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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64)화 (64/111)

#64

그들이 좁은 골목에서 땅 위로 발을 내렸을 때, 마침 그곳에는 막 들어선 진영이 있었다. 진영은 그들이 바짝 붙어 내려오고 서로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것까지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뒤늦게서야 그를 발견한 청난이 인사를 건넸다.

“진 공자, 안녕하세요.”

“오……. 네, 안녕하세요. 두 분은 참 사이가 좋으시네… 요?”

“그렇… 죠?”

청난은 놀라워하는 진영의 반응이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엇도 묻지 않으니, 그저 벌레가 묻었던 게 아닐까, 하고 넘겼다.

“공자도 신상을 보러 가시나요?”

“네! 경이 누나도 어머니를 뵙고 따라온다 했어요. 화 선사께서는 정말 손이 빠르십니다. 역시 제대로 배우신 술법은 다른가 봅니다.”

진영이 부챗살을 펼치며 호쾌하게 웃었다. 아마 지금 인계에서 으뜸인 수사도 백매처럼 사흘 안에 거대한 신상을 만들지 못하겠지만,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벌써 심 소저와 호형호제하는 모양이네.’

사흘 만에 신상을 만드는 백매 못지않게 사흘 사이 호형호제하는 진영의 친화력도 참 대단했다.

그렇게 백매, 청난, 진영이 신상 가까이 다가가자 과연 시선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화제의 주인공이 함께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어느 날 나타난 영웅 화 선사, 비밀스러웠던 큰집의 젊은 소공자 진영, 그리고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진청난. 그들은 전처럼 숙덕이진 않았지만, 청난은 그들이 저에 대한 의심을 떨친 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시간이 어련히 해결해 줄 터이니.

신상은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사흘 만에 나온 결과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 정말 고생하셨네요. 사흘 만에…….”

“더 일찍도 가능했어요. 하지만 책사께서 주시는 당과가 어찌나 맛있던지, 의자에서 일어나지지 않더라고요.”

백매는 청난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가 잠든 후에야 조용히 나가 작업을 했다. 그 때문에 마을 주민들도 석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 전날과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만 보았으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백매는 그들을 가로질러 신상의 받침대 위에 올라섰다. 누가 보아도 불경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영웅이었고, 그 신상을 만든 장인이었으니 그것을 지적하며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 신상은 제가 신앙하는 해류진군의 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앞에서 기원을 하시면 진군께서 이곳을 비호하여 결계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결계가 무너진다면 여러분들의 기원이 부족한 것이죠.”

백매는 ‘알아서 생존하세요’라는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백매의 설명은 매우 간결했기에 모두를 납득시키기는 어려웠다. 역시나 한 노년의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신상만 세우면 비호해 주신다니, 저는 그런 신상은 들어 본 적…….”

“묻지 마십시오.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찬바람이 쌩 불던 백매의 고개가 청난에게로 향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미소로 변했다.

“이제 가요.”

“웃어른을 공경해야지요.”

“제 웃어른은 책사이시니 충분히 공경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외모만 보아서는 저 노인이 백매보다 연상이지만, 실제론 백매가 저자보단 몇 배는 더 살았으니.

백매는 저와 단둘이 있을 때는 수줍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인데, 밖에 나오면 능청스러워지곤 했다. 무슨 차이일까. 누군가 지켜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자신이 존댓말을 써서 그런가? 후자라면, 그를 위해 말투를 고칠 생각이 다분했다. 애초에 오직 그에게만 하대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면 서운해할 것 같지?’

‘제자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며 풀 죽은 모습의 백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귀여운 탓에 종종 놀리게 되어 버린다.

‘참아야지.’

하지만 입 끝은 참아지지 않고 마냥 하늘 위로 샘솟았다. 백매를 따라 걷던 발걸음이 어느새 인파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백매가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기분 좋은 일이 있으셨나요?”

“응, 그럼, 그럼. 아주 좋은 일이 있었지. 어서 가자꾸나, 아가.”

“사존, 저 살아온 세월이 삼백이 넘었습니다.”

“그럼 내 아이가 아니더냐?”

백매는 투정 부리는 듯싶으면서도 청난의 뻗어 오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청난이 그의 목을 감싸자 백매는 단숨에 그를 안아 들었다. 그러곤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었다.

“아니요, 사존의 아이죠.”

“아니, 내 제자지. 장성하게 큰. 내 말이면 뭐든 옳다고 하는 건 고쳐도 좋겠구나. 내가 아무리 까마귀가 하얗다 하더라도 정말 하얘지진 않지 않더냐.”

“하얗게 물들이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난 그게 좋아.”

