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표국의 행렬은 단출한 편이었다. 짐마차는 불과 두 대에 불과했다. 표국 무사는 행렬의 맨 앞과 맨 뒤에 주로 배치되었으며, 행렬 가운데에 배치된 것은 네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네 명 중 두 명이 청난과 백매였다. 청난은 부상을 핑계로 마부석에 앉게 되었는데, 그러자 백매가 마차를 몰겠다 자진하였다.
짐마차에는 의뢰인 일행이 함께 타고 있었다. 청난은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심심함을 달래었다.
“그 소문 들으셨나요?”
“‘그 신선’이 옆 마을에 다녀갔다는 얘기 말인가요?”
“네-! 맞아요-! 그분이 영광을 뿌리니 모든 병자가 나았더래요! 참 대단하죠? 저도 그분을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혹시 길이 겹치진 않을까요?”
“얘도 참. 신선이 사람 사이에 오겠어? 왔대도 우리처럼 걷거나 말을 타지 않겠지.”
“그럼 신선은 뭘 타고 가죠?”
“음……. 구름을 타지 않을까?”
평소엔 제자를 타고, 지금은 마차를 타고 있다.
청난은 자신의 얘기에 모른 척 입 다물었다. 청난이 그들을 힐끗 바라보기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대화의 무리에 있던 소년이 청난에게 불쑥 다가왔다.
“공자! 공자께선 여행을 다니신다지요? 그 신선에 대해 아십니까?”
“저도 소문을 주워들었을 뿐이라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에 대한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어김없이 수확이 없었고, 언제나처럼 피폐해진 마을이 널려 있었다. 청난은 지식을 짜내어 농법을 전수하고, 백매로 하여금 악인을 잡아들이게 하곤 여느 때처럼 도의를 외웠다. 그러자 청난에게 치료를 받았던 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니, 그때서야 자신들에 대한 소문이 도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을 가여워하여 스스로 내려온 신선이라니. 어쩌다 그런 몽상 같은 설정이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신선은 자신이 아닌 백매였는데 이야기 속 신선의 행동은 청난이 한 것들이었다. 심지어 둘이 아닌 한 명이 홀로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또 어느 지방에서는 좌우가 각각 다르게 생긴 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다.
신선의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퍼진다곤 하는데, 청난은 비승도 하기 전에 그것을 겪을 줄은 몰랐다.
청난이 간단히 둘러대느라 돌렸던 고개를 바로 세우니 그곳에는 당과 하나가 떠 있었다. 청난은 그것을 앙 베어 물었다. 청난이 한 입 씹어 넘길 동안 남은 반쪽은 그대로 있었고, 청난이 또다시 입을 앙 벌려 그것을 마저 삼켰다. 이토록 청난을 아낄 자는 과연 백매였다.
“달구나.”
“맘에 드십니까?”
“응. 맘에 들어.”
소년은 그 광경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선사님들은 사제 관계시랬죠?”
청난은 기름이 묻은 입술을 닦으며 의아한 낯을 하였다. 입술을 닦은 천도 백매가 건네준 것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으음…….”
소년의 의심이 표정에 낱낱이 드러나 청난은 익숙한 질문에 살포시 웃었다.
“무엇이 그리 이상한가요?”
“엇! 그러니까 아니, 어… 아! 두 분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시는 것 같고, 심지어 청 선사께서 더 어려 보이셔서요! 헤헤.”
“그런 질문 많이 들으니 그리 무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쩌다 보니 이런 관계가 되었지요.”
“어쩌다가요?”
“네, 어쩌다가.”
소년의 어투는 누가 보아도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는 듯했지만, 청난은 모른 체 입을 굳게 닫았다. 청난의 입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던 소년은 끝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는 다시 일행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지만, 귀한 수사와 대화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주제로 입을 열었다.
“남향엔 어찌 가세요?”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요.”
“와아- 그분도 수사시겠네요.”
청난은 미소를 지을 뿐 굳이 단어로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그의 미소도 보지 못했을 텐데, 아무런 답이 없음에도 상관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시기를 아주 잘 맞추셨어요!”
“그런가요?”
“물론이죠! 요즘 완전 축제 분위기거든요.”
“축제라고요?”
“아, 모르세요? 곧 연화진군 비승 기념일이에요. 이런 시국에 남은 유일한 행사죠.”
소년의 설명에 청난은 더욱 얼떨떨해졌다.
“비승을 기념한다고?”
“네, 맞아요. 다른 신선도 아니고 연화진군이니까요. 수사신데 모르세요?”
“아, 네……. 제가 사람을 잘 안 만나서…….”
청난은 하하 정직하게 웃으며 둘러대었다. 소년은 시골 수사 청난을 위해 더욱 자세히 알려 주었다.
