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백매는 음식을 찾고 있었고, 주인에게 모습을 들켰다. 그가 수야각에 들어오기 전엔 이런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이번에도 주인에게 쫓겨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주인장은 으름장을 놓는 대신 또다시 물을 뿐이었다.
“뭐 하느냐 물었소.”
“밥을… 얻으러… 왔습니다.”
주인장은 화를 내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백매는 여전히 두려웠다.
밥 한 톨에 목숨이 오가던 것이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는 생각이 덮쳐 왔다. 누군가의 선의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것이 제 위치였거늘.
사존께 그리 당당히 말하고 왔는데 빈손으로 올라간다면 그가 저를 어찌 보겠는가. 백매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주인장은 팔짱을 끼던 손을 풀어 내고 대답했다.
“아, 미안하게 됐구려. 우리 집은 요리를 하지 않소. 객지에서 온 거요? 이거 참… 이 시간엔 문을 연 객점도 없을 텐데 곤란하겠소.”
주인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예의 바르다 말할 순 없었지만, 그의 언사는 충분히 정중했다. 백매는 동정의 답은 받은 적이 있어도, 이렇게 손님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기에 어리둥절하였다.
“저희 직원들이 쓰는 주방이 있는데, 그거라도 쓰시겠소? 식자재가 조금은 있을 거요. 값만 지불하신다면 원하는 대로 쓰셔도 좋소.”
“……!”
백매는 목이 떨어지기 직전의 인형처럼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주인장은 그 목이 떨어지기 전에 주방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가장 안쪽에 있는 오래된 문이 보였다. 백매는 허리를 넙죽 접어 인사를 건네고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척 보아도 썩은 나무 문은 외견만으로 자신의 나이를 표현하기 아쉬웠는지 문을 열자 끼이익거리는 소음이 귀를 찢었다. 백매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만 열어 비집고 들어갔다.
문 상태에 비해 주방은 깔끔했다.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크고 작은 조리 도구들은 깨끗하게 씻긴 채 말려지고 있었고, 아궁이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 주방을 사용하는 사람은 청소를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으나,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은 묵은 때와 양념의 흔적들이 있었다.
백매가 가운데로 들어서니 한쪽에 곱게 접혀 있는 낡은 가죽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또, 시선을 돌리니 서로 다르게 생긴 식칼들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백매는 오래전에 식당을 훔쳐보았을 때, 요리사들의 복장을 떠올렸다. 그들은 앞치마를 굳게 매고, 양손에 든 칼을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으로 요리를 시작하였었다.
백매는 그들을 따라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쥐었다.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백매는 크지 않은 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이제 배가 고프실 사존을 위해 요리를 하면 되었다.
“……요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문제는 백매가 요리를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요리도 재료와 도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식을 구걸하던 천애 고아가 언제 그런 것들을 접하고 따질 수 있었겠는가.
백매는 골똘히 생각했다. 누구나 요리가 처음일 때가 있을 텐데, 그들은 과연 무엇을 먼저 만들어 보았을까? 그러다 몇 주 전 식단으로 나온 고기를 보며 사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고기는 굽기만 하는데도 다른 요리보다 훨씬 맛있다던 말이.
백매는 고개를 휘두르다 찬 기운이 스며 나오는 문 하나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문을 당겼다.
작은 냉동 창고였다.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야 했던 길거리 생활의 습관 덕분에 수야각에서도 유심히 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주로 고기 같은 쉽게 상하는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고기의 종류는 알지 못했기에 백매는 그중 가까이에 있으면서 비교적 크기가 큰 것을 꺼내 들었다.
백매는 또다시 과거에 보았던 요리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하였다. 보고 따라 하는 것. 그것은 한 달간 수야각에서 익힌 것 중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우선 양초의 불로 아궁이를 지폈다. 애초에 불에 잘 타는 나무인지 쉽게 옮겨붙었다. 그리고는 고기 한 덩이를 넓은 쇠판에 올렸다.
촤악!
……같은 기대하던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 게 아닌가?”
의미 없이 쇠판을 돌려 가며 바라보자, 고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뜨거운 쇠판과 만나 차르륵 소리가 났다. 자신의 기억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가자 백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과거를 짚어 보았다. 요리사들은 고기 위에 하얀 가루를 뿌렸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고기가 더 맛있어지기 때문에 한 것이지 않겠는가. 백매는 닫힌 천장을 열어 살펴보았다.
다행히 흰 가루는 있었고, 불행히 흰 가루는 많았다. 입자가 굵은 것, 작은 것 등등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있었고, 백매에게 그것을 구분할 능력은 없었다.
