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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9)화 (39/111)

#39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고 향한 곳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앞뜰이었다. 요마는 모두 물러갔음에도 이곳에 밀집된 인원수는 지난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갑작스러운 재해였으니, 이제는 안전하다 말하여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것이겠지.

한쪽에서는 여전히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으며, 또 한쪽에서는 여인 여러 명이 거대한 솥에 담긴 죽을 한 그릇씩 퍼 나누어 주었다. 진 대인은 그 가운데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한 청년이 함께 서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 청년은 지난밤 사라졌던 진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그 또한 뒤를 돌아본 덕에 청난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손을 높이 휘저으며 인사했는데, 그의 인사는 뜻밖이었다.

“화 선생님! 청 공자!”

‘화 선생님?’

청난은 제 옆에 있는 화씨 성의 제자를 돌아보았다. 백매가 입을 열려고 하였는데, 진영이 다가오는 것이 더 빠른 탓에 열렸던 입술이 다시 오므라들었다.

진영은 백매를 한 번, 그리고 청난을 한 번 보더니 곧 그들이 맞잡은 손을 향해 시선을 옮기었다. 아. 청난은 그제야 그의 손을 놓고 머쓱하게 웃었다. 진영은 마냥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아는 사이셨나요?”

“저도 궁금했습니다. 진 공자가 그를 부를 줄은 생각지 못했거든요.”

“지난밤에 화 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 술법은 완전하지 않아 불안하였는데, 화 선생님께서 귀한 법보를 빌려주셨습니다. 지금 돌려드릴게…요…?”

그는 소매를 뒤적이더니 한 쌍의 금귀걸이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백매는 지금 다른 귀걸이를 걸고 있었다.

법보가 괜히 법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은 생애 한 번 볼까 말까 한 것이었는데, 백매는 처음 본 이에게 건네준 데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것을 끼고 있으니, 진영이 말을 잃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백매가 그의 손에서 귀걸이를 거두어 가자 진영이 멋쩍게 웃었다.

“지난밤엔 급해 미처 여쭙지 못하였는데, 청 공자의 손님이셨군요?”

“네, 맞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수사인데, 급하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죠, 화 선사?”

“예… 그렇습니다.”

“수사셨군요.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문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진영의 질문에 청난은 조금 긴장했다. 그가 무어라 대답할까. 세상에 은둔 고수는 많으니 은둔 고수의 제자라고 할 테지. 지금의 수야각은 거의 사라졌다 보아도 무방하였으니.

그렇기 때문에 백매의 대답은 뜻밖이면서도 기뻤다.

“수야각입니다.”

“그래서 진법을 잘 아셨군요. 이것 참 인연이 깊습니다. 저희 가문의 선조께서 수야각의 수사셨거든요. 그분께서 속세로 귀의하시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사형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핫.”

“수야각 수사셨다고요?”

청난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일 확률은 적겠지만, 수야각 수사의 자손이라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네. 삼백 년 정도 전이겠네요. 그분께선 진주국이란 함자를 쓰셨는데, 유명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진주국이라고요?”

청난과 백매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였다. 백매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는 자의 혈연을 만난 것이 놀라웠고, 청난은 주국이 속세로 귀의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청난이 마지막으로 봤던 주국은 각주 대리로서 온갖 일에 치여 있지 않았던가. 설마 일이 버거워서 그만둔 건 아니겠지? 그는 천영근을 타고나진 못했지만, 실력이 뛰어나 수선계 내에서 한 손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수선을 그만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청 책사, 피로는 다 푸셨소?”

각자 다른 이유로 생각에 잠긴 두 사람은 중후한 진 대인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로 돌아왔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푹 쉴 수 있었습니다.”

“흐음… 책사의 건강이 참으로 안 좋은가 보오. 오히려 더 피곤해 보이지 않소.”

“하하… 하…….”

진 대인은 과연 눈썰미가 좋았다. 지난밤에 그 고생을 한 뒤 쉬지 않고 등산을 한 데다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 반면에 고작 일 주향밖에 자지 않았으니, 피곤한 것은 당연했다.

‘아무도 없을 때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

오늘 밤에 또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체력을 만들어 놓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청난은 각양각색의 웅성거림 속에 섞여 있는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청난은 진 대인의 몸 옆으로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그가 자신들을 보고 있으니 숙덕이는 것을 어찌 계속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바깥뜰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말았다.

청난은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셋 이상 모이면 나오는 것이 남의 뒷얘기인 법이다. 막으려야 막을 수 없으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었다.

