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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2)화 (32/111)

#32

청난이 마지막 골목을 돌아서자 보인 것은 환한 빛이 새어 나오는 서점이었다.

이상했다. 그곳은 불이 켜져 있어선 안 됐다. 서점이 문을 닫은 지 오 년이 넘었고, 지금은 청난의 서적을 보관할 뿐인데, 그 누가 들어왔다는 말인가? 청난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청난은 도착하자마자 문을 팍하고 세게 열어젖혔다. 동시에 하얀 연기로 눈앞이 뿌예졌다.

“그러다 문 부서지겠다.”

“아, 아버지?”

청운의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이 서린 안경을 벗자 서점 곳곳에 놓인 촛불과 중심에 놓인 둥근 통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통에는 장작들이 타닥타닥 타며 주변을 달구고 있었다.

“어쩐 일로 나와 계세요?”

청난은 안으로 들어가며 입구에 놓인 촛불 몇 개를 불어 껐다.

“청소하고 있었단다. 가끔은 관리해 주어야지. 안 그러면 나중이 되어 누가 사겠어?”

“누가 침입한 걸까 봐 걱정했어요.”

“이곳에 가져갈 게 무어 있다고 침입하겠느냐.”

“오늘 영 낌새가 좋지 않아서요. 정리는 내일 저와 하고,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흐으음… 그래? 알았다. 이것만 마저 꽂고 들어가자.”

청운이 손에 가득 들고 있던 책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채워 넣던 때에, 갑자기 들려온 괴성이 귓가를 강하게 내리쳤다.

-끼에에에엑!

그 순간 청운과 청난이 동시에 모든 불을 끄기 시작했다.

서점은 순식간에 어둠 속에 잠겼다. 누구도 감히 말하지 않았다. 뛰는 심장 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꾸었다.

청운이 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는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청난이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거운 소리는 좀 멀리서 들리는구나. 그리고 가벼운 소리도 들려. 사람 소리인지, 작은 요마인지는 잘 모르겠구나. 어찌할 테냐?”

청난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한 것일 테니 돕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아니라면? 청운을 위험에 빠트리기만 할 뿐이었다.

청난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청운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난 신경 쓰지 말거라. 짐을 지우려고 널 데려온 게 아니야.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버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어요.”

“난 네 생각보다 강해.”

“……그랬죠. 고마워요. 역시 아버지가 가장 좋아요.”

“나도 내 아들이 가장 좋단다.”

청난은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만 문을 살짝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새였다. 털이 까매 어둠에 묻힐 뻔했지만, 그 크기가 집보다 컸으니 보지 못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의 날개는 짧았고, 새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닮은 무언가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앞에서 뛰고 있는 건,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는 살려 달라 외치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의아할 게 아니었다. 청난이 아이들에게 밤에 소리를 내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단단히 일렀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서점의 바로 앞까지 온 아이는 청난과 눈을 마주쳤다.

“선…….”

아이의 목소리가 나오려하자 청난은 검지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제지했다.

청난이 문밖으로 쭉 손을 뻗었고, 아이가 맞잡자 그를 끌어안으며 서점 안으로 구르다시피 뛰어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청운이 바로 문을 걸어 잠갔다.

청난은 아이에게 괜찮은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위험에서 벗어난 게 아니었으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청난의 왼손은 자신의 입을, 오른손은 아이의 입을 막았다.

쿵쿵.

퍼억- 퍼버벅!

이젠 청난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요마의 걸음이 가까워졌다. 그것은 갑자기 사라진 먹이를 찾는 것인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제발 지나가라. 지나가.’

청난의 온 신경이 귀에 집중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청난의 벌어진 깃 사이로 서늘한 액체가 툭 떨어졌다. 그것에게선 비릿한 철 냄새가 났다.

피다. 아마도 이 아이의 것일 피.

청난은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벌어진 입은 숨을 뱉는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문 막아요!”

청운이 바로 반응하여 몸으로 문을 막았다.

팍!

문 너머에서부터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요마가 이곳을 노리고 있다!

청난도 바로 달려가 거들었다. 하지만 책만 보고 사는 두 남성이 요마의 박치기를 막기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문은 갈수록 쩌억 쩌억 갈라져 갔고, 요마의 발톱이 문을 뚫고 들어오기까지 하였다.

