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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6)화 (36/111)

#36

여전히 한 그루의 두꺼운 나무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여전히 넓은 연못은 투명한 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황홀한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당연했다. 나무는 꽃 한 송이 피워 내지 않았고, 물에는 아무런 생명력도 없었다. 별채는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처량하기 그지없었으니, 과거의 그곳과 같다고 할 수 없었다. 그 덕에 청난은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고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아…….”

청난은 이곳의 뒷문을 통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앞을 바위가 막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땅이 관리되지 않아 울퉁불퉁하다는 것이었다. 청난은 결국 지렛대로 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별채에 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별채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청난은 한 걸음 한 걸음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었다. 이러고 있으니 옛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십 년 전에도 이곳은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저를 향한 웃음은 목마를 틈도 주지 않았다. 바람은 상쾌했고, 향은 감미로웠으니, 지상에 도원이 있다면 그곳이었을까.

“하…….”

청난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 감정은 제가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별채는 그리 넓지 않았고, 지렛대는커녕 그 무엇도 있지 않았기에 청난이 모든 방을 찾아보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새 이곳을 정리한 걸까. 아니면 그때의 모든 것이 허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청난이 쓸쓸한 미소를 흘렸다.

어쨌든 바위를 옮길 만한 도구는 얻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정문으로 가야 하나. 경공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청난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런데 그사이 바위가 갈라져 있을 줄이야.

의아했지만 청난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쪼개진 바위를 밀어 밖으로 나왔다.

‘누구 짓인지 짐작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청난은 조금 전 보았던 인면랑의 시신을 생각했다. 최후의 발악이라니. 불가능한 소리였다. 하체가 분리되었는데 어찌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회광반조도 숨이 붙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부자연스럽게 등장한 마물. 평범한 민가에서 뜬금없이 이런 일이 연달아 발생할 리 없으니, 조사를 한다면 이 마을을 둘러싼, 인적도 없는 널따란 산으로 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산기슭에 도착한 청난은 자신의 예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진흙처럼 질펀하며, 아직 마르지 않았음에도 검은색을 띤 이것이 마물의 혈액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로부터 반 각가량을 더 오르니 그것의 본체마저 볼 수 있었다.

청난은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시체를 살펴보았다. 전생에 비하면 영적 감지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청난은 이것의 기이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육지에 사는 것에게 어찌 바다의 향이 나는 것인가.”

쌍영근처럼 각기 다른 속성을 한 몸에 가지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성질이었다. 요마뿐만 아니라 평범한 짐승들 중에서도 영적 형질이 두 개 이상 나타나는 것은 없었다. 쌍두조처럼 두 개의 자아를 가진 것 또한 그러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심장은 하나이거늘.

새로운 종의 기원일까. 누군가의 인위적인 행위일까.

홀로 산행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또다시 밤을 맞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었다. 청난은 고심 끝에 결국 다시 산을 오르기로 했다.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였고.

그렇게 또 반 각을 걸으니, 결국 체력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흐헉… 헉…….”

근육이 욱신거리는 것이 내일 근육통에 시달릴 게 분명했다. 지난밤에 그렇게 무리하고 바로 산행을 했으니 당연했다. 청난은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았다. 햇볕을 쬐며 쉬고 있으니 목이 바짝 말라 왔다.

“근처에 샘이 있던가…….”

입술 또한 마른 탓에 나오는 목소리는 척 들어도 건조하게 느껴졌다. 청난은 갑자기 물주머니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에게 닿은 것은 솨아아 흐르는 경쾌한 물소리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소리를 따라 몇 걸음 더 걸으니 풀숲 사이로 흐르는 강이 보였다. 원래 여기엔 강 같은 건 없었다.

‘이건… 너무 유난스럽잖아.’

하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고, 뭣보다 청난은 갈증이 났다. 이대로 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될 순 없지 않은가.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그 청량함이 발끝까지 닿는 것 같았고, 양손을 모아 한 모금 떠 마시니 무척 시원하여 온 피로가 사르륵 녹는 듯했다. 청난은 이러다 배나무까지 자라기 전에 얼른 일어섰다.

가는 도중에 지쳐 땀이 날 때면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햇볕이 뜨거울 땐 거대한 나무가 그늘이 되어 주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

덕분에 청난은 큰 고난 없이 원하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난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 앞에 섰다. 이 산은 불개미 사건 이후 산사태가 일어났고, 그 때문에 입구가 건재한 동굴은 손에 꼽게 되었다. 이곳은 그중 가장 큰 곳이었다. 청난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이 산의 모든 동굴을 뒤져 볼 생각이었다.