“예? 하얀 까마귀가요?”

백매가 인기척이 없는 길을 고르며 느긋하게 걸었다. 어느새 사존의 ‘어서’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게 된 제자의 욕심을, 사존은 모른 체 넘어갔다.

“그럴 리 있겠느냐. 지극한 네 마음이 좋다는 것이지.”

“저도, 저도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청난은 이번에도 제자의 은근한 고백을 모른 체 넘어갔다.

신상이 완성되고 불과 일 주도 채 되지 않아서 청난은 아랑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마저도 청운이 이걸 챙기라, 저것도 챙기라 붙잡은 통에 늦어진 것이었다. 청운은 수레를 끌어야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챙겨 주었는데, 다행히 백매의 선술로 만들어진 주머니에 전부 담긴 덕에 봇짐에 깔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귀의 흔적을 찾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주로 사람의 두 발, 혹은 말의 네 발을 이용하여 이동하였고, 필요할 때엔 청난이 백매의 품에 안기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그의 유용한 법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들의 행선지는 꽤나 신출귀몰하였다.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나니, 사귀의 흔적은 대체로 고립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산골짜기 마을이나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는 먼 곳으로 향했다. 고립된 곳에는 고립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형편은 몹시 좋지 못하였으니, 청난의 성품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청난과 백매는 그곳에 있는 악한 것들을 몰아내고, 아랑 마을에 한 것처럼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곳들은 대체로 작은 부락이었기에 아랑 마을처럼 거대한 신상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자, 그들의 궁핍한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산과 바다요, 또한 들짐승과 요마들이니 그들이 어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청난은 전생과 현생의 지식을 토대로 농사, 건축과 같은 다양하고 잡다한 지식들을 전해 주었다. 그럼에도 안심하지 못한다면 타지로 옮겨 갈 수 있도록 그들의 여행길을 보우해 주기까지 하였다.

백매는 그를 전심으로 도왔지만, 사실 그의 행동을 이해하진 못했다. 그것은 전생에도 마찬가지였다. 삼백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와 자신은 서로 다른 것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 어떠랴. 저는 이미 그 외에는 무엇도 보이지 않는데. 그가 저와 다른 곳을 본다면, 그의 옆에 붙어 따라가리라.

“매아, 가서 물 좀 떠다 주련?”

“네, 사존!”

청난의 부름에 백매가 생각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이 현재 있는 곳은 바다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무릇 물은 병을 옮기는 가장 흔한 수단이었다. 요마의 피로 오염된 식수를 오래도록 접한 탓에 주민 대부분이 병들어 있었다.

당연히 청난은 그들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하나 병이 도는 마을이다. 백매가 어찌 그곳에 청난을 둘 수 있겠는가. 사제는 한참동안 온화한 실랑이를 벌이다가 단 하루라는 조건하에 이곳에 머물기로 하였다.

지금 당장 물을 정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매의 선술이 있었으니. 하지만 이들은 자립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법기를 남기고 갈 수도 없었다. 능력에 비해 큰 재물은 재앙을 부르는 법이었으니. 하여 청난이 생각해 낸 방안이 약초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청난은 그나마 건강한 주민 다섯과 함께 바다 반대편에 있는 산길을 헤매어 약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자 백매가 한가득 물을 떠 가지고 왔다. 이것은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마셔 왔던 우물의 물이었다.

“자, 이렇게 곱게 다진 약초를 넣고 차를 끓이듯 끓이시면 됩니다. 차와 달리 약초를 함께 드셔야 하니 곱게 다질수록 좋습니다.”

“저어… 선사님, 하지만 그건… 독초가 아닙니까……?”

청난의 주변에 모여 그의 처방을 구경하던 주민 중 비쩍 마른 여인이 물어 왔다. 자극적인 단어임에도 반발하는 주민들은 없었다. 이래 죽으나 저리 죽으나 곧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 마을의 상태는 심각했다.

청난이 이제껏 품었던 온화한 빛을 거두고 단호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대체로 독초라 분류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독은 쓰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특히 독에 독을 넣어 정화하는 약술은 비교적 흔하지요.”

“그럼 이렇게 마시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건가요?”

“이것만으론 불가능합니다.”

“하, 하지만 두 분은 신선이시지 않나요?”

“아닙니다.”

청난은 신선을 옆에 둔 채 덤덤히 거짓을 말하였다. 수선을 하는 이들이야 신선과 인간의 차이점을 알았지, 일반인들은 대체로 이렇게 전능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허상이나, 이러한 시국에는 희망이었으니 그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것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완치가 불가능하단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걸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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