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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4)화 (34/111)

#34

다행히 청난은 얼마 뛰지 않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체력이 다했던 차였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청난은 그곳까지 뛸 여력도 없어 지친 다리를 질질 끌듯이 걸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도와, 도와주십시오!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곧 무장한 남성 다섯이 건물을 돌며 다급하게 청난에게 다가왔다.

“그곳이 어딥니까?”

청난은 지나온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방향입니다. 황색의 귀한 옷을 입고 있는 공자가 쓰러져 있을 겁니다. 아, 본인이 진 공자, 이 집의 차남이라 했어요.”

“진영이구나! 둘은 먼저 가서 진영을 찾아라.”

가장 나이가 많은 여성 무인이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낮추고 청난을 살폈다.

“공자, 걸으실 수 있겠소?”

청난은 숨을 겨우 갈무리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싶지만, 제 몸이 약해 걸음을 따라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찾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체할 수 없어요. 혹시 이 결계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이건 잘못되었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대로라면 적이 침입하는 것은 금방일 겁니다. 이곳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 것입니다!”

청난은 그들이 자신의 말을 끊을까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일부러 고른 자극적인 단어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여성이 목청을 높였다.

“네가 감히!”

“그만!”

가장 나이가 많은 무인이 그를 저지하며 말을 이었다.

“공자께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리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와 함께 가야 합니다.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제 아들 진영이니까 말이죠.”

“진 공자가 말입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청난은 찾던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 헛짓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를 두고 오기까지 한 것이다.

청난이 몸을 휙 돌리며 급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남아 있던 무인 셋 또한 그를 따랐다. 청난은 발을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 공자가 수선자였나요?”

진영의 어머니, 즉 진 대인이 청난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건 아니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알고 지내는 수사에게 부탁해 몇 년간 산 아래에서 지낸 적이 있소. 그때 몇 가지 선술을 익혀 왔을 뿐이라오. 그러는 귀하는 어찌 선술을 아시오?”

“저는…….”

청난은 책에서 읽었다고 변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믿어 줄까. 믿는다고 한들 내 주장을 받아들여 줄까? 결국 청난이 꺼낸 말은 준비한 것과 다른 대답이었다.

“저는 수야각과 인연이 있어 한때 가르침을 받았었습니다. 감히 제 의견을 말해 보자면, 진 공자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잘못 배우셨습니다. 진 공자의 스승은 결계술에 능한 분이 아니시리라 생각됩니다.”

“공자 말이 맞소. 그 선사는 비술서를 읽고 결계술을 익혔다 하오.”

오. 청난은 감탄을 내뱉을 뻔했다. 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능재였을 것이다. 진법은 학문에 가까운 선술이긴 하나, 글자만 보고 익히기 어려운 분야였다. 저와 같은 시대에 났더라면 제자로 받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걸 어찌 알았소? 그 아이에게 들은 거요?”

“그냥 보고 알았습니다. 정상적인 것과 다르게 생겼으니까요.”

“어허…….”

별거 아니라는 듯 넘겨 버리자 진 대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젊은이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선술을 받아쓰기처럼 보는 것인가?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려는 허풍인가? 진 대인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진영을 두고 온 곳에 도착했다. 먼저 간 두 명의 무인이 서 있는 것을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진영을 업고 있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청난이 그나마 뛰던 속도를 줄이고 가까이 다가갔다. 이곳은 분명 아까의 그 장소가 틀림없었다. 진영의 손가락이 파헤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진영은 없었다. 끌려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직접 두 발로 움직였다는 말인가?

“이곳이 맞습니까?”

“네, 이곳에서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럼 지금 어디 가셨단 말이오?”

아까 성을 냈던 어린 무인이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이번엔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난은 전생과 현생을 합쳐 오십은 산 사람인데 어린 자의 앙칼진 목소리에 아랑곳할 턱이 있겠는가. 청난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진 공자가 제 발로 떠났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든, 어찌 되었든 그는 무사할 겁니다. 아직은 결계가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유지되진 않을 겁니다. 그가 정신을 잃어도 해지될 것이고, 잃지 않는다 하여도 요마들로 인해 파괴될 것이니까요.”

청난의 말에 진 대인이 한 걸음 나섰다.

“공자 또한 한때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였지? 그렇다면 수사는 아니라는 말이로군.”

“네, 아닙니다.”

“그럼 학자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공자를 어찌 믿어야 하는가. 내게 공자의 말만 믿고 이 귀한 시간과 인력을 허비해야 한다 말하는 건가?”