안에서 무엇이 썩고 있는 것인지 퀴퀴한 냄새가 퍽 불쾌했다. 청난은 손으로 코를 덮고 꾸역꾸역 걸어 들어갔다.

다행인지 아닌지, 청난은 금방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흐릿하게 들려오던 짐승의 발소리는 순식간에 청난의 앞으로 부쩍 다가왔다. 자신이 자초한 것이었지만 정말 그는 짐승에게 인기가 많았다.

“크윽……!”

청난은 양손을 올리며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것은 청난을 물기는커녕 소매 끝자락에도 닿지 못했다.

누군가가 막아 준 것이었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청난은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을 휘감은 금빛의 선기 덕은 아니었다.

제가 키운 아이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의 발은 땅에 닿아 있지 않았다. 청난은 어쩐지 그의 시선이 냉랭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손짓하자 허공을 돌던 검이 단숨에 그의 허리춤으로 돌아갔다. 짐승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중을 밟은 그의 발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청난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다 들켜 놓고 뭘 또 숨으려 드느냐.”

그의 발이 걸었던 허공을 되돌아와 땅 위에 섰다.

“사존…….”

성광 넘치는 신선이 제 앞에서 풀 죽어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전에는 아이의 시야였기 때문에 백매와 다른 이들의 차이가 와닿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렇게 비슷한 시선에서 보니,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굳센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처럼 화려한 장신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또, 그처럼 짙은 눈썹이 어여쁠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청난은 어느새 그의 눈동자가 저를 봐 주길 바라고 있었다.

예부터 청난은 몸이 먼저 나가는 편이었다. 그것은 삼백 년이 지나든, 몸이 바뀌든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손이 먼저 나가 그의 볼을 감싸고 있었다.

“사… 존?”

청난은 제자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행동에 꽤나 놀랐지만, 제자 앞에서 그것을 티 낼 수 없었다. 청난은 반대쪽 손까지 끌어 올려 그의 양 볼을 감쌌다.

“잘 자랐구나.”

“사… 존께서도 잘 자라셨습니다…….”

방금 전 정체 모를 짐승을 손도 대지 않고 살육한 신선은 그새 어디로 간 것인지, 그의 손에는 자신감 없는 제자만이 남았다. 그가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피했다. 청난의 양손이 그의 고개는 붙잡았지만, 시선이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예전처럼 그의 시야를 따라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장난을 치기엔 이별의 상황이 영 좋지 못했었다. 결국 청난은 양손을 거두었다.

청난의 발은 백매에게 떨어져 점차 안쪽으로 향했다. 백매의 손이 그가 떠난 허공을 잡았다. 하지만 동굴 안이 너무나 어두웠으니 청난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백매의 고개가 땅끝에 떨어지려 할 때, 청난이 입을 열었다.

“불을 빌려주겠니.”

“아, 네!”

백매가 청난의 옆으로 성큼 다가갔다. 빛 한 점 닿지 않아 볼 순 없었지만 그의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졌다. 백매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밝은 빛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점점 크기를 부풀리더니 허공으로 띄워졌다.

그것은 마치 해를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청난은 감탄을 참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은 쉽게 닫힐 생각을 않았다.

“이쁘구나.”

“사존께서 맘에 드신다면, 집 안에 만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 너도 참 유난이구나. 내가 달을 따다 달라고 해도 그러할 테냐?”

“사존께서 원하신다면, 제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되었다. 천명선인께서 얼마나 놀라시겠어.”

달에는 천명선인이라 하는 신선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백매의 대답이 이토록 진중하니 이대로라면 정말로 달에 가 천명선인을 잡아 오기라도 할 것 같았다. 청난은 에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할 일을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은 과연 청난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오래전 불새를 보았던 동굴에서 발견했던 것들과 대단히 흡사한 모습이었다. 청난이 결국 밝혀내지 못했던 그 동굴과.

청난의 숨이 턱 막혀 왔다.

“이자는 명줄이 참 길구나. 아니면 이따위 것을 대를 이으며 하고 있는 것인가.”

진흙 위에 그려진 것은 수야각에서 쓰는 진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위에 새로운 것이 덧그려져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었다.

그것은 더 이상 청난이 알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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