십 년 전 요마의 수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외출을 줄이고 소리를 줄였다. 그러니 행사 또한 자연히 사라져 갔다. 그나마 황실에서 열리는 행사들은 유지됐었는데, 이 년 전 북방의 한 왕족이 전멸되면서 그마저도 열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단 하나 유지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연화진군 한연화의 비승을 기념하는 연승절(蓮昇節)이었다. 본래 신선의 비승일을 챙기는 것은 그의 신도들뿐이었다.
하지만 연화진군은 다른 신선들과 다소 다른 행보를 보였다. 바로 인계를 드나들며 자신의 신격을 숨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선계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겨졌었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니 만민을 두루 살피는 성군의 면모로 여겨졌다.
시국이 이러하니, 인간의 존재를 기억을 할는지 모를 신선들보다 연화진군을 찾으며, 그를 기념하고 찬송하여 그의 눈길에 닿길 바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신을 바라다 요마에게 죽지 않겠습니까.”
백매의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청난만 볼 수 있는 비죽 나온 아랫입술을 보아하니 꽤나 언짢은 모양이었다. 그는 연화에 대해서는 못마땅해하기 일쑤였지만 정작 그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고 삼백 년을 함께 지냈다. 그건 분명 저와 지낸 시간보다 길 터였다.
“사존, 어디 언짢으십니까?”
“응? 아니, 왜 그러느냐.”
“아, 제자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방금 불편해 보이셨거든요. 불편하신 게 있다면 뭐든 제자에게 말해 주세요. 제자가 사존을 위해서 뭐든 하겠습니다.”
“그런 거 전혀 없어. 내 불편하면 언제든 말하마.”
“네, 사존.”
백매는 슬며시 웃고는 다시 정면을 보며 안전하게 사존을 모시는 일에 집중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반나절에 불과했다. 이것은 예상 시간보다 반나절가량 빠른 시간으로, 그 덕분에 그들은 해가 떠 있을 때 도착할 수 있었다.
민심이 흉흉한 시대에는 당연지사 크고 작은 악행이 따라붙었고, 심수표국의 마차 또한 오는 길에 도적을 여럿 만났었다. 표사들의 실력이 하나같이 출중하였기에 노략당할 확률은 낮았지만, 늦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표사들은 그런 시간까지 계산하여 밤중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부장의 요청으로 동행한 이들의 무예 실력이 그리도 출중할 줄은 몰랐을 것이며, 또한, 곱슬머리의 청년이 마차가 한시도 쉬지 않게끔 할 것이란 것도 몰랐을 터였다. 그 덕에 그들은 이런 경이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축제니까요.”
표국의 의뢰인이 평소 이곳과 왕래가 잦았던 덕분에 그들은 검문을 금세 통과할 수 있었다. 아니었더라면 청난은 아낀 반나절을 검문 대기에만 쏟아부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이 성에는 오가는 이들이 많았다.
성문을 지나 펼쳐진 광경에 청난은 순간적으로 황성이 있는 수도로 잘못 온 건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높았으며, 단정하고 깔끔하였다. 중원의 건축 장인들을 모두 섭외하기라도 한 걸까.
지나는 사람들의 복장은 또 어떠한가.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것들이었으니, 이곳은 의류 장인들도 천지일 것이다. 세상의 부가 한곳에 집합된 것만 같았다.
“이건 정말…….”
“놀랍죠? 처음 온 사람들은 대개 그런 반응이에요.”
소년이 청난의 감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리도 번화한 것인가요?”
“이렇게 부흥한 건 비교적 최근이에요.”
“그럼 십 년 전부터겠네요.”
“네, 맞아요. 다들 안전하게 지내고 싶어 하니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수선 문파가 있는 곳은 번성하곤 하였다. 그러다 요마 문제가 생기면서 그것이 과해진 것이었다. 더구나 연화진군이 있는 이곳은 연승절 축제가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더욱 선호되었겠지. 그 결과 이렇게 호화로워진 모양이었다.
소년은 이번에도 청난을 위해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사람은 몰리고 집은 부족했죠. 처음에는 집을 높게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으로도 부족하게 됐고, 결국 없는 자는 떠나고, 가진 자만 남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귀족이나 상인들이 많아졌고, 따라서 저희 표국의 단골 도시가 되었죠.”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설명을 마쳤다.
마차가 도시 안에서 약탈당할 리 없으니 표국의 일은 여기서 끝이었다. 마차는 주인의 곁으로 향했고, 청난과 백매를 비롯한 표사들은 약조된 돈이 배달되기를 기다렸다.
엿들은 대화에 따르면 이번 의뢰인은 과하게 수다스러워 의뢰비를 받으려면 적어도 일 주향 동안은 대화 상대를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청난과 백매는 수야각 시절로 인해 한 주향 정도 기다리는 것은 가뿐했다.
그 말은 시간을 때우는 자잘한 놀이를 잘 안다는 뜻이었다.
과거의 청난은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나뭇잎 개수를 세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었다. 아쉽게도 집을 짓기에도 부족한 도시 안에는 잎사귀를 세면서 놀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청난은 대신 조금 전부터 자신의 볼을 간질이는 제자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