.
그리고 두 주향이 채 지나기 전에 또다시 백매의 걸음이 멈추었다.
“사존, 선계에서 전음이 왔습니다. 잠시 연락을 취하고 와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백매는 청난의 눈이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벗어나 한 나무에 기대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탓에 청난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침 그곳도 쉬기 좋았다. 바로 옆에 계곡이 있는 덕에 발을 담그니 시원하였다.
청난의 발이 슬슬 서늘함을 느낄 무렵에 백매가 돌아와 또다시 산을 올랐다.
그리고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또다시 백매의 걸음이 멈추었다. 이번에는 이 산에만 있다는 짐승을 잡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이쯤 되니 청난은 그가 자신을 위해 멈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반 시진 후, 또다시 백매의 걸음이 멈췄다. 이번에는 청난의 입이 더 빨랐다.
“사존, 이 부족한 제자가…….”
“매아야, 내가 좀 힘들구나. 잠시 쉬고 가지 않으련? 네가 내 옆에 있어 주면 좋겠구나.”
“아… 아, 네! 그렇게 할게요, 사존.”
청난이 거대한 나무뿌리에 걸터앉자 백매가 활짝 웃으며 쪼르르 다가왔다.
그렇게 걸었다가, 쉬고, 또다시 걷고를 반복하였다. 그 탓에 평범한 주민들이 세 번은 도착했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연화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다. 이제 신시 정도 되었을까. 이르게 출발한 덕이었다.
연화문의 입구에는 연화문복을 입은 두 명의 제자가 입장객을 돕고 있었고, 사람들은 줄을 서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두 제자 중 한 명은 입장객을 안내하는 역할을, 다른 한 명은 기록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기록하는 청년의 얼굴엔 꽤나 불만이 서려 있었고, 말하는 품새는 불량스러웠다.
한 주향을 더 기다려서야 청난의 차례가 되었다. 기록하는 청년은 여전히 불만 서린 말투로 툭 뱉었다.
“이름, 목적.”
“청난이라고 합니다. 시체를 발견해서 왔습니다.”
“청난, 시… 뭐, 뭣?”
청난의 말을 따라 받아 적고 있던 청년은 놀라 붓까지 떨어트렸다. 청난보다 앞서 들어간 자, 청난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 심지어 백매까지 놀라워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