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청난은 그들에게 장황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주변에 있는 요마들의 특성, 그로 인해 먹어도 될 것과 먹으면 안 될 것,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마을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 등이었다. 청난의 말 중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삼 할에 불과했으니 숱하게 문답을 주고받아야 했다.
그들과의 대화가 끝났을 때엔 밤이 어둑해지고 있었고, 이는 백매와 약속한 시간의 끝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겐 해가 지면 떠나겠다고 일러 놓았으니, 청난은 조용히 떠날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순찰하며 원래의 목적, 사귀의 흔적을 찾았으나 아무런 득도 발견하지 못하고 마을 어귀를 밟았다.
“사존, 다음엔 어디로 가실 건가요?”
“이 근처에 심수표국(沈舟鏢局)의 지사가 있으니 그곳에 들러 보려고 한다.”
“이번엔 성과가 있을까요?”
“그러길 바라야지.”
‘심수표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심경의 본가에서 운영하는 표국이었다. 심수표국은 이백 년 전통을 지녔으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한마디로 심경은 부호 가문의 소저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어쩌다 사병이 되어 은퇴한 시골 마을의 상인 아래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껏 밝히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녀는 청난과 백매가 여행길을 떠난다 하니 선뜻 자신의 출신과 함께 도움의 의사를 밝혀 주었다.
청난은 심수표국에 정보를 의뢰하였다. 처음에는 ‘괴이한 요마’에 대한 것을 의뢰하였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요마는 모두 괴이하였으니, 오히려 아무런 제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뢰를 ‘요마’에 대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너무 많아서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에는 일정한 기간 안에 일정 수치 이상의 피해를 남긴 요마에 대한 정보만을 받기로 하였다. 그렇게 여러 번 소문과 결과를 주고받으니, 표국에도 정보가 쌓여 갈수록 그 질이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매는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난번엔 고생만 하시고 허탕이었죠.”
“늘 정답일 순 없잖느냐.”
백매는 여전히 심통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청난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정보의 특면에선 그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음을 백매라고 모를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더 뛰어났으면 고생하지 않으셨을 텐데…….’
백매의 능력은 무에 치중되어 있는 탓에 이런 세밀한 것에는 다른 신선에 비해 확연히 부족하였다. 똑같이 하늘 위에 사는 자인데, 다른 이는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은 하지 못한다. 그 생각은 열등감을 이끌었다.
청난은 무겁게 가라앉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청난은 아침상의 음식을 집어내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하였다.
“네가 모든 걸 잘하면 단지 신선이겠느냐? 창조신이었겠지. 넌 부족하지 않아.”
속을 그대로 들켜 버린 백매는 입술을 뻐금거리다가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사존께서는… 독심술을 하시나요?”
“파하- 그래 보이느냐? 내 제자 한정으로 할 수 있다고 치자.”
“사존께서 제 속까지 읽어 내시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당연하지. 널 키운 것이 난데,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청난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밤이 깊어 가며 한기가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청난이 얇은 살결을 두드리는 싸늘함에 팔목을 문지르자 그의 어깨에 두꺼운 것이 올라왔다. 청난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제 제자가 걸쳐 준 피풍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난은 피풍의의 끝을 잡아당기며 제 몸을 둘둘 싸매고 걸어 나서려 하였다.
“자, 잠시만요, 신선님!”
그때 아마도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선사님.”
“진정하세요. 어디 안 가고 기다리겠습니다.”
청난의 나긋한 말에 여인은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숨을 고르다 진정이 되어서야 제 용건을 말하였다.
“저… 이거, 얼마 안 되는 거지만 저희 정성입니다. 가는 길에 간단한 요기는 될 거예요. 다들 집에 환자가 있어 나오기 어렵지만, 마음만은 저와 같아요.”
청난은 그녀가 내민 보따리를 바라만 볼 뿐 받아 들지 않았다. 그에 여인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축 숙였다.
“압니다. 선사께서 드시기엔 너무 조촐하죠.”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실 저희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어요.”
“사존?”
청난이 손을 들어 백매의 말을 막았다.
“그러니 저희가 가져가 낭비하는 것보단 마을 주민들이 먹어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시는 것이 저로선 더한 기쁨입니다.”
“아아… 역시 신선이셨군요……!”
