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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44)화 (44/111)

#44

“나, 날 축복…….”

“맞아.”

“그럼… 그건 저만의 신이 생긴다는 건가요?”

아이는 스스로가 차분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난은 그 말이 품고 있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것을 가져 본 적 없었다. 사물뿐만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사랑이라고 하는 부모의 정조차 느껴보지 못했기에, 그것에 대한 갈증과 몽상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어진 청난의 대답에 실망감이 컸다.

“아니, 그럴 순 없어.”

“아……. 그, 그렇군요. 당연한 말이죠. 제가 실수했어요. 잊어 주세요.”

“하지만 널 바라보는 신이 될 순 있단다. 네 모든 것을 바라보며, 네가 기뻐할 때 나도 기뻐할 것이고, 네가 슬퍼한다면 나도 슬플 것이다. 그러며 네 행복을 빌어 주마.”

아이의 작게 벌어진 입은 쉽사리 닫히지 않았다. 청난은 그가 이번에야말로 감동한 걸까 싶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다른 감정을 가졌다.

그 감정의 이름은 불신이었다.

고작 열 해였지만, 평생토록 본 것은 가진 이들이 나누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배운 자들은 그 귀한 것을 괴롭힐 때나 쓸 줄 알았다. 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설탕 발린 듯한 달콤한 말을 매우 잘한다는 것에 있었다.

지금까지 그를 돌봐 주겠다, 가여워한다 말한 이가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저잣거리 골목 사이의 눈사람이었다. 아이는 이젠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술법이었다.

아이는 이 자애로운 신선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애써 에둘러 말하였다.

“모두의 신선은 바쁜 분이잖아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전 혼자서도 괜찮아요.”

“네가 ‘모두’와 같으냐?”

“……아니지요. 배우지 못했으니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으니 그 무엇도 바칠 수 없을 테니까요.”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힘이 빠져 마지막에는 웅얼거리는 것에 가까워졌다. 청난은 또 한 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아니, 그 말이 아니야. 너는 내 아이이지 않으냐. 당연히 다른 이들과 다르지. 내겐 네가 최우선일 거란 얘기야.”

아이는 또다시 입을 오물거렸다. 단내 나는 말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린아이에 불과하였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것은, 오래도록 말라 있던 샘물의 갈증을 풀어 줄 단비 같았다. 어린이가 거부하기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최우선…….”

“그렇단다, 내 아이야. 이젠 집으로 가자꾸나.”

청난이 아이의 머리 위에서 손을 떼고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손을 달라는 뜻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충분히 아이의 손을 움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느릿한 아이의 행동을 기다렸다.

이윽고 아이는 청난의 손을 맞잡았다.

아이와 함께 산을 올랐다. 으레 문파들이 그러하듯 수야각도 산중에 위치해 있었다.

평소의 청난은 산기슭에서부터 수야각 정문까지 가는 데에 반 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산에는 놀라게 할 민간인이 없어,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경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이의 걸음에 맞추느라 벌써 한 시진째 걷고 있었다.

수야각은 그렇게 깊은 곳에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다섯 문파 중 외부와의 교류가 가장 잦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아이는 다리가 짧았고, 체력이 부족하여 때때로 쉬어 주기도 해야 했다. 덕분에 청난은 이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얼마나 드높았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해가 중천에 닿기도 전에 오르기 시작하였지만, 도착하니 이미 한밤중이 훌쩍 지나 사방이 어두워졌다. 그 탓에 최초의 수야각주께서 초서체로 적으신 대대로 전해 내려온 현판을 그에게 보여 줄 수 없었다.

“도착했어. 이곳이 네 집이 될 곳이란다. 수야각이라고 부르지.”

“수야각.”

“응. 잘했어.”

청난과 아이가 정문을 통과하자 문 안쪽을 지키던 두 명의 제자가 청난을 향해 포권을 취하였다.

“사숙, 이제 들어오십니까? 어, 이 아이는?”

“네 사제가 될 아이다. 아가, 어제 내 형님을 뵈었지? 여기 주초하 사질은 형님의 첫 제자란다. 네겐 사형이 되겠지.”

청난에게 소개받은 주초하는 아이의 시선에 맞추어 몸을 낮추었다.

“잘 부탁해, 사제.”

아이는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인사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악의는 없으니 사질이 이해해 주게.”

“물론입니다, 사숙. 앞으로 친해지면 되죠.”

