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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41)화 (41/111)

#41

자상하게 백매의 옷깃을 정리해 주던 청난은 본인이 연 방문 너머에서 들려온 한 마디에 경악하고 말았다.

“아가?”

청난이 삐걱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 찰나의 순간이 일 주향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부디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던 마음은 펼쳐진 광경에 희망 없이 깨지고 말았다.

청난의 방에서 아무렇게나 앉은 채 양손엔 책을 붙들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는, 어느새 저보다 먼저 와 버린 청운이었다.

“아, 아버지? 언제 오신 거예요?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신다지 않으셨어요?”

“데려다주고 온 길이다. 너는 어딜 다녀왔길래 이리도 늦었어?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하하, 서점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책장이 폭삭 넘어졌더라고요.”

“너 혼자서?”

“아니, 이분께서 도와주셨어요.”

청난은 한 걸음 물러서며 가리고 있던 백매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 주었다. 청운은 상대를 탐색하듯 훑을 생각은 없었으나, 하필 얼굴 바로 옆에서 소매가 찢겨 있으니 그 기이함이 호기심을 이끌고 말았다.

백매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어느 한 군데 귀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것을 걸친 인물 또한 빼어났으니 무비일색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소매만 빼고.

어쩌다 소매가 저렇게 되었을까. 소매가 끊어진 부위에서는 튀어나온 실밥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청운은 그것이 취향인 것인지, 사고인지 긴가민가하였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자신도 그리 대중적인 취향은 아닌데. 그저 아들의 곁에는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싶을 뿐이었다. 생각을 마친 청운은 조금 전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입 끝에 장난기를 담았다.

“그분은, 네 ‘아가’?”

“아니에요.”

장난기 넘치는 청운에게 적응이 된 청난은 휘말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청운은 그것마저 재밌는지 짧게 웃었다.

“하하하, 장난이었다. 내 아들은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자녀가 있을 수 있겠어?”

청운은 그제야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가슴 앞에 포개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난이의 아버지 되는 청운이라 합니다.”

청난은 청운이 인사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재빨리 백매의 안색을 살피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갔다. 청운이 저를 책망하는 듯했던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았겠지. 과거에는 문파의 상하 관계에 따라 눈치라도 보던 아이가 이제는 거리낄 게 없어졌다.

청난은 제 아이가 아버지께 밉보이는 것은 원치 않아 그에게 넌지시 알려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백매는 청난의 손끝이 닿기 전에, 청운이 고개를 완전히 들기 전에 낯빛을 바꾸었다. 입 끝에 걸린 온화한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가 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수야각의 화…….”

“매아입니다.”

청난은 그의 얼굴에 혹해 하마터면 제지하는 것이 늦을 뻔했다. 다행히 백매와 같은 미인을 본 적 없던 청운은 그에게 홀렸는지 다소 멍해져 그의 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청운은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화매 공자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난이가 왜 그렇게 부릅니까?”

그는 뭐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니면 그저 아들을 놀리는 것이 재밌는 건지도 몰랐다. 그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지금 청난은 매우 곤란해진 상황이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을 ‘아가’라 부를 만한 이유를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백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부족하여 그렇습니다.”

“안 부족한데도 저래요.”

어김없는 백매의 태도에 청난은 마치 승부하듯 반박을 던졌다. 청운이 있는 탓일까, 다행히 백매는 말끝을 이어 오지 않고 잠잠했다. 그 짧은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청운은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픽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 알았다. 잘 지내면 좋지. 나는 빠져 주마. 참, 식사는 아직이지? 준비할 테니 너희는 쉬고 있어.”

청운의 몸은 이미 반 이상이 문밖에 걸쳐 있었다. 청난은 그가 문마저 닫아 버리기 전에 그를 잡았다.

“아, 괜찮아요. 오늘은 좀 피곤해서 일찍 잘 생각이에요.”

“흠, 그래. 밤새 한숨도 안 잤지? 진 대인께서 오늘 밤은 전혀 걱정할 것 없다 하시더라. 푹 쉬어. 건넛방이 비었으니 화 공자는 그곳에서 쉬시면 되겠네요.”

“저는 사조… 아니, 여기에서 쉬겠습니다.”

백매가 꺼내다 만 말에 청운이 잠시 의아해했지만 제 아들의 낯이 너무나 피곤해 보인 탓에 더 이상 꼬리를 물지 않았다.