청난은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여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 경외심이 깃든 것이 청난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하였다. 청난은 애써 정정해 주지 않았다. 청난이 묵례를 하고 마을 어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그곳에서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마을에서 내륙으로 더 걸으면 아랑 마을보다 조금 더 큰 도시가 나온다. 그곳에는 심수표국의 지사가 있어 오늘 밤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보를 얻을 예정이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산길이었는데, 달빛이 밝은 날이었으니 청난은 제 발로 걸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숨이 차고 넘어져 버린 탓에, 결국 이번에도 얌전히 백매의 품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안기는 것에 익숙해져도 될지 고민이 서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을.
목적지에 도착하니 성문은 이미 닫힌 지 오래였다. 기이한 침입자를 막기 위해 해가 지면 성문을 닫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백매는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가뿐히 넘어 들어갔다.
고요한 성 밖 분위기에 비해 내부는 그리 조용하지는 않았다. 아니, 조용했지만, 동시에 그러지 않았다. 성 중앙에 위치한 번화가는 달이 차오른 시간임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오색의 불빛을 화려하게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곤조곤하였으니, 이는 아랑 마을에서 피신하는 와중에도 소리를 내지 않았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였다.
청난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성벽을 넌지시 보았다.
“이 정도 거리면 불빛이 바깥까지 새어 나가진 않겠어.”
“네. 소리도요. 이곳의 지도자는 꽤 지혜로운 인물인가 봐요.”
“그래. 마침 성벽으로 완전히 둘려 있으니 지리적으로도 운이 좋았지.”
청난은 대로를 가로지르며 백매와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눈으로는 가게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다.
“오면 바로 보일 거라 하였는데, 어째 보이지 않는구나.”
“음… 사존, 제 생각에는 저곳이 아닐지 싶습니다.”
“으음?”
청난은 멈추어 선 백매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집의 현판에는 확실히 ‘심수표국(沈舟鏢局)’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분명 지사라 하지 않았나? 청난이 그 건물을 못 본 건 아니었다. 다만, 당연히 관아 건물이라 생각하고 지나친 것이었다. 그야 이곳에서 본 건물 중 가장 크지 않은가. 이것이 표국이면, 관아 건물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청난이 두리번거렸지만, 관아의 ‘관’자도 연관 있어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표국 앞에서 청소하고 있던 인물과 눈이 마주칠 뿐이었다. 그는 청난을 오 초가량 빤히 바라보더니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려놓고 쫑쫑 걸어왔다.
“청 선사님 맞으시죠?”
“아… 네? 제가 청씨는 맞습니다만……. 혹시 심경 소저의 연락을 받으신 것인지요.”
“네, 네. 맞습니다. 그럼 이쪽 분께서 화 선사시군요.”
“인사드립니다.”
백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표국의 사람은 굳이 따지지 않고 그들을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표국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손님으로 보이는 인물은 적었고 대부분이 이곳의 종업원으로 보였다. 청난을 안내해 준 이는 접수대까지 데려다주고 접수대에 있는 중년여성에게 청난과 백매를 간단히 소개한 후 안쪽으로 사라졌다.
“심 소저의 지기분이시라고요? 증표를 갖고 계신가요?”
“네, 잠시만요.”
청난이 옷섶 안쪽을 뒤적여 은색 패를 꺼내 들었다. 손바닥만 한 그것의 가운데에는 ‘심경’이라 적혀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저희 소저께서 폐를 많이 끼치시지요. 이곳에서 편히 지내다 가세요. 랑아, 이 손님들을 안내해 주겠니.”
“네에- 선사님, 이쪽으로 오세요.”
랑이라 불린 어린 여자아이는 청난의 소매를 쥐고 앞서 걸었다. 그 아이의 행동은 어린아이가 떼쓰듯 소매를 잡아끄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가볍게 쥐었을 뿐 조금도 당김 없이 그를 안내할 뿐이었다.
랑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 층은 다양한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인물과 손님으로 보이는 인물이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보아 이곳은 대체로 면담실로 쓰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네.”
“네에- 저희만큼 실력 좋은 곳이 없으니까요. 자,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랑은 그들을 이 층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 층은 일 층과 달리 문들의 간격이 꽤나 넓었다. 그 형태나, 돌아다니는 이들의 옷차림을 보았을 때 이곳은 여관 내지는 종업원 숙소로 이용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