“고마워. 자, 들어가자 아마 네 사백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청난은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안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불이 밝혀진 건물들을 여럿 지나 꽤 안쪽까지 들어왔다. 멀지 않은 곳에 큰 폭포가 있어 안쪽으로 갈수록 세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있는 건물들은 대체로 불이 꺼져 있었는데, 그중 단 한 곳만이 안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청난은 그 문 앞까지 아이를 데려갔다.

문 앞에 서자 안쪽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아이도 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난이 왔습니다. 들어갈게요.”

청난은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쪽에서는 주국이 화로를 데우며 앉아 있었다. 그는 청난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그의 옆에서 작은 아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자 순식간에 입 끝이 내려가며 무뚝뚝한 표정이 되었다.

청난은 아이를 이끌고 화로 앞에 가 앉았다. 화로의 위에는 풀잎의 진한 향이 우러난 찻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청난이 뒤집힌 찻잔을 들어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을 때 심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는 왜 데려왔느냐.”

“제 제자로 삼으려고요.”

“그 아이에게 수행의 자질이 있었어?”

“으… 음, 응. 있지. 물론이야.”

아이가 잔을 잡자 청난은 어물쩍 아이의 반대쪽 손을 주물거리더니 손목을 뒤집어 동맥혈을 드러내었다. 청난의 ‘은근슬쩍’ 술법이 통하지 않았는지 아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손을 빼내거나 청난의 행동을 만류하진 않았다.

청난이 아이의 맥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청난의 심장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영기가 손을 통해 아이의 몸에 흘러갔다. 그의 손끝과 발끝을 탐색한 영기는 영력의 원천, 심장으로 향했다.

아이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는 힘, 그것은 오로지 물의 기운만을 띠고 있었다.

“아…….”

눈을 번쩍 뜬 청난은 그대로 주국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난은 바로 입을 떼지 못하였다.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어찌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인연이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백만 번을 고민한다 하여도 사실이 달라지겠는가. 당과는 우로 표현하나, 좌로 표현하나 당과이지 않은가. 청난은 차분히 말을 시작했다.

“형님, 아무래도 이 아이의 재능이 심상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수기의 영근을 강하게 타고 났는데, 그뿐입니다. 다른 속성이 잡히지 않아요.”

“그럼 천영근이라는 말이냐?”

청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주국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러기도 잠시, 그는 올라간 어깨를 눌러 내리며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는 대답할 말을 고르는 듯 말을 아꼈다.

“말 안 하셔도 압니다. 의심스러우시겠죠. 천영근은 한 세기에 한 명 겨우 나는 재능이라고 하는데, 이미 저와 연화문의 어린 선사가 있잖습니까. 이것만으로도 대대로 남을 만한 기록이 될 겁니다. 하지만 형님, 한 세대에 세 명의 천영근이 있을 수 없다는 법칙도 없지 않습니까. 내일 확실히 알아봅시다. 정말이라면, 분명 온 사문이 기뻐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이 아이를 제자로 받을 거예요!”

청난의 밝게 핀 얼굴은 누가 보아도 무척 기뻐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기뻐하는 청난과 심각한 표정의 주국 사이를 번갈아 보기만 하였다.

청난이 뒤늦게 그의 우스운 표정을 발견하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 기뻐하거라. 너는 정말 천재야. 내가 널 만난 건 일생의 행운일 것이야.”

“……아까 분명히…….”

“아.”

청난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에게 이미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를 달래기 위해 급조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그가 손꼽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는 차후 아이 몰래 자질을 살펴보고 그가 사문에 적응한 후에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계획을 까맣게 잊고 환호해 버리고 말았으니,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청난에게 잡혀 있던 손을 슬그머니 빼내었다.

“하하, 봐주렴. 안 그럼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았어. 하지만 이젠 진짜란다. 몇 년 안에 많은 수사들이 네 이름을 알게 될 거야. 이 스승이 그리 만들어 주마. 넌 충분히 할 수 있단다.”

여전히 청난의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청난은 다시금 그의 손을 잡는 대신 다른 찻잔에 차를 따라 들어 올렸다. 아이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찻잔과 그의 손에 있는 찻잔을 번갈아 보더니 그를 따라 들어 올렸다.

청난은 아이의 잔과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제 시선 앞까지 들어 올렸다.

“제자야 세상에 알릴 네 이름은 어찌 되느냐?”

“그걸 묻지도 않고 데려온 거야?”

주국은 말과 달리 옅게 웃고 있었다. 주국 또한 잔에 차를 따라 홀짝이며 아이의 입에서 나올 대답만을 기다렸다.

“저… 전 이름이 없어요.”

“아?”

“아.”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해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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