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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55)화 (55/111)

#55

강당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열댓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진 대인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시켜 주었으며, 그들에게도 청난과 백매를 소개시켜 주었다. 청난과 그들은 사병 체제의 개편을 비롯하여 앞으로의 방비책에 대해 소탈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그 대화는 붉은 노을이 누각을 덮을 때가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들이 청난과 백매에게 술자리를 권했으나, 청난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거절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회담은 어떠셨나요?”

“다들 훌륭한 인재들이더구나.”

“사존께서 흡족하신 것 같아 이 제자는 기쁩니다.”

진가 저택에 모인 이들은 모두 나이가 삼사십가량은 되었기 때문에 이제야 약관을 넘은 청난의 어투는 모양새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청난은 전생을 합쳐 오십은 살았으니, 저도 모르게 연장자의 입장이 되어 말하곤 하였다. 이는 옆에 있는 사람이 백매인 까닭도 있었다. 그의 비밀과 과거를 나눈 유이한 존재. 그 탓인지 그의 곁에서는 힘껏 움켜잡던 긴장도 풀곤 하였다.

“그들의 출신은 보잘것없었으며, 전문 분야 또한 세간의 인정을 받기 어려운 것이 많았지. 대인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덕에 그들은 재능을 쓸 곳을 찾을 수 있었고, 대인은 인재를 얻었구나. 이러한 광경은 보기 힘든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어.”

“사존, 제자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음? 무어냐.”

“진… 진 대인은…….”

백매는 저보다 한참 어린 인간에게 대인이라 칭하려니 썩 내키진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백매도 그녀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니 별달리 부를 호칭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진 대인은 어째서 마을을 그렇게 챙기는 거죠? 자기 재산을 써 가면서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전에는 명예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손해가 너무 심해요. 의무감이라고 생각하기엔 관리도 아니고요.”

청난은 백매가 이런 의문을 가진 게 꽤 의외였다. 그는 삼백 년 전에도 다가오는 관심은 거절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먼저 관심을 가진 적은 손에 꼽았다. 이제는 신선이 되었으니 인간사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줄 알았다. 청난은 그런 제자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사람 마음에 정답이 있으랴.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 대신했다.

“내 생각엔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인 것 같더구나.”

“좋은 사람이요?”

“그래,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것이지. 아무런 득 되는 게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뿌듯하면 그만인 거야.”

“음. 사존과 닮았네요.”

백매의 눈이 얇게 휘어지고, 입가는 크게 벌어지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청난은 그의 산뜻한 미소를 참 좋아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솔직한 탓에 어떤 이야기가 그를 웃게 하는지 알았지만, 그것이 제 이야기였으니 차마 말하기 민망하였다.

“하하, 그리 좋게 봐 주니 기쁘구나. 뭐, 닮았을 수 있겠지. 따지면 내 혈연이니까.”

“진 사백의 후손이라니, 놀랐습니다.”

“나도 그래. 이 마을에서만 이십 년을 살았는데 이제야 알았다니. 참, 매아야. 형님께서 속세에 귀의하신 까닭을 아느냐?”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매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더니 청난의 시선을 피해 달아났다. 누가 보아도 숨기는 것이 있어 보였다. 주국의 일은 언젠가 알아낼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때가 이른 모양이었다.

청난은 자신이 잘하는 대로 어물쩍 넘겼다.

“오늘은 바다와 맞닿은 곳에 가 볼까 한다.”

“오늘도 사귀의 흔적을 찾으시려는 것이죠?”

“응. 그것의 속셈을 알지 못하니 서둘러야지.”

백매가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청난이 의아하여 돌아보았다. 백매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존, 외람되오나 그 일은 제자에게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사존께서 무리하시는 것 같아 걱정이 큽니다.”

백매의 기특한 말에 청난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청난은 백매의 오른손을 끌어다가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아가, 내 곁엔 네가 있는데 무얼 그리 걱정하느냐.”

“하지만 사존, 제자는 부술 줄만 알지 고칠 줄은 모릅니다. 혹여 사존께서 편찮아지신다면 제자는 어찌해야 합니까.”

제자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자신이라니, 스승으로서 그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것이 옳겠지만 청난은 청난 나름의 불안이 있었다. 이토록 스승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이렇게 걱정을 한다니 내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오늘은 제자가 나가서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다. 너는 뛰어난 신선이지만, 너와 내가 함께 살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네가 걱정하니 무리하지 않겠다고 약조하마. 그러니 이 스승은 걱정하지 말겠니. 내가 어찌 네 걱정을 받으며 행할 수 있겠느냐.”

청난이 백매의 손을 끌어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눈 밑이 얇게 호선을 그리며 짓는 미소와 온화한 말은 그가 저를 애정한다 여기게 만든다. 백매는 그것이 제 착각이란 걸 알았지만 그 매혹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어느새 그의 고개는 무겁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으… 네에, 네. 물론이에요, 사존.”

