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1)화 (31/111)

#31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이곳은 본래 많지 않은 사람들의 활기로 넘쳤던 곳이었건만, 지금 사람은커녕 생기를 가진 그 어떤 생명도 거닐지 않게 되었다.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 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몸집에 비해 큰 것을 두른 탓에 멀리서 보면 포대 자루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사가(私家)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대문의 손잡이를 두 번 흔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열리며 그를 반겼다.

안쪽에서 문을 열어 준 사내는 서둘러 그를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 와중에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실내에 들어오자 때마침 복도 너머에서 우두두 작은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묶은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년이 찾아온 객의 허리에 폴짝 뛰어 안겼다.

“청 선생님!”

소년이 허리에 매달리듯 안기는 와중에 복도의 어둠 속에서 한 여성이 따라 나왔다.

“선생님께서 힘들어하시잖니. 어서 떨어지렴.”

“치이-!”

“하하, 괜찮습니다. 아무렴 제가 아이 힘도 못 당해 낼까요.”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는 다시금 폴짝 뛰어오르며 그의 허리에 안겼다. 갑자기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자 직전의 큰소리가 무안하게도 그의 몸은 순식간에 넘어지고 말았다.

털썩!

“으윽…….”

“어머,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여성이 황급히 다가왔다. 청 선생은 갑작스럽게 과한 무게를 지탱하다가 무리해 버린 허리를 부여잡았다. 여성이 제 주변에서 어쩔 줄 몰라 하자 표정을 갈무리하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전 괜찮습니다. 부인께선 걱정하지 마세요.”

청 선생을 가까운 곳에서 마주 보게 된 여성은 순간 넋을 잃을 뻔했다. 그가 미형인 것은 본래 알았지만,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것이 바로 미인이었으니.

그는 어느덧 약관을 넘긴 청난이었다.

청난의 피부는 백옥 같았고, 선은 날렵하였으며, 눈동자는 얼마나 깊은지 망망대해가 그 눈 속에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그 위를 지나는 속눈썹은 얼마나 긴지, 그의 눈 그림자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가 입을 열자 움직이는 오동통한 입술은 이성의 선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청난이 고개를 돌리며 제 허리 위의 아이를 살폈다.

“아가, 괜찮니?”

“네! 선생님께서는 괜찮으세요?”

“선생님은 튼튼해서 괜찮단다.”

부인은 아들의 꾀꼬리 같은 대답에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어린 소년이 씩씩하게 청난의 허리에서 기어 내려왔다. 그는 바닥을 빙글 돌며 헤매더니, 구석으로 날아간 청난의 둥근 안경을 주워 왔다. 청난이 고개를 내밀자 소년이 삐뚤게 씌워 주었고, 부인이 양손을 뻗으며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모자는 꽤나 익숙해 보였다.

“얼마 전에 고뿔에 걸리셨다지요? 벌써 나오셔도 괜찮으신 건가요?”

“고뿔은 다 나았으니 걱정 마세요. 그 정도로 결석한다면,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안 남을 거예요.”

“어휴,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 안 하죠. 선생님께서 몸이 좀 약하신가요? 더구나 요즘은 흉흉하기까지 한데……. 선생님은 참 의인이시라니까요.”

“의인이랄 게 있나요. 그저 아이들을 가르칠 뿐인걸요.”

청난의 망토를 받아 든 어린 소년이 나왔을 때처럼 우다다 뛰듯이 안쪽으로 걸어갔다. 여성이 등잔에 불을 켜자 청난은 그제야 소년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복도를 걷는 짧은 시간 동안 청난과 여성의 대화는 이어졌다.

“옆 마을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고 해요. 언제 요마한테 잡아먹힐지 모르는 판국이니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잠시 미루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작금의 사태는 벌써 십 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리죠. 그러니 미루기가 어렵네요. 조심히 방문할 테니 부인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샛길에는 밝잖습니까.”

“도망가실 수는 있으시고요? 청 선생님은 요마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면서 과소평가하신다니까요. 누가 보면 맨손으로 요마 여럿 잡아 본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에요.”

“하하, 그런가요? 틀린 말은 아니죠. 많이 잡아 봤어요. 꿈속에서.”

“…….”

부인의 눈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마침 방에 도착하였기에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방문을 열자 안쪽에는 아까 그 어린 소년과 닮은, 조금 더 큰 소년이 정자세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청난은 두 아이에게 서예, 시, 그림 등 갖가지 것을 알려 주었고, 때로는 요마귀괴와 비상시에 필요한 갖가지 잡학도 가르쳐 주었다.