진 대인의 안면이 움찔거렸다. 심기가 좋지 않아 보였으며, 버럭 화를 내지르고 싶은 것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청난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테니까.”

“첫인상과 달리 오만한 청년이었군.”

“그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죠. 겸손함도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한데 지금은 할 일이 태산 같으니,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인께서 제 말을 들으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우선… 어?”

청난은 급히 말을 잇는 와중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지했다.

서늘한 바람이 어느새 따스해졌다. 짙은 피 냄새는 옅어졌고, 어디선가 향긋한 꽃 내음마저 풍겨 오는 듯했다. 청난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결계가 강한 영기를 띠고 있었다. 기워 놓은 술식은 여전했지만, 힘이 기술을 충분히 보충해 주었다.

인간의 순수한, 그것도 수선자가 아닌 자가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자, 왜 말을 하다 마시오?”

“결계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말이 달라지지?”

진 대인의 물음에 청난이 보다 차분해진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결계가 수복되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강한 영기가 이곳을 두르고 있으니, 적어도 오늘 밤 동안은 유지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진 공자 또한 무사하시겠죠. 그러니 저흰 준비를 서둘러야겠습니다.”

“준비? 무슨 준비를 말하는 거지?”

“요마들을 내쫓을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청난의 말에 무인들의 표정엔 불만이 드러났다. 청난과 말을 나누고 있는 진 대인을 제외하면 고작 넷뿐이건만, 사십 명이 있는 것처럼 말이 많았다.

“수사도 아닌 인간이 요마를 퇴치할 수 없습니다.”

“의미 없는 피해만 늘 것입니다.”

“저는 저 공자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마지막 소리의 주인공은 역시나 어린 무인이었다. 씩씩대는 그를 제지한 것 또한 역시나 진 대인이었다. 그가 손을 들자 모두 입을 닫았다.

“공자께선 성이 어찌 되시오.”

“청운의 아들, 청난입니다.”

“청 공자.”

“네, 대인.”

“나는 이들을 개죽음으로 몰아갈 생각이 없소. 이 결계가 아침까지 버텨 준다면 저리 성을 내는 요마들도 자연히 떠나갈 텐데, 어째서 내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야 한단 말이오?”

“저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헛소리군요. 요마들이 햇빛을 쐴 수 없다는 것은 만인이 아는 사실입니다. 대인, 역시 이 자는 사기꾼이 분명합니다.”

“어허!”

진 대인의 일축에 어린 무인은 기가 죽어 고개를 떨구었다. 진 대인이 다시 고개를 돌려 청난을 바라보았다.

“나 또한 의문이 드오. 청 공자는 납득 갈 만한 설명을 덧붙여 주겠소?”

“물론입니다.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본 요마들은 전부 이목구비가 인간의 것을 닮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면수(人面獸)라고 불리죠.”

“인면조와 같은 것이오?”

“아닙니다. 인면조는 신수이죠. 이것들은 인면조가 되려 했으나 그러지 못한 잡것들일 뿐입니다. 다만, 부족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어 햇빛 아래에서도 서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저들이 원하는 게 여기 모여 있으니, 해가 뜬다 하여도 사라질 이유가 있겠습니까.”

청난의 낮게 깔린 음성은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탓일까, 단 몇 뼘 되지 않는 담 너머에서 울리는 괴성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이곳에 무를 갈고 닦지 않은 민간인이 있었다면 식은땀에 젖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신을 달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이들은 몸과 정신을 단련하였으니, 고조된 긴장 사이에서 헤매지 않았다. 진 대인이 중후한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저들이 원하는 건?”

“그야 인간이죠. 특히 저것들은 되다 만 존재들이라 본능적으로 부족한 것에 이끌리는 겁니다.”

“그럼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소? 공자의 혜안을 빌려주시게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대인께 달렸습니다.”

“그 방법이 뭐길래 급박한 와중에 뜸을 들인단 말이오?”

재촉하는 진 대인의 모습에 청난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습관이었다. 과거 청난은 미소를 짓고 여유를 부리는 척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만인의 인정을 받는 수사 진청난이 아닌, 갑자기 튀어나온 청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안심은커녕 오히려 기이함만 낳고 말았다.

무인들은 이런 상황에 웃는 청난이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파격적인 제안은 그 생각을 확신에 가깝게 만들었다.

“가축의 피를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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