청난은 굳이 진 대인에게 붙어 걸으며 서두를 읊었다.

“피해 상황이 어떤가요?”

진 대인은 청난의 걸음에 따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진영과 백매 또한 따라오는 건 당연지사였다.

잠깐이나마 청난이 본 진 대인은 책임감이 넘치고 근면 성실한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일할 때가 되자, 몸을 빳빳이 세우며 말문을 열었다.

“불행 중 다행인 정도지. 자네 말대로 요마가 가축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네. 곡식도 좀 밟아 놓은 정도지. 집들도 대부분 무사해.”

“대부분이요?”

“자네가 본 거대한 닭 같던 놈 있지? 그놈이 지나간 곳은 죄 부서졌더군. 다시 지어야 할 걸세. 주민들이 모금을 한다더군.”

그는 갑자기 주변을 살피더니 청난의 귓가로 고개를 기울이며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몰래 도울 것이니 걱정은 말게나.”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고개를 들어 근엄한 표정을 이어 나갔다.

오. 청난은 감복할 뻔했다.

진 대인은 재화가 많으니 그가 돕는다면 순식간에 모금이 끝날 것이다. 그러면 마을 주민들은 그를 존경하게 될 테지. 다만 그렇다면 마을 주민들 간의 유대감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감사와 존경을 진 대인이 독점하게 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지금까지처럼 외부인으로 남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속감을 원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버리고 대의를 택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주 멋지십니다, 대인.”

“허허, 그런가. 자네에게 들으니 아주 기분이 좋군. 이상하게 자네를 보면 마치 조부님을 앞에 둔 것 같다네. 자네가 나보다 한참은 어릴 텐데. 얼마나 늙은이 같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겠나?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좀 배우게나.”

실제로 조부뻘이긴 했다. 제 형의 후손이니.

“젊은이들과는 자주 교류합니다. 제가 그들을 가르치는걸요.”

“호오, 청 책사의 제자들이 어떤 인재일지 기대가 되는군.”

“정말 유능해요. 특히나 한 명은 참 대단하죠. 그 아이를 제자로 둔 건 제 삼생의 행운인걸요.”

“그 총애하는 애제자가 누군가?”

“조만간 제대로 소개해 드릴게요.”

청난은 진 대인에게 말을 건네면서 묵묵히 저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백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뻔하지. 저 아이를 십 년간 돌보았는데 모르겠나. 분명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옛날 수야각에서도 그러하였는데, 어찌 자기가 평범한 인간 소년들과 비교가 된다 생각하는 것인지.

청난이 걸음 폭을 좁히자 진 대인도 그를 따라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자 곧 뒤따라 걷던 백매 진영과 함께 일렬로 서게 되었다.

“화 선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그 제자가 누군지 모릅니다.”

“아니요. 아십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청난이 싱글벙글 웃으며 백매를 뻔히 바라보았다. 백매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절 놀리지 마세요…….”

“놀린 적 없습니다.”

사제의 소소한 사담에 진 대인은 무슨 이야기냐 묻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였다. 청난은 금세 웃음을 갈무리하고, 진 대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집 잃은 자들은 어찌합니까?”

“우선 내 집에 방을 내주었네. 토공이 끝날 때까진 내가 그들의 의식주를 책임질 걸세.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의 일이지. 한 번 나타난 것이 두 번은 안 나타날까. 이번처럼 거대한 놈이 온다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소. 내 듣기로는 화 선사의 진법이 훌륭하다던데, 혹 오늘 밤 선생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소?”

청난이 고개를 돌려 백매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도 청난을 보던 참이었는지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백매는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청난은 그것을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부끄럼 많은 제자 대신 진 대인에게 대답했다.

“매아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것참 고맙네. 그런데, 화씨에 이름이 매인가?”

“아… 네, 그렇습니다.”

진 대인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청난은 모른 척하였다. 화씨에 이름에 매가 들어가며, 수야각이 멸문 직전인 지금 시대에서 진법에 능한 자. 신선 화백매를 떠올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 대인은 집요하게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럼 안전에 확신이 생길 때까진 주민들을 내 집에 남도록 하는 것이 좋겠는가? 영 쉽지는 않겠지만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

“그건 그렇겠지만….”

청난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고민에 빠지자 백매의 확고한 목소리가 즉시 이어졌다.

“걱정 마십시오. 이 마을 전체를 비호할 수 있습니다.”

“호오, 그런가? 역시 대단하군. 그럼 잘 부탁하네.”

진 대인이 포권을 취하며 간단한 감탄을 뱉을 동안, 청난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백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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