선계의 대봉인이 깨진 지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그 속에서 튀어나온 열둘의 대요마는 선계의 신선들에 의해 모두 제압되었다. 그중에서도 백매선인의 활약은 강과 산을 타고 널리 알려져 그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문제는 대요마뿐만이 아니었다. 대요마의 강한 마기가 잠들어 있던 온갖 요마귀괴까지 깨운 것이다.

날이 갈수록 피해는 점점 늘어 갔다. 결국 관아의 병사들이 창과 검을 들고 무력으로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둘은 성격이 너무 달랐다. 일반 병기로는 요마귀괴를 해치우기 어려웠다. 많은 물적 자원이 낭비되었고, 인력들이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미비하였으니, 날이 갈수록 민심이 흉흉해져만 갔다.

“선생님, 황궁에서 수선계 문파들에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큰 소년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청난은 읊던 책을 잠시 덮어 두었다.

“소문에는 그렇다고 하지. 하지만 수선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을 거다.”

“어째서요? 같이 협력하면 좋잖아요.”

대답한 것은 어린 소년이었다.

청난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라는 대답을 가까스로 참아 내었다.

“수선계는 속세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속세에 물들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지. 현재를 이겨 내는 것도 좋으나, 미래 또한 지켜야 하지 않느냐. 내가 이렇게 너희를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흐음…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죽으면 미래도 뭐고 없을 텐데.”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아무도 모르니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꾸나.”

청난은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지만, 공감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증오를 심어 무엇이 좋겠는가. 이리 말하나, 저리 말하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스승으로서 도리일 것이다.

큰 소년이 눈썹을 휘며 물었다.

“저는 걱정됩니다. 저희 마을까지 찾아오면 어떡하죠? 어머니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지, 요즘은 온 집 안을 해류진군의 석상으로 도배하고 계세요. 이러다 제 침상도 신상이 차지할 지경입니다.”

“그… 그렇구나.”

하마터면 청난은 손에 쥐고 있는 붓을 떨어뜨릴 뻔했다.

‘해류진군’은 백매에게 붙여진 별호였다.

물 위에 선 그의 위엄이 어찌나 대단한지 그 어떠한 생명체도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고 했던가. 그의 이름은 파도처럼 거세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바다와 접하기는커녕 가깝지도 않은 이런 산골 마을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에 한동안 밖에 나가질 못했었지.’

지금은 나아지는 걸 넘어 아예 거리에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된 탓에 외출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선생님도 이거 드릴게요.”

작은 아이가 꼬물꼬물 청난의 손에 쥐여 준 것은 말린 매화 꽃잎이었다.

“해류장군께서는 하얀 매화꽃을 좋아하신다고 해요. 갖고 있으면 그분께서 보우해 주실지도 몰라요.”

“고맙구나. 잘 가지고 다니마.”

청난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이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 아이들은 똑똑하니, 꽃잎을 가지고 있다 하여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어 있겠는가. 만의 하나를 생각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것이겠지. 그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 스승까지 챙겨 주니 마음이 여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매화를 좋아했던 건 백매가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꺼림칙함도 함께 들었다. 사과의 의미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 주려던 찰나에, 굳게 막아 놓은 창문이 바람에 덜컥 흔들렸다.

청난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의 표정이 한순간 굳었다가 금세 평소의 여유로운 낯이 되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벌써요?”

“그래. 선생님이 좀 피곤하구나. 다음 주에 보자.”

“감사합니다. 참, 선생님, 차 한잔하고 가시겠어요? 어머니가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다과를 만들어 놓으셨거든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구나. 하지만 집에서 아버지께서 적적해하실 테니 어서 들어가 봐야 해.”

“아, 그렇겠네요. 그분께선 심심한 걸 싫어하셨죠.”

“그러셨지. 그럼 선생님은 먼저 갈 테니 나오지 말거라.”

다시금 망토로 온몸을 두른 청난은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차에 뒤를 돌아 두 제자를 바라보았다.

“절대 나오지 말거라. 가급적 부인께서도 외출하지 않으시도록 하고.”

“어째서요?”

“음……. 날이 춥단다. 이런 날 고뿔이라도 걸리면 큰일이지 않겠느냐. 이제 정말 가도록 하마. 절대, 절대 나오지 말거라.”

청난이 방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워 그 소리조차 고요했기에 방에 남은 형제는 그가 정말 나간 것이 맞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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