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거기서 뭐 하십니까.”
청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인부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한껏 긴장하는 듯싶다가도 청난의 마른 몸과 수수한 옷차림을 보더니 한시름 놓았다. 청난은 어떻게 보아도 무인이 아니었고, 또한 고관대작의 자제로 보이지도 않았다.
인부 중 한 명이 대답하기 위해 한 발짝 앞에 나서자 그 옆에 있던 동료가 그를 멈추어 세우고 귓속말로 속닥였다. 그의 눈짓이 청난의 뒤쪽을 힐끔거렸으니, 청난은 이 자신감 없는 제자가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매는 귀한 것을 둘렀을 뿐만 아니라 그 기품은 황실 자제와 맞먹었고, 그 기백은 북방을 지키는 장군보다 뛰어났다. 그런 이가 호위무사인 듯 자신의 한 발짝 뒤를 지키고 있으니, 이 인부들이 자세를 낮출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청난의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장착했다.
“공자, 시찰 나오셨습니까. 이번엔 아주 귀한 것을 잡았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흐히히히.”
그들은 호의적인 접대에 익숙하지 않은지 그 웃음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험악하기까지 하였다. 청난은 헛기침을 하는 척 입가를 가리며 최선을 다해 표정을 유지하였다. 그들이 청난을 오해하고 있는 듯하니, 청난은 애써 바로잡지 않았다.
청난은 본래 수백의 사람이 휘하에 있던 수야각주였으니,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엔 굳이 연기가 필요치 않았다.
“귀한 것이라니, 그것이 뭔지 궁금하구나.”
“이번 건 너무 귀한 것이라 유출하면 안 되지만, 이 밤중에 시찰 나오신 의욕에 감동하였으니, 공자께만 몰래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뜸을 들이더니 배의 측면으로 발걸음을 옮겨 청난이 그것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멀리서 얼핏 본 바와 같이 인간보다 큰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물갈퀴가 달린 손은 마치 인간의 것과 닮아 있었다.
“무려, 남자 인어입니다! 가뜩이나 인어들은 해수에서 잘 안 나오는데, 특히 남자 인어는 보기만 해도 삼생의 운을 다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자랑스럽게 이것의 ‘상품’ 가치를 늘어놓는 인부들 사이로 청난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해변에 정박한 배 안을 가득 채운 존재는, 상반신은 사람의 몸을, 하반신은 물고기의 몸을 닮은, 소위 말하는 인어의 모습 그 자체였다.
색색거리며 겨우 숨을 내뱉는 인어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인어의 몸은 여전히 미역이 휘감고 있었으며, 그의 팔에는 따개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자연을 빼닮았지만, 그의 신세는 오롯이 인의에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배의 옆면을 부여잡은 청난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인부들은 여전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것이 이렇게 보여도 꾸미고 다듬으면 참 보기 좋을 겁니다. 마침 저희 배엔 훌륭한…….”
“이자가 당신들을 공격했습니까?”
“네? 아, 아아. 사나울까 싶으신 모양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얼마나 온순한지 잡아 오는데 손찌검 한번 안 하더이다.”
청난은 더 이상 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전생에도 현생에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편이었다. 청난이 ‘참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무렵에는 이미 입을 놀린 인부의 옷깃을 부여잡은 후였다.
“네가 감히 자연을 능멸하는구나.”
청난의 기백 또한 여느 장군의 것보다 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의 손힘은 책만 읽은 서생의 것보다 나약했다. 그의 손에 잡힌 인부는 처음엔 당황하였지만, 곧 청난의 힘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오히려 그의 손목을 잡아 내쳤다.
“켁! 뭐야, 이 미친놈은!”
그는 주변 사람이 말릴 새도 없이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손을 들 수는 있었지만, 내릴 수는 없었다. 그 괘씸한 손을 허공에서 잡은 건 당연하게도 백매였다.
“넌 또 뭐…! 아, 아니…….”
백매의 강압적인 눈빛에 인부는 주춤하고 말았다. 더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그의 힘이 얼마나 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인부는 이자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닌 태산처럼 높은 석상이라는 착각이 스쳐 지나갔다. 더구나 이 석상은 당장이라도 발을 움직여 저를 깔아뭉갤 것 같았으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부는 가능하다면 방금 전 행동을 철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며, 손은 허공에 잡혀 있으니 빼도 박도 못 하는 꼴이었다. 인부가 다가올 큰일을 걱정하며 눈을 찔끔 감았을 때, 그의 뒤에서 청아하며 동시에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 놓아 주거라.”
스스로 옷가지를 정리한 청난은 방금 전 옷깃을 쥐어 잡았을 때와 달리 차분한 기색이었다. 인부는 그의 저의를 알 수 없었지만 그 한마디가 자신에게 내려온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느껴져 감동할 뻔하였다.
