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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30)화 (30/111)

#30

백매의 수결은 거의 완성 단계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오늘로 완성이 될까 생각되려는 와중에 백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존, 이토록 바람을 오래 맞고 계시니 건강을 해치실까 걱정됩니다.”

“나는 괜찮아.”

“제자가 걱정이 됩니다. 사존을 마땅히 보필하지 못하면 어찌 제자라 할 수 있겠나요.”

“으음…….”

청난은 저를 걱정하는 그를 또다시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또 하루의 수련이 끝이 나고 말았다.

그의 손을 잡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길을 걸어 다시금 그의 궁으로 돌아갔다. 크게 다를 바 없이 그와 함께 식사를 하였고, 침상에 몸을 뉘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반드시. 그렇게 다짐하고서.

청난이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옆에 백매가 없었다. 청난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보며 지금이 언제인지 가늠해 보려 하였지만, 바깥은 언제나처럼 황홀한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침 인사를 빼먹지 않는 성실한 효자가 옆에 없는 것을 보아, 자신이 평소보다 일찍 깨어났다는 것만을 넌지시 알 수 있었다.

청난은 오목조목한 손으로 옆에 벗어 둔 외의를 챙겨 입었다. 그러다 방 안을 보니 이곳이 꽤나 넓다는 것을 문뜩 자각하였다. 백매의 몸이 큰 탓에 이곳이 작아 보였던 것일까. 아니, 아마도 청난이 백매에게만 신경 쓰느라 방을 살피지 않은 탓일 것이다.

청운의 아들 청난으로 사는 근 십 년 동안 그렸던 미래에 백매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재회하니 단 일각 뒤에도 그가 없는 광경은 떠오르지 않았다.

청난은 어제처럼 들뜨지 않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머리를 식혔다.

지난날 그는 자신의 옆방에 있겠다고 했었다. 청난은 그를 찾아가기 위해 복도로 향했다.

막상 나오니, 이 궁 안의 ‘옆방’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떠올랐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이 없을 테니, 문을 열다 민망한 광경을 볼 걱정은 없었다.

“응?”

청난이 우측의 문으로 향하려던 차에 뜰에서 영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런 청아한 느낌은 수야각 수사들의 특징이었고, 이곳에 수야각 사람은 오직 저와 백매만이 남았다. 청난은 자신의 뛰어난 운에 만족스러운 미소 지었다.

그를 놀라게 할 심산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백매의 뒷모습이 얼핏 보이게 될 쯤에, 청난은 공중을 선회하는 고운 물길을 볼 수 있었다. 둥근 원 안에 수백에 달하는 획들이 정해진 규율에 따라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은 완성된 수근봉진의 모습이었다.

‘혼자서 수련을 한 모양이구나.’

그를 칭찬해 주어야겠다 마음먹던 찰나에 먼저 온 손님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화백매야, 언제 그렇게 대담해졌어?”

“네가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모르는 척하지 마. 사존께서 눈치채지 못하실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청난은 자신이 언급되자 몸을 감추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너한텐 그분을 사존이라 할 자격이 없을 텐데? 그렇게 부르지 마.”

“그렇게 사존을 섬기면서, 그의 뜻엔 그릇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

몸을 완전히 숨긴 청난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오직 목소리만으로 상황을 추측해야 했다.

“언제 완성했어? 아마도 처음에 바로 익혔겠지. 네 재능으로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사존께 말할 생각이야?”

“말한다면?”

“그렇게 되면, 그가 날 다시 보지 않을 거야. 날 혐오하시겠지. 그건 안 돼. 다시 그를 잃을 순 없어……. 차라리, 널 잃는 게 낫지.”

청난은 등을 맡긴 벽 너머에서부터 강렬한 힘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진정해, 진정해. 날 죽이려고? 내가 일러바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 조급한 거 아냐? 말 안 할게. 말하지 않을게. 됐지?”

강렬한 힘은 그제야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계속 이럴 순 없잖아. 언제 끝내게?”

“……하루만, 하루만 더 그분과 있고 싶어. 이것을 완성한 게 알려지면 적어도 몇 년은 그를 보지 못할 텐데, 그사이 날 잊으면 어떡해? 그가 날 잊지 않을 정도면 돼. 그때까지만 함께 있을 거야.”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불쌍한 척을 한다며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매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연화는 한숨을 내뱉고 ‘그래’라는 말을 꺼내려고 하였는데,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린 거친 목소리에 도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화백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난이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표정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분노에 차 있었다.