묘수가 필요했다. 청난의 머릿속엔 지난 생에 듣고 본 것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모두 쓸모가 없었다. 그건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진청난이 취미 삼아 보던 것이지, 영력 없는 청난을 위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안팎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숨이 턱 막혀 왔다. 부서진 나뭇조각이 제 팔목을 긋고 지나가는 이 순간이 느리게 보였다.

‘괜찮다고 말할걸.’

이제껏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작은 후회가 스치던 순간, 달려들던 무게감이 갑자기 사라졌다.

문을 두드리던 힘이 사라지고, 대신 무언가가 땅을 긁으며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황상 누군가 요마를 공격한 것임이 분명했다.

누구지? 또 다른 요마인가?

아니면, 혹시 그 아이가?

숨이 턱 막혀 오는 듯한 청난의 의문은 오래 지나지 않아 해소될 수 있었다.

똑똑.

누군가 부서진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적어도 상대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적인 존재라는 뜻이었다. 청운과 청난은 조용히 눈을 마주 보았다. 청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청운이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누구… 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저흰 진 대인 댁 사병입니다.”

모르는 목소리였다.

낮고 걸쭉한 목소리는 과연 무인의 것과 어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문을 열 순 없었다. 청난이 목소리를 내었다.

“요마는 해치우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것까진 저희의 힘으론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진 대인 댁에 결계가 있어 여기보단 안전할 겁니다. 가는 길을 호위해 드릴 테니 서두르십시오.”

여전히 상대를 완전히 믿을 순 없었다. 하지만 요마보다는 수상한 사람이 나았다. 사람은 칼이라도 박히지 않는가. 청난은 청운과 눈을 마주 보았다. 갈라진 문틈 사이로 달빛이 비쳤다. 저를 믿는다는 듯 올곧게 바라보는 시선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기 전에 청난은 고개를 돌렸다.

“네, 지금 나가겠습니다. 잠시 떨어져 주세요. 문이 고장 났거든요.”

청운이 혼절한 아이를 업자, 청난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발로 걷어찼다.

문이 쩌저적 반으로 갈라져 나뒹굴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꽤나 요란했지만 바깥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상황이 못 된다는 말이 더 정확해 보였다.

바깥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무인들만 삼십 명가량 되어 보였다. 그중 일부는 각 문을 두드리며 마을 사람들을 깨웠고, 대부분의 인력은 크고 작은 요마들을 막고 있었다.

이것들이 이 골목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제명을 재촉하는 짓이었으니, 상황이 이렇게 치닫도록 바깥 상황을 알 수 없던 것이었다. 귀는 고요한데, 눈은 어지러우니 이 광경이 퍽 기이했다.

큰집의 문은 여전히 거대하고 두꺼워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무인이 손짓을 하자 끼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이곳은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했었는데, 지금은 무간지옥을 떠올리게 하였다.

“여기 부상자 있어요!”

“물 좀 가져다주세요!”

“끄으윽… 끄아… 악!”

“이러다 죽겠어!”

마치 전쟁터 같았다.

청난은 전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읽은 장면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 모습과 진배없을 것이다. 피 냄새와 약 냄새가 뒤엉켰다. 질서정연하고 차분했던 마을 사람들은 감정에 밀려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정신을 붙들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휘해 보려 애쓰고 있었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

이후로 일고여덟 명 정도가 더 들어왔다. 청난과 친한 이도 있었고, 아닌 이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갑작스러운 참변 아래에 인사를 나눌 틈이 없었다. 청난은 조용히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스스스슷-

그러자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담벼락 위로 불투명한 막이 올라오더니 이 집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결계였다.

그 무인의 말이 단순히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안도하였다. 계속 끓어오를 것 같던 긴장감은 한풀 진정되었다.

‘진 대인이 수사까지 고용한 건가?’

작금의 사태가 십 년째 지속된 까닭에 아무리 실력 없는 수사라 하더라도 고용하기 위해선 천금 만금이 필요했다. 그건 시골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정도로는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청난은 담에 바짝 다가가 결계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놀라고 말았다.

‘대체 이 주먹구구식 결계는 어느 문파의 가르침이야?’

완전 엉망이었다. 이렇게 작동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전체적으론 수야각에서 쓰는 방식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억지로 연결된 점들이 있었다. 얼핏 보아선 그럴듯해 보이지만, 원래의 효능을 내지도 못할뿐더러, 내구성이 좋지 못해 언제 망가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으론 일출까지도 버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병력을 한 곳에만 집중하면 되니 효율적이었지만, 반대로 요마들에겐 먹이가 한곳에 모여 준 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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