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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3)화 (33/111)

#33

‘설마, 이걸 노린 건 아니겠지?’

영력이 높은 요마일수록 인간을 닮아 간다. 더욱 똑똑해지는 것이다. 그들 중 몇은 인간을 현혹해 손쉽게 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선계에서 그런 급 높은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했겠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은 개체가 덫을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작은 확률이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 생에서 방심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우선, 이 술법을 행하는 술자를 찾자.’

얼핏 보아서는 이 집의 담을 따라 결계를 빙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소 비뚤게 놓여 있다. 술사가 원하는 지점에 결계를 칠 수 있는 실력자라면 부러 이렇게 애매하게 설치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술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결계를 설치했을 것이다.

즉, 이 집의 중심에 가면 만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청난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발등에 푹신한 무언가가 걸린 탓이었다.

퍽!

하지만 그것을 차올리기엔 힘이 부족한 탓에 결국 청난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바닥이 파헤쳐지며, 녹빛 의복이 흙으로 지저분해졌다. 자갈에 긁힌 손바닥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으윽…….”

“으야야…….”

신음 소리는 청난 한 명의 것이 아니었다. 청난이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자 저와 비슷한 자세로 엎어져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가 청난이 넘어진 원인이자, 동시에 청난이 발로 차 버린 사람일 것이다.

청난은 그를 부축해 주기 위해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다급하게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쓰러진 자는 아직도 땅을 바라본 채 신음 소리만을 줄줄 이었다가, 청난이 바짝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청난과 눈을 마주 보자 고개도, 표정도 멈추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심지어 눈도 깜박이지 않는 것 같았다.

청난은 당황스러웠다. 혹시 또 저도 모르게 주술에 걸려들어 요마의 얼굴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의 표정은 환해 보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전생의 사존이 귀한 그림을 보실 때 지으셨던 표정과 닮아 보였다. 청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공자, 준수하시네요.”

“예……. 예? 네에……. 가, 감사합니다……? 아니, 괜찮으신 건가요?”

“어떤 게 말이지요?”

청년은 말을 듣고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입 끝이 광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청난은 그의 표정이 부담스러웠으나, 그를 차 버린 입장이라 차마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다.

“제가 조심성이 부족하여 그만 공자께 발길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청난의 눈썹꼬리가 내려가며 팔(八)자를 그렸다. 그러곤 소매로 얼굴을 슥 가렸다. 누가 보아도 죄스럽고 민망해하고 있는 표정으로 보였다. 덕분에 상대의 부담스러운 눈을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공자.”

그가 두 손을 앞세우며 공수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듯 웃기까지 하였다. 청난은 지금껏 특이한 사람을 많이 겪어 보았다 할 수 있었지만, 발에 걷어차이고도 감사 인사를 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터라 다소 얼떨떨하였다.

그 특이한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공자께선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이곳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바깥뜰과는 반대 방향인데요.”

“음…….”

청난은 소매를 살짝 내려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경계를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은 것이 순전한 궁금증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을에서 이렇게 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가 입은 옷은 최상급은 못 되어도 상급 옷감으로 지어진 듯했다. 그의 손끝도 굳은살 없이 말랑한 것이 궂은일을 한 적 없어 보였다. 이런 시국에 외부인이 들어왔을 리도 없으니, 남은 건 하나였다.

청난은 갑자기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공자? 어디 아프십니까?”

“사실, 제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밤공기가 차가워 몸에 한기가 든 탓에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곳이 처음이라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창백해 보이신다 했더니.”

청난의 연기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이 어리숙한 청년이 청난의 외모에 호감을 갖고 있던 덕에 쉽게 속여 넘길 수 있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 빈방을 덥힐 순 없지만, 환자들이 쉬고 있는 곳은 따뜻할 겁니다.”

“아, 아니, 그건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환자와 의원께서는 생사를 다투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그곳에 갑니까. 그저 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족합니다. 기왕이면, 문이나 담과 멀수록 좋겠네요.”

“공자께서는 어여쁘실 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좋으시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머물고 있는 방이 있는데 문과 거리가 멀어 쉬시기에 나쁘지 않을 겁니다.”

