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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70)화 (70/111)

#70

그 모습은 밤까지 이어졌다. 백매의 영기가 새의 형태를 갖추어 도시 안을 빈틈없이 탐색하였지만, 요마의 ‘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요마가 아닌 사람의 짓인 걸까 싶어 피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았지만, 그 또한 없었다.

“사존, 아무래도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성싶습니다. 오늘은 이만 주무시는 게 어떨까요?”

“으음… 그래야겠지?”

“네. 제자가 침상을 정리하겠습니다.”

백매는 그날 이후 청난을 하루 네 시진 이상은 재우려 들었다. 청난은 자신의 죄가 있었으니 반박하지 못하였고, 그가 잘 시간을 알리면 착착 침구 속으로 들어갔다.

“너는 자지 않느냐?”

“신선은 잘 필요가 없습니다.”

백매가 청난이 덮은 이불을 정리해 주며 슬며시 웃었다. 청난은 그 대답이 못마땅했다.

“그럼 안 피곤하느냐?”

“그건 아니지만, 자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피로가 풀리는 정도는 매한가지예요.”

“그럼 다른 신선들도 안 자느냐?”

“자는 이들도 있고, 자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는 이들도 기호일 뿐이지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너도 잘 순 있겠구나.”

청난은 그가 덮어 준 침구를 접으며 일어났다. 마침 백매의 손이 가까이에 있었으니 그것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뜸 손이 잡힌 백매는 제 손과 청난을 번갈아 보며 그의 의중을 살피었다.

“너도 자자꾸나.”

“네… 에? 사, 사존, 제자는 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 어디서 잔단 말인가요?”

“예서 나와 함께 누우면 되지 않느냐. 네가 어릴 적엔 자주 그러하더니, 이젠 다 컸다고 부끄러워진 게야?”

“사존, 저, 저 다 컸습니다. 어찌 제자가 감히 사존의 침상을 넘볼 수…….”

청난은 백매의 팔을 당기며 그의 말을 끊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 옛 생각이 나지 않느냐.”

“하지만…….”

“스승이 잠이 오지 않는다. 네가 재워 준다 생각하는 건 어떠하냐? 날 보필한다며?”

백매는 청난이 ‘까마귀가 하얗다’고 해도 ‘그렇군요.’ 할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궤변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백매는 차마 옷을 벗을 순 없었기에 먼지가 가득 묻은 외의만 한쪽에 벗어 두었다.

백매가 침상에 걸터앉아 머리에 쓴 관을 풀어냈다. 오랜 시간 동안 관에 묶여 있던 머리카락은 단숨에 풀어지며 내려앉았다. 청난은 그 모습을 보며 마치 댐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물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물도 아름답구나. 저곳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참 기쁠 테지.’

청난은 그리 생각하다 자신의 양 볼을 착 때렸다.

‘제자의 머리카락을 보고 무슨 헛생각을 한 건지.’

청난이 다시 침상에 눕자, 백매도 따라 옆으로 누웠다. 그들 사이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는데, 그것이 이 침상이 둘이 눕기 충분할 정도로 큰 탓인지, 아니면 백매가 떨어질락 말락 할 정도로 끝에 몰려 있는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 두 가지가 전부 이유일 것이다.

이 순간 백매는 숨을 참고 있었다. 애초에 신선은 호흡을 할 필요 없었으나, 대부분의 신선이 인간일 적 습관을 버리지 않고 호흡을 즐겨 하였다. 지금의 백매는 자신의 심장마저 멈추게 해 버렸다.

‘같은 침상에 누웠다고 이런 마음을 품은 걸 알면 사존께서 실망하실 게 분명해.’

백매의 볼이 하염없이 붉어지고 있을 때, 두 눈을 감고 있던 청난의 목젖이 가볍게 울렸다.

“매아, 넌…….”

백매는 찔리는 것이 있던 찰나라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바짝 긴장되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무, 무엇을 말입니까……?”

“연화문 말이다.”

“아! 네! 연화문!”

“응? 뭘 그리 놀라?”

청난이 눈을 뜨고 돌아보니 백매는 혼비백산한 듯 정신없이 마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벼 대고 있었다.

“뭘… 하느냐?”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그, 연화문을 물으셨지요?”

“그래. 괴이하지 않으냐.”

백매는 정신없는 낯을 금세 진정시켜 심호흡을 내뱉었다.

“전해 들은 것은 ‘연화문이 주둔한 도시 안에서 매일같이 피로 덮인 시체가 무더기로 나온다.’였죠.”

“그래.”

아무리 수선계가 전만 못하게 되었다고 해도, 연화문은 삼백 년 전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명문 문파였고, 심지어 지금은 으뜸에 서 있는 듯하였다. 그런 문파가 주둔한 곳에서 매일 피해자가 나온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사귀의 흔적 유무를 떠나, 수선계에 몸을 담갔던 사람으로서 고통받는 백성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건만, 이곳은 너무 평화로웠다.

