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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옛 제자가 신선이 되어 찾아왔다 (22)화 (22/111)

#22

청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씻고 다시 듣고 싶었다. 세상의 이치니, 섭리니 하는 듣기 그럴싸한 말들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 저 아래에는 죄 없는 이들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청난은 고개를 획 돌려 연화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수습하려 하지 않는 거죠?”

“불생주의인 신선들 때문이야. 인계에 속하지 않았으니 인계의 생명을 거둘 수 없다나.”

“그럼 다시 봉인을 하면 되잖아요. 그건 살생이 아니잖아요.”

“그건 말이지…….”

연화가 말을 이어 나가던 차에 중후한 목소리가 청난과 연화의 대화 사이를 막았다.

“연화가 할 말이 많은가 보구나.”

그 목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주변이 서늘해진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청난은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방에서 쏘아지는 시선 때문이었다. 사방에 흩어진 신선들의 눈길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모를 수 없었다.

“아이? 아이가 왜 여깄어?”

“연화선, 당신의 아들인가요?”

“인계에 너무 내려간다 했더니, 살림 차려서 그랬나 보네! 하하하하하.”

연화는 그들 사이에서 어떤 유언비어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된다는 태도였으며, 다른 신선들의 반응 또한 그것이 당연한 듯하였다.

단 한 존재만 제외하고.

“감히 인간의 아이가 선계를 밟았구나!”

신선의 표정이 험악할 거라는 사실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자신의 권위에 위협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감히’.

단 두 글자만으로도 그의 사상을 얼핏 알 수 있었다. 청난은 이런 권위주의적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연화는 청난을 숨기듯 그의 앞으로 나섰다.

“제 지기입니다. 집들이를 하러 왔는데, 급히 불려 온 터라 미처 돌려보내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군. 연화선이 새 친우를 사귀었다니, 축하를 건네네. 기왕이면 신선 친구를 사귀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야. 뭐, 두루 사귀는 것이 나쁘진 않지.”

“그렇죠.”

“친우와 노는 것도 좋으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연화선, 네 무력이 막강하니 토벌에 주도적으로 나서 주길 바라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선과 연화의 대화는 마치 오래간만에 들어온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같았고, 그것은 다행히도 청난에게는 긍정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대신선은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네 지기는 내 보좌관이 가져다 놓으마. 이리 주거라.”

“…….”

그에게서는 단어를 신경 써서 선택한다는 조금의 호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토록 세심하지 못하니, 그가 실수로 친우를 ‘분실’하거나 ‘파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연화 또한 그 속을 짐작하였는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청난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연화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할 터이다. 더 이상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마땅치 않았다. 청난은 그의 몸을 빙글 돌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연화는 그런 청난을 붙잡지 않았다.

저벅저벅. 청난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를 향한 시선들도 함께 걸었다. 청난은 이 길의 끝에 범굴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누군가 청난을 보며 비웃었다. 다른 이는 안타까워했으며, 또 다른 이는 흥미로워하였다. 청난은 마치 무대 위에 올라간 재주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십 년 만이라 해야 할지, 삼백 년 만이라 해야 할지. 어쨌든 갑자기 발끈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시선들이었다.

청난은 그저 묵묵히 앞을 보고 걷기만 하였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다가와 청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일으킨 바람에 흩어졌던 안개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늘따라, 선계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발걸음을 하는구나.”

“오랜만입니다, 지화선.”

그의 목소리는 다소 낮았으며, 동시에 청량한 것이 마치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 흐르는 폭포수의 대화를 듣는 것 같았다. 높게 자란 키와, 넓어진 등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의 몸을 두른 값진 의복과,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장신구들은 청난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청난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백매선, 언제부터 다른 이의 일에 관심이 많았지?”

“이 자는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네가 아는 아이인가?”

“네.”