그렇게 방 안에는 오직 둘만이 남게 되었다. 청난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니 어떻게 버틴 건가 싶을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으면 당장에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청난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침상에 가 앉았다.

“침상은 하나뿐인데, 어쩌겠느냐. 아버지의 말씀대로 빈방이 있으니 그곳에서 쉬는 게 좋지 않겠어?”

말하는 중에도 외의를 벗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청난을 보며 백매는 옅게 웃었다. 신선이라 하여도 혼란하던 현장에선 긴장했던 것일까. 청난은 저를 보며 웃는 백매의 모습이 문득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청난은 그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그에게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제 제자가 어느새 환혹술을 배운 걸까. 연화와 함께 비승하였으니 그에게 배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제 시선이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청난이 막연히 그를 바라보는 동안 백매는 청난의 등을 받치며 편하게 뉘어 줄 뿐만 아니라 침구까지 고루 펴 주었다. 청난이 대충 벗어 놓은 옷가지들은 어느새 그의 팔목 위에 걸쳐져 제자리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자, 아니 매아는 수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곁에 있어도 될까요?”

백매의 나긋하며 매혹적인 음성은 마음을 놓이게 하는 효과까지 겸비한 모양이었다. 청난은 내려오는 눈꺼풀을 버티지 못하였다.

“응, 나랑 있자…….”

사그라드는 말소리 끝에는 잠든 청난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이어졌다.

백매는 그를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다 지지 않은 햇빛이 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으니, 그가 자리를 피한다면 청난의 잠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방이 고요하여 청난의 얇고 가느다란 숨소리만으로도 백매의 귓가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색색. 그 소리에는 아무런 음률도 없건만 백매는 오직 그 소리에만 집중하였다.

백매의 긴 손가락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지척에 있었는데도, 다가갈수록 손끝이 떨려 오는 탓에 그 짧은 거리가 천 리 길 같았다.

굽힘 없이 뻗어 나간 고운 다섯 손가락은 청난의 작은 얼굴은 손쉽게 덮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였다. 백매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청난의 얼굴이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리고 이내, 청난의 코끝에서 멈추었다. 백매의 손바닥에 청난의 숨결이 닿았다.

숨결이 닿은 것이다.

백매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감히 청난의 낮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꿋꿋하게 서 있었다. 그가 내려다보는 청난은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이토록 그의 곁에 있는 매 순간이 벅차오르는데, 그가 없던 삼백 년간 어떻게 보냈던 걸까. 백매는 스스로의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았다. 그저 버텼을 뿐이다. 그의 마지막 말을 지키기 위해.

신선에게 장점이 있다면 단 하나뿐이다.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 덕분에 수야각에서 그와 함께 보냈던 십 년을 되뇌고 또 되뇌며 버틸 수 있었다.

이윽고 백매의 눈꺼풀이 천천히 다물렸다.

어두운 그 시야 너머에는 삼백 년 된 오래된 기억이 생경하게 펼쳐졌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눈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온 거리가 하얀 지붕을 덮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닥은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 흔적이 남았다. 해가 떠오른 지 몇 각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바닥에는 많은 발자국이 나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놀기 바빴으며, 가게들은 손님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한 저잣거리에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저자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새하얀 의복에 새하얀 망토를 두르고, 긴 머리카락은 높게 묶어 은빛으로 빛나는 관을 세웠다. 가장 높은 곳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값지지 않은 것은 없어 보였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미인이었으며, 다른 이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지만 그 또한 미인이었다.

즉, 아름다운 미인 둘이 값비싼 것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으니, 그들의 행적마다 눈길이 쏠리기 마련이었다.

“난아, 꼭 이곳을 지나야 하겠느냐?”

“가끔은 이리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사람은 수야각에도 많지 않으냐. 이리도 속세의 것을 좋아하니, 이 형은 걱정이 되는구나. 곧 제자도 생길 테니, 자중하는 건 어떠냐.”

부드러운 인상의 미인, 청난은 제 형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미소로 넘겼다.

오늘은 수야각이 산문을 개방하는 날이었다. 산문을 개방한다는 것은 새로운 제자를 받는다는 것을 뜻했다.

소각주 진청난(秦靑蘭)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후 산문을 굳게 닫았던 수야각이 오 년 만에 산문 개방을 공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진청난과 그의 형 진주국(秦朱菊)이 제자를 받겠노라 하였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수선에 뜻을 둔 많은 젊은이들이 산 아래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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