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5)화 (35/111)

#35

다섯의 무장들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젊은 피였다.

“장난해? 감히 진 대인께 사술을 쓰라 말하는 게냐?”

“나에게 달렸단 건 이런 뜻이었군.”

“그런 셈이죠.”

청난은 어린아이를 놀리듯 가벼운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흉을 보다니, 어린 병사는 황당함에 또다시 씩씩거렸다. 청난은 젊은이의 혈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사도는 주로 생명이 가진 것을 이용한 술법을 사용합니다. 혈액은 그 대표적인 예이죠. 사술을 수련하면 짧은 기간 안에 큰 성과를 보입니다. 대신, 그 제물은 반인륜적이죠.”

청난은 아까의 오만한 태도는 사라지고 떠돌이 이야기꾼이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느긋해졌다. 그의 음성은 편안하여 듣기 좋았으니 이것이 정말 이야기에 불과했다면 저 나긋한 목소리는 큰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장이었기에 그저 조바심이 날 뿐이었다.

청난은 어린 병사의 핏줄이 터지기 직전에 다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피를 쓴다고 사술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흔한 착오죠. 이번 일로 죄 없는 가축을 해하여야 하지만 그 대가로 힘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음…….”

청난은 다시금 어깨를 으쓱였다.

“인면수는 가축의 피를 무서워하거든요. 벽에 인분을 바르는 것과 비슷하죠.”

청난은 이렇게 중추들 간의 회의에서 청결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적이 없어 머쓱했다. 하지만 청난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더러운 것 자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가축의 피를 담에 바른다는 건가?”

“맞아요. 그만큼 가축의 수가 많지 않기도 하고, 또 앞으로를 생각하면 심각한 낭비겠죠. 한 마리면 됩니다. 가급적 큰 것이 좋아요. 소가 적당할 것 같네요.”

청난의 말에 한 병사가 의문을 전했다.

“소는 농업에 필수적인 가축인데, 너무 손실이 크지 않겠습니까. 닭은 키우기 쉬우니 차라리 닭 여러 마리가 나을지도…….”

“병사.”

청난의 조숙한 음성이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입 끝을 당겨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에서 범인간적인 우아함이 느껴진 탓에, 느릿한 말에도 불구하고 말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청난은 상대가 긴장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고, 마치 먼 과거에 온 것처럼, 그때와 같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생명을 구할 생각입니다.”

큰집 주변의 건물들은 몰려온 요마들에 의해 거의 폐허가 되었다. 요마의 발톱 끝에 걸린 옷가지가 저곳 또한 사람이 살았던 집이었음을 알려 주었다. 사람의 것을 갖고 싶은 요마에 의해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끼에엑!

-쿠워어어!

요마들의 소리가 마을 곳곳에 퍼졌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은 숨을 내뱉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멀리 떨어져 있는 요마의 한 걸음에도 심장이 멈출 듯 아연실색하였다.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새어 나온 빛은 그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며, 동시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괴성에 절망 또한 안겨 주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참아 왔던 흐느낌을 내뱉으려던 차에, 끼이익, 무거운 문이 돌바닥을 긁었다.

큰집에서 나온 이들은 호수에 빠지기라도 한 것인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다만 평범한 호수에 빠졌다기엔 그들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붉은빛을 띠었다.

요마는 그들의 접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 덕에 날카로운 쇳덩이가 그들의 가죽을 뚫을 수 있었다. 그들의 육중한 몸이 넘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목숨을 취할 순 없었다.

그때, 높은 담장 너머에서 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허름한 가죽 주머니는 바닥에 닿자 팟 하고 터져 그 안에 있던 비릿한 붉은 액체들을 쏟아 내었다.

-키궤에에에엑!

그것에 닿자 요마들은 괴성을 지르며 혼비백산하였다. 심지어 도망을 치다가 벽에 몸을 부딪히기 일쑤였다. 비록 건물은 망가졌지만, 그것이 요마들에게 확실히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기가 증진되었고 병사들의 날붙이는 더욱 힘차게 요마를 찔러 대었다.

그것들이 하나둘 뒷모습을 보이며 도망치자 막혔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책사님! 저들이 후퇴합니다!”

문 앞의 위험 요소들이 사라지자, 한 남성이 문턱을 밟았다.

“멈추지 말고 계속하세요. 틈을 보여선 안 됩니다.”

“네!”

책사라 불린 인물은 과연 청난이었다. 그는 사병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스레 높은 문턱에서 내려왔다.

“퇴로는 열어 두도록 하세요. 저희는 못 이깁니다. 활로 쏘는 건 괜찮습니다.”