“내가 이런 잡것들도 감당하지 못할까.”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청난의 말에 백매는 잘 길들여진 개처럼 명령을 곧장 시행하였다. 인부는 그 단편적인 모습으로 청난이 백매의 상관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고, 곧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책망했다.
‘하인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다니. 저렇게 뛰어난 자를 부리고 있으니 권력이 어마어마하겠구나. 날 살려 두지 않겠지!’
공포는 사고를 마비시켰다. 그 인부는 몸소 경험한 백매의 능력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동료들도 내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청난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 잡아 와 주겠니. 살려는 놓고.”
그 섬뜩한 말에 남아 있던 인부들은 동료를 따라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아예 지워 버렸다. 백매는 노력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백매가 고작 두 걸음 걸은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그의 손에는 눈물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인부의 손이 잡혀 있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살려 주세요!”
“집에 토끼 같은 자식들과…….”
누군가 용서를 빌기 시작하자 사죄가 전염되듯 연달아 이어졌다. 그들은 마치 임금을 앞에 둔 것처럼 목이 터져라 잘못을 빌었으니 청난은 이 첩첩산중에 한숨이 나왔다.
“내가 언제 너희를 죽인댔더냐. 물을 게 있을 뿐이다.”
“흐어어엉, 제가 자식들이… 흐허엉…….”
“이분께선 울음소리를 싫어하신다.”
“흡!”
“…….”
왜 사정은 저에게 하면서 백매의 말만 듣는 걸까.
‘그리고 울음소리 안 싫어하건만…….’
청난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제 사정만 호소해 대던 인부들이 백매의 말은 단번에 따랐다. 백매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인상인지, 그리고 저는 어떻게 보이는지 새삼 느껴졌다.
청난은 무릎 꿇은 이들에게 결코 자세를 낮추어 주지 않았다. 시선만 살짝 내려 아래를 본 청난은 차가운 어투로 본론을 꺼냈다.
“내가 본 것에 대한 설명을 하여라.”
“서, 설명이라 하시는 것은…….”
“왜 인어를 잡았지? 말본새를 보아하니 한두 번도 아닌 듯한데, 그 연유를 말해 보라는 뜻이다.”
“대인께서는 외지에서 오신 것이지요? 이건… 요즘 부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건데…….”
“그런데?”
인부는 대답하기 곤란한 듯 삐질삐질 말끝을 늘렸지만, 청난은 단호하게 다음을 요구했다. 인부는 이 말랑말랑한 공자가 제 생각처럼 유하지 않음에 어깨를 내리고 터덜터덜 말을 이었다.
“최근 요마가 많아졌잖습니까. 몇 고약한 심보의 사람들은 그걸 전시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보기 드문 것이라면 독이라도 마실 자들이니까요. 교역이 거의 끊기면서 돈 벌기 힘든데, 그자들에게 요마를 잡아다 주면 후하게 값을 쳐 주니, 요즘 저희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먹고살기 어렵다고 모두가 너희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인, 저흰 요마를 사냥한 것인데 이것이 죄가 됩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딱 잘라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토끼를 잡아먹는 호랑이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반대로, 호랑이를 해친 토끼는 잘못한 것인가? 도덕은 상생 관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는 관계에서는 약육강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저 인어는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그저 요마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것들과 묶여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그가 언젠가 인간을 해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전에는 요마의 수가 많지 않았던 탓에 그들의 영역 밖으로 나오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십 년 전의 일로 요마의 수가 급증하여 그들의 영역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탓에 같은 요마들끼리도 영역 다툼을 일삼게 되었으니, 이런 사태 또한 벌어진 것이겠지.
결국, 원인은 십 년 전에 벌어졌던 대봉인의 파손이었다.
아직도 그 원인 혹은,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귀와 대봉인까지. 청난은 어쩌다 수선계가 이렇게 되었는지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사존, 이만 들어갈까요?”
청난이 말없이 관자놀이를 짚자 백매가 허리를 굽히며 걱정 어린 눈으로 청난을 직시하였다. 그렇게 본다고 원인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 아이의 귀여운 행동을 보고 있자니 두통이 멎는 것 같았다. 물론 기분만 그랬지 여전히 아픈 것이, 오늘은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청난과 백매가 떠날 기색이자, 인부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저희는…….”
“한 가지 더. 이걸 어디서 얻었지?”
청난이 꺼낸 것은 물에 푹 젖은 종이였다. 청난은 이것을 배의 바닥에서 발견하였다. 물에 푹 젖었음에도 어떤 물건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수선자들이 흔하게 쓰는 부적이었다. 이것의 정체를 알자 그 용도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 이 인어를 포획할 때 썼으리라. 문제는 이것을 어디서 구했냐는 것이었다.
설마, 수선 문파에서 판 건 아니겠지? 청난은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다시금 두통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