백매는 길게 답하지 않았다. 무례하기보다는 되도록 그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고 싶지 않은 듯해 보였다. 하지만 대신선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선계에서 이름이 드높은 두 젊은 신선이 그리도 아끼는 인간이라, 얼마나 대단한 영재인지 내 궁금하군. 소개해 줄 테지?”

“선군, 저 아이에게는 아무런 영기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답한 목소리는 연화와 청난을 이곳으로 안내했던 해태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아마도 그 영수의 주인일 것이다.

“호오, 그럼 무슨 속셈인 거지? 자격 없는 인간을 선계에 데려오다니.”

“그는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런 말은 어린아이나 속겠구나.”

대신선은 적대감을 숨길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

백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선 또한 덧붙이지 않았다. 만약 그들의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그들이 말없이 서 있을 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기류가 상하고 연기가 나부끼며 풀이 꺾여 나가니 그들의 강렬한 신경전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의 풀떼기보다 약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청난이었다.

“커컥, 컥!”

청난은 마치 심해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을 조여 오는 압박감을 느꼈다. 청난은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조여지는 숨통은 여전했다. 결국 그는 털썩 주저앉았으며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선생님!”

백매가 다급히 다가가 무릎을 꿇고는 청난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를 조여 오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청난은 부족했던 숨을 몰아쉬었다.

“흐으억, 허억, 헉…….”

그런 청난에 비해 대신선의 음성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힘든가 보군. 백매선, 조금 진정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다 숨넘어가겠어.”

“…….”

백매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청난을 안고 있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진동이 청난에게까지 전해졌다. 어째서 이리 떠는 것일까. 분해서? 무서워서?

‘아마도 분해서겠지.’

청난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백매가 청난을 안은 손을 풀었다. 마치 연약한 유리로 만들어진 그릇을 살포시 내려놓는 듯 그의 행동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뒤로 물러난 백매는 단숨에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나 다시 한번 늠름한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분노도, 다른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정갈한 음성을 뱉었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자 된 도리로서 스승을 섬기는 것에 무슨 속셈이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그저 반응을 기다리며 묵묵히 서 있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고 청난은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스승은 죽지 않았어?”

“그새 다른 스승을 섬기는 건가?”

“그럴 리가. 백매선의 효심은 삼계가 다 아는 사실이야.”

청난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을까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저 꼬마가 ‘그’라고?”

“세상에.”

“대체 백매선의 스승이 누구길래 이러는 거요?”

“몰라? 오백 년간 동굴 속에 박혀 계셨나 보지?”

“누구처럼 놀고먹기엔 바빠서 말이오.”

“뭐라?”

……중요한 건 개뿔.

왜 선계는 무슨 말만 하면 서로 싸우느라 바쁜 걸까.

상황은 아비규환까지는 못 되더라도 아수라장은 되었다. 당사자는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사건의 내막을 추리하는 신선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영문 몰라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신선들도 있었다. 백매는 대신선, 지화를 경계할 뿐 상황을 정리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광경이 퍽 익숙한 모양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하던가. 청난은 어쩔 수 없이 교통정리에 나서기로 하였다.

청난은 천천히 일어나 의복에 묻은 흙을 탈탈 털었다. 백매는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흐읍, 후.

청난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등과 어깨를 폈다. 그의 왼손을 주먹을 쥐고, 그의 오른손은 왼손에 기대었다. 이는 수선자라면 으레 취하는 포권의 자세였으며, 청난이 이번 생애 동안 처음으로 취한 자세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성은 진, 이름은 청난. 과거 수야각주를 맡았던 한낱 인간입니다.”

청난의 작고 여린 목소리가 사라지자 주변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청난은 주변을 살펴보지 않았다. 시야에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앞을 바라보고 당당히 서 있었다. 그의 겉모습은 어렸으니, 어린아이의 재롱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어찌 되었든 한 시대 동안 이름을 날렸던 뛰어난 이들이었다. 이 작은 몸에서 나오는 기개를 못 알아보지 않을 터였다.

“말도 안 돼.”

정적을 깬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청난이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곳에서는 연화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청난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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