“심수표국의 정보가 잘못된 걸까요?”

“그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애초에 놀라운 정보였으니. 하지만, 잘 모르겠구나.”

청난은 지난 날 지부장의 표정을 회상하였다. 가벼운 미소 사이로 스쳐 지나갔던 불안감을.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넘기며 그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무어 있을까. 청난은 무거운 눈꺼풀을 깜박였다.

“우선 내일 연화문에 가 보자꾸나. 그곳에선 뭐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자가 내일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지금의 수선 문파들은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해.”

“음… 별로 좋아하진 않으실 것 같아요.”

“어째서?”

“사존께서는 게으름 피우는 자를 싫어하시니까요.”

“하하하, 네 눈엔 그리 보였더냐?”

“아닌가요?”

“음…….”

청난은 스스로가 유한 스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제자들이 수행을 하지 않을 때마다 꾸중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무서웠느냐?”

“전혀 아닙니다. 당신이 그토록 따뜻하고 친절하신데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싫어하는 거랑 무서운 건 다르지 않으냐.”

“으음……. 제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존께서는 절 다그친 적이 없으셨으니까요.”

“하하, 그랬지. 너처럼 성실한 아이를 혼내는 사람이 있다면, 성격이 안 좋은 인물일 게다.”

백매는 저만 보면 눈썹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내던 진주국을 떠올렸다. 평소의 백매라면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부끄러워하며 아니라 하였을 텐데, 진주국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이 평소와 다른 말을 꺼내게 하였다.

“맞아요. 그렇겠죠?”

“응, 그렇지. 내 애제자지 않으냐. 가장 뛰어난 제자인데 그 누가 탓을 한단 말이야.”

“제자는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사존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을 뿐입니다.”

“아이고, 비승한 제자가 뛰어나지 않다면 그 누가 뛰어나다 할 수 있겠느냐.”

청난은 백매가 더 이상 땅굴 파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그를 덮은 이불 위로 손을 올려 토닥여 주었다.

“잠이나 자자꾸나. 나는, 흐아암… 슬슬 졸리구나.”

“네, 사존. 안녕히 주무세요.”

청난은 빠르게 잠들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동안 백매는 당연하게도 잠들지 않았다. 필요가 없는데 굳이 잠에 빠져 긴장을 놓을 이유는 없었다.

백매가 청난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들은 지도 반 시진이 지났다. 백매는 그제야 침구 밖으로 손을 빼내어 청난을 덮은 침구 위에 손을 올렸다. 토닥토닥. 청난이 저에게 해 준 것처럼 그를 토닥여 주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청난이 깰까 봐. 아니 차마 입 밖으로 낼 용기가 없는 노래를 속으로만 읊조렸다.

다음 날, 청난은 옷가게를 찾아 새로운 옷을 맞추었다. 치장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외형 요소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크다. 청난은 지금까지 그 덕을 톡톡히 봐 오기도 했으니 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백매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평소 입는 옷이 그의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기에 굳이 새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뭣보다 들고 다니는 법기가 많은 탓에 탈의 자체가 꽤 번거로운 편이었다. 그러하여 결국 새 옷을 장만하는 건 청난뿐이게 되었다.

청난은 옷을 보는 재주가 좋지 못한 탓에 그의 옷감은 백매가 골라 주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청난의 옷시중을 도와 왔기에 청난은 애써 제 호불호를 일러 줄 필요가 없었다. 백매는 주인장과 색채니, 분위기니 갖은 말을 주고받았다. 청난은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대략 저에게 잘 어울리는 형태에 대해 나누는구나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결국은 주인장이 백매의 안목을 칭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자께서 감각이 뛰어나시군요. 많은 분들께서 값비싼 옷감만 찾을 줄 알지, 저와 어울리는 건 따지지 못하는데 말이죠. 제가 경력을 걸고 여기 계신 공자님께 어울릴 최고의 옷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예. 그럼 주인장, 잘 부탁드립니다.”

백매는 마지막 인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그리고는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의 미색을 본 주인이 어떤 귀한 신분으로 오해하고 서둘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청난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었지만 제 제자는 눈에 띄는 미모를 가졌으니, 이곳에 서서 우리 안 원숭이 꼴이 되느니 양심 조금 찔리는 게 나았다.

백매는 언제나처럼 이 인분이라기엔 과하게 많은 양을 시켰고, 대부분을 청난이 먹었다. 청난이 마지막 고기를 집어 먹었을 때, 헐레벌떡 뛰며 숨을 턱턱 내뱉은 꼬마 아이가 식당에 들어와 소리쳤다.

“여기 청 공자 계신가요? 청난 공자!”

“제가 청난입니다.”

청난이 손을 들자 아이가 우두두 뛰어왔다. 아이는 청난과 백매를 앞두고 숨을 고르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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