청년이 눈을 휘어 웃자, 청난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전생의 청난은 지금보다 더 미색이 짙었으나, 이런 눈길을 받은 적은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자도 많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안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대부분의 생활을 백매와 함께했었고, 청난의 시선은 주로 백매의 것이었다. 지금은 그가 없어 주변을 더 보게 된 것뿐이었다.

청년은 내부 구조에 밝아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다. 청난은 점점 갈수록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괴성이 작게 들리고, 피 냄새가 옅어졌다. 아비규환의 흔적은 안으로 갈수록 적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요마를 대처하는 데에 투입된 까닭에 안쪽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간간이 만난 자들은 그들을 보면 예의를 갖출 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청난은 몰랐던 척 입을 열었다.

“진 공자셨군요.”

“네, 맞아요. 진영(秦泳)이라고 합니다. 이 집의 차남이죠.”

그는 이 집의 진짜 소공자였다.

과거에 백매가 청난을 만났을 때 썼던 신분이 바로 진가의 소공자 진영이었다. 진짜 진영은 그때의 백매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외모뿐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 몸을 두른 의복이나 장신구까지 모든 게 달랐다.

이렇게 보니 그때 백매가 자신을 진영이라 소개한 것은 완전 우긴 수준이었다. 청난이 저도 모르게 조소하자, 진영이 의문을 표했다.

“저를 알고 계셨나요?”

“아, 실례했습니다. 소문 무성한 진씨 가문 소공자께서 이렇게 풍채가 빼어난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하핫, 과찬이십니다.”

그는 어디서 꺼낸 것인지 쥘부채를 촤락 펼쳐 입매를 가렸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공자께서는 어느 가문의 귀인이신지요?”

“저희 가족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청난이라고 합니다.”

청난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진영은 흔쾌히 맞잡았다.

“청 공자셨군요. 과연 선풍도골이십니다. 신선이 내려온 줄 알았지 뭔가요.”

“한낱 병자에게 너무나 과분한 표현이네요.”

“그러지 마십시오. 사실 청 공자의 명성은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재셨다고요. 지식은 반백 년을 살아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고, 그 기품은 성인과도 비견되며, 공자께서 붓을 들 때면 신선이 내려와 한 폭의 영광을 선사하는 것 같다 하지요. 이제 보니 그 명성은 허황된 게 아니었네요. 오히려 부족합니다.”

청난은 공자에게 호감을 얻고자 한마디 칭찬을 건넨 것이었는데 곱절로 되돌려 받을 줄은 몰랐다. 공자의 청산유수 같은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또한 몸이 건강하지 못했기에, 어려서부터 공자의 명성을 흠모해 왔습니다. 한번 뵙고 싶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분명 하늘이 도우신 것입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하기엔 시기가 적절하진 않은걸요. 이 밤을 무사히 넘기면 매화 아래에서 차를 나누도록 하죠.”

“네, 좋습니다.”

-끼에에에엑!

하늘을 가를 듯한 괴성이 청난의 다급함을 촉진시켰다. 청난의 입 끝이 내려가자, 그가 두려워한다고 생각한 진영이 그를 달래었다.

“공자께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결계는 마물은 통과하지 못합니다. 또한 날이 밝으면 양기가 짙어지니, 마의 그늘에 있는 것들은 감히 남아 있지 못할 거고요.”

‘아니, 틀렸어.’

시간은 부족했고, 타인을 꾀어내는 것은 결코 청난의 방식이 아니었다. 결국 청난이 단도직입적으로 묻기 위해 공수를 취하려는 순간, 쾅! 강한 소리와 함께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결계는 위로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땅 아래에까지 둥글게 막이 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계로 보호되고 있는 이곳이 흔들렸다는 것은 결계 자체가 흔들렸다는 말이었다.

“진 공자! 사람을 찾아야…….”

청난이 진영을 부르며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 진영은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워 고개를 휙 돌리며 주변을 살피자 발치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끄으… 윽…….”

그곳에 진영이 쓰러져 있었다. 청난이 몸을 낮추어 그를 살폈다. 혼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땅을 파고들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정신을 붙들고 있는 듯 보였다. 청난이 이마에 손을 올리는 동안에도 그는 몸을 웅크리며 신음만을 내뱉었다.

‘뜨거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자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도움이 필요했으나, 청난에겐 한 사람을 부축할 만한 힘이 없었다. 결국 쓰러진 진영을 두고 사람을 불러와야 했다.

“제가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진영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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