백매는 붉게 물든 표정을 감추기 위해 반대쪽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지만, 그의 양 귀와 목까지 붉어졌으니 어찌 한 손으로 다 가릴 수 있을까. 청난은 어설픈 행동을 하는 제 제자가 너무나 귀여워 살포시 웃었다.

그날 해가 저문 후 청난과 백매가 향한 곳은 바다 인근의 마을이었다. 이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편으로 지금까지 방문했던 곳과는 성향이 달랐으니, 이곳에서는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고을은 외곽으로 빙 둘러진 성벽이 있었으며, 비교적 최근에 보수된 곳이 몇 군데 보였다.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닌 한 이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청난은 자신이 맞게 찾아왔음에 안도하며, 한편으론 착잡함을 지우지 못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백매는 가장 높은 곳에서 청난을 내려 주었다. 과거였다면 청난은 높은 곳의 이점을 충분히 살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 마을은 넓었고, 다른 어느 곳보다 거리를 나도는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청난의 눈은 좋지 않으니, 어둡지 않다 하더라도 이 아래의 사람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긴 뭐가 있어 보이느냐?”

“음, 지금은 요마가 없는 것 같아요. 전에 공격받은 곳에 아직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가 보실래요?”

“응, 거기라도 가 봐야겠다. 어째 운이 안 좋구나.”

청난은 익숙하게 제 제자의 목을 감싸 안았다.

“아무래도 제자 탓인 것 같습니다.”

백매가 몸을 낮추며 청난의 허벅지에 손목을 걸쳐 번쩍 안아 들었다.

“왜 네 탓이더냐.”

“사실 오기 전에 미리 영수를 보내 시찰을 했는데, 낌새를 느낀 모양이에요. 제자가 성급한 탓에 사존께 누를 끼쳤습니다. 그래도 사귀가 있었다면 그 흔적마저 지울 시간은 없었을 거예요.”

“누라고 할 게 있더냐. 오히려 잘했다. 덕분에 오늘 이 마을 사람들은 편히 쉬겠구나.”

“사존께서 용서해 주시니 제자는… 어?”

“왜 그러느냐?”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살아 있는 요마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네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더냐?”

“기운이 너무 약합니다. 막 태어난 것 아니면, 죽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럼 거기로 가 보자꾸나.”

“네, 단단히 잡으세요.”

백매가 청난을 안고 이동한 곳은 바닷가였다. 해변을 따라 간간이 걸려 있는 등불과 바다를 훤히 비추고 있는 등대 덕에 밤임에도 시야가 확보되었다. 밤의 바다는 깊은 숲속만큼이나 어둡기 때문에 청난은 백매의 품에서 내려온 후에도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

“사존, 저쪽이에요.”

백매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정박한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배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이 야심한 시각에 작업 중인 인부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치안이 좋아도 바다는 그 누구도 제패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물며 이곳은 수차례 습격도 받았던 모양인데 대체 누가 어떤 배포로 야밤에 뱃길을 나섰단 말인가.

청난은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발을 옮겼다. 가까스로 인부들이 중년의 남성들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다가갔을 때, 그는 배 속에 있는 것 또한 볼 수 있었다.

얼핏 보이는 그것은 틀림없이 바다 생명체의 지느러미였다. 그러나 지느러미의 크기가 인부들보다 거대하였으니, 예사 생명체는 아니었다. 바다에 인간보다 큰 존재는 많으니 저들은 그저 성실히 일하는 어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청난은 어째선지 저들이 거슬렸다.

청난이 좀 더 다가가려고 하는데, 지금껏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발을 맞추어 주었던 백매가 석상처럼 꼼짝을 않았다.

“아가?”

청난이 의아함에 잠시 시선을 돌려 백매를 바라보았다. 그는 석연치 않아 보였다.

“저들은 오늘 안전할 겁니다. 사존, 인간들의 사소한 일에 신경 쓰실 필요 없으세요.”

백매는 청난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시각, 청각 그리고 영기를 느끼는 감각까지 모든 것이 뛰어난 존재였다. 그러니 청난이 알아채지 못한 것을 안 게 분명했다.

백매의 반응이 이러하니 청난은 저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는 청난의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십 년 전 일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청난은 다정한 음색으로 백매를 달래었다.

“인간의 일인데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것은 네 일이기도 한데. 스승이 다녀올 테니 걱정 말거라.”

청난의 어투는 그가 백매를 더없이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 백매가 그를 어찌 멈춰 세울 수 있을까. 만민이 그러하여도, 백매는 제 스승의 발걸음을 막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하였다. 백매는 그저 허공에 이유 없이 맴돌게 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초조하게 바라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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