백매는 이번에도 그중 가장 앞에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 닿기 쉬운 곳에 있는 것이 가장 자주 쓰일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그것은 정답에 가까웠다. 다만, 백매가 든 흰 가루는 설탕이었고, 그것이 고기를 구울 때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애로 사항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백매는 거침없이 한 움큼 쥐어 고기 위에 뿌렸다. 그러자 달궈진 쇠판은 다시금 차르륵 소리를 내었고, 고기에서는 전과 다른 냄새가 났다.
고기를 뒤집어 똑같은 것을 반복하였다. 다행히 고기가 익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구분할 수 있었기에 덜 익은 것을 내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백매는 그럴듯한 접시를 두 장 꺼내어 고기를 각각 올리고 큰 보폭으로 그의 사존이 기다리고 계실 방으로 되돌아갔다.
똑똑.
“사존, 제자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백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내의를 입은 채 창틀에 앉아 있는 청난의 모습이었다.
“오래 걸렸구나.”
청난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콧등을 비추던 달빛이 얇은 머리카락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그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였는데, 두툼한 입술은 붉은빛이 감돌아 유독 돋보였다. 백매는 그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는 것이 한 달간의 수련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매는 자신이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아, 네! 여긴 요리를 하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제가… 제자가…….”
“네가?”
“제자가… 감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 기대되는구나.”
청난이 창가에서 내려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얇은 천 자락이 나부꼈다. 취침 준비로 조촐하게 입고 있었는데도 그의 자태는 신선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가 탁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백매가 그 위에 들고 온 두 개의 접시를 내려놓았다.
음식은 겉보기엔 단순했다. 그저 고기를 구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벽곡 수련을 끝낸 저를 위해 이토록 애쓴 것을 보니 청난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청난은 기쁜 마음으로 고기를 한 점 들어 입 안으로 넣었다.
넣기만 했다.
“…….”
씹기에는 첫맛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구우면 고기가 설탕 과자처럼 달 수가 있는 것일까. 청난이 저를 보는 제자를 힐끔 보았다. 저를 향한 또렷한 두 눈망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반응을 고대하는 게 분명했다.
저런 아이에게 어떻게 가혹한 말을 던지겠는가. 청난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씹을 수밖에 없었다.
“맛은… 괜찮은가요?”
“그, 그래. 맛이 좋구나. 내 입맛에 맞아.”
“저, 정말인가요?”
백매는 청난의 평가를 듣고서야 마음을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백매가 길거리를 떠돌던 시절에는 입에 넣은 것들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한 음식을 빠르게 구별할 수 있도록 미각이 유독 발달한 편이었다. 그 덕분에 백매는 고기가 혀끝에 닿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거 사람이 먹을 수 있긴 한 건가?’
백매는 입을 꾹 닫고 청난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이것을 먹고 있었다.
‘사존의 입맛에는 이게 맞는 걸까… 나도 익숙해져야 하는 거겠지……?’
백매는 누구도 모를 굳은 다짐을 하고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 여러 번 씹어 넘겼다.
“…….”
“…….”
이제껏 그들이 식사할 때는 대체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 편이었다. 대부분 말을 거는 것은 청난이었지만 백매 또한 말수가 적었을 뿐 아예 말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서로 알게 된 후 이례적으로 조용한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청난은 제 앞에 놓인 접시의 바닥이 절반 정도 보이게 되자 젓가락을 내려 두었다. 그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배부르구나. 덕분에 잘 먹었다.”
“그럼 제자가 바로 상을 치우겠습니다.”
백매 또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백매는 하마터면 입 안에 있던 것을 뱉을 뻔했다.
다음 날 그들은 수야각으로 향했다. 연화는 여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청난이 안아서 이동해야 했다. 그들은 괜히 정문으로 들어와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에 산을 빙 돌아서 들어갔다. 정문 외에는 결계가 있어 누군가가 침입하면 감지할 수 있었으나, 청난이 누구인가. 그 정도 결계를 잠시 해지하고 다시 맺는 것 따위는 가벼운 일이었다.
백매의 방은 사람의 왕래가 잦은 탓에 그들은 먼저 청난의 방으로 향했다. 청난이 아침에 일어났던 상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여전히 어지럽혀진 침상 위에 연화를 눕혔다. 혹여 햇빛이 그의 휴식을 방해할까 가림막까지 둘러 주었다.
침실의 문을 닫고 나온 청난은 더러워진 겉옷을 벗고, 가운데에 놓인 작은 화로에 불을 지폈다. 그가 준비한 잔은 총 세 개였다. 백매가 의아함에 입을 열려고 하자, 때마침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청난이 문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내가 올 줄 알았더냐.”
“물론이죠. 제가 사존 아래에 있던 게 몇 년인가요. 산에서 수련한다 하여 그것도 모를 정도로 우둔하진 않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수야각주 유회평이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화로 앞에 앉자 청난이 그의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백매는 그들을 멀뚱히 보다가 유회평의 손짓에 그제야 쪼르르 가 그들 사이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