청난은 조금씩 이동하며 지시를 내렸다. 그의 지휘하에 사병이 일제히 움직였다.

사병의 숫자는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대략 오백 정도 될까. 마을의 크기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은 수였다. 지금까지 이 인원수를 집 안에 두며 대기시킨 것이 참으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자원이 많으신 분인 것 같네. 뭐 하는 사람이지?’

그들은 훈련이 잘된 병사는 아니었지만, 충성심은 좋았다. 처음엔 반감을 드러내었지만, 진 대인의 명대로 청난의 말에 착착 따라 주었다.

주변은 점차 정리되어 갔다. 계속해서 담장 너머로 날아드는 피 주머니에 요마들은 꽁무니 빼기 바빴다. 바닥이 더럽혀질수록 땅 위는 안전해져 갔다.

청난이 주변을 살피며 지령을 내렸다.

“궁병들은 잠시 대기하도록 하시고, 아무 이상이 없으면 기병들은 순찰을 나가도록 하세요. 멀리 가지 마시고, 우선 일 리 정도…….”

“피하세요! 책사님!”

청난의 목소리는 누군가의 외침에 묻혔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청난이 달려드는 인면랑(人面狼)을 발견했을 때엔, 이미 그것이 코앞으로 다가온 후였다. 피하기엔 늦었고, 애초에 청난에겐 피할 능력도 없었다.

촤아악!

그를 덮친 것은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빨이 아닌, 흙탕물 같은 검은 피였다. 사람도 짐승도 되지 못한 요물의 피. 그를 덮쳤던 늑대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책사님! 괜찮으십니까?”

청난이 더럽혀진 안경을 닦자 뒤늦게 다가온 병사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청난은 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귀에 담기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렇게 요마를 깔끔하게 베어 낼 수 있는 실력자가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가. 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피가 안경알을 가리자 바로 벗었으나, 그땐 모든 게 끝난 후였다. 그 짧은 시간에 이것을 벤 자는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책사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더구나 병사들은 오직 청난의 안전만을 물었다. 누가 이것을 베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가? 마치 무언가가 절제된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청난은 가볍게 옷자락을 털 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말했던 대로 기병들은 나가 순찰을 돌아 주시고, 다른 병사들은 주변 상황을 정리해 주세요.”

짧게 명령을 내린 청난이 몸을 돌렸다. 정문 앞의 돌계단은 무너져 내린 탓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참 전부터 땍땍거렸던 어린 무인이 한 번의 뜀으로 문턱을 밟았다. 그녀는 청난보다 어려 보였고, 키도 더 작았다. 그녀가 한 번에 뛸 수 있는 그런 높이인 것이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청난이 마주 잡자 단숨에 끌어 올려 주었다.

“신세를 지네요.”

“심경입니다. 제 이름.”

무심한 듯 건넨 말에 청난이 파핫 웃었다.

“좋아요. 전 청난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심 소저.”

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난은 과거에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어린 제자들이 생각나 그가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청난이 긴 옷자락을 잡아 들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쓰러져 있는 늑대가 시선을 잡았다.

유리알을 통과한 날카로운 시선이 요마에게 가 닿았다. 그 순간, 얄팍한 술수가 들켰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요마가 벌떡 일어났다. 청난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쏜살같이 먼 골목으로 뛰어들어 갔다.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허, 허… 허어?”

아직 주변을 맴돌던 병사들이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토록 비상식적인 일을 겪는다면, 놀라기 이전에 황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심각성을 깨닫고 날렵하게 검을 빼 들었다. 누군가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청난을 중심으로 주변을 경계하였다.

청난은 시체의 흔적을 흘겨보고는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안심하세요. 죽기 전의 발악일 뿐이니. 끽해야 시신으로 발견돼 놀라게 할 뿐이죠. 이 마을은 노약자가 많으시니 꼼꼼하게 순찰해 주세요.”

청난이 별일 아니란 듯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사병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곧 검을 집어넣었다. 단숨에 고조된 긴장은 풀리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들은 금세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진 대인이 준비해 준 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청난은 한 쪽 벽에 기대어 지친 몸을 쉬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없겠지?’

청난이 문을 한 뼘 정도 열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내친김에 좀 더 활짝 열어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청난은 이 틈에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천공을 덮었던 결계는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정문으로 나가는 건 사람들 눈에 띌 거야. 그러면 몰래 나온 의미가 없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청난은 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 담 앞에 서 보았다.

‘높다…….’

예상대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청난은 십 년 전 기억을 더듬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청난은 조금도 헤매지 않고 원하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채.

십 년 전, 이곳에서 그는 정체를 숨긴 백매와 시간을 보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