“그까짓 것을 위해 만인을 좌시하려 해?”

청난은 제 화에 못 이기고 그에게 달려가느라 손등이 벽에 쓸리기까지 하였다. 그의 손등에서는 피가 툭툭 떨어지건만, 청난은 그것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두 눈은 오로지 백매만을 향하였다. 그의 표정과 손등을 번갈아 바라보는 백매의 얼굴은 겁에 질려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내가 잘못 이해했다면 말하거라. 내게 잘 보이겠다는 이유로, 만민이 고통받는 것을 앎에도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 맞느냐?”

“사, 사존…….”

백매는 그에게 들키게 된다면 자신을 버릴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사흘간 그와의 정이 두터워졌으니 들킨다 하여도 잠시 혼나고 말 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은 정말 안일하고 희망뿐인 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난은 노를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백매는 청난의 그런 표정은 비승하기 전에도 난생 본 적이 없었다.

“제… 제자는…….”

백매는 아무런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새하얘진 머릿속은 이 상황을 해결할 답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청난이 아파하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도 없었기에 조용히 그의 앞에 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청난의 손을 감싸 잡으며 그에게 영기를 불어넣어 줬다.

하지만 청난이 그의 손을 내쳤다.

백매는 휘둘러진 자신의 손과 땅을 적신 청난의 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 아래엔 내 가족들이 살고 있다. 내 사람들이 살고 있단 말이다. 그것이 네게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너는 신선이냐, 나의 제자이냐? 내가 보기엔 그 무엇도 아니구나. 창생을 어여삐 살피지 않고, 스승의 사람은 두 눈에도 담지 않으니 네가 어찌 그것을 표방하겠느냐. 네가 감히!”

“하지만, 사존… 저는… 저는…….”

그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더니 기어코 투명한 물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그는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걸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존께선 제게 무예를 전수해 주셨지, 만인을 돌보는 법은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부족한 제자가 어떻게 그것을 홀로 깨우치겠습니까. 저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백매의 표정은 불안함으로 가득 차 불쌍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누가 이런 표정을 짓는 자를 보고 높은 하늘의 신선이라 생각하겠는가.

평소의 청난이라면 이런 모습에 마음이 수그러들었겠지만 이것은 그의 역린이었다.

백매는 청난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은 변명을 하기 위해 벌어지다가도 이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물기를 반복하였다. 청난은 더 이상 그 모습을 애틋하게 볼 수 없었다.

“네게 실망했어.”

청난의 말이 끝나자 들리는 것은 오직 백매의 거친 호흡뿐이었다. 그는 마치 비 내리는 날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 이윽고 청난을 갈구하던 고개가 푹 꺾여 내려갔다. 청난은 그가 우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저는, 저는 오직 당신만을 원했어요. 예전에도, 지금에도. 제 모든 이유에는 당신이 있어요. 당신이 원했기에 소각주가 되었고, 당신이 바랐기에 당신 없는 세상에서 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백매의 고개 아래는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질펀히 적셔지고,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불안했던 그의 목소리는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들렸다.

“하지만, 제자는 너무 힘들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절 두고 가지 마세요. 다시는 당신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는 내려질 칼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았다.

“저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그래선 안 되는 걸 알지만, 하지만, 당신밖에 없어요……. 사존, 제자가 다 고칠게요. 당신께서…….”

“그래,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구나. 원한다면 함께 있으마.”

청난의 말에 백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가 마주한 청난의 표정에는 혐오감은 없었지만, 다정했던 그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널 그리 키웠으니 내가 책임지겠다. 원한다면 이곳에서 평생을 함께 보내 주마. 하지만 기억하거라. 그것이 너의 행복일지 몰라도, 나의 행복은 아니다. 그것을 원한다면 나를 잡아라.”

청난은 그가 대답하기를 충분히 기다렸다. 백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들의 시간은 멈춘 것 같았고, 곧 청난은 몸을 돌렸다.

그의 행동은 빠르지 않았으니 백매는 충분히 그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그가 어떻게 감히 사존의 앞을 막겠는가. 그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청